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내가 하는 일, 우려란 없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23일 15시25분    조회:735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련순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

 외 유 내 강      적 수 천 석
                                       
-- 연길은포유한회사 리사장 박련순 인터뷰
 

 
 

한곳 우물만을 파라는 말이 있다. “지지이항”(持之以恒)으로 해석할수 있다. 꾸준히 한곬으로 흘러들어가라는 말이다. 사람의 정력과 시간과 재력은 한정되여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우물을 얻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한생을 헛되이 흘러버릴 수 있는 요소가 차분이 담겨있다. 듣기 좋게 말하면 일종의 모험이고 험상한 표현을 쓰면 하나의 도박이다.
 
성공여부를 판단하는것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개념, 판단, 추리와는 거리가 있다. 즉 학문이나 지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것이다.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하는, 하지만 고유한 그 무엇이, 기질이래도 좋고, 성격이래도 되고, 자신의 판단력을 뒤바침하고 이끌어가는 그러한것들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또한 행운의 주인공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역시 자신의 몫이다.
 
은포라하면 연길 목욕업종의 룡두업체로서 많은 시민들이 즐겨 리용하는 곳이다. 현재는 연길공신 맥주공장정문앞에 위치한 건축면적이 1만 2000평방메터인 은포빌딩을 비롯하여 6개의 은포지점(체인점)을 갖고있다. 은포의 리사장은 박련순녀사이다.
 
화려한 경력이나 고학력, 부유한 가정, 사회적 배경이 없는 보통녀성이다. 너와 나 다 충분히 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성공은 유독 그녀만이것이였다.
 
사우나가 연변에 정착한 것은 지난 세기 90년대초, 당시는 호텔 서비스 중 하나로 사우나가 개설되였다. 대중 목욕탕표가 50전일때 사우나는 50원이였다. 후엔 70-80원으로 인상되였다. 극 소수의 부유층이 향수할 수 있는 사치품이였다. 그 누구도 귀족적인 사우나가 대중문화로 이렇듯 빨리 번져지리라고는 생각못했을것이다.
 
이 시기쯤 박련순녀사는 한국에 있었다. 2년간 그곳에서 일하면서 사우나를 접촉하였고 직감적으로 사우나의 앞날을 느끼는듯 싶었다. 한국에서 사우나를 무척 즐겨 리용했다고 한다. 귀국하여 2년의 준비작업을 거쳐 1999년 10월, 은포사우나 하남점을 개업했다.
 
“그때만 하여도 지금처럼 이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형제자매들이 사우나를 하고있었고 나도 사우나 업종을 하고싶었고, 단지 연길시 동서남북 각 곳을 먼저 선점하여 분점을 꾸리겠다는 욕심뿐이였습니다.”
 



90년대 중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사우나는 대중화로 점차 탈바꿈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변모는 가장 먼저 우리의 인근 장춘에서 불어쳤다.
 
박련순녀사는 “물 가까이 있는 루각이 먼저 달을 즐기”는 격이 되였다.
 
이때부터 10여년간, 박련순리사장은 사우나란 이 우물 한곳만을 파고있다.
그것도 연길에서만이다.
 
행운스럽게 녀사는 샘물줄기를 찾았고 그 줄기를 따라 뻗어가게 되였다.
 
“지금 우리는 브랜드 수출, 체인점경영, 다종산업으로 발전하는 확장단계에 있다. 돈은 여러가지로 벌수 있도 또 그러한 제안도 수차 받았지만 나는 오직 사우나인으로 남아있을것이다. 앞으로도.”
 
박련순리사장의 승부수는 브랜드전략이다. 서안의 “화청지”(  池), 대련의 “물 저편에”(在水一方), 상해의 “대랑도사”(大浪淘沙) 등 중국 목욕업 유명업체처럼 성장하는것이다. 시작초기에는 목욕업을 위주로 하였지만 지금은 목욕업을 바탕으로 안마, 미용미발 외 음식, 헬스, 문예연출, 술집, 호텔업 등 다기능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경쟁력을 높이고있다.  이러한 모든것을 위하여서는 주식관리모식이 도입되였다.
 
“고집이 센 편인듯 하다. 일을 시작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될수 있다고 무작정 믿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추진했다. 가장 중요한것은 인재를 곁에 두는것이다. 그것도 고위관리직 인재말이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느낌을 주지만, 가만이 있으면 물과 같고 움직이면 바람과 같다는 말과 같이, 그러한 성격이 오늘의 은포를 선도해가고 있는것이 아닐가?
 
