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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녀영웅호걸 리화림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6월17일 16시03분    조회: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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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화림

중경에 있을 때의 청년시절 리화림(좌)과 로년의 리화림

리화림, 그녀의 본명은 리춘실, 1905년 1월 6일 조선 평양시 경창리에서 태여났다.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원학교에 다닐무렵, 평양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력사문학연구회에 들어가 사회주의사상을 익혔다. 열네살 때 《3.1》운동에 참가했으며 1927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 3월 압록강을 건너 중국 상해로 갔다. 상해에 도착한 리화림은 리동해라고 이름을 바꾸고 백범 김구가 이끄는 애국단에 자원했다. 리화림은 심한 재정난을 겪고있는 조직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나물장사, 빨래, 수놓기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푼돈을 모아 활동경비로 썼다. 그러면서 밀정 처단, 련락활동 등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김구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1932년 늦가을, 리화림은 의렬단의 추천을 받아 광주 중산(中山)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했다. 리화림은 법학부에서 2학기동안 공부한 뒤 의학부로 옮겨 대학부속병원 견습간호사로 일하면서 의학공부에 매진했다.

리화림은 1936년 1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남경으로 갔다. 남경에서 그녀는 민족혁명당 부녀대 부대장직을 맡아 주로 의료보건사업에 주력했다. 부녀대는 조선녀성의 조직화, 중국녀성들과의 통일전선결성을 목표로 항일선전활동을 폈다.

1939년 3월, 리화림은 조선의용대 본부가 옮겨가있는 계림으로 가서 부녀대 부대장이 되였다. 당시 조선의용대는 300여명의 대원이 3개 지대와 부녀대, 3.1소년단으로 편성되여 있었으며 부녀대의 주된 활동은 선전사업이였다.

조선의용대의 선전활동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던것으로 평가되고있다. 적의 진지 바로 앞까지 접근해서 《염전반전(厌战反战)》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공작을 벌렸고 항일투쟁정서를 높이는 가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같은 선전활동에서 리화림과 같은 녀성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다.

1940년 11월 열린 조선의용대 확대간부회의는 국민당이 소극적으로 항일하는 형세하에 조선의용대는 팔로군의 항일근거지로 가야만 전도가 있다는 견해로 합치되여 화북지방으로 주전장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우선 20여명의 선발대가 락양으로 파견되였는데 리화림은 이 선발대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이때 리화림은 전신무장을 하고 일본군진지 앞에 몸을 숨긴채 메가폰을 들고 일본군에게 선전하거나 삐라같은 선전물을 적 진지 안에 뿌려넣는 등 무장선전전을 수행하며 락양으로 향했다.

1988년 1월6일, 대련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 차려드린 84세 생일상을 받은 리화림동지

1942년 5월에 있은 반소탕전후 조선의용대의 활동중심지는 팔로군 129사단이 주둔중인 태항산으로 옮겨졌다. 리화림은 조선인 간부들을 위한 훈련반에 들어가 중국혁명사, 중국공산당의 항일방침 등을 공부하고 부녀대대장이 되였다. 그무렵 태항산 근거지의 생활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적들의 진절머리나는 소탕속에서 전사들은 군사훈련도 하고 정치문화학습도 하였다. 당시 의용군부녀대 대장 겸 의사로 있은 리화림도 사회과학원 간부양성반에서 반년동안 배우면서 전투생활을 하였다.

곡식이 제대로 나지 않는 산악지대여서 보통 강냉이가루에다 겨를 섞어먹었는데 강냉이가루마저 없으면 겨만 먹어야 했다. 조선의용군은 전투가 없는 날이면 감자밭을 일구고 모택동의 대생산운동에 발맞춰 방직공장, 병원, 리발소, 상점 등을 차려서 직접 운영하는 자립활동을 했다.

태항산기슭에는 돌미나리가 많았다. 리화림은 녀성대원들을 이끌고 돌미나리를 캐여 김치도 담그고 볶아서 반찬을 만들었고 도토리를 주워다가 삶아서 가루를 내여 먹기도 했다. 하루는 나물을 캐면서 노래를 지어 동료대원들에게 가르쳐주고 그날 점심시간에 합창공연을 했다. 민요《도라지》에 맞춰 가사를 새로 지은 《미나리타령》이 그것이다.

리화림은 1943년 봄부터 병원에서 일하다가 그해 조선의용군이 연안으로 이동하자 1944년 4월 연안으로 가 다음해 1월 연안의대에 입학하여 못다한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리화림은 연안에서 렬화충천하는 대생산운동에도 참가하고 군정대학교장 수하에서 자료간사사업도 하였으며 조선의용군 무정총사령의 파견을 받고 중국의과대학에서 공부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격주에 한번씩 현지 주민들에게 당정책과 시사문제를 해결하고 보건위생상식을 가르쳤다. 서툰 중국어이긴 했지만 주민들은 그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있어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뒤 조선의용군은 동북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그러나 리화림은 그대로 남아 의학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1946년 11월 21일 리화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뛰여들었고 전후에는 새중국의 의료보건사업에 정력을 몰부었다.

1952년 와방점후방병원 기술과 과장으로, 심양의사학교 부교장으로, 국가교통부 위생처 기술과장으로 일하였으며 1956년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는 연변위생학교 교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처 부처장, 위생국 부국장을 지냈다.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다가 1978년에 중앙조직부의 도움으로 억울한 루명을 벗고 연변자치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기관당위 상무위원으로 있었고 대련시정부시찰원, 대련시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으로 활약하였다.

리화림동지의 유서와 부분적유물들

1984년에 리직휴양한 리화림은 소박한 가장집물에 1950년대부터 입어오던 옷을 입어가면서 아껴먹고 아껴써서 알뜰히 모은 로임 2만여원을 1985년 한번에 당비로 바쳤으며 1986년에는 아동작품작가들을 장려하도록 1만2천여원을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아동문학상기금회에 기부하였다. 또한 림종전에도 유언을 남겨 자기의 전재산인 5만원을 대련시조선족학교에 기부하였다.

스무살 꽃다운 처녀에서 아흔살 할머니가 되기까지 혁명가로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족적을 남겼던 리화림동지는 1999년 2월 10일 14시 30분에 대련에서 서거하였다. 1904년부터 1999년까지 95년의 생애, 그녀는 파란곡절을 겪으며 한 혁명가로서의 인간수업을 훌륭히 완수했다. 빼앗긴 조국과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원정의 길을 꿋꿋이 걸어오신 리화림동지는 과연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녀걸이며 우리 민족의 산 력사이다.

참고문헌:

《머나먼 려정》 민족출판사, 2012년 5월 출판


길림신문 량은실견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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