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소방대가 불끄러 가는 마음같다고 할가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3일 08시33분    조회:435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룡득

-57년간 민간문예 수집정리의 외길인생 걸어온 리룡득선생

1961년 8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였던 주덕해는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민간문예자료를 수집할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문화를 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한데서 이보다 더 절박한 표현이 또 있을가?!

개혁개방이후 홍수처럼 밀려드는 외래문화의 충격과 인구대이동의 변혁속에서 조선족전통문화는 뿌리마저 세차게 흔들리고있다. 이런 준엄한 시련속에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계승발전시키는것은 50여년전 주덕해주장의 말씀처럼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해나가야 할 급박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민족문화의 보호와 계승, 발전의 중요한 내용인 민간문예 수집과 정리 사업에 일생의 빛과 열을 고스란히 바쳐온 사람이 있다. 바로 조선족민담수집가이며 저명한 문화명인인 리룡득선생이다. 날이 갈수록 민간문예를 비롯한 허다한 민족문화들이 외면받고있는 현실이지만 리룡득선생은 57년동안이나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에 자신의 일체를 묵묵히 바쳐왔다.

지난 6월말,안도현에서 있었던 통련사업회의차 리룡득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73세 고령의 로인답지 않게 아직도 틈나는대로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을 견지하면서 신문, 방송, 잡지들에 작품들을 투고하고있었는데 이날 통련사업회의에서도 민담 한편을 내놓았다.

선생이 걸걸한 목청으로 읽어주는 민담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57년동안이나 민간문예수집정리의 외길인생을 걸어온 리룡득선생의 끝없는 집착의 이야기들을 더듬어 보았다.

리룡득선생은 1954년 14살때 안도현초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이상 공부를 못하고 고향인 량병향 보광촌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후 리룡득선생은 적적해하는 로인들을 위해 자원적으로 로인독보조를 꾸리고 저녁마다 로인들에게 독보를 해드렸다.

독보조에서 로인들이 옛말과 옛노래들도 들려주었는데 이러한 민간문예를 수집정리해서 신문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한것이 바로 리룡득선생이 민간문예와 한평생을 함께하게 된 계기로 되였다.

로인들속에 들어가 민간문예를 수집하고있는 리룡득(가운데).

1957년 7월, 리룡득선생은 가장 나어린 회원으로 연변 제1차 민간문예사업일군대표대회에 참가하였고 정길운 등 민간문예 선배님들과의 교류로 많은것을 배웠고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에 힘다해 뛰여다녔다.

1961년9월,연변민간문예연구회에서는 종합적인 민간문예조사팀을 편성하고 연변 각지와 흑룡강성, 료녕성 등지를 돌면서 민간문예자료들을 수집하였는데 리룡득선생도 민담조사팀에 참가하여 허다한 민간문예작품들을 발굴, 정리, 발표함으로써 중국조선족 민간문예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정길운(오른쪽), 박찬구(왼쪽) 등 연변 민간문예 선배님들과 함께

그런데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으로 리룡득선생 역시 잡귀신으로 몰리면서 민간문예 수집정리 권리마저 박탈당하게 되였다. 《문화대혁명》때문에 집안에 있던 허다한 책들은 부득불 파지로 모두 팔아버렸지만 장기간 애써 수집해온 민간문예자료들은 창고안에 움을 파고 잘 간수해두었다. 리룡득선생은 어느때든지 민간문예도 해볓을 볼 날이 꼭 올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리룡득선생은 문화대혁명초기에 글쓸 권리를 박탈당했으나 민간문예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유산이라는 신념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민간문예수집사업을 비밀리에 그냥 견지해나갔고 문화혁명기간에도 수백편에 달하는 민담들을 수집했다.

문화대혁명이 결속된 후 리룡득선생은 감춰두었던 민간문예자료들과 비밀리에 수집했던 민담들을 정리하여 륙속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연변의 간행물들은 물론 성급,국가급 각종 간행물들에도 한어로 번역되여 륙속 발표되였다.

꾸준한 노력과 재능으로 리룡득선생은 농민으로부터 일약 현문련의 전직창작일군으로 발탁되였는데 《범에게 나래가 돋힌 격》으로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수 있게 되였다.

지난 3월에 안도현로년사업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안도현조선족작가협회에서 협찬한 리룡득선생의 작품전시회에서는 선생이 50여년간 국내외의 신문잡지와 방송에 발표한 3200여편의 작품과 전국의 조선족이 살고있는 고장들을 찾아 수집정리한 민간이야기 200여편, 민요 800여수,《웃음보따리》 등 작품집 50여권, 번역작품집 50여권이 전시되였고 각급 정부와 단체로부터 수상한 허다한 영예증서와 상장들도 전시되였다.

리룡득선생이 수집정리해서 펴낸 민간문예 출판물들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에서 걸출한 성적을 올린 리룡득선생은 《세계명인록》, 《세계우수인재대전》, 《세계예술가명인록》, 《중국현대민간문예가사전》 등 35권에 달하는 국가급 명인록도서에 등재되였다. 리룡득선생은 2011년 2월, 중화인민공화국문학연구원으로부터 《중국우수공산당원문학예술공헌성과상》을 수여받는 등 다년간의 신근한 노력과 분투로 휘황찬란한 영예들을 따냈으며 조선족 민간문예 수집정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명인으로 존대받고있다.

