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창업의 길은 험난했지만 난 이겨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16일 09시27분    조회:655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백춘희
대련 보방무역유한회사 백춘희사장의 창업이야기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주먹구구로 사회 생활에 뛰어들어 거듭되는 도전을 이겨내고 현재 연 매출 400만 달러의 복장무역회사를 이끄는 백춘희(여, 36세)사장도 그런 ‘성공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입사시 돈보다 전망을 보았다”

  1999년 요녕사범대학 경제관리 전공을 졸업하고 대련에 정착한 춘희씨는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친구들과 함께 IT회사를 차렸다. 허나 경험이 없고 자금, 인맥이 부족한 신출내기들이다 보니 회사는 2년 만에 아쉽게 문을 닫아야 했다. 이어서 월 노임 3000위안의 사무실 직원으로 취직했다가 너무나 기계적이고 안일한 삶이 싫어서 한달 만에 그만두었다.

  이런 경력이 있는 춘희씨에게 있어 호구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이루어가는 멋진 삶을 살고 싶었다. 당시 무엇보다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그렇게 도전과 발전가능성이 있는 직장을 구하고 있던 중 ‘보방무역유한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던 한국인 사장을 만났다.

  “무역이 춘희씨의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같이 일하면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며 한국인 사장은 입사를 종용했다.

  한국인 사장이 제시한 조건은 월 노임 800위안이었다. 당시 대련에 있는 한국회사 임금수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낮은 액수였지만 춘희씨는 단호하게 입사를 결정했다.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이고 또한 처음 세워지는 회사로서 백지에 뭔가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그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말단에서 부사장으로.. 대가는 컸다”

  2003년 3월 무역회사에 첫 출근한 춘희씨는 여느 초임 회사원과 다름없이 커피를 타고 청소를 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회사가 초창기이다 보니 할 일이 많았다. 한국사장은 솔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춘희씨를 전적으로 믿었다.

  사무실의 사소한 업무에서 재무, 세관업무, 인원선발까지 춘희씨가 참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신인이 감당하기엔 업무량이 벅차기도 했지만 춘희씨는 스스로 묵묵히 감내했다. 일을 배우고 기반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과 준비과정이 있었기에 훗날 춘희씨가 백사장으로 불릴 때 무역회사의 제반 운영과정을 속속히 들여다보며 각 부서 직원들을 여유 있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신을 바쳐 일을 하고 있는 춘희씨의 노력과 상관없이 회사상황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한국인 사장의 부적절한 인원관리로 회사 운영자금에는 큰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연약한 사장이 번마다 협력업체들이 동원한 폭력배들의 채무독촉과 무리한 갈취에 순순히 따르다 보니 회사는 도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그 때 폭력배들의 괴롭힘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 사장은 방패막이로 춘희씨를 내세웠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지금 그 상황을 떠올리면 너무 무섭다”는 춘희씨는 당시 겁도 없이 칼을 들이대는 폭력배들과 언쟁을 벌겨가며 협상을 했다.

  그리고 회사의 자금구멍을 메우기 위해 개인 돈을 돌려댔는데 그 액수가 나중에는 30만위안을 넘기게 되었다. 춘희씨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회사를 살려야 나도 산다”는 일념뿐이었고 개인 득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춘희씨의 사력을 다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권과 관리권을 쥐고 있는 사장의 부실경영은 계속됐다. 게다가 부정을 일삼는 직원들의 가시돋힌 눈길이 춘희씨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춘희씨는 회사에 이미 넣은 개인 돈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사직하고 집에서 지낸 지 일주일 만에 회사직원들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폭력배들이 찾아와 직원들을 감금해 놓고 돈을 내라며 엄포를 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춘희씨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문제를 해결한 춘희씨를 한국사장이 간곡히 만류했다. 지금까지 사장지시에 따라 일만 해온 춘희씨에게 부사장의 직함과 함께 직원관리를 비롯한 부사장으로서의 실권을 주겠다고 했다. 너무나 많은 심혈을 기울인 회사이고 그 만큼 애착이 컸던 춘희씨는 이튿날 부사장 취임식을 통해 회사에 복귀했다.

  “직원들은 내 가족, 내가 지킨다”

  2005년 한국사장은 “한국에 들어가 오다를 따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도주하다 싶이 중국을 떠났다.

  춘희씨가 건네받은 건 근 20만위안에 가까운 채무와 10여명의 직원이 전부였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업무거래가 있던 바이어들도 쏙쏙 빠져나갔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빨 뺌을 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허나 사장이 된 춘희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회사를 믿고 따라온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울러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하든 내 손으로 꼭 이 회사를 살려 내 직원들을 지켜내겠다는 오기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왔다.

  백사장은 재정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이었지만 친지들의 돈을 돌려서라도 우선 직원들의 노임을 지급하면서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부지런히 바이어들을 찾아 다니며 업무를 주문했다.

  백사장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오다가 생기기 시작했고 일부 바이어는 여러 고객에게 나누어주던 오다를 백사장 한 사람에게 몰려주기 시작했다.

  회사는 2006년, 2007년의 진통기와 2008년의 IMF를 이겨내며 2009년에 들어서서는 차츰 제 궤도를 찾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물곤 그 과정에 바이어에게 돈을 사기 당하고 직원들의 배신을 당한 등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백 기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보방호’ 무역선의 넓은 바다로 향한 항행을 막지 못했다.

