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고향을 지키는《못난 나무》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3월26일 09시08분    조회:47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상화

화룡시 남평진 용화소학교 김상화교장의 이야기

중앙텔레비죤프로를 통해 농촌소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의 선진사적을 시청할 때마다 필자는 내 고향의 김상화(金相华)교장을 머리속에 떠올리군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의 사적이 텔레비죤에 나오는 선진인물들 사적과 별반 차이가 없기때문이다.

알뜰한 살림군

김상화교장은 1960년에 당시의 명칭으로 화룡현 용화공사 상화(上化) 1대에서 태여났다. 고향의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서 몇년간 일하다가 1983년 3월에 상화대대의 촌학교에 초빙되여 길고긴 교육생애를 시작하게 되였다. 상화소학교는 공사마을에서도 30리나 떨어진 농촌마을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학교에서도 7리나 떨어진 오지마을이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 발을 들여놓아서 지금까지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마지막사람으로 퇴근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이 없이.

가난한 촌소이기에 겨울에 난로불화목을 장만하는것은 큰 일이였다. 지난 세기 80년대 후반, 당시 학급담임을 맡았던 그는 학부모들의 소수레를 빌어가지고 산과 강가로 다니며 나무를 주어 겨울철 난로화목을 장만하군 하였다. 그리고 교원이나 학생이나를 막론하고 리발을 청들면 무조건 알뜰히 리발해준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참으로 학교의 《알뜰한 살림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네의 학부모

여기에 김상화교장의 많은 사적가운데서 세가지 사실만을 간추려서 간단히 적어본다.

1983년, 23세 새파란 청춘때부터 그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많기로 소문이 있었다. 그가 가르치는 3학년 한 학생이 이외로 팔이 골절되여 학교에 나올수가 없게 되였다. 그는 주동적으로 매일밤마다 한두시간씩 한달가량 자기 집에서 2리 떨어진 그 학생의 집에 찾아다니면서 그날그날 배운 지식들을 보충수업해주었다. 하여 그 학생은 정상적인 학습생활을 유지할수가 있었다.

1988년 3월 향중심소학교에 전근된후다. 그의 학급에는 10여리 길을 통학하는 고아가 있었는데 가난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입은 옷은 더 말할나위도 없고 점심밥도 굶는 형편이였다. 하여 상화교원은 그 학생에게 소비돈도 주고 옷도 사입히는 동시에 학교지도부에 반영하여 향민정부문의 도움으로 이 어린이를 무상으로 향에서 꾸리는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게 하였고 후에는 향경로원에 들수 있게 하여 무난히 소학교를 졸업하게 하였다.

2008년도 봄, 30리 밖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뻐스로 통학하는 한 남학생이 아버지가 불시에 뇌출혈로 쓰러져 화룡시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이때에도 그는 주저없이 학생을 집에 데려다 한달간 함께 생활하면서 보살펴주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그 학생을 뻐스나 택시에 태워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도록 배려해주었다.

학생에 대한 이런 지극한 사랑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과 한점 다를바 없었다. 남성으로서, 안해가 출국하고 홀로 있는 《외토리》로서 이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사람들은 친절하게 김상화교장을 가리켜 《동네의 학부모》라고 부른다.

고향의 파수군

《사람은 도시로 나가고 소는 산골로 몰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 두메산골을 떠났는데 김상화교장은 왜 가난한 농촌학교를 떠나지 못한걸가? 사실 그에게도 고향을 떠나 사업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향정부에서도 그의 인품과 사업능력이 마음에 들어 향의 단서기사업을 해줄것을 요구해왔고 그후 교육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연구에서 일정한 성과를 올리자 규모가 큰 소학교들에서 교도주임으로 와줄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수가 없었다.

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고 고향소학교에 대한 사랑은 더욱 대단했다. 600명도 넘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던 마을에 이젠 5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마을도 한산하고 학교도 따라서 한산하다. 전성기의 200여명으로부터 현재는 5명의 학생에 8명의 교직원이 있을뿐이다. 하지만 이 낡고 보잘것 없어보이는 소학교가 전 연변에서도 비교적 일찍 세워진 학교로 올해엔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였다. 이렇듯 유서깊고 공헌이 많은 학교를 마지막까지 지키는것을 그는 자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페교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 한명이 남더라도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드팀없는 다짐이다. 실로 고향을 지켜선 믿음직스러운 《파수군》임에 틀림이 없다.

《부유한》 교장님

사실 김상화교장의 로임은 도시학교나 학생이 많은 학교에 비기면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적다. 그 상황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의 안해가 《도시학교에 들어가 학교문을 지키더라도 이곳을 뜨자》고 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가난하다는 생각이 없이 《부유》하게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있다.

