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사람들은 체육복권에 대해 익숙하지만 연변의 체육복권 관리사업을 책임진 박성웅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있을것이다. 연변에 첫 체육복권이 나타나고 이어 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세워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연변에서 체육복권이라는 이 신생사물의 탄생을 추동하고 그를 성장시키고 옹근 발전과정을 지켜온 견증인이기도 한 박성웅씨다. 그동안 박성웅씨는 연변의 체육복권사업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연변의 체육복권발행사업을 길림성내 선두자리에 올려놓았는가 하면 그 자신 역시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았으며 2008 북경올림픽 연길성화봉송에서는 47번째 주자로 되여 스스로의 인생에 새로운 력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연변체육복권 년간 매출액 2억 실현 길림성내 선두
올해 연변체육복권의 매출액이 2억원을 훨씬 넘길 전망이라고 한다. 체육복권 매출액의 증가는 곧바로 공익성수익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는 또 연변 군중체육사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후원자금의 증가를 의미한다.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세워지기는 2001년, 올해로 만 11년에 접어들고있다. 하지만 연변에서 체육복권이 도입되기는 그보다 앞선 1996년이다. 당시 연변체육관 관장으로 있던 박성웅씨는 100만원을 넘는 대출자금을 체육관 경영으로는 환불이 불가능함을 일고 새로운 수익창조수단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던중 길림성내 다른 지역의 경험에서부터 체육복권을 통하면 빚도 갚고 수익도 창출할수 있다고 확신하고 연변체육국의 동의를 거친 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체육복권 집중판매에 나섰다. 그때의 체육복권발행은 지금과 같은 컴퓨터발행이 아니라 도심광장에서 치른 집중판매였다. 《첫해 4개월동안 조작해 40만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체육관의 4명 인원이 겸직으로 나서서 했다》며 결국 3년 체육복권판매로 빚을 물고 일정한 수익도 창출함으로써 연변체육복권의 밝은 앞날을 예시하기도 하였다.
2009년 체육복권특수공헌상을 수여받은 박성웅주임(왼쪽).
그러던중 2000년 길림성체육국은 문건을 내려보내 각 시(주) 체육복권관리센터의 설립을 비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연변은 지난 2001년 8월 체육복권관리센터를 건립하기에 이르는데 박성웅관장은 체육관 관장직과 함께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주임직도 겸임하게 된다.
2001년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설립될 때 연변에는 46대의 단말기(终端机)밖에 없었으나 현재는 도합 288개의 투주소가 세워져 있는데 단말기 대당 매출액은 길림성내 1위를 차지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또한 사회에 취업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수백명이 체육복권업종에 취직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웅주임은 《연변은 인구수나 GDP에서 보나 길림성내 하위권에 속하지만 실제 단말기 대당 매출액은 상위권에 속한다》며 그 실적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변체육복권 매출액은 2007년 1억원선을 돌파해서부터 2008년 1억 4000만원, 2009년에 1억 6000만원을 웃돌았고 2010년에는 1억 9800만원, 지난해에는 2억 2000만원이라는 실적을 올린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에서 창출한 수익을 민간에 환원
박성웅주임은 《연변체육복권 10여년간 총 매출액은 10여억원에 달하는데 공익금은 올해까지 8000만원 정도로 예상하고있다》며 《현재 이 공익금 대부분은 각 현, 시 건강시설건설에 투입되고있다》고 말한다.
2008 북경올림픽 연길성화봉송에서 47번째 주자로 뛰는 박성웅주임.
현재 연변에서는 체육복권 매출액의 7%를 올림픽메달항목, 연변 스포츠센터 건설과 스포츠시설 보수, 전민건강 운동시설 건설과 각종 대중체육행사에 쓰고있는데 군중체육행사나 전민건강홍보 등에 해마다 투입하는 자금이 600~7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체육복권 수익을 통한 투입으로 지난해까지 향진 대중건신시설건설이 이미 끝난 상황이며 올해부터는 촌(툰)에 진입할 계획》이란다.
