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믿음과 신뢰로 성공을 쌓는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9일 08시47분    조회:47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표성룡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 집행회장 료녕성 신성그룹 표성룡회장

수억원의 자산에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료녕성 신성그룹 표성룡회장(57세), 허스키한 목소리에 무뚝뚝한 평안도억양으로 얼굴에 편안한 웃움을 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꿈꾸는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름름한 배려가 한데 엉켜있어 언제나 손에 잡힐듯한 진한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 신뢰를 목숨처럼 지키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온 표성룡회장과 마주하게 되면 저도모르게 우리 조선족기업인들이 “대부”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는 감탄이 흘러나온다.

끊임없는 도전만이 기회를 잡는다
“초불의 능력은 그 크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불을 얼마만큼이나 밝히느냐에 있다. 오늘의 내가 있는것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도전, 자기 혁신이 있다면 성공의 길은 그 누구에도 열려있다”이는 표성룡회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다.

1954년 심양시 한 로동자가정의 6남매중 둘째로 태여난 그는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14세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품팔이 장사를 하였다. 표회장은 당시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시에서 생선과 미역을 자전거에 싣고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며 시골에 가서 팔았는데 그렇게 번 돈으로 옥수수와 쌀을 사다 때거리를 마련했다. 가난하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표회장은 커서 꼭 돈을 많이 벌어 동생들한테 마음껏 흰 쌀밥을 먹게 할것이라고 다짐하였다.

80년대초 개혁개방의 빗장이 열리면서 표회장한테도 기회가 왔다. 당시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국영기업에 배치받아 안일한 생활을 하던 표회장은 단연히 철밥통을 던져보리고 “개체호”의 길을 선택했다.

손에 쥔 돈 한푼없이 무엇을 할것이가 고민하던 끝에 그는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였다. 해바라기장사, 간장장사로부터 시작하여 복장, 신발장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안해본 장사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안일한 철밥통을 버리고 웬 보따리장사냐고 사서 고생한다고 만류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물건을 한푼이라도 싸게 구입하려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시장정세를 알아보기도 하였다. 몇끼씩 굶기도하고 야간렬차바닥에서 신문지를 펴고 새우잠을 자기도 하였지만 그는 전혀 힘든줄을 몰랐고 역동하는 시대의 변화를 보면서 차곡차곡 모아지는 돈과 함께 그의 도전과 꿈도 더국 커가고 있었다.

그때의 힘들고 고된 떠돌이보따리장사경력은 훗날 그에게 시장을 파악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가의 지혜를 선물하였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를 모르는 값진 인생자산을 주었다.

돈이 얼마만큼 모여지자 그는 1982년에 심양시 명렴가에 불고기와 국수 등을 파는 최초의 한국음식점을 차렸는데 장사는 호황이였다.3년후 그는 4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식당을 지었고 1991년에는 2000여평방메텅 달하는 건물을 짓고 경영규모를 확장하였다. 이렇게 식당을 경영하면서 얻은 자금축적을 바탕으로 표회장은 본격적으로 철강 류통업과 부동산개발에도 뛰여들였다.

성실과 신뢰를 목숨처럼 지킨다
“성실과 신뢰를 목숨처럼 지켜라!”이는 표회장의 기업운영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표회장은 “수중에 큰 자금도 없고 기업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오늘의 신성그룹을 일떠세우기까지는 성실과 신뢰를 목숨처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진실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해바리기 한봉지를 팔고 국수 한그릇을 팔더라고 표회장은 나의 동생들이 먹을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냥 거짓없는 성실한 마음으로 소비자들을 상대했기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수 있었다. 9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표회장의 성실한 일본새는 그대로 입소문이 터져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을수 있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표회장은 직원들한테 임금체불을 하지 않았으며 기업파트너와의 약속도 철석같이 지켜왔다. 이러한 성실함과 믿음을 바탕으로 표회장은 선후로 철근, 레미콘, 강화플라스틱창문제조 공장과 강재시장, 명렴종합시장 등 10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을 세우면서 근 500여무에 달하는 토지를 제공받을수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자금을 유치하여 공장을 세우게 되였다.

현재 표회장이 이끄는 신성그룹산하에는 3000개 매장을 가진 동북3성최대규모의 강재시장과 2000여개의 매장에 6000여명에 달하는 업주들이 장사를 하고있는 명렴종합시장외에도 동릉, 철령에 2개의 석재가공회사가 있고 우승신촌에는 부지 4만평, 건축면적이 2만평에 달하는 과학연구원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금랑비라고 고개를 가로 젓고있지만 표회장은 지금도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며 연구일군들의 신형에너지개발을 독려하고있다. 이 과학연구원은 표회장이 언젠가는 기업운영에 친환경과 에네지절약이라는 새로운 도약을 불어넣기 위한 최상의 무기이기도 한것이다.