《장백산산수 지명전설집》(전4권) 머리말에서 류연산교수는 《리룡득선생은 력사의 기록자로서 손색이 없다. 리룡득선생은 평생을 바쳐 장백산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수집정리하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민간문예는 조선족전통문화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생산과 생활속에서 부단히 창조하고 다듬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준 우리의 무형문화재이지요. 민간문예는 우리 조상들이 세세손손 쌓아올린 문명의 결실이며 현실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우리 민족의 령혼입니다. 이러한것을 스쳐지나버린다면 얼마나 아깝고 무책임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을 지금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있는 원인입니다.》

리룡득선생은 지금도 《소방대가 불끄러가는》속도와 마음처럼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에서 절박한 사명감과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 집행회장 료녕성 신성그룹 표성룡회장 수억원의 자산에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료녕성 신성그룹 표성룡회장(57세), 허스키한 목소리에 무뚝뚝한 평안도억양으로 얼굴에 편안한 웃움을 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꿈꾸는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름름한 배려가 한데 엉켜있어 언제나 손에 잡힐듯한...
  • 2013-04-09
  • 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 백인》(6) 하북성 소재지인 석가장의 화북렬사릉원에는 화북지구에서 희생된 10명의 저명한 영웅조각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모셔진것이 바로 기동인민의 애대를 받으면서 혁명의 코기러기로 불리운 주문빈의 동상이다. 《주문빈, 원명은 김성호, 조선평안북도 의주군 ...
  • 2013-04-08
  •  북경의 조선족 행사장에 가면 항상 말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그를 볼 수 있다. 혹간 그가 보이지 않으면 빈자리가 금방 느껴진다. 행사장에서 그를 찾는 사람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웬 일이요? 오늘은 왜 안 보이지?”   “…”   솔직히 그는 뭔가 꼭...
  • 2013-04-08
  • 청도정양학교 근 1억원 투입, 신축 새 교사 입주 눈앞에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국립학교마저 학생모집때문에 존페위기에 처해 허덕이고있는 와중에, 한 녀인이 민족교육의 불모지인 청도에 현대화 사립학교를 세운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부지면적 93무, 건축면...
  • 2013-04-08
  • 요즘 음악계에 화두를 던지는 한 유명가수가 있다. 그녀가 바로 천진음악학원에서 성악교원으로 활약하고있는 방춘월(40살씨). 그녀의 음악의 외길은 남다르다. 뒤늦게 성악을 배우기 시작해 억척스레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그녀의 집념과 의욕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한것이다. 2007년 10월 12일, 연변대학 예술학원 ...
  • 2013-04-07
  • 옥수수교잡종연구에서 공백을 메운 장기건교수 연변농학원 졸업생중 첫 류학생, 길림성 농학전업의 첫 외국박사, 연변농학원에서 교수직함을 취득한 첫사람, 농학원졸업생가운데서 농학원 원장을 담임한 첫사람··· 80고개를 바라는 훤칠한 키골의 장기건교수, 안경너머로 비쳐오는 침착하고 사색적인...
  • 2013-04-07
  • 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 백인》(5)   성재 리동휘선생 리동휘선생은 조선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태여났고 호는 성재(誠齋)이다. 선생의 아버지 리승교(李承橋)는 연해주 대한인로인단의 대표로 3•1 만세시위에 참여하는 등 항일민족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다. 선생이 부친의 애국정신을 이어받...
  • 2013-04-07
  • 이 청명날, 고 박금룡기자를 그리며   박금룡 간력   1963년 11월 화룡현 팔가자진 하남촌 출생 1984년 화룡현 서성중학교 졸업,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1988년 연변대학 졸업, 화룡시직업고중에서 공청단서기 력임 및 입당 1996년 연변공상보사 입사, 편집,기자. 1998년 연변일보사 입사, 경제부 기자 주임, 및...
  • 2013-04-04
  • 길림천우그룹 전규상 회장 사람의 내외면을 한꺼번에 표현할수 있는 단어가 있다.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스치는 사람들속에서조차 공기처럼 쉽게 발견되는 , 그래서 어찌보면 더욱 느끼기 힘든 "사람의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길림천우그룹 전규상회장(57세)한테서 풍겨오는 사람의 향기는 바로 "사람냄새"이다 바로 이런...
  • 2013-04-03
  • 한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대림동, 지하철 7호선 11번 출구 직진 50M 거리(명지성모병원 옆 건물)에 전가복음식점이 위치해 있다. 자산가치가 7억 원이 되는 규모가 큰 전가복식당의 주인은 조선족 출신 오홍매 사장이다. 1980년 연길에서 태어난 오홍매 사장은 2000년 20살 꽃다운 나이에 코리안 드림의 꿈을...
  • 2013-04-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