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위상 달라진 3세대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8월27일 15시43분    조회:565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이기용

<인터뷰> 조선족 3세 이기용 하나대투증권 연구원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생업을 잃은 많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전쟁과 분단으로 귀향길이 막히면서 중국에 남아 고된 생활을 이어가던 이들은 1992년 중·한수교와 함께 귀향길이 열리자 먹고 살기 힘든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속속 들어왔다.

조선족 1세대와 2세대가 고향을 등지거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주된 이유는 '생존'이었다.

수교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내로 유입되는 조선족 인구는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조선족 이주민들의 면면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생존을 위해 들어와 3D 업종에 종사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높은 수준의 교육과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진출하는 3세대 조선족들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하나대투증권에서 중국 증시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이기용(32) 씨도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의 조선족 3세다.

22일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베이징사범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좀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바꿔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베이징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의 조언에 따라 2003년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고 2006년 신영증권에 입사했다.

당시는 중국 증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증권사마다 중국 담당 연구인력을 앞다퉈 늘리던 무렵이었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씨는 단연 경쟁력 있는 인재였다.

중국 내 조선족 가운데 이씨처럼 명문대를 나오고 한국 유학을 올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조선족 사회의 교육열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자기 세대의 고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다.

"한족을 포함한 중국 내 민족 가운데 조선족의 4년제 대학 진학 비율이 제일 높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한테서 '우리는 고생했으니 너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살라'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지요. 제 자신도 힘든 가정 형편을 보면서 자라니까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한수교 이후 90년대 중반 이씨의 부모 세대들의 한국행이 시작될 무렵 한국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한국 식당에서 한 달만 일해도 중국에서 2~3년 농사지어 벌 돈을 챙길 수 있을 때였다. 이씨의 아버지도 일자리를 찾아 2001년 한국에 왔고 현재 건물 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뒤 중국의 물가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행의 경제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대신 '교육'을 통한 더 큰 기회가 열렸다.

"2000년 무렵부터 국내에 조선족 유학생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한국에 남아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학생도 늘어났죠."

이씨와 함께 어울리는 조선족 친구들 가운데는 대학교수도 있고, 변호사나 연구원도 있다.

그는 "국내 체류하는 조선족의 수가 늘어나면서 조선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은 오히려 나빠졌다고 느낀다"면서도 "그러나 나나 주위의 전문직 친구들은 일하면서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경쟁력을 갖춘다면 조선족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한국내에 있는 전체 조선족 가운데 고학력 조선족은 여전히 소수"라며 "조선족들이 스스로 발전을 위해 좀더 노력한다면 장기적으로 조선족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32)  연길시 “애심어머니”협회 김화회장 인터뷰       1%의 사랑이 100%의 희망을 안아온다 녀자는 연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글.사진 은설 박군걸 기자   녀자는 연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여기에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뛰여넘어 사심...
  • 2012-12-07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7)   ― 청도 미신커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리사장 리향란 인터뷰       새로운 창업 2개월 전망 밝아        다함께 건강하고 즐기는 사회 희망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어            사...
  • 2012-12-07
  • 30년간 한우물만 판 리룡문농민 암소 한 마리로 시작한 소사육업... 현재 년간 150마리 출하규모 형성   암소 한마리로 소사육업을 시작한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의 리룡문농민(49세)이 30년간 한우물만 판 결과 지금은 년간 소 150마리 출하 규모를 형성하여 화룡시에서 소사육 1인자로 손꼽히고있다. 가정별생산량...
  • 2012-12-06
  •     (흑룡강신문=서울) 윤교원 특약기자 = 20년동안 오로지 이미용 기계를 개발하면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어 오는 중소기업인을 만났다. 외산 제품이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용기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토대로 한국 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하성전자 하충현 대표를 인터뷰 했다. &n...
  • 2012-12-05
  •   음악교사서 사업가 변신 조선족 최화 대표 (흑룡강신문=하얼빈) 중국 최대의 한국의류 도매상가인 중허한국성을 설립하고 발전시킨 사람은 누구일까. 의류업에 잔뼈가 굵은 나이 지긋한 사업가가 아닌가 지레 추측했지만 장본인은 의외로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 주인공은 베이징푸하오밍샹마오(北京富浩商...
  • 2012-12-03
  • “좋아서 하는 일이라 재미있어요” 연길종합교역시장 화훼가게의 리광순씨를 찾아   “화훼 재배와 경영에 종사한지 20여년이 됩니다. 그동안 힘들고 고달픈 일도 많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재미도 있고 환경정화뿐만아니라 시민들의 건강도 챙길수 있는 일이라 너무너무 좋습니다.” 연길시...
  • 2012-11-27
  • 칭다오씨엔지무역유한회사 김명숙 사장   (흑룡강신문=칭다오) 김명숙 기자 = 한국과 일본의 야채와 과일의 씨앗을 수입해 중국 곳곳에 판매사업을 하고 있는 김사장은 현재 씨엔지무역유한공사, 대록농산개발유한공사, 금맥농업발전유한공사 등 3개의 정식 등록된 회사를 갖고 있으며 연간 4천 만 위안의 판매수익을 올리...
  • 2012-11-26
‹처음  이전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