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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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신의 삶을 웅변하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신념은 일관됐으나,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다”(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는 반대자·비판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반공주의를 내걸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맞섰다. 반노조주의를 내걸고 영국의 공공부문 노조를 무력화했다.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한 아르헨티나를 무력으로 격퇴시키고, 북아일랜드 독립군을 진압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내건 그의 경제 이념은 1980년대 이후 세계를 ‘금융자유주의 체제’로 변모시켰다.
그를 ‘철의 여인’으로 불리게 한 핵심은 일련의 사영화 정책이다. 1979년 11월 영국석유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항공, 전신전화, 화물, 항만, 통신, 호텔, 가스 등 국영기업을 줄줄이 매각했다. 1980년 178만여명에 이르렀던 공기업 노동자는 1992년 47만명으로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4차례나 노동법을 바꿔가며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물리쳤다.
대처 전 총리는 대신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를 택했다. 하층민과 중산층에게 공기업의 주식을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기업 사영화를 명분으로 외국 자본에 경영권을 넘기는 한국 정부와 비교된다.
복지와 노조의 자리를 주식배당과 국민주주로 대체하고, 그들의 수익을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해 극대화하겠다는 게 그가 꿈꾼 보수정치의 원형질인 셈이다. 대처 전 총리는 이를 ‘대중자본주의’라 불렀다. 그가 영국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에 환호한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 영국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은 이러한 ‘대처리즘’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러 얼굴을 포장해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그의 정치는 21세기 들어 파산 선고를 맞았다. ‘대중자본주의’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빈부 격차는 더 극심해졌다. 그의 방식을 본받은 공기업 사영화가 1980년대 이후 미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한국 등 전세계로 번졌다. 이를 통해 부를 얻은 것은 일반 주주가 아닌 금융자본가였고, 극심한 빈부 격차도 영국에서 세계로 확산됐다.
동시다발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는 대처 전 총리가 주도한 광범위한 사영화 및 긴축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다. 21세기 들어 유럽 각국의 보수정당조차 ‘작은 정부’와 ‘카지노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금융 규제 및 빈부격차 해소를 역설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가 남긴 이념은 21세기 들어 세계적 금융위기와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비평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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