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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영웅 무정장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1일 10시16분    조회: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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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무정

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 백인》(4)

1941년 10월 26일,동방 각 민족 반파쑈대표대회가 연안에서 소집되였다. 무정은 대회주석단 성원으로 선거되였다.

그번 대회에서 동방 각 민족 반파쑈동맹이 결성되였다.

《무정장군이 엄지손만 척 꺼내들고 어디를 겨냥하면 그곳에 백발백중 포탄이 떨어져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겼다.》 이는 지난 세기 20년대로부터 40년대를 걸치면서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제국주의침략자를 반대하여 싸우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운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대표이며 전설의 영웅인 무정장군에 대한 전설의 이야기이다.

홍군의 첫 포를 쏘다

1905년 일제의 군화발에 짓밟히는 조선 경성군에서 태여난 무정은 서울에서 가난한 고학시절을 보내면서 나라 잃은 비애를 온몸으로 겪었다. 혁명에 뜻을 두고 청년운동과 로동운동에 종사하던 그는 일제에 체포되여 세번이나 옥살이를 하면서 갖은 혹형을 받았다. 1923년 18세나는 해에 조선공산주의자 려운형의 영향으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듬해 하남보정군관학교 포병과를 졸업하고 국민당부대에서 포병중좌로 활약하던 그는 군벌혼전에 실망하고 1925년 장가구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그후 무한, 상해에서 지하투쟁을 하다가 두차례 체포감금되나 조직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되여 향항으로 망명하며 1930년 6월, 중앙쏘베트근거지에 이른다. 거기서 무정은 팽덕회장군의 수하 홍군제3군단 포병련 련장으로 남정북전을 시작한다. 그해 7월 미, 영, 일 제국주의 군함은 동정호반의 악주성을 미친듯이 포격하였다. 격분한 무정은 팽덕회에게 반격을 제의하였다. 팽덕회장군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본때를 보여주라고 고무하였다.

당시 홍군내에는 포를 쏠줄 아는 사람이 팽덕회와 무정뿐이였다. 수중의 야전포 4문과 산포 2문으로 전사들을 지휘하여 다가오는 적함을 겨누고 포격하자 10여척의 적함이 삽시에 불에 탔다. 홍군전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소리높이 웨쳤다. 이는 홍군력사의 첫 대포소리였고 이로부터 무정의 이름과 함께 조선인의 명성이 홍군내에 널리 알려졌다.

1931년 홍군중앙군사위원회 직속 포병퇀이 창건되면서 무정은 제2임퇀장에 부임하고 1933년 10월 홍군대학 특과학교가 세워지면서 교장을 겸임하여 홍군내 최초포병인재를 키워낸다. 홍군의 2만5천리장정이 시작되자 무정은 중앙군위기관으로 편성된 제1종대 제3제대 사령원 겸 정위로 장정에서 가장 치렬한 상강나루터 점령임무를 수행한다.

장정도중 당중앙의 북상항일을 반대한 장국도의 음모로 각 군단과 군위, 모택동과의 련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팽덕회의 지시를 받들고 목숨걸고 비밀전신번호를 제1군단에 전해줌으로써 당중앙과 홍군을 위기에서 만회한다. 무정은 주덕총사령, 팽덕회부총사령 등 중앙군위지도자들의 가장 신임받는 장군의 일원으로 장정을 마치고 연안에 도착한다.

팔로군 첫 포병퇀 퇀장

1941년 조선청년련합회 회장시절의 무정장군.

1936년 6월, 무정은 홍군사단급 이상 38명원으로 조직된 연안항일군정대학 제1기고급간부과 학원으로 해당 학과를 배우면서 강의도 하고 항일군정대학을 졸업한 뒤 홍군총부 작전과 과장, 팔로군총부 작전과 과장으로 된다.

1937년 8월 25일 중국공농홍근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편되며 그해말 항일전쟁의 새로운 수요에 따라 팔로군총부에서는 포병퇀을 건립하기로 결정한다. 중앙군위에서는 포병퇀건립임무를 무정에게 맡겼다. 원 소속병력에 유격 제2대를 포함하여 총 1000여명을 6개 련으로 편성하고 그외 기관련, 관통대 및 선전대를 가진 포병퇀을 건립하였다.

1938년 1월 28일, 산서성 림분부근의 한 광장에서 포병퇀건립의식이 성대히 치러졌다. 대회에서는 팔로군판사처 주임 팽설풍이 중공중앙군사위원회의 임명서를 랑독하면서 무정을 우리 군 첫 포병퇀 퇀장으로 선포한다. 포병퇀 건립초기 장비도 없고 간부와 기술골간도 없었다. 무정은 우선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계획있게 정치사상교육을 진행한 기초에서 제4련을 전문 간부를 양성하는 련으로 삼고 각 련에서 우수한 골간을 뽑아 단기훈련반을 열었다. 그때 훈련반에서 무정은 직접 강의를 하면서 《엄지손을 척 꺼내들고》알기 쉽게 통속적으로 포사격원리와 포를 조종하는 요령을 가르쳤다.

