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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탁월한 지휘대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월19일 09시15분    조회: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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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박우

우리 민족의 탁월한 지휘대가 박우(朴祐)

조선족문예비평가 장정일씨가 언론사 재직시절 출판을 마치고 남긴 박우선생의 보도용 사진자료,

《지휘가 박우는 나에게 정신적인 빛과 힘으로 남은 예술가의 한분이다.》-장정일.

《세계 어느 국가나 민족이든 그 민족의 자랑으로, 그 민족을 대표하는 손꼽는 영웅들이 있다. 박우선생은 바로 중국이란 광활한 땅우에서 우리 민족의 풍부한 감성세계와 민족정신을 만방에 알림으로써 우리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민족의 기개와 민족음악의 숨겨진 진가를 남김없이 보여준 민족영웅임에 손색없다.》

이는 지난 2012년 12월 28일 연길백산호텔에서 열린 《박우선생음악연구토론회》에서 제기된 론문 《불멸의 메아리》의 한단락이다.

《장백의 노래》와 탁월한 지휘가

1956년 제1차 전국음악주에서 정진옥 작곡, 김철 작사, 박우 지휘로 된 교성곡 《장백의 노래》가 북경천교극장에 올랐다. 《막이 열리자 무대 절반도 차지 못한 촌스러운 악대와 합창대가 풍부한 음량, 준확한 음정, 풍부한 감정처리로… 어데서 그런 함성이 터져나오는지 천둥이 지동치듯하고 배우들마다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너무 격동되여 저도 몰래 감격의 눈물을 쏟았고 소리를 지르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상해음악학원 성악교수 거초지는 당년의 그 순간을 회억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휘자는 풍채가 좋을뿐아니라 첫시작부터 관중들을 휘여잡으며 음악세계로 이끌더니 악대와 합창대로 하여금 어데서 그런 음향이 나오게 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우선 작품을 잘 썼고 재간있고 수준높은 지휘가가 있었기에 그런 성공을 가져올수 있었다. 조선민족은 정말 감정이 풍부한 예술의 민족으로 손색이 없다.》

조선족성악예술가 림성호선생은 그 격정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있다. 《박우선생의 지휘는 마치 광풍폭우마냥 합창대원들의 정서를 격앙시켰고 몸의 제스처와 손끝은 대원들에게 열광에 찬 함성을 요구하는듯했다... 어느 한순간 그 큰눈에 웃음을 띠우고 지휘하는 손끝과 손동작으로 마치 무용가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온몸의 긴장을 풀며 〈잘 부른다〉고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남고음이 시작되자 동관악사들에게 일어서서 연주할것을 제시한후 대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손을 높이 쳐들면서 마지막순간까지 정서를 이끌어갔다.》

박우선생은 과연 합창대성원들로 하여금 능력이상의 실력을 발휘케 하는 비범한 재주를 가졌다. 그의 음악지휘에서 가장 특징적인 매력은 파워였다. 그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며 압도적인, 그 누구도 저항할수 없는 강렬한 흡인력, 저도 모르게 빠져드는 감정의 심연,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지휘하는 대장군의 풍채와 통솔력이라고 개괄한다.

박우선생의 탁월한 지휘로 하여 연변가무단합창대는 중국조선족음악사는 물론 중국근대음악사에서 대합창이 앵콜을 받는 기적을 창조하며 우리 나라 합창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다. 1957년 모스크바《국제청년련환모임작품평의》에서 《장백의 노래》는 은상을 수상하였다. 세계적인 작곡대가 쇼스다코위치는 《중국에서 이런 대작이 나온다는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합창 《장백의 노래》의 성공을 두고 이는 중국조선족의 거룩한 존재와 조선족예술의 위상을 전국 나아가 세계 만방에 알리는 문화적신분증이자 우리 민족 령혼의 《에펠탑》이라고 한다.

민족령혼에 불꽃 지피는 예술가

1950년 10월 1일 제1차 국경절경축무대에서 합창 《영용한 조선인민은 일어났다》를 열창하는 장면.

앞에 선 지휘가가 박우선생임.

박우선생의 지휘매력을 론하면서 그는 탁월한 지휘가이기전에 어릴적부터 다종다양한 예술실천활동에 종사하면서 음악예술의 함의를 깊이 터득한 예술가라는데 초점을 둔다.

박우선생(본명 박광수)은 1926년 11월, 룡정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다. 가난하지만 락천적이였던 아버지는 생활의 쪼들림속에서도 축음기를 사놓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민간연예활동을 벌렸다. 그속에서 음악의 싹을 틔운 박우선생은 스무살나던 해 길동보안군정치부선전대에 가입하여 춤노래며 기타, 북 다종악기를 다루는 다면수로 활약하면서 또 과외창작에도 열중하였다. 1947년 그는 《우리는 민주청년》(림원갑 작사)이라는 첫 작곡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1949년 길동보안군정치부선전대가 연변가무단으로 개편되면서 그는 연변가무단일원이 되며 그해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1950년 10월 1일, 북경 중남해 회인당에서 있은 제1차 국경절경축무대에서 연변가무단 합창대는 첫종목으로 박우선생이 작곡한 《영용한 조선인민은 일어났다》(김동구 작사)를 불렀다. 6.25전쟁의 불길이 압록강변까지 불타올랐던 전장을 배경으로 창작한 이 노래는 만민을 전장에로 궐기시키는 동원령과 같았다. 박우선생의 힘찬 지휘와 노래정서에 감화된 배우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격정높이 합창을 불렀다.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모택동주석께서는 이 공연을 보고 격동된 심정을 금할길 없어 붓을 날려 《… 수탉이 울자 천하는 밝아 여러 민족/ 주악속에 위덴곡도 울리니/ 시인의 흥취 비길바 없구나》라는 내용의 위대한 시편《완계사-류아자선생에게 화답함》을 썼다고 한다. 북경의 가는 곳마다에서 대성황을 이룬 이 합창은 매체를 타고 전국 나아가 세계각국에 전파되였다.

