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스승》,《학자》그리고《교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4일 08시45분    조회:628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병민

김병민교수.

지난 5월 14일, 신록을 재촉하는 잔잔한 이슬비가 아침부터 보슬거리고 있었다. 연변대학 낡은 캠퍼스에서 신축캠퍼스로 이어지는 길가에 함초롬히 젖은 연분홍 복사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다가갔더니 발치에 노란 개나리가 웃고 있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어른과 아이, 스승과 학생… 막 뇌리로 스쳐가는 이미지를 터치하다 말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교수님, 저 도착했습니다. 지금 올라가도 될가요?》

《아차, 벌써 약속시간이 됐구만. 허허, 어서 올라오시오.》

텁텁하고 웅글진 남성의 목소리가 훈훈하게 들려왔다.

연변대학 전임 교장이며 박사생지도교수인 김병민교수의 음성이였다.

10년만에 연구실로 돌아온 교장선생님

《늘 즐겁기만 합니다. 좀 편안해졌으니. 하하…》

연구실에서 이제 막 론문지도를 끝내고 반갑게 맞아주는 김병민교수의 얼굴에는 이름 모를 흥분이 어려있었다.

2005년 장덕강서기의 초청을 받고.

신채호문학연구, 북학파문학연구 등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들로 국내외 공인을 받고 있는 김병민교수, 한국이외의 아시아인 최초로 《용재학술상》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제17회 KBS 《해외동포상》 인문사회부문 학술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국내외 학술상을 수상한 김병민교수지만 그동안 스스로 《반쪽학자》라고 《폄하》했다.

연변대학의 행정사업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지난 시기 학술저서를 정리하고 즐겁게 독서하고 론문집필과 더불어 평론과 수필도 쓰면서 완전한 학자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대학교 교장사업을 비롯한 여러 행정사업을 맡고 보니 도무지 뜻대로 할수가 없었다. 그때 스스로 자신한테 내린 정의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퇴임이후 《완전학자》에로의 《올인》이 그처럼 즐거울수가 없단다.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지역에 세운 최초의 종합대학인 연변대학(1949년 설립), 설립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10만여명에 달하는 국가 고급전문인력을 배출한 연변대학은《211》프로젝트 중점건설대학, 서부지역개발 중점대학일 뿐만 아니라 길림성과 국가교육부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중점건설대학이기도 하다. 이렇듯 자랑 많고 앞길 찬란한 민족대학의 교장으로 최근 10년간 묵묵히 봉직해온 김병민교수, 연변대학에 몸을 맡긴 세월만 어언 35년이 흘러갔다.

젊은시절의 김병민.

편지 한통으로 맺어진 연변대학과의 인연

김병민교수의 고향은 흑룡강성 녕안현(지금의 녕안시). 농촌에 있을 때부터 자그마한 꿈이 있었다. 바로 기자가 되는것이였다. 신문통신도 발표하고 신문강습도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그 꿈을 위해 군부대에서 문서로 있다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그는 연변대학에 한통의 편지를 띄웠다. 1975년 이른봄이였다.

《편지를 보내서 얼마 안돼 연변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지방정부의 추천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입학통지서가 아닌 그냥 한통의 답장이였지만 그에게는 그 답장이 마치 《상방보검(尙方寶劍)》이나 같았다. 그 답장을 보낸 분이 당시 연변대학 교무처 처장으로 계시던 박문일 전임총장이라는 사실은 20여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됐고 그래서 더 감회가 깊었다.

학생들과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김병민교수.

그때 지방에서는 김병민교수를 대련경공업학원에 추천했는데 평소 글쓰기 열성자였고 신문통신도 쓴 경력자이며 신문사편집기자 강습도 받은 경력때문이였는지 결국 그는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에 입학했다.

1978년 학교를 졸업한 김병민교수의 앞에는 학교 공청단위원회 부서기로 가느냐 아니면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비서처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 나졌다.

결국 정계입문보다 학계를 선택했다. 졸업이후 반년뒤 중산대학에 가 중국문학을 연수하고 중국현대문학석사연구생과목을 청강했다.

그러던 중 국가 교육부의 해외류학정책 특혜를 받게 됐다. 당시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300명을 선발해 국비로 외국류학을 보내게 됐는데 그중에 김병민교수가 포함된것이다.

1982년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에 연구생으로 간 김병민교수는 1985년에 문학준박사학위를 따낸뒤 다시 연변대학에서 박사공부에 들어갔다. 1990년 6월, 연변대학이 자체로 배양한 제1호 박사가 탄생했다. 바로 김병민교수였다.

《스승》, 《학자》 그리고 《교장》이란 이름으로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학부장, 교무처 처장, 사범학원 원장 겸 총장조리, 부총장, 총장 이는 지난해까지 적어온 김병민교수의 임직경력이다.

연변대학협동창신연구쎈터 부주임으로 사업하고 있는 최일부교수는 최근 《스승, 학자 그리고 교장》이란 글에서 《제자들의 눈에 비친 김병민교수는 근엄한 모습뒤에 자상함을 감춘 스승》이였고 《학자로서의 김병민교수는 학문에 대한 무한한 정열과 끈질긴 추구를 오롯이 보여온 학도》였으며 《교장으로서의 김병민교수는 (진리, 선행, 융합)을 새로운 교훈으로 제정하여 진리의 창조와 전파, 사랑과 봉사, 포용과 공존을 연변대학의 핵심적문화정신으로 육성시키기에 노력한 분》이라고 적고있다.