작은 목욕업을 위주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건강물치료문화와 록색휴가류행
으로 승화한 목욕산업, 심령의 긴장을 푸는 곳, 서비스 제공의 차원을 넘어
 물치료, 미식문화절 등 새로운 도시문화를 정착시킬수 있는 산업으로의 발
전, 한번 인 바람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사진 박군걸  글 한뫼
 


 

파일 [ 4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인건비와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생산원가 인상으로 많은 제조업들이 고전하고있을 때 과감히 정든 회사를 포기하고 무역업에 심혈을 기울인 젊은 기업인이 있다.바로 왕청현태생인 박해림(43살)씨이다. 지난 1996년에 청도에 진출, 말단사원으로부터 회사의 중견으로 활약하면서 타업체의 스카우트제의도 받았지만 그는 &l...
  • 2013-05-29
  •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국조선족동포련합회 회장 강성 인터뷰 《저의 이번 연변행은 미국동포사회와 연변지간의 교류와 합작,경제교류를 추진하기 위한데 있습니다.》지난 3월말 고향 연변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국조선족련합회 제8대 회장 강성의 말이다. 고향 연변을 떠난지 어언 20여년,세월이 흐를수록 고향 연변...
  • 2013-05-28
  • 까르푸한국식품관추진 실무총괄 홍인석사장을 찾아서 오는 7월 심양한국주에 심양시내 11개 까르푸매장에 한국식품관이 동시에 개관될 전망이다. 그 진척상황을 알아보고저 기자는 이 프로젝트의 실무총괄을 담당한 심양기원그룹 홍인석사장을 찾았다. 문; 까르푸에 한국식품관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은? 답; 지난해 10월경에...
  • 2013-05-28
  • “어떻게 IT분야로 진출하게 되였냐고요?”세존넷테크의 CEO 황광준씨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IT분야의 진출은 정말 우연중의 우연이였습니다. 당시 비디오테프 임대를 하고있던 저는 우연하게 가게문틈에 끼워두는 광고지를 보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광고지에 실린 대부분의 광고가 IT전문인력을...
  • 2013-05-28
  • 료녕해화국제려행사 리광호사장 료녕지역에서 려행업에 종사하는 조선족은 꽤 많지만 법인대표로 독립려행사를 경영하는 조선족으로는 료녕해화국제려행사 리광호사장이 유일하다. 리광호사장은 심양에서 독립려행사를 경영하는 한편 지난해 5월에 서울에다 중국해화국제려행사를 등록해 중한량국에서 2개의 려행사를 경영하...
  • 2013-05-24
  • -한룡수공장장과 룡수목재제품가공공장 한룡수공장장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사도구진 간구자촌에 자리잡은 룡수목재제품가공공장은 간구자촌에서 투자유치로 인입한 민영기업이다. 공장장 한룡수(54세)씨는 원래 장백현 십사도구공소합작사에 출근하다 1988년도에 정리실업을 당한 후 1992년 안해 박성숙(52세)씨와 함께 자주...
  • 2013-05-21
  •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 OKTA) 길경갑 부이사장.   조선족-한국인 화합 '선양 현상' 주역 길경갑 씨   (흑룡강신문=하얼빈) "예전에는 조선족들이 한국 기업 덕을 많이 봤습니다. 옆에서 보고 배운 점도 많이 있고요. 최근엔 조선족 기업이 크게 성장했고 한국 기업을 넘어설 때도 많지요. 이제는 조선족이 한...
  • 2013-05-16
  • 기술원과 함께 제품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박권률 씨(왼쪽).   민족음식문화를 선도해가는 조선족청년기업가 – 박권률 씨‏ (흑룡강신문=연길) 윤완주 특약기자=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소문난 룡정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로투구진 렴명촌에 가게 되면 부지면적이 1만 7000평방미터, 공...
  • 2013-05-14
  •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시병원정보과에 취직하였던 남편은 자투리시간을 모아 컴퓨터를 자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120의료응급쎈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였습니다. 당시 남편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의료분야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2003년에 병원을 사직하고 컴퓨터프로...
  • 2013-05-14
  •  편집자 주: 흑룡강신문한국지사를 통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조선족 동포 이 강씨의 취업 성공기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면서 적지 않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으나 결국은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회사 임원들의 감동을 이끌어 냈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 2013-05-09
‹처음  이전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