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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주비행사업의 산 증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3월15일 10시27분    조회: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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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동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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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년 우리 나라 우주비행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조선족과학자 동서윤연구원
1956년에 첫걸음을 뗀 우리 나라 우주비행사업은 오늘에 이르러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2003년 10월, 2005년 10월,2008년 9월 우리 나라 “신주5호”, “신주6호”, “신주7호” 우주비행선이 중화민족의 우주비행꿈을 싣고 련속 하늘로 날아올라 미국과 로씨야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하였다. 2007년 10월에는 또 우리 나라 첫 달탐측위성인 “상아1호” 위성이 서창위성발사쎈터에서 발사에 성공해 안전운행에 들어갔다.

이같은 비약적인 발전과 세인의 찬탄을 자아내는 휘황한 성과 뒤에는 수많은 우주비행과학기술일군의 수십년간의 피타는 노력과 심혈이 깃들어있다. 특히 그중에는 항천부 제1연구원, 제2연구원, 제3연구원, 제5연구원, 상해우주비행 제8연구원 등 연구부문에서 핵심역할을 해온 우리 민족 우주비행과학기술일군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우리 나라의 첨단기술분야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오며 우리 나라 항공우주력사에 아름다운 한페지를 쓴 숨은 공신들이다. 항천부 중국운반로케트기술연구원 제1설계부 동서윤(78세) 연구원이 바로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 근 50여년간 줄곧 항천부에 근무해온 동서윤연구원은 우리 나라 우주비행사업의 시작, 발전, 비약 단계를 모두 경력해온 증견자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산 증인이기도 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
매번 인생의 관건적인 고비마다 큰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이야기하는 동서윤연구원은 자기를 “행운아”라고 했다.
동서윤연구원은 조선 함경남도 리원군 차호읍 진지도라는 해변촌에서 태여났다. 여섯남매중 막내로 태여난 그의 가정은 식솔은 많아도 살림은 궁핍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일제 통치와 압박으로 하여 살림은 날로 쪼들려가자 아버지는 그가 9살 나던해 두만강을 건너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흑룡강성 해림시 도림촌에 울장을 박았다. 당시 도림촌에는 조선족이 얼마 되지 않았다. 1945 년 8 월 15일 일본이 투항하자 그해 9월 온 가족은 조선족이 집거해있는 신안진으로 이사했다. 거기서 동서윤은 신안진조선족소학교를 다녔고 1951 년 신안진 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조선족 초중졸업생들을 중점고중에 추천하면서 목단강제1 중점학교에 진학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였다. 이는 동서윤 인생에서 첫 행운이라 할수 있다.

동서윤연구원은 “당시 금방 해방하고 건국했기에 조선족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그런 정책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때 목단강지구에 조선족 중학교는 많았지만 고중은 아주 적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족학생들의 입학률을 높이기 위해 교육위원회에서 이런 기회를 준것이죠. 당시 목단강학교에 한반에 30%가 조선족학생이였습니다. 다섯개 반에 반마다 모두 조선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시험에서 조선족학생들이 대학이나 전문학원에 많이 붙었습니다. 저는 동북 공업학원 전력계 공업기업 전기화학과에 붙게 되였습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식 공부를 시키겠다는 부모와 형님, 형수의 끈질긴 집념과 은사님들의 덕분으로 그는 고중학업을 무난히 마치고 동북공업학원 전력학부 공업기업 전기화학과에 입학해 대학꿈을 이루었다.

당시 이 학과는 아주 인기있는 학과이기도 하였다. . 대학 4년간 그는 책속에 파묻혀 리론지식과 기본원리를 부지런히 터득하고 보풀이 일도록 관련 저서들을 탐독해 1958년 9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우리 나라 국방부 제5연구원(항천부의 전신) 제1분원 제1설계부(지금의 항천부 중국운반로케트연구원 총설계부)에 배치받는 행운을 갖게되였다.

물론 항천부에 갓 분배받은 흥분과 영광의 희열이 채 가셔지기도전에 힘든 학습과정이 시작됐다. 구쏘련에서 지원한 미사일자료들을 학습하고 터득하는것이 급선무였다. 비록 대학교에서 공업기계화 기술과 기본원리를 어느 정도 학습하고 접촉해봤지만 모든것이 새롭고 금시초문으로 안겨왔다. 동서윤연구원은 또 한번 새로운 도전을 걸었다. 때마침 당시 상황에서는 아주 드물게 미사일기지에 내려가 전문지식과 실천경험을 접목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나게 되였다. 당시 이 기지는 구쏘련에서 지원한 단거리지면대 지면미사일 통제시스템기지로서 구쏘련에서 구입한 무기를 실제로 조작하면서 원리를 익힐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주었다. 그 과정에 그는 미사일의 기본원리와 검사방법, 종합적인 검사지식과 요령을 터특하게 된다.

