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민족풍정을 조각하는 한족사나이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1월30일 10시34분    조회:542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류옥평
조선민족풍정을 조각하는 한족사나이
류옥평 조각가와의 인터뷰
 

点击浏览下一页

 

중국조각가학회 회원이며 중국공예미술학회 조각위원회 위원이며 길림성미술가협회 회원, 연변미술가협회 리사인 류옥평과의 첫 만남은 지난 5월에 있은 연변 제1회 장애인생산제품 성과전에서였다. 이날 류옥평은 두툼한 책자에서 77페지를 펼치면서 연변의 유일한 참가자로 장춘국제조각작품요청전에 내놓은 작품 “봄비”를 열정스레 소개했다. 물동이를 이고있는 조선족녀성을 보여준 동상 “봄비”는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입은 조선족소녀가 화창한 봄날에 봄비를 맞이하는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미래를 동경하는 조선족들의 형상을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지금도 이 작품은 장춘조각공원에 세워져있다.

알고보니 류옥평은 조선에서 태여난 화교출신이였고 어린 시절에 부주의로 부상을 입어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1957년 11월 28일, 조선 청진시에서 출생한 류옥평은 1964년에 귀국한 뒤 십여년을 화룡에서 생활했다. 1977년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면서 대학입시시험에 참가한 류옥평은 연변대학 물리학부에 입학했지만 중학교때 철봉에서 떨어져 꼬리뼈가 골절되면서 한쪽 다리에 장애가 생겨 결국 신체검사에서 떨어지고말았다.

아들애의 장래가 걱정되여 손재간이라도 배워보라던 어머니의 조언대로 열심히 목공일을 배운 류옥평은 시험에서 락방된후 연길시원예농장에서 목공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연길시비단공장에서 도안설계를 맡은 주동신을 알게 되고 그를 계몽스승으로 모시고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주동신은 60년대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한 조각전문출신이였다.

2년후 류옥평은 연길시미술공장으로 전근되여 조각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조사연구를 왔던 북경화가 장문흔을 알게 되였고 1982년에는 그를 따라 북경에 가서 많은 화가, 조각가들을 만나보면서 예술면에서의 시야를 넓혔다. 그는 장문흔의 추천으로 일년 반 동안 심양로신미술학원에서 연수했고 연수를 마친후 중앙미술학원 조교반에서 2년 동안 조각을 전공, 그뒤로 장춘교육학원, 연변대학 미술학원에서 통신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은 좋은 구사가 필요되고 예술가의 뛰여난 기술로 이를 표현해내면 비로소 예술품이 된다. 다년간의 학습, 실천을 거쳐 예술에 대한 리해와 창작이 성숙되여가면서 그는 선후로 중국 장춘국제조각작품초청전, 모택동동지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 60돐 기념 전국미술작품전, 제1회 중국 북경국제비엔날레 중국조각정품전, 제10회 전국미술작품전, 자치주 창립 60돐 기념 미술작품전 등 작품전에 참가하였고 중국현대공예미술전학회 최고상인 “화예”컵 우수상, 연변 최고의 문화상으로 불리우는 "진달래문예상"을 비롯하여 중국조각예술절 조각콩클 3등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조각예술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류옥평은 작품형상은 현실에 립각할것을 주장한다고 했다. 조선에서 출생하여 8년 동안 생활했고 귀국후 화룡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족과 이웃으로 지내오면서 평소 조선족의 민속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류옥평이였기에 그의 머리속에는 항상 조선족들의 다양한 형상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그러한 형상들은 그의 두손을 통해 생동하고 형상적이며 아름다운 작품들로 재생되였다. 그러다보니 류옥평의 대부분 작품들에서는 자연스레 조선족 인물이나 풍정들이 소재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그러는 그에게 고민도 없지 않았다. 신체적인 장애로 미술계를 제외한 사회와의 접촉을 꺼려했던 류옥평은 항상 TV나 신문, 간행물을 통해 세상만사를 료해하고 조선족의 풍정을 료해하였으며 그속에서 끊임없이 작품의 소재들을 구상해오고 오늘날에 이르러 민족풍정을 조각하는 예술인으로 성장했다.