올해 표회장은 디젤유를 30%이상 절약할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소유한 한 일본기업으로부터 합작제의를 받았다. 그들이 신성그룹의 경제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표회장의 성실한 일본새와 믿음을 전해듣고 찾아온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발로 열심히 뛰면서도 유치하려 해도 안되는 기술을 이렇게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다니 참으로 꿈만 같은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표회장은 요즘 성공한 기업인보다도 믿음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말에 더 감개무량하고 자신이 수십년간 앞만 보고 뛰여온 지난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감에 더욱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고 한다.

나누면 커지고 움켜지면 사라진다
표회장의 삶이 진정 성공적인 리유는 수억원의 자산을 가진 성공한 기업의 총수이기 앞서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와 가난한 이웃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여러행사에 아낌없이 자신의 가진것을 할애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추구한다는것이다.

1988년 표회장은 28만원을 투자하여 법고현 석가자몽골족향에 성룡학교를 건설하고 빈곤지역 어린이들의 수업난을 해결하였으며 지금까지 학교에 교수시설을 지원하고 우수학생을 장려해주고 빈곤학생을 지원해주고있다.

1998년에는 3000만원을 투자하여 모교인 심양시조선족1중을 부지면적이 9만평방메터에 달하고 건축면적이 4만평방메터에 달하는 현대화시설을 갖춘 종합교수청사로 재건해주 었다.

2003년에는 고향의 조선족로인들에게 500여만원을 투자하여 천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지어 활동실로 제공하였으며 해마다 1-2만원의 자금을 후원해 주고있다.
2004년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 200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구매해 사무실로 제공해주었다.

2005년 료녕성 "조선족민속절"행사에 기업인들을 동원하여 모금하는 한편 부족한 자금 20여만원을 후원하였다. 지금까지 료녕성조선족민속절행사가 4회 개최되였는데 표회장은 번마다 20-30만원의 자금을 후원하였다.

2008년부터 표회장은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에 해마다 많게는 40만원 적게는 20만원의 자금을 내놓고있다.

이외에도 그는 해마다 심양시조선족 로인협회, 부녀협회, 교육협회,자금을 후원하고 있는데 어떤해에는 그가 조선족학교,조선족사업단위, 조선족민간단체 등에 후원한 자금이 80여만원에 달한다...

표회장이 가난한 대학생들을 잘 후원해준다는 소식에 해마다 표회장한테는 수십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그럴때마다 표회장은 어김없이 일일히 얼마만의 돈이라도 보내주면서 가난한 역경을 딛고 힘내라고 격려하였는데 해마다 이렇게 보내주는 자금만도 수만원에 달했다.

이렇게 표회장이 수십년간 사회를 위해,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우리 민족 행사를 위해 후원한 자금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는 단돈 100원도 아껴썻던 표회장이 이렇게 사회에 환원하는것은 덕을 쌓기 위해서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 무슨 보답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 내가 가진것은 나누면 더 커지고 움켜지면 사라진다는게 표회장의 론리다. 또 조선족기업인이로서 겨레사회에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것에 더없은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중국 조선족기업인들의 “대부”
2008년 표회장은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명실상부한 중국조선족기업인들의“대부”로 되였다.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단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표회장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안고 상해, 심수, 등 대도시를 돌면서 조선족기업인들과 만나 기업들간의 네트워크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서로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자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표회장은 “중국조선족기업은 아직도 규모가 작고 많은 부족점이 있는데 자기 발전을 위해서는 국내 선진지역이나 국외에 자주 나가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껴야 새로운 동력을 얻을수 있으며 또 서로가 뭉쳐 보완해 주고 힘이 되여준다면 강해질것이다”고 이야기 한다.

올해로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의 3년간의 임기가 끝난 표회장은 또다시 집행회장으로 련임되였다. 회사의 일로 눈코뜰새없이 바쁜데다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일로 때론 숨쉴겨를조차 없이 중국내 여러곳으로 돌아치면서도 여러가지 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표회장은 전혀 지칠줄 모른다.

그는 중국조선족기업의 발전을 위해 조선족기업인들의 단합을 위해 달갑게 두발로 뛰는 “심부름꾼”으로 되여 싶다고, 또 조선족기업인들과 손잡고 서로 힘이 되여 함께 뛰면서 또다른 성공과 도약을 이룰것이라고 한다.

한 그룹의 총수를 넘어 중국조선족기업가들의 “대부”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표회장, 스스로는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며 성공을 부정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조선족기업인들은 힘을 얻게 될것이다.


연변일보 장연하 장설화 기자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