석달간 실천기지에서의 직접적인 조작과 모방 과정을 통해 동서윤연구원은 차츰 미사일의 설계원리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부단한 실천과 학습연구를 거쳐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60년 체제개혁을 통해 항천부는 구쏘련체제인 통제실을 해산하고 공정조를 설립하였다. 그때 동서윤연구원은 13명중의 한 사람으로 초보설계실(지금의 모델총연구실)에 남아 공정조의 부조장을 맡았다. 초보설계실은 한개 모델 설계에서 총적설계를 책임지는 핵심부문이다.

부대와 전문기술 지표라든가 미사일의 관련 발사 측정, 정밀도, 비행조종 등 제일 핵심적인 기술지표에 대해 조사연구하고 학습토론한후 총괄하는 두뇌역할을 노는 중요한 시스템으로서 미사일의 전반 시스템은 모두 이를 통해 집행된다. 이 분야는 전문인재보다 미사일의 모든 지식을 골고루 장악한 종합인재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동서윤연구원은 일명 조선족인 자기가 총체설계부에서 그것도 계렬설계실에서 일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라며 자기는 행운아라고 거듭 강조했다. “소수민족으로서 우리 나라 우주비행사업에 종사할수 있다는데 대해 무한한 영광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특히 조선족으로서 총체설계부에서 그것도 모델설계실에서 일한다는게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1990년 한국우주비행협회대표단을 만날 때 제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너무나 뜻밖이라고 놀랍게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준비된 연구원
행운과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만 차례지는법이다. 우주항공사업은 복잡한 시스템공정이다. 새로운 미사일계렬의 연구와 제조는 적어도 몇년 지어는 십여년의 혁신과 실험과정을 전제로 한다. 총체설계사로서 경상적으로 조사연구를 하고 부단히 학습을 해야만 총체방안론증에서 발언권이 있고 새로운 계렬의 전술기술지표를 실현할수 있는것이다. 동서윤연구원은 항천연구제조에 들어서는 언제나 배움에 목마른 학생이였다.

“한 사람의 능력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는것이다. 특히 항천부의 여러가지 복잡한 공정을 해결할 때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성과를 집결해야 한다. 항상 왜? 무엇때문일가? 질문을 많이 제기해야 한다. 문제를 잡으면 그건 절반 성공한셈이다.” 동서윤연구원이 수십년간 입버릇처럼 떠올리는 말이기도 하다.
동서윤연구원이 맨먼저 연구제조에 참가한것은 동풍2호였다. 그뒤를 이어 동풍3호, 동풍15호 미사일 연구제조의 전반 과정에 참가했고 동풍22호와 동풍15호 연구제조과정에서 조종, 안전, 묘준, 측정, 발사 등 시스템의 종합설계를 완성했다.

1988년의 한여름 주천위성발사쎈터에서 동풍15호 전술미사일발사를 앞둔 연구일군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구일군들은 일제히 중앙 정면 스크린에 눈을 맞춘채 차분히 발사를 준비하고있다.

전반 준비과정은 순조롭게 진척되여갔다. 하지만 중요한 일환인 로케트 립체상태 검사에서 정밀도에 편차가 생겼다. 관도(惯导)수출에 문제가 생긴것이다. 연구일군을 비롯해 현장사업일군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현장은 쥐죽은듯 조용한 가운데 각 부문의 발사전 상태를 체크하는 지휘관의 번호 부름소리만 들려올뿐이다. 1번, 2번, 3번…

항공항천부 부장을 비롯해 백여명이 주목하고있는 가운데 발사시간은 각일각 다가오고있었다. 더이상 지체할수 없다. 지도부에서는 즉각 비상회의를 열고 발사여부를 검증하였다. 토론결과 설상 이런 상태에서 발사해도 락착점이 10~20킬로메터 편차가 생길뿐이기에 원 계획대로 발사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지도부의 지시대로 연구일군들은 또다시 준비작업을 다그쳤다. 그러나 이는 발사장 현장지휘를 맡은 동서윤연구원으로서는 납득이 안되는 결론이였다. 연구사업에서 완벽화를 추구할만큼 티끌만한 차실과 오차도 용서 못하는 동서윤연구원은 단연히 지령실에 찾아갔다.

