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기동인민혁명의 코기러기–주문빈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8일 15시29분    조회:389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주문빈

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 백인》(6)

하북성 소재지인 석가장의 화북렬사릉원에는 화북지구에서 희생된 10명의 저명한 영웅조각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모셔진것이 바로 기동인민의 애대를 받으면서 혁명의 코기러기로 불리운 주문빈의 동상이다.

《주문빈, 원명은 김성호, 조선평안북도 의주군 홍남동 사람. 중공당원이며 원 중공 기열변(冀熱邊)특위 조직부장. 항일전쟁이전 로동자운동에 종사. 1944년 가을 풍윤현 양가포전투에서 희생.》주문빈동상 기단에 새겨진 렬사의 략력이다.

주문빈의 본명은 김성호, 1908년 9월 23일 조선평안북도 의주군 홍남동에서 출생했고 1914년 부친을 따라 중국 통현에 자리잡으면서 글공부를 했다.

주문빈의 부친 김기창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모두가 키가 크고 인물들이였다. 맏이 김승호는 조기 공산주의자로서 일찍 조선에서 반일운동을 하다가 일제에게 살해됐고 둘째인 김영호는 중국에 와 중국공산당에 참가한 조기 공산주의자였다.

셋째인 문빈 김성호는 1926년 로하중학교에서 학생때 둘째형님의 영향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7년 주문빈은 동학들인 강경신, 장학연(일명 장진이라 불렀음), 그리고 동생인 김상호를 중국공산당에 가입시키고 로하중학교에서 제일 처음으로 된 중공당지부를 설립했다. 이 당지부는 통현의 첫 중공당지부였다. 주문빈동지가 당지부 서기직무를 맡았다.

주문빈은 당원들을 지도하여 국민당의 죄악을 폭로, 규탄하고 당의 혁명주장을 선전했으며 로동자야학교도 꾸리고 교내의 국민당우익분자들을 타격하고 통주남자사범학교와 녀자사범학교의 혁명적 학생들과 밀접한 련계를 맺는 등 사업들을 성과적으로 하였다.

1929년 여름, 주문빈은 북경지구 지하당 기관에 옮겨가서 사업했다. 그는 북경시에서 당의 기층조직을 건립하는 한편 연경대학과 보인대학에서 당원들을 발전시키고 지도했다.

1930년 겨울에 특무의 추격을 받게 된 주문빈은 북경시 교외의 통현, 란현, 풍윤 등 일대를 돌아다니며 계속 당사업을 하였다.

《9. 18사변》이후 그는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보인대학의 공산당원들에게 폭발약과 건전지 등을 시험 제조하게 하였다. 그들은 무기를 만들어 화북인민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1936년 여름, 주문빈은 하북성 당위원회의 지시를 받고 당산공작위원회 서기로 파견되여 개란탄광로동자들을 지도하였다. 손재주가 많은 주문빈은 무선전 수리소를 운영하면서 이를 은신처로 당의 력량을 확충시켰다. 사실 이 수리소는 로동자투쟁의 지휘소였다.

《7. 7사변》후 그는 《화북에서는 마땅히 유격전쟁을 자기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당중앙의 지시에 근거하여 개란탄광의 수만명 로동자들을 반제투쟁에로 궐기시킬 준비를 다그쳤다.

당시 개란탄광은 영국제국주의가 경영하였는데 《7. 7사변》후에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탄압까지 받게 되였다. 개란탄광의 영국자본가는 이른바 《갱내로력공수 기록제》를 실시한다는 포고문을 내붙였다. 광산로동자들의 생사를 무시하고 로동시간을 최대한으로 늘여 로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자는 수작이였다. 광산당국의 포고문은 로동자들의 격분을 자아냈다. 주문빈은 이러한 로동자들의 실태를 장악하고 즉시 긴급회를 열고 파업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1938년 3월 12일 주문빈은 개란탄광의 조각장과 서림, 당가장, 마가구, 당산 등 5개 광산 로동자들을 조직하여 대파업을 시작하였다. 조각장의 파업이 먼저 일어났다. 주문빈은 절진국, 장진원 등 20여명 열성자들을 모집하여 회의를 열고 파업위원회 설립과 로동자 규찰대 조직을 내오기로 하고 22일부터 총파업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3만5000명의 로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하였고 이들의 영향으로 기타 광산에서도 모두 일떠났는데 4월까지 파업투쟁이 계속 되였다. 5월 4일 영국 자본가는 할수없이 로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16가지 로자협약을 체결하였다.

