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연길시 “3강3애, 감동연길” 효도애친도덕모범인물(“孝老爱亲”道德模范)로 평의된 연길시 신흥가두 민평사회구역의 박금자(47세)씨(려행사에서 근무)가 24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공경한 사연은 이웃들을 감동시켰으며 사회구역주민들은 그녀를 “이 시대의 진정한 효부”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저희가 옆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박금자씨의 시아버지는 1995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으며 병세가 심해지면서 점차 생활에 대한 신심을 잃었다. “꼭 이겨내세요, 우리가 옆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고 또 이렇게 행동했다.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에 아이를 키우고 장기환자의 치료비용까지 부담해야 했기에 생활은 쪼들렸지만 그럴수록 박금자씨와 남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욱 열심히 일하면서 병치료에 소홀하지 않았다. 박금자씨는 사처에 병치료방법을 수소문하고 퇴근해서는 시아버지 시중을 들었다. 손발톱을 깎아주고 목욕시키고 이불빨래를 씻는외에도 날씨가 좋을 때면 시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히고 해빛쪼임을 하면서 기쁘게 해드리려 애썼다.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자 병상옆을 지킨이는 박금자씨였다. 로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몸을 닦아주고 머리도 빗어드리면서 살뜰하게 병간호를 해 주위에서는 모두 딸을 잘 키웠다고 얘기했다. 딸이 아닌 며느리라고 하니“딸이라도 이렇게 못하겠는데 며느리를 잘 맞았다”면서 주위사람들로부터 훌륭한 며느리로 병동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저한테는 어머님이 재산입니다.”
주위사람들은 진담 반 롱담 반으로 시부모가 재산이라도 물려준다면 모르겠는데 거꾸로 병치료비용을 부담하고 대소변시중까지 들어가면서 장기환자를 모시는것이 참 바보스럽다고 얘기할 때가 있다. 박금자씨는 그럴 때면 “나한테는 시부모님이 곧바로 재산이다”며 정색을 한다. 9살에 친정아버지가, 29살에 친정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박금자씨는 “친정부모를 일찍 여의였기에 부모님한테 못해드린것을 시부모한테 해드릴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온종일 사무때문에 조용히 휴식하고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시어머니와 말동무를 해주면서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들려준다.
한사무실에 출근하는 동료의 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여러번 걸려오고 박금자씨도 서너번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합니다. 어떤 땐 로인이 전화와서 하던 얘기를 자꾸 반복하니 옆에 있는 저희도 신경쓰일 때가 있지만 박금자씨는 종래로 눈살을 찌프릴 때가 없습니다.”
“ 시부모님 마음을 내 마음처럼 헤아린것뿐인데…"
23살에 시집와서부터 시부모를 모시고 산지도 24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것을 단 한번도 후회해본적이 없다.” “사는것이 다 그런줄 알았고 응당 그렇게 살아야 하는줄 알았다” 라면서 6년전 시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뜨고난 뒤에도 박금자씨는 변함없는 태도로 시어머니를 열성껏 모셨다.
취재하는 과정에 일보러 온 고객의 말이다. “업무때문에 식사를 대접하자고 하면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시어머니가 혼자 식사하는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합니다.“
박금자씨의 친구는 “비록 친구라지만 존경스럽다. 지금 이 세대에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렇게 마음이 착하니 하는 일이 잘되는것 같다”면서 “지금 사회에 이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어머니 김인숙씨는 “며느리가 시집와서부터 우리를 모시고 살고있는데 복스러운 며느리를 만나서 참 감사하다, 딸이상이다, 밖에 나가 로인협회 회원과 친구들한테 늘 며느리자랑을 하는데 며느리가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말린다”면서 며느리에 대한 감정을 내비쳤다.
일전 “감동연길 도덕모범”으로 평의된 박금자씨는 “나는 응당한 일을 한것뿐이다. 시부모도 부모인데 모시는것이 응당한것이 아닌가. 시부모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잘 헤아리면서 살아간다면 이 가정도 나아가 이 사회도 더욱 조화로와질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변일보 글/사진 한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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