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취미로 시작, 일이 아니라 놀음이다; “예술품은 경제화 사회화 산업화 되여야”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1시03분    조회:62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운봉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6) 

정원조각가 오운봉씨를 만나                          
 
 



      자연 그대로, 우리 주변에 예술품 있어
 
      예술품은 재료보다 예술가치 담아야
 
      놀음으로 번 돈은 돈이 아니라 놀음이다

 
 
5년전 조선족 집거구인 연길에 온 이가 있다. 1979년 29살 나이에 집을 떠나 중국 연해지역에서 수년간 사업하고 생활해오다가 5년전 48살 되는 해 다시 돌아온 셈이다. 그 리유는 단 한가지, 애들 교육문제이다. 조선말과 글을 배워야 한다는것이다.

오운봉씨이다. 그렇다고 높은 학력이나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다. 반면 그는 소학교 문화정도, 재간이란 태여난 그림그리기,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조각, 특히 정원조각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을 보고 느끼고 배운것이 최대의 자본, 중국의 동부 연해선을 따라 수산물 국제무역을 벅차게 했고 상상할수도 없는 엄창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직성만은 버리지 않아 매사가 순조로웠고 돈도 벌었고 세상만물과 인간사를 느끼고 감수하면서 자신의 행동준칙의 틀을 점차 만들어가면서 지금은 연길 서쪽 변두리에서 예술품 창작에 몰두하고있다.

“공부를 못했어요. 그림을 좋아했고 13살부터 수령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렸지요. 모주석이라던가 맑스, 레닌 등 분입니다. 그때가 수령들의 초상화를 접하기 쉬웠지요. 그리고는 개패를 목에 걸고 투쟁도 받았고요. 그 후에는 양자영, 소금파 등 소묘를 시작했고 좀 커서 18살때부터는 동네방네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식장이나 옷장, 풍경화를 그려주니 술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요, 그때는 다 그렇지요. 그림을 그리고 또 시도 즐겨 읊었고 처녀애들에게 인기도 좋았지요, 지금은 얼굴이 보잘것 없이 되였지만.”

이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집에서 찾아와 고인의 사진이 없으니 그려달라는것이다. 평소 잘 아는 사이이고 또 고인과도 생전에 친분이 있으나 막상 그림요청을 접하고나니 고인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캄캄하고 정말로 해석하기 힘든 일이였다고 한다.

끝내는 집을 떠나 돈 한푼 없이 단신으로 바깥세계를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북경, 상해, 광주, 복건이 그의 무대였다. 한국회사에 취직하여 4개월 직장생활 하다가 수산물무역을 택했다. 이렇게 거의 30년이 지났고 나중에는 정원조각에 정착했다.

“우리의 조각은 경제성, 산업화로 발전되여야 합니다. 중국을 무대로 하고 점차 조선, 로씨야, 한국 등에 눈길을 돌려야지요. 대량으로 생산하여 팔려나가는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경제와의 접목이 이루어져야 지속성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공상품은 아니지요. 모든 조각은 세계 유일한 작품입니다.  예술의 특징이지요.”

독특한 일을 하면 돈이 생긴다고 오운봉씨는 말한다. 정원조각, 또는 정원원예가 그것이라고 한다.

“미술가의 꿈을 못이룬 아쉬움의 보상으로 지금하고있는 일을 즐겨합니다. 그림은 평면의 작품이고 일반조각은 움직임이나 향기가 없는 립체모양이지요. 저는 그림이나 조각에 향기와 생명과 움직임을 부여하고 싶지요. 돌이나 바위나 흙에 나무, 화초를 함께 심지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때론 그림으로 장식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독특한 예술형태이기도 합니다. ”

특정지식이나 기술이 없이도 누구나 할수있고 돈벌이 된다는 오운봉씨의 해석이다. 꾸준함만 필요하다. 몇 날, 몇 달 또는 1, 2년을 주기로 잡아 돈을 벌려하지 말고 꾸준히 견지하면 거의 투입이 없이 열매가 맺는것이다.



“정원원예는 일본이 가장 앞서고있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530년 되는 분경이 있습니다. 국보입니다. 가치는 돈으로 따질수도 없지요. 그러한 꾸준함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화분만을 집에서 기르지 말고 꽃에 나무와 돌, 꽃을 접목시키면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10년이상 경유하면 작품이 되고 30~50년이면 명작이 되는겁니다. 멀리 생각하여 후대에게 자본으로 남길수도 있는거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쾌락감, 생명감은 어떠한 향수로도 대체할수 없는거지요. ”
바깥세상에 익숙한 오운봉씨는 연변사람들이 사유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한국 나가는 분도 있고 또 한국에서 수년에서 10여년씩 일하는 분들도 있지요.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둔해져요. 거의 독자적인 사유를 안하고 기계적으로 피동적으로 일하고있지요.  로보트식이지요. 머리가 퇴화할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사업을 해야 근로해지고 큰 사업을 하면 사람이 똑똑해집니다. 자체의 발전에 신경을 써야 하니 자꾸 생각하고 노력하는것입니다. 한국에서 돈 벌어서는 돌아와 집 사고 차 사고 다시 한국에 나가고,  이렇게 몇번 오고가면 인생은 끝납니다.”