연변체육복권의 확고부동한 방침은 《민간수익 민간환원》이다. 10년간 연변체육복권은 연변의 각종 공익성활동과 체육활동, 전민 건신 행사에도 경제적인 후원을 주었다. 지금까지 《체육복권》 이름으로 연변주 만명달리기 행사가 수차 펼쳐졌고 당구, 탁구, 배구, 장기, 롱구 등 연변주내 각종 경기는 물론 2010년 연변에서 처음 펼쳐진 길림성 제16회 경기대회도 《체육복권》으로 이름할만큼 체육복권은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연변지역 재해지구를 지원하는 자선축구경기에서 의연하는 박성웅주임.
체육복권은 또 적지 않은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10년간 체육복권을 통해 연변에서는 천만원 부자 1명, 500만원 이상 부자 10명, 300만원 이상 부자 5명, 100만원 이상 부자 10명 정도 배출한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책임감 하나로 여러 민족의 건강과 공동진보에 기여
박성웅주임은 무슨 사업을 책임지든 강한 책임감을 보여준다. 《11.5》기간 그는 국가의 《설중송탄공정(雪炭工程)》기회를 빌어 국가자금 2000만원을 쟁취하여 체육복권《설중송탄공정》인 연변전민건신센터를 세우고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 롱구, 롤러스케이트 등 훈련 및 건신 시설을 건설했는가 하면 2005년 선후로 국가와 길림성 체육국의 자금과 기자재들을 쟁취하여 연변의 첫 실내 표준적인 쇼트트랙경기장을 건설했다.
체육시설건설뿐만 아니라 빈곤부축, 민족단결 등 사업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있다. 그동안 박성웅주임이 책임자로 있는 체육관과 체육복권센터는 돈화시 대산진, 왕청현 배초구진 등 지역 농촌의 빈곤부축을 맡아왔으며 작년부터 화룡시 동성진 한 농촌의 빈곤부축을 맡고있다고 한다.
감숙 옥수대지진 의연에 나선 체육복권사업일군들.
《박성웅주임처럼 줄곧 책임성 있게 일해온 사람은 처음 본다.》 이는 그가 도맡고있는 화룡시 동성진 빈곤부축 대상촌의 서기가 한 말이다.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연변체육관)는 현재 두집의 빈곤호 부축을 맡고있는데 그중 한집은 박성웅주임이 직접 책임지고있다. 한사람은 다년간 촌당지부서기로 일해온 사람으로서 병환으로 생활자립이 어려운 가정이였고 다른 한집은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박성웅주임은 한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300원씩 일상비용을 지원해왔는가 하면 설명절때면 쌀이나 과일, 음료를 후원했으며 또 직원들을 동원해 옷견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사천 문천대지진, 감숙 옥수대지진 및 연변특대홍수 등 시기에도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는 물론 박성웅주임 스스로 적극적인 의연에 나섰다.
2009년《중국체육복권컵》연변스키경기에서 등수에 오른 어린선수들에게 기념품을 주고있는 박성웅주임.
1971년 왕청현 배초구에 하향, 1974년 입대, 1978년 제대뒤 연변농구공장 로동자로 있으면서 농민, 군인, 로동자 이른바 3대 《직업》을 다 거쳤다는 박성웅주임, 1982년에 연변체육관에 전근해서 1992년 관장직을 맡고 다시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주임을 맡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년간 박성웅주임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스포츠계통 우수공산당원, 군중체육선진사업일군, 연변주 《로력모범》, 2010년 길림성 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 등 수많은 영예를 따냈다.
동시에 그가 책임지고있는 연변체육관,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는 수차 자치주 선진기층당조직으로 선정되였으며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체육총국으로부터 《전민건신은 올림픽과 함께》 선진집단으로, 2009년에는 자치주 당위와 정부로부터 《집단로력모범》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특히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는 2001년 이래 수차 길림성 《매출임무 초과완성상》, 《매출액 공헌상》, 《특수 공헌상》, 《마케팅 홍보상》, 《매출액 증가상》, 《매출액 특출상》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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