50여 일간 지속된 대파업은 승리로 끝났다. 파업은 당시 당산시 공작위원회 서기 주문빈의 뛰어난 재능과 탁월한 기여를 보여주었고 기동인민들의 반항투쟁을 크게 고무해 주었다.

중공중앙 화북국을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모택동동지는《참 잘 지도했습니다. 로동계급의 각성이 높습니다.》하고 찬탄하였다.

 
화북렬사릉원내의 주문빈렬사 조각상

1938년 6월 주문빈은 조각장탄광의 로동자 규찰대 대장 절진국을 중심으로 130명의 로동자항일무장대오를 건립했다. 광부들로 조직된 항일무장대오는 여러 차례의 전투를 거쳐 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당에서는 이 부대를 기동항일련합군 특무대대로 명명하였다.

일제는 대량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 부대를 소멸하려고 하였다. 이때 이 무장대오는 7000여명으로 늘어났다. 개란탄광로동자들의 줄기찬 투쟁은 기동지구 광범한 농민들의 반제투쟁을 크게 고무했다. 1938년 7월 20일까지 전 기동 22개 현에서 20만 인민이 참가한 대봉기가 일어났다.

1938년 8월, 주문빈이 령도하는 봉기부대의 대표와 팔로군의 등화가 지휘하는 종대의 책임자들이 철창에서 련석회의를 가지고 당중앙의 방침에 따라 기찰열료군구의 산하 4개 군분구를 합병하여 통일적인 군사지휘부를 설립하였는데 주문빈은 기찰열료군구직속 팔로군 기동유격지대 정치부 주임으로 임명됐으며 1939년에는 중국공산당 기동동부지구 위원회 서기사업을 겸하였다.

기동은 동북과 관내 화북을 이어주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기때문에 그 전략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1937년 일제가 전면적인 중국 침략전쟁을 발동한 이후 적의 깊숙한 후방, 교통요지에 위치한 기동 항일유격근거지는 더욱 중요하게 되였다.

기동유격근거지를 목에 걸린 뼈처럼 생각한 놈들은 3만여 괴뢰군을 끌어 모아 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과 소탕을 감행하였다.

근거지를 확보하려면 적들과 싸워야 했다. 주문빈은 적 치안군을 소멸할 주장을 내세우고 1941년 11월부터 1942년 2월까지 기동의 항일부대를 집중해 적의 치안부대 섬멸전을 조직하였다. 11월 15일 준화 40리포의 첫 전투에서 4백 여명 적들을 소멸하였고 그 후 23차의 전투를 거쳐 유격대는 치안군 2,700여명과 왜병 300여명을 소멸하였다.

1943년 3월에 주문빈은 중국공산당 기동특별위원회 조직부장 겸 중공란중지위 서기로 임명되였다. 7월에 기동특별위원회는 기열변특위로 개칭되고 특위아래에 5개 지구위원회와 5개 전원공서를 두었는데 주문빈은 특위 조직부장으로 선거되여 특위기관을 지도했다. 다년간의 간고한 전투를 거쳐 1944년 20만 민병을 가진 완정한 기열료항일근거지가 형성되였다.

1944년 10월16일 주문빈은 풍윤현 양가포포위돌격전에서 머리에 중상을 입고 장렬히 희생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36세밖에 안되였다. 주문빈동지가 희생된후 류소기는 《문빈동지는 중조 량국인민의 훌륭한 아들이며 우리당 우리군의 용맹한 장령이였다. 그가 일찍 희생된것은 우리 당의 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면서 애석해했다.

중공당산시위 당사연구실에서 편찬한 기동혁명사에는 주문빈을 다음과 같이 기재했다.