이 작품은 박우선생의 첫 리정비적인 대표작으로 된다. 이어 그는 민족풍격이 농후한 서정가요를 창작하였는데 김태희 작사 《좋은 종자 가려내세》는 감미로운 선률로 우리 민족 가요의 첫 전국상(건국 3돐 가요평의에서 2등상)을 수상한다.

구지욕으로 불탄 박우선생은 1952년 로신문예학원 작곡학부에 가 학습하며 이어 국가문화부 개설 두마쏘브지휘반에서 2년간 지휘를 전공하였다. 범의 몸에 날개 달린 격이 된 그를 주덕해주장은 로임까지 올려주며 연변가무단 부단장으로 중용하였다. 60년대에 이르러 장춘에서 열린 전국음악주간에서 그는 국제제재로 된 합창 《싸우자 흑인형제들》(김철 작사 림성호 쏠로) 을 지휘하여 우리 민족 음악의 세계적인 흉금과 시각을 전국에 보여준다.

80년대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30돐 경축야회 《장백송》지휘를 원숙하게 담당하고 정률성서거 10주년 기념음악회(1986년)에서 정률성합창조곡과 대합창 《동해어부》 등을 지휘하여 대가의 풍도로 대성공을 이끌어냄으로써 개혁개방을 앞두고 쓸쓸히 서거한 우리 민족 위대한 작곡가 정률성의 부활에 모름지기 기여를 한다. 그의 지휘를 마주하고 청중들은 열광했고 왕림했던 중국음악가협회 권위, 전문가들은 《최고의 지휘가》라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문화대혁명기간 연변가무단 합창단은 해체되였고 박우선생은 1979년경 길림성가무극원 가극단 단장 겸 지휘로 연변을 떠난다. 박우선생은 중국음악가협회 표현예술위원회 위원, 길림성음악무용사회학연구회 회장 등 직을 력임하면서도 민족음악예술활동에 정진하였다. 그는 30여년간 300여수의 대중가요, 합창곡 13편, 관현악곡 2편, 가극 3편, 무용곡 4편 등 허다한 작품을 창작하였고 작곡집 《고속도로 앞으로》(1979년)를 출판하였다.

그는 퇴직후에도 《장백폭포》, 《아름다운 내고향 연변》 등 우수한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세상뜨는 해인 2002년초에도 《장고야 울려라》, 《우리 연변 찾아오세요》 등 아름다운 가요를 창작하여 우리에게 남겨주고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천부적재능은 대를 이어

지휘가 박우선생의 손자 박성길이 노르웨이공연무대에서 세계경전작품을 연주하고있는 장면.

박우선생께서 세상뜬지 10년이 되지만 그이는 우리 민족 음악예술사의 영원한 《전설》로 , 《불멸의 지휘가》로 오늘도 우리들속에 살아계셨다.

지난 2012년 12월 28일,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연변가무단, 길림성교향악단, 연변대학예술학원, 연변음악가협회 등 단위들에서는 공동으로 《박우선생음악연구토론회》를 개최하고 우리 민족 음악예술발전에 대한 그의 업적을 기리였다. 그자리에는 박우선생의 가족분들도 동참하였다.

사람들은 《박우선생이야말로 100년에 한번 나올가 하는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극찬한다. 박우선생의 신변에서 평생 그를 지켜본 부인 백운옥씨는 《성공하는 전문가는 그이처럼 노력하고 고심하게 탐구하는 사람인줄로 알고있다.》고 한다. 《친절하면서도 엄격했던 아버지》를 그리는 아들 박파씨, 그들 내외는 심양음악학원 피아노교수였다. 그들은 또 아들 박성길((朴星吉 20세)이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워 고향사람들앞에 내세웠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칭찬이 가장 행복하다는 손자 박성길, 그는 《우리 손자는 할아버지보다 더 훌륭하구나》라고 하며 피아노에 얹은 애고사리 손을 잡아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립다고 한다. 4살부터 부모들의 가르침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성길이는 천부적재주로 사람들을 놀래웠다. 피아노앞에 앉기만 하면 정서가 오르고 지칠줄 모르는 그는 14살부터 최년소자로 국내외 피아노경연에 참가하여 최고의 상을 안아왔는데 2006년 미국러시아국제피아노경연에서 1등상 및 5개 특별상을 안아왔다.

2010년 6월 26일, 그는 미국뉴욕카네기홀에서 개인음악독주회까지 열어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갈채를 받는다. 음악회는 끝났는데도 관중들은 떠날념 않고 전원 기립하여 오래동안 박수만 치고있었다. 성길이가 다시 무대에 올라 세곡을 더 연주해서야 관중들은 아쉬운듯 장내를 떴다. 《18세 연주자의 마음에 80세의 음악이 들어있다》, 《성길의 손끝에서 울리는 피아노소리에서는 생명이 들리고 피아노와 연주자 합일의 경지가 보인다. 참 보기 드문 천재적 연주자》라고 전문가들이 격찬했다.

박성길은 전 지구적인 피아노스타로 부상하여 국내외를 주름잡고있다. 현재 향항연예학원에서 전교 1등 장학생으로 공부하고있는 그는 할아버지의 음악연구토론회 소식을 접하자 일체 행사를 제쳐놓고 비행기편으로 연길에 도착하였다. 그는 할아버지를 기리는 조선족음악예술인들앞에 세계경전작품을 연주하며 자신의 성의를 표달하였다. 그는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이 손자를 지켜보고 계신다》며 한일자로 입을 다문채 미소를 지어보였다.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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