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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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해 변강 비추네" 예술총감 박춘선을 만나
수년전 연변에는 두개 명함장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나는 연변오동팀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가무단이다. 오동팀은 최은택을 모시고 중국축구갑A리그 4강이란 위엄을 토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오동팀은 강급의 강력후보였다.
동방이 밝지 않으면 서방이 밝아온다는것처럼 연변은 그사이 또다른하나의 명함장을 닦고 또 닦아 세상에 내밀었다. 일전 연길에서 공연된 가무 “붉은해 변강 비추네”는 연변가무단의 끝없는 노력과 창의와 사명감을 유감없이 펼쳐보이면서 자체의 함금량을 인증 받았다. 이러한 고순도 명함장 중심에는 수십년간 허다한 작품의 예술총감, 총연출을 맡아온 박춘선 국가1급시나리오작가가 숨어있다.
“예술창작은 완미주의자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력사적, 민족적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민족의 문화예술전통을 계승, 발양해야함은 정치적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며 정적을 위한 굳어진 표현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완미함의 추구는 예술창작에 필요한 지식구조와 실천경험이 받침되여야 한다. 이러한 자질이 바탕을 이루어야 우리는 미흡함을 스스로 알게되고 보완의 방법을 생각할수 있게 되며 따라서 조금더 완미함에 다가서게 되는것이다.
무용전공출신인 박춘선은 문학인이며 시인이다. 재학시절부터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학창작을 하여왔고 졸업후 연변가무단 배우생활을 거쳐 1988년 창작에 몸을 담그었다. 예술인으로서의 자질을 본격적으로 다듬기 시작한것이다. 또 그러한 환경에서 무용, 음악, 문학 선배들과의 교류의 장을 갖게 되였고 무대실전감수를 쌓으면서 계몽과 자아완성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1994년 연변가무단 창작실 주임으로 되였고 1998년 국가방문학자 신분으로 조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1년간 류학, 학습과 연구를 거쳐 문학준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조선에 체류하는기간 전통적인 무대미술과 작품주제성을 경험하였고 광장무를 접하게 되였으며 피바다, 만수대예술단 공연을 자주 목격할수 있는 현장에 다가서게 되였다.
“연변가무단은 기타 예술단체와는 근본적인 구별점이있다. 연변가무단은 중국조선족예술을 대표하고있으며 민족무용의 창작기지이고 발표의 플랫폼이다. 우리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하여야 하며 이러한 행위는 민족예술에 뿌리를 박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이어져 민족의 비물질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연변가무단의 사회성과 경제성에 대하여 박춘선은 명확한 립장을 보이였다. 연변가무단의 무용예술은 사회성은 물론 경제성에서 거대한 잠재력을 갖고있는바 이는 수차의 대형창작과 연출에서 증명된바있다. 공연의 경제성은 한두차례의 공연수입으로 계산할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거시적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계산해야 하며 잠시적인 사회적 효과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경제성을 창조하는것이며 또한 경제성 창조에 홀시할수 없는 유익한 요소로 늘 작용해왔다. 가장 간단한 례로 한차례의 연변가무단 공연은 연변이란 시골도시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며 이는 경제적, 상업적인 광고나 홍보가 가질수 없는 거대한 작용인것이다. 이러한 사실과 자신심에 기하여 박춘선은 “문화가 무대를 만들고 경제가 공연” 하는 모식을 적극 주장하는것이다. 즉 경제가 앞장서고 문화가 뒤따르는 “선경제 후문화”와는 상반되는 문화발전정책이다.
문화가 경제를 위하여 토대를 마련하고 앞서가려면 관건은 창작이며 정품의 길을 걷는것이다.
우수한 작품은 창작팀을 모태로 하고있으며 이는 인재양성기지로서의 연변가무단의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하는것이다. 가무, 무대 일선에서 다년간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전업일군을 주요대상으로 인재양성에 힘쓰며 창작이란 또 예술연구와는 구별되는것이라 이점 역시 연변가무단 집체창작의 특성이기도 하다. 정품은 구상에서 공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의 각고의 노력과 수십차, 수백차 각 부문 전문인들과의 교류와 공감, 수정과 보충의 과정을 거듭하게 된다. 우수한 작품이 마련되면 그 작품에 따라 필요하고 적합한 연출, 배우를 선정해야 하며 이 역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목적있고 계획적으로 진행되여야 하는것이다.
“믿어주면 누구나 천재가 될수 있다.”
박춘선의 인재양성 주장이다. 여기에는 연출, 작가, 배우 모두가 포함되는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수차 작품을 통해 성공적으로 실천되였고 우수한 인재의 발전에 추동력이 되여주었다. 창작의 경계는 무한대이고 추구는 늘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뮤지컬작품을
무대에 올리는것이 박춘선의 꿈이다.
“연변가무단은 여러가지 작품을 실천하였고 또 성공을 거두었다. 무극, 오페라, 무용서사시, 가무 등은 경험하였으나 유독 뮤지컬은 오늘까지 공백이다. 도전하고싶은 령역이다.”
격정과 열정와 욕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사진 박군걸 글 한뫼
박춘선 략력
필명 주룡
안도현 출생(1964)
연변주정협 위원
연변가무단 업무단장
주요작품
무용 “미아리” 문학극본 창작, 전국무용대회 3등상, 전국민간무용 금상 획득,
대형음악극 《꽃신》, 《장백의 메아리》(2005), 《조국찬가》음악회 총연출; 대형무용서사시 《천년아리랑》(2006)예술총감
대형조선민족가무 《천년아리랑》(2007) 총연출
대형조선민족가무 《장백산아리랑》(2009) 예술총감
대형조선족창작무용 《붉은해 변강 비추네》 예술총감.
“사랑의 푸른하늘”등 300여수 가사 창작, 500여편 시, 수필 등 문학작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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