《주문빈,그는 기동항일 폭동과 기동항일근거지 건립, 기동항일전쟁 및 근거지와 기동지방당조직 건설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특히 그토록 잔혹한 투쟁환경속에서도 시종 군중들속에 뿌리박고 기열변구의 인민과 간부들의 애대를 받아왔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41)   칭다오호월광가방금속유한회사 한해월 사장   즐거움을 함께 하면 배가 된다고 말하는 한해월 사장.   프로필   한해월(韩海月. 47)   하얼빈사범대학 정치교육학과 단과 졸업   흑룡강성 탕원조선족중학교 교사 경력   칭다오호월광가방금속유한...
  • 2012-11-26
  • -한국출판계 대부 윤형두회장을 만나서     금년 8월 30일에는 중국인민대학출판사에서 인대출판사 사장, 인민출판사 사장,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원장 등 중국출판계 인사와 한국 출판계 대표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출판인의 자화상” 중국어판 출판기념식을 기졌다. 장장 50년간 출판의 외길을 ...
  • 2012-11-26
  •   '한국 국무총리 표창' 길경갑 선양시조선족연의회 회장   '심양현상은 모두의 것', 공식적 기제 도입이 필요   교육자 정체성 확립으로 민족교육 발전 추진할 것 (흑룡강신문=선양) 마국광 김동파 기자 = "가능하다면 대통령 표창도 한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지난달 조선족으로선 처음으로 한국 ...
  • 2012-11-23
  • 침술로 나눔 실천하는 “건강배달부” 은침료법의 선구자 박인석의사를 만나   “선생님, 보고싶었어요.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언뜻 들으면 련인의 애틋한 사랑을 떠올리는 대화이다. 하지만 어눌한 말투로 50대 중반의 중의를 불편한 몸때문에...
  • 2012-11-23
  • 중한수교20주년     제11대 선양한국인(상)회 신임회장 이성희   피로연 등 행사로 소외된 한국인 계층 위로할 것   지회 문화원 활성화 및 국제학교 이전 추진할 것   경선으로 인한 분열후유증 모면에 추대제도 도입 (흑룡강신문=선양) 마국광 김동파 기자 여가미 특약기자 = 이성희 회장은 이달 초 제11대...
  • 2012-11-23
  • 농민들을 이끌고 치부에로 달려가는 청년     취직기회도 포기하고 농민들을 이끌고 치부에로 달려가는 청년이 있습니다. 연길시 의란진 구룡촌 당지부부서기 리복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기자가 리복흥을 찾았을 때 그는 한창 비닐하우스에서 촌민들한테 도마도재배 기술을 전수하고있었습니다. 령하를 오르...
  • 2012-11-22
  • 쉼표 없는 창작려정 무용안무가 김영화의 이야기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 조선민족무용교연실 주임으로 사업하는 김영화는 10년간 잇달아 굵직굵직한 무용작품들을 내놓아 중국조선족무용계의 샛별로 떠오르고있다. 안무는 대체적으로 고도의 기술적수련을 거친 교양 있는 무용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 2012-11-22
  • 경찰사업에 열정을 퍼부은 집념의 사나이         연길시공안국 조양천파출소 소장 김무에 대한 이야기 도박기를 현장에서 부수어버리는 패기, 범죄를 타격함에 있어서의 무서운 집념, 이름만 들어도 법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그가 바로 연길시공안국 조양천파출소 소장 김무(41세)다. 22년을 기...
  • 2012-11-22
  • 기층에 뿌리박은 민중의 지팡이 돈화시공안국 관지파출소 경찰 서경화에 대한 이야기 남을 돕는 일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서면서 그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경찰이 있다. 180센치메터의 거구에 검실검실한 얼굴, 강한 인상에 비해 너무나도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가 바로 돈화시공안국 관지파출소 서경화경...
  • 2012-11-21
  • 틈새시장 겨냥 봉사업으로 창업을 이룬 기업가     틈새시장을 겨냥하여 새로운 봉사업으로 창업을 이룬 기업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총경리 오보천입니다. 올해 48세인 오보천은 지난 1985년부터 시작해 선후로 공상은행 화룡지행, 연변도시 신용련합사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 2012-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