  회사가 첩첩 난관을 이겨내고 욱일승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백사장이 사심을 버리고 회사를 집처럼, 함께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회사에 남은 10여명의 직원이 지금까지 백사장을 믿고 따르고 있다.

  “보방의 직원들은 사장님 말씀만 나오면 눈에서 빛이 날 정도 자랑스러워 하고 있어요. 정말 좋은 직원들을 두었어요.”

  백사장은 주변으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일에는 에누리 없지만 사람을 대함에 있어 더 없이 인간적인 백사장의 인격매력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건강검진, 년말 보너스, 연례여행 등 인센티브는 물론 야근이 있을 땐 직접 삼계탕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함께 사우나에 가서 피로를 풀어주기도 했다.

  장사를 함에 있어 푼돈을 아끼는 백사장이지만 직원들의 적절한 요구에는 호방하게 호주머니를 풀면서 직원들을 정으로 대했다.

  “이 회사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보다 높은 노임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회사도 있지만 500~1000원의 차이 때문에 이 회사를 떠나고 싶진 않아요. “

  직원들이 늘 하는 말이다.

  백사장은 이처럼 든든한 직원들을 후방에 두었기에 하루가 멀게 미얀마, 태국, 일본, 한국 등 외국을 나들며 보방의 미래를 넓혀가고 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곤명시정협위원, 곤명동방금홍부동산개발회사 이사장, 북경세박투자그룹 박철 회장            북경수도국제공항에서 공항고속도로를 따라 시구역방향으로 10여킬로메터 달려 5환로부근에 이르면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있는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온다. 역동하는 도시...
  • 2021-04-08
  • 김려화 교수, 조혈줄기세포 분화조절 분자 메커니즘 밝혀     얼마전 국제학술지 《eLife》에 게재된 동북림업대학 생명과학학원 유전학과 김려화(조선족.50) 교수의 조혈줄기세포 분화조절 관련 연구 결과가 세계적 관심을 끌고있다. 김교수가 이번 론문( “Rab5와Rab11, 여러 개의 신호전달경로 억제 통해...
  • 2021-04-06
  • 한 중국 류학생이 영국 런던에서 음악의 꿈을 좇아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 《합법 동반자(合法伴侣)》가 지난 12일 전국적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2019년 제22회 상해국제영화제 및 아시아 신인상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각본상에 노미네이트(提名)된 작품인 데다 인기스타 리치정(李治廷)과 백가(白客)가 주...
  • 2021-03-24
  • 최영덕 로인의 즐거운 예술생활 강가의 돌쪼각, 산기슭에 나딩굴고 있는 나무뿌리…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지만 무순시 최영덕 로인의 손질을 거치게 되면 ‘보배’로 탈바꿈된다.   3월 14일, 필자는 지난 2000년 무순시조선족제1중에서 정년 퇴직한 최영덕(79세) 로...
  • 2021-03-18
  •         리민은 1924년 흑룡강성 라북현 오동하촌의 한 애국자 가정에서 태여났다.        부친 리석원은 일제에게 빼앗긴 땅에서 살기싫어 20세기 20년대에 중국 동북에 망명해왔으며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을 겪으면서 민족독립과 항일의 뜻을 굳혔다. 그...
  • 2021-03-12
  •   항일전쟁시기 가장 처절하고 간고했던 동북전장에서 싸운 동북항일련군에는 녀전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고 경력이 가장 풍부하며 영향력이 가장 크고 기여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전우들사이 평판도 가장 좋은 사람은 녀전사 리재덕이라 할 수 있다. 리재덕((1917-2019) 리재덕은 1917년 1...
  • 2021-03-09
  •  구성지고 신명나는 우리 민족의 소리 - 판소리에 현대음악을 접목시켜 틱톡이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통하여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가 있다. 바로 현재 연변가무단에서 판소리 전승자, 민요가수로 활약중인 최              구성지고 신명나는 우리 민족의 소리 - ...
  • 2021-03-08
  • 국제미술전시행사의 총괄 기획인 허문길 화백   ▲사진설명: 허문길 화백    2월 22일 주칭다오 한국총영사관 김경한 총영사는 조선족 출신 허문길 화백을 면담하면서 중한 양국간의 문화교류행사에 대해 진지한 자문을 구했다.      그렇다면 허문길 화백은 누구인가.    허문길...
  • 2021-02-26
  • 길림성 통화청산그룹유한회사 리청산 회장이라면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은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끌끌한 민족기업인으로 년매출이 수억원에 달하고 년간 납세액이 5천만원을 넘는 기업의 총수로 해마다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사심없이 사랑을 쏟아가고 있다.   △ 코로나19와 싸우는 1선 의무일군들에게 보내는 원...
  • 2021-02-24
  • 일전에 필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솔잎식품생산허가증’을 획득하고 ‘솔왕’으로 불리는 연변장백산솔잎연구유한회사 조경수(1956)를 찾아 솔에 대한 일가견을 들어보았다.   일찍 2006년 조경수는 연변일보 중문판에 ‘솔연구의 제1인자’라고 불리며 주목을 받은 적 있다. 솔관련...
  • 2021-02-20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