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공동비전, 정품주택문화 선도; “돈만 벌려고 하면 성공은 없어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0시40분    조회:60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연하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1) 

  ― 연변창원부동산개발유한회사 박연하총경리 인터뷰            
 
 
 

   모든 재부는 노력의 대가

   일은 내가 하기 좋아서 하는것

   연길부동산 거품 거의 없어

 

 
 연길 모아산은 지금 시민들이 즐겨찾는 레저, 관광, 휴가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산이 있고 숲이 있어 공기가 맑고 먼지가 일지 않고 게다가 시가지와 조금은 떨어져있고 지세높은 곳에 위치하니 소풍의 리상적인 장소가 되기 마련이다. 남쪽에는 해란강이 유유히 감돌아 흐르고 벼꽃 흩날리는 평강벌을 만무과원이 병풍처럼 지켜서있다.

일찍 연변을 시찰하던 주은래총리는 모아산에 소나무를 심을것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모아산을 근근히 소나무숲으로 여기고 방치해두었던 것.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감각이 무딘 상황에서 자원의 곁에서 잠자고있었다.

잠자는 우리중에 일분, 한시간 먼저 깨는 이가 있었다. 그 자원의 우세에 눈을 떴고 그것의 가치를 남먼저 깨달았고 나아가 리용하기로 했다.

지금 원 연변사회과학원 앞길로 해서 모아산으로 올라가는 바로 굽인돌이 아래에 “친산연원” 아빠트가 들어섰다. 이름처럼 친환경거주지이다. 모아산의 솔향기를 직접 맡을수 있고 산의 기운을 받을수 있으며 청정지역이라 연기오염도 극히 적어 연길에서 리상적인 아빠트지역이란 평가를 받는것도 이상할것 없다.

“ 이곳은 원래 연변교통대자동차훈련학교자리였습니다. 아시다싶이 연길에서 가장 빈곤층 사람들 다수가 거주하고있었으며 말그대로 철남은 시가지와는 별도로 락후한 지역으로 락인 찍혔습니다. 이처럼 타인들이 묵과해버린 땅에 우리가 눈독을 들였습니다.”

박연하총경리, 2001년 뒤늦게 부동산에 뛰여든 녀성강자. 회계전업을 졸업하고 연길시 오금회사에서 부총경리로 국유기업생애를 마감했다.

“허황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 나와서 지금까지 국가를 위해 일했고 가장 좋은 젊은시기를 다 보냈는데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나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지요. 많이 고민했고 여러가지 업종을 가늠해보기도 했어요. 나중에 부동산업종을 점찍었습니다. 내가 배운 전업이라 장부관리, 예산에 능했고 또 녀성으로서의 섬세함과 랭정한 판단력, 결단성과 담량을 믿었습니다. ”

박연하총경리의 말을 빈다면 부동산은 5년 앞당겨 생각해야 한다. 미래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안광을 믿었다.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길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변화될것이다. 주택은 점차 고급주택, 정품주택을 선호할것이고 산을 즐겨 찾을것이다. 당연 모아산 기슭아래 도로를 끼고 앉은 위치가 최종 선택지가 되였다.

“부동산은 불가예측 모험계수가 큽니다. 투입이 많고 모험도 크지만 그만큼 대가를 소유할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삶의 보람을 느낄수 있는 품위, 단일 업종과는 달리 분석과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시장을 분석하고 거시적경제환경을 판단하고 예측해야 하지요.”

처음에는 당연히 돈을 벌려는 마음에서 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하지만 돈만을 벌려고 하면 절대로 성공할수 없다는 박연하총경리.



“사업을 하면서 집을 지으면서 절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늘 자신과 직원들에게 당부합니다. 모든 자재는 국가표준에 도달한 원자료를 사용하고 절대안전, 품질보장을 고수합니다. 회사의 신용도와 명예는 소비자의 구전에서 비롯됩니다. 소비자를 속이는것은 자신을 속이는것이요, 나중에는 앞날을 버리는 둔한 짓이죠. ”

사업에서의 책임감을 박연하총경리는 절대적으로 주장하고있다.

“직원은 고객에 책임져야 하고 사장은 직원과 고객에 책임져야 합니다. 회사는 사회에 책임져야지요.”

이러한 책임감에서 비롯하여 창원부동산회사는 자체의 시공대를 갖고있으며 지금은 개발, 장식, 물업을 일체로 하는 종합회사로 발전했다. 박연하총경리도 자신이 지은 아빠트에서 생활하고있다. 

성공의 배후에는 아는것, 지식이 뒤받침하는 법이다. “백년주택”의 리념은 그녀가 청화대학에서 2년간 장기훈련반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최대의 혜택이다. 모든 사업은 지속발전이 가능해야 하고 과학기술함량을 늘여야 하며 정합의 과정을 확실히 거쳐야 한다.

“연길에서 부동산 황금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철저한 분석을 거쳐 파악있는 일만 확정해야 합니다. 과욕은 실패의 유인이 되지요. 하지만 연길부동산은 거품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집값은 대폭의 변동이 없다고 보아집니다.”

연변부동산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녀성사업가. 그 자체가 모아산기슭아래 자리한 친산연원처럼 독특한 풍경을 뽐내고있다.
 
기자 육삼
 
 
박연하 략력  

 
중국 연길 출생
연변재정무역학교 졸업
연변오금청사 업무총경리
북경사회함수대학 상업재무학 전공
청화대학 총재반 연수
(2004.10-2005.12)
연변녀성문화연수반 10기 졸업
연변과기대 CEO반 9기 졸업
연변창원부동산개발회사 총경리(2001-현재),
연길시정협 상무위원
연길시공상연 부회장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