향후 류옥평은 북경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고싶다고 한다. 류옥평은 슬하에 아들과 딸 남매를 두고있는데 현재 딸은 북화대학을 졸업하고 연길에서 취직했고 아들은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하고 석사연구생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아들 역시 미술이 전공이다보니 북경에서 아들과 함께 창작에 몰입하여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연변조선족들의 형상을 전국에 알리고싶다는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소원은 중국미술가협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인정받고싶다고 한다.

연변일보 허국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우리 민족 전통무용은 우아하면서도 매혹적이다. 무용수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기도 한다. 그런 마력을 지닌 우리 춤으로 무대우에서 빼여나게  연기를 펼치고 있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대형무극 ‘아리랑꽃’에서 주인공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내며 우리 겨레의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
  • 2018-07-11
  •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최선자교수에 대한 이야기 오페라가수이며 서남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인 최선자씨 지난 6월 6일, 사천성 수부 성도에 자리 잡은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금운루음악청은 예술에 지향을 둔 젊은 대학생들과 국내 각 지역의 음악전문가들, 서울, 도꾜, 빠리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이였다. 연변에서 태여...
  • 2018-06-19
  • 연길시아리랑꽃민족예술단 조선호 단장            우리 무용에서 남성춤은 무엇보다 동작이 크고 선이 굵어 무대에서 시원스러운 포즈로 관중들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무용을 익히기란 정말로 조련치 않다. 그런 남무용수의 삶을 이어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넘는 사나이가 있다...
  • 2018-06-06
  • 88년생 피아니스트 김해 미국에서 오페라코치로 품위있게 변신     연변출신의 조선족 김해피아니스트가 우리민족 음악계는 물론 중국음악계에서도 아직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오페라 코치’(歌剧艺术指导)로 미국 메릴랜드 국립 오페라단에 자랑스럽게 입성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동양인들...
  • 2018-06-04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김봉호 원로 작곡가 김봉호(80살)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수식어는 ‘의 작곡가’다.   지난 세기 60년대 중국대지에서 울려펴진 , 로부터 개혁개방 초기 시대의 숨결이 담긴 , 그리고 새 세기 장백산기슭에서 울려펴진 에 이르기까지 김봉호는 1500여수의 작품을 창작하면서 60년이라는...
  • 2018-05-25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최옥주 7일, 전 주 민족문화 전승 발전 ‘평생영예칭호’를 받은 국가 1급 안무가 최옥주(85세) 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자택을 찾았다. 작업실 겸 응접실로 쓰고 있는 방 한켠에 놓인 테블 우에는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안무 스케치 용지들이 두텁게 쌓여있었다. 잠간 정신이 팔려 조심스럽...
  • 2018-05-11
  •     퇴직후에도 전통음악 보급에 전념하고 있는 박서성 주문련 전임 주석   지난 세기 80년대 국가 문화부 주위치 부장은“연변은 가무의 고향, 연변가무단은 그 구심점”이라고 경전적 평가를 했던 적이 있다.  ‘가무의 고향’이라는 미칭이 우리 연변의 인지도 향상에 막강한 ...
  • 2018-04-12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최창규 연변에서는 어디를 가나 봇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춥고 황량한 벌판일 수록 더욱 꿋꿋하게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봇나무는 아름다운 자태와 굳센 의지가 회자되면서 세인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지난 1월 29일에 만난 최창규옹(84세), 그가 창작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관현악곡작품...
  • 2018-03-16
  • 30년 넘게 민족무용과 하나되여 군중예술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안무가 고성옥(55세)씨를 지난 1일, 그가 부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길시문화관에서 만났다.   안도현 장흥촌에서 태여난 고성옥씨는 어릴적부터 예술적 재능과 끼가 다분했던 문예소녀였다. 어쩌다 마을에서 하향공연이...
  • 2018-03-07
  •                 올 양력설에 즈음해 친척 방문때문에 연길을 찾은 작곡가 최삼명옹(86세)은 여든의 고령임에도 정정한 모습이였다. 15세때 고향인 흑룡강성 밀산에서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할 때가 1947년 5월 25일이라고 짚어낼만큼 기억력도 녹쓸...
  • 2018-01-26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