신중국 수립 후 중국 공산당이 직면한 새로운 시련 중 하나는 어떻게 신속하게 회복하고 국민경제 발전을 이룩하는가였다. 국민당 정부가 뿔뿔이 흩어진 후 남겨진 것은 만신창이에 수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상하이 경제는 붕괴 위험에 놓였고 석탄은 고작 일주일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면화와 식량도 한 달을 버티기 어려울 정도였다. 불법 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시장은 물가 파동을 여러 차례 연이어 겪어 사회 불안정이 최고치에 달했다.
이러한 심각한 경제 상황 속에서 당 중앙은 중요한 임무를 재경사업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천윈(陳雲)에게 맡겼다. 1949년 7월 천윈 주임 주축의 중앙재정경제위원회가 성립되어 즉각 물가 안정과 재경사업 분야 전투에 뛰어들었다.
상하이가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안화는 투기업자들의 완강한 저지에 부딪혔다. 천윈은 중앙을 대표해 관련 초안을 마련하고 강력한 조치로 먼저 상하이 투기 현상을 강력하게 근절하기로 결정했다.
신중국 첫 번째 경제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