훈련반을 나온 동지들은 기술골간으로 되여 당시의 긴급수요를 해결하였을뿐만 아니라 그후의 포병발전에 인재를 준비하였다. 포병퇀은 건립되면서 일제와 싸우는 전투에 참가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포병퇀 건립 1돐을 기념하여 모주석께서는 《포병퇀은 항일전쟁가운데서 주력병퇀이 되며 민족을 위하여 영광을 떨치고 팔로군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는 제자를 써주시고 금기를 증정하였다.

1940년 중외를 진감하는 백퇀대전이 일어났다. 무정동지는 포병퇀을 인솔하여 될수록 적진지와 가까운 거리에 포를 걸어놓고 직접 사격을 지휘함으로써 적의 또치까를 백발백중하여 보병들의 작전을 엄호하고 진격로를 열어놓음으로써 아군의 승리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조선의용군 총사령

백퇀대전이 끝난후 무정은 당중앙의 지시에 따라 포병퇀을 떠나 관내 조선인 항일단체를 통일하고 련합하는 조직사업에 나섰다. 워낙 1939년부터 무정은 섬북조선청년련맹의 서명편지로 관내의 조선혁명동지들은 일치단결하여 공동히 항일할것을 호소하였다.

1941년 1월 10일, 태항산 항일근거지의 진동남팔로군전선 총사령부소재지에서 화북조선청년련합회 제1차대표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무정동지는 화북조선쳥년련합회 행동강령과 과업을 진술하면서 간부양성과 조선혁명단체의 통일, 화북 20만 조선동포들은 항일투쟁에로 뭉쳐야 함을 강조하였다.

제1차대표대회후 조선청년대표들은 무정의 파견을 받고 락양, 서안 등지로 가 조선의용대의 북상을 조직지도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10일 무한에서 창립된 첫 조선인항일무장대오로서 100여명 의용대 대원들은 전국 6개 전구에서 대일무장선전사업을 진행하고있었다. 몇개월간의 간난신고끝에 조선의용대 대부분 전사들이 국민당통치구역을 벗어나 태항산근거지로 집중되였고 1941년 6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편성되였다.

1945년 조선의용군 사령원시절의 무정장군.

1942년 7월 11일부터 3일간 화북조선청년련합회 제2차대표대회가 청장하기슭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화북조선청년련합회는 화북조선독립동맹으로 , 조선의용대는 조선의용군으로 개칭되며 이 부대는 조선독립동맹 소속 부대로 결정되였다. 대회에서는 김백연, 무정, 박효삼 등 11명을 집행위원으로 선거하였고 당중앙에서는 무정을 조선의용군 총사령으로 파견하였다.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의 령도와 팔로군의 통일지휘하에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조선인무장부대로 확정되였다.

조선의용군 사령원으로 태항산근거지에 이른 무정장군은 1942년 12월 1일 섭현 곡원촌에 《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장을 담임하면서 학원들에게 정치사상교양과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적 점령구로부터 찾아오는 조선청년들을 교육시켜 조선의용군에 참가시켰다.

당시는 또한 태항산항일근거지 군민들이 가장 어려운시기였다. 일본침략자들의 근거지에 대한 대소탕과 수해, 충재 등 자연재해까지 덮쳐 전례없는 대재난을 맞게 되였다. 하지만 조선의용군들은 무정장군의 두리에 굳게 뭉쳐 팔로군부대와 당지 군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곤난을 이겨나갔다. 1943년봄부터 《자력갱생 풍의족식》대생산열조를 일으켜 황무지를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상점, 병원을 꾸려 변구정부와 근거지군민들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대호평을 받았다.

1943년말부터 조선의용군은 당중앙의 호소에 따라 혁명의성지 연안에 가 군정훈련을 하게 되였다.무정장군은 의용군주력이 연안으로 떠난후에도 태항산근거지에서 적통치구역에서 의거해오는 청년들을 맞아들이고 교육, 조직하면서 인재양성을 계속하였고 지하공작자들을 화북 각지와 동북의 조선족지구에 파견하여 조선사람들을 독립동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반일투쟁에 궐기시키는 과업들을 진행하였다.

1945년 7월 연안에 이른 무정장군은 8월 11일 주덕총사령이 내린 연안총부 제6호명령을 받들고 9월에 조선의용군을 거느리고 팔로군 및 원 동북군 각 부대를 따라 동북으로 진출하였다. 《조선의용군행진곡》을 부르며 각 항일근거지에서 심양으로 모여온 조선의용군은 1000여명에 달하였다. 무정장군은 심양에서 조선의용군 전체회의를 열고 당면의 정세와 금후의 과업에 대해 연설하고 조선의용군을 세개 지대로 개편하였다.

1지대는 남만에 남고 3지대는 북만으로, 5지대는 동만으로 진군하여 대오확군사업을 벌리면서 동북각지에서 적위잔여세력을 소멸하는 투쟁에 뛰여들었다. 당면 형세하에서 무정장군과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 주요지도자들은 개인신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나갔다. 조선에 진출한후 무정장군은 조선림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 로동당 제2서기, 보안간부훈련대 포병사령관 등 직무를 력임하였다. 장기간의 혁명투쟁가운데서 질병을 얻었던 무정장군은 1951년 7월에 병고한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나라의 독립과 피압박민족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하여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중국로농홍군, 팔로군과 어깨겯고 싸우며 자신의 일체를 헌신해온 전설의 영웅 무정장군은 우리 민족의 지지 않는 전설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 새 세기속을 살아가고있다.


길림신문 김청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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