“하루만 시간을 주면 원인을 해결하고 성공적으로 발사하도톡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종 건의가 채납되였고 각 부문의 불철주야 노력으로 고장원인이 분석, 해결돼 그 이튿날 동풍15호 미사일은 성공적으로 발사되였다.

동풍15호 연구제조과정에서 동서윤연구원은 “공률 민감련동상태 오차 난관돌파”소조의 조장과 발사진지 발사측정조종 지휘를 맡았으며 비행실험 고장분석에서 보다 정확한 고장분석모식을 내놓았다. 그는 또 미사일유도정밀도검사방법을 꾸준히 견지하여 발사조종의 정확도를 보장했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사일의 다각도발사기술시스템의 응용을 주장하고 이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뿐만아니라 국내에서 최초로 XXX 모선조종방안을 제기하고 이를 실용화하는데 성공했다.

동서윤연구원은 동풍3호 미사일 발사 준비시간 단축실험에서 성공한 제1인자로 1979년에 항천부 과학기술진보상 2등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 동풍22호 시초위치측정시스템방안의 제1인자로 항천부 과학기술진보상 2등을 수상했다.

이와 같은 혁신과 창조적성과로 동서윤연구원은 1991년 항천부로부터 “특출한 기여를 한 로전문가”로 평의됐고 1992년부터 정부특별수당금을 향수하고있다. 2000년부터 2004년기간 그는 전문가소조 조장으로 로케트어뢰발사의 총체적방안론증사업을 이끌어왔다. 그들의 이 방안은 2003년 3월 해군의 관련 공개입찰에 락찰돼 항천부제1연구원이 함재미사일에 대한 연구제조 권한을 쟁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조사연구끝에 광섬유관도, XXX 총선과 페환모비 등 발사기술을 처음으로 함재미사일에 대담하게 도입함으로써 함재미사일 발사에서 제기되는 기술난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발사조종시스템의 간편성과 정확도를 보장했다.

퇴직후에도 식을줄 모르는 탐구의 길
2004년 6월, 동서윤연구원은 70세 고령으로 중국운반로케트기술연구원 제1설계부에서 퇴직했다. 그러나 그의 과학연구사업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있다. 퇴직한지 한달도 안되여 그는 전문가소조 조장의 신분으로 항천과학기술그룹 시대전자회사에 재초빙돼 항천시대전자회사총부 지도자, 각 지사, 프로젝트 총지휘와 여러 동료들의 지지밑에 소조성원들을 이끌고 2004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의 짧디짧은 18개월 사이에 국내에서 최초로 되는 저원가 유도폭탄의 연구제조에 성공했다. 연구제조팀은 국내 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로 기계관도+GPS 조합유도+비행조종기 일체화기술을 도입했고 XXX총선과 페환모비기술도 대담하게 응용했다. 이 연구성과를 도입한 유도폭탄은 기존의 전통폭탄에 비해 정확도가 대폭 높아지고 원가가 대폭 절감되는 이중효과를 거두어 공군장비건설에 의해 널리 보급되고있다.

2008년에 동서윤연구원은 중국운반로케트기술연구원 연구개발쎈터에 재초빙돼 전쟁시 쾌속반응능력을 갖춘 고체운반로케트 론증통제시스템 방안을 연구하였다. 총체적방안과 조사연구에 근거해 그는 140페지에 달하 는 방안론증보고서를 완성했다. 2009년 9월 그는 또 중국운반로케트기술연구원에서 새로 설립한 “접근공간 비행기계장치 시스템공정연구소” 에 재초빙됐으며 ××형 로케트연구제조의 기술자문과 기술방안평가 등 사업을 하고있다. “접근공간 비행기계”는 발달국가에서 연구제조난도가 크고 돌발습격 제어능력이 강한 신형의 비행시스템이다. 2010 년 3월에 그는 ××형 로케트의 비행조종 및 측정, 발사, 조종 시스템의 건의보고서를 완성하여 연구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드바쁜 과학연구와중에도 동서윤연구원은 신체단련만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한시간의 아침단련은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고 짬짬이 시간을 내여 수영, 탁구도 즐긴다.

건강은 우리 나라 우주비행사업을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할수 있는 보장이라며 흘러간 70여년의 세월이 무색할만큼 환하게 웃는 동서윤연구원, 아직도 식은줄 모르는 탐구열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고있는 동서윤연구원의 과학연구생애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더욱 아름답게 불타오르고있는것이다.

장연하기자/중앙인민방송국 전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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