모든 생산은 소비자의 마음이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오운봉씨, 무료로 분경조각 강의를 조직해도 수업생은 고작 몇명뿐.

“왜서 배우려하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지요. 정원조각은 보통사람들도 쉽게 배울수 있고 돈 되는 일인데…”

자연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축소시키는 공정이라고 자신이 하는 일을 개괄하면서, 오운봉씨는 분경은 지방의 가장 좋은 부업이라면서 부지런한 이들의 참여와 치부를 부탁했다.
 
육삼 기자
 
 
오운봉 략력

 
중국 목단강 출생
중국 연해지역에서 한국회사 근무
수산물 국제무역 종사
정원조각에 종사(2007년부터)
연변조선족공예미술협회 리사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룡정시문화관 관장으로 사업하다가 퇴직한 리광평씨는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집단이민사 연구에 떨쳐나섰습니다. 그는 자비로 오토바이, 사진기,비디오 등을 갖추었습니다. 회갑나이를 넘긴 그가 수십킬로그람 되는 사진기재 들을 지니고 수만킬로메터를 달린다는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였습니다.매년 ...
  • 2006-03-02
  • [한겨레] 재일동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권투영웅’ 홍창수(31) 선수가 27일 세계 챔피언의 영광과 짐을 스스로 벗어던졌다. 홍 선수는 이날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도전자인 동급 1위 호세 나바로(24·미국)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은 뒤, 타이틀 반납을 선언했다. 그는 “...
  • 2006-03-01
  • [img count='1' width='400' img] 28일 2005전국10대법관으로 당선된 연길시 인민법원집행국부국장 비운룡이 영예를 안고 돌아왔다.
  • 2006-03-01
  • 중앙민족어문번역국 당위서기 국장 단주앙번 일가견 기자는 25일 오후, 중앙민족어문번역국 당위서기, 국장이며 현재 북경민족대학박사생 도사, 2년간 운남성 성장조리직을 맡았던 단주앙번(장족)을 만날수 있게 되였다. 3년전 처음 연변을 다녀온적이 있는 그는 먼저 연변조선족의 미풍량속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
  • 2006-02-28
  • 26일, 최고인민법원, 인민일보, 중앙텔레비죤, 법제일보에서 련합으로 주최한 2005년 중국10대 우수법관평의활동이 북경에서 있었다. 연길시인민법원 형사재판정 부정장 비운룡이 2005년 길림성10대 우수법관에 이어 2005년 중국10대 우수법관으로 평의되여 최고인민법원 원장 소양으로부터 《금법추상》(金法槌奖)을...
  • 2006-02-28
  • [한국일보 2006.02.26 18:19:24] “그는 한 많은 이국 땅에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25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젠덴쓰(全電通)노동회관에서 지난해 12월 28일 타계한 재일동포 고 김경득(金敬得) 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렸다. 한국인과 일본인, 민단과 조총련을 가리지 않고 회장...
  • 2006-02-27
  • [원제: '신선족'으로 중국서 떳떳이 살고싶다] -흑룡강지역 첫 한국류학생 김재윤씨 최근년간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이 많아지면서 '신선족'이라는 신조어가 동포사회에서 류행되고있다. 한국 웹사이트인 네이버 오픈사전에 따르면 신선족을 "류 학, 현지 근무 등의 명목으로 중국으로 건너왔다가 아예 중국땅에 눌러앉아 살...
  • 2006-02-27
  • 국내 최장기 연재 집필 이규태 떠나다 [조선일보 2006-02-25 22:03] 조선일보 이규태(李圭泰·73) 전 논설고문이 25일 오후 4시쯤 지병인 폐암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이 전 고문은 1983년 3월 1일자 본지에 ‘이규태 코너’를 연재하기 시작, 지난 23일자 신문에 독자들에게 보내는 고별사를 싣기까지 모두 6702회...
  • 2006-02-26
  • 얼마전에 연변의 한 문학지가 마련한 모임에서 성보호텔 정영채회장과 자리를 같이하였다. 여러 말이 오간 가운데 연변은 일본, 한국과의 물류관문으로서 장차 동북아물류중심이 될 복된 고장이라는 얘기와 더불어 지금은 문화인들이 어렵지만 이렇게 어려움속에서 성취를 해야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정회장의 말씀이 인상...
  • 2006-02-24
  • 민족력사에 혼 앗긴 리광인씨 《잠적》 10년동안에도 수백만자 력사서 써내 력사학자 리광인씨한테서 도합 4권으로 된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한국학술정보[주])를 받아든 기자는 책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느낄수 없었다. 《남성편》(1, 2권), 《녀성편》, 《소년아동편》으로 묶어진 책은 총 125만자, 140편의 전기가 수...
  • 2006-02-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