30년 동안의 교원생애를 살아오면서 그에게는 실로 많은 영예의 꽃다발이 안겨졌다. 《화룡시(현)우수교사》, 《우수주제반회》, 《우수지도교사》, 《사상품성과우수교사》… 이외에도 2003년 학생이 40여명밖에 안되는 학교에서 《화룡시농촌소학교 한어품성과 교수연구토론회》를 성공적으로 조직하여 시교육국과 진수학교 및 형제학교의 령도와 교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비록 작고 가난한 학교이기는 하지만 퇴직교원들에 대한 관심은 큰 학교에 못지 않다. 해마다 년말이면 화룡시, 연길시 등지에서 생활하고있는 로교원들을 모시고 위문활동을 조직하군 한다. 하여 퇴직한 교원들은 《효성스러운 후배덕분에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잘생긴 《못난 나무》도 산을 지킬수 있다. 고향의 소학교를 굳게 지키고있는 김상화교장이 바로 이런 잘생긴 《못난 나무》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다. 하지만 고향의 학교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쳐나고 고향의 인간과 고향의 산천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쳐나니 그 누가 그를 가난하다고 하랴! 그는 실로 내 고향의 자랑찬 《못난 나무》이다.

/신기덕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39
  • 연변대학에서 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공기를 마시고 살지만 선생은 연변대학, 연변조선족을 호흡하며 사는구나…》 이는 한국의 중국통 동훈선생이 박문일교수의 80세 생일에 보내온 축사의 한 구절이다. 외유내강형의 평생교수로 불리는 박문일교수는 연변대학의 전임교장으로 중국의...
  • 2013-07-01
  • 《학급에 가족사랑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어요. 한 학생은…》 말을 채 잇지 못한채 김옥란선생님은 한창이나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학교와 학생들을 항상 첫자리에 놓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학생들의 일이 가장 큰 일, 중요한 일》이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숙사로 이사와 ...
  • 2013-06-30
  • 편벽한 변강지구에서 청춘을 불태우는 김혜영담임교원의 교육사랑 소학년 5학년 9명 《자식》들에 둘러싸인 《어머니》선생 흑룡강성 학강지구의 라북현(북위 48도 위치)은 흑룡강을 사이두고 로씨야와 마주하고있다. 이곳에 중국조선족학교로 제일 북단에 있는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가 바로 라북현조선족학교이다. 지난 ...
  • 2013-06-26
  • -흑룡강성 가목사조선족기초교육센터 현희교원의 이야기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안고 그녀는 십여년간 민족기초교육에 몸담갔다. 소학교 담임으로부터 정교처 주임직을 겸하기까지 평범한 일터에서 그는 말없이 학생들을 키웠다. 그가 바로 흑룡강성 가목사조선족기초교육센터의 현희선생님이다. 일전 기자일행이 이 학...
  • 2013-06-25
  • 길림성교육계통사덕선진, 연변주우수담임교원인 화룡시제3중학교 김신옥교원의 교육사랑 학생들과 함께라면 늘 즐겁다는 김신옥선생님(가운데). 교육사업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 능수능란한 교수실력으로 30년을 하루와 같이 교단을 지켜온 선생님이 있다. 그가 바로 길림성교육계통사덕선진, 연변주우...
  • 2013-06-20
  • 봄에는 향긋한 산나물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오붓한 시골이였다. 화룡시 남평진에서도 더 깊숙이 들어앉은 고령촌에는 100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조선족소학교-용화소학교가 있다. 차로 고령촌까지 가는것도 쉽지 않았다. 고령촌이 가까와질수록 산세가 험해지고 길이 복잡하게...
  • 2013-05-22
  • -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의 이야기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학생들과 함께 있고 학생들이 기뻐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1986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래 선후로 조선어문교원, 학급담임, 교무주임, 부교장,교장직을 맡아오면서 27년간 시종 강...
  • 2013-05-13
  • -연길시 하남소학교 교본교연조 주임 최종화교원 지난 2012년 5월 31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장안순서기는 연길시 하남소학교(한족학교)를 시찰하는 과정에 이 학교 교본교연조 최종화주임(고급교원)의 교수장면을 보면서 높은 평가를 내렸다. 최종화주임의 강의장면은 연변텔레비죤은 물론 길림성라지오방송국 민족단결...
  • 2013-04-18
  • 기획-행복한 다문화가정 다문화가족의 사랑을 받는 정춘홍씨를 만나   기자가 알아본데 따르면 한국 전역에 208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설치되여 있는데 인천광역시만도 9개나 된다고 한다. 남동구에는 중국어와 윁남언어 사용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 지난3월23일, 인천광역시 남동구청 다문화복지센터의 소개로 다...
  • 2013-04-18
  •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를 찾아 리성적이고 랭철한 두뇌와 판단, 정확한 수치와 판별을 요구하는 우리 나라 유명약학대학의 교수라는 겉모습에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문학소년의 내면세계를 갖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48세), 사물의 미세한 립자까지 파헤쳐 성분을 ...
  • 2013-04-11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