《스승》, 《학자》, 《교장》, 이는 김병민교수를 료해하는데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키워드이기도 하다.

2008 북경올림픽 연길성화봉송에서 8번째 주자로 뛰는 김병민교수.

이 가운데서 특히 《스승》이란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김병민교수는 학문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분이다.

연구생들한테 강의를 하면서 외부의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출입문밖에 《수업중,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써붙인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제자사랑도 각별하다. 외국출장을 하게 되면 거의 매번 류학하고있는 제자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강의료로 받은 돈을 제자들의 손에 쥐여주는가 하면 타지에 있는 제자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면 출장길에 손수 보건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또한 《길림성특별초빙교수》에 당선되여 받은 특별수당금에서 10만원을 연변대학의 학생장학금으로 쾌척, 학생들에 대한 큰 사랑을 실천했다.

학자로서의 김병민교수는 그동안 행정일에 발이 묶여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고 스스로를 《반쪽학자》라고 하지만 사실 현재까지 내놓은 20여권의 저서, 100여편의 론문과 평론중 다수가 행정직무를 맡아보면서 써낸것이다. 남보다 훨씬 더 많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이룩한것이였다.

교장으로서의 김병민교수는 연변대학의 내실을 튼튼하게 다져가는 동시에 하드웨어건설에 박차를 가해 총 투자액 12억원, 건축면적 37.5만평방메터에 달하는 아름답고 쾌적한 신캠퍼스를 완성해 연변대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교장으로 재임한 시기 연변대학에서 획득한 과학연구경비는 전시기에 비해 5배 증가했고 SCI, CSSCI 등 국제, 국내 학술정보검색시스템에 수록된 론문의 량이 10배 증가했으며 6개의 1급학과 박사학위수여점과 50여개의 2급학과 박사학위수여점을 새롭게 쟁취했다.

연변대학의 대학종합평가순위도 길림성 6위에서 3위로 뛰여올라 길림대학, 동북사범대학에 버금가게 되였다.

2012년 제17회 한국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하고.

인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즐거워…

지난해 6월 교장직에서 퇴임하여 연구실에 돌아온 김병민교수, 인젠 《성쌓고 남은 돌》되였으니 조용하게 그간 못 읽은 책이나 읽고 취미가 가는대로 연구와 저술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은 또 무산되고 말았다.

연변대학 새로운 지도부의 청구를 못이겨 국가교육부의 대형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연변대학 동아시아통문화연구협동창신쎈터》의 주임이란 중책을 맡게 된것이다.

《허허, 믿고서 맡기는데야 방법이 없지요.》

연변대학 총장으로 10년,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동안 행정사업을 안하려고 사표까지 낸적도 있었지만 지나온 10년을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보람찬 시간들이였기에 원망이나 후회보담은 뿌듯함이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싱글벙글 웃으셨다. 《새로 맡은 일 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할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기쁘시냐?》며 악의없이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늘 즐겁답니다.》

그게 김병민교수의 삶의 신조였다.


길림신문 김룡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39
  • 재한조선족의 엘리트 시대 열어가는 사람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안유화 박사와의 인터뷰   일찍지난 세기20~30년대 우리의 조상들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만주땅에 가서 거친 땅에 보습을 박고 땀흘리며 일해서는 후대들을 어엿한 대학생이거나 많은 분야의 인재로 키웠다. 그 뒤 수십년이 지나 우리의 선인들...
  • 2015-03-13
  • --북경 “정음 우리말학교” 정신철교장의 우리 말 사랑   북경 “정음 우리말학교” 정신철교장 도시화 물결과 더불어 원래 동북 3성이 주요 생활거주지였던 우리 민족의 생활판도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개혁개방 및 산업화 발전과 더불어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우리 민족 많...
  • 2015-03-12
  • 한국충북대 물리학과 최설매 씨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1300여명중 1등 40세 만학도… 전학기 만점 기록 “조선족학교 살리겠다”일념 도전 하루 15시간 연구실 붙박이 생활   낯선 한국 땅에서 ‘조선족 학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꿈을 일궈가고 있는 연변 동포가 있다. “고향...
  • 2015-02-04
  • [백년백인 97]개척자의 발자취 —대련민족학원 제1임 원장 김도 전임 원장 김도, 56개 민족을 대표하는 의미로 56개 기둥을 세워놓은 대련민족학원 대문앞에서 백산수력발전소 건설, 제1자동차 공장확건, 기구개혁, 대학건설…김도는 어데 가서나 개척자로 《불모지》를 《삼림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락원...
  • 2015-01-29
  •              국내외 무대를 주름잡으며 자기의 실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조선족 여교수가 있다. 주인공은 중국농업대학 생물학원 생물화학 및 분자생물학학부 이찬동 교수(56세, 사진)다.   이 교수는 헤이룽장성 극산현 고성진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났다. 198...
  • 2014-11-11
  •     차별화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베개머리문양을 수집, 연구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미술학원 강종호교수입니다.    1998년 한국 성균관대학 유화석사과정을 마친 강종호는 고민했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그는 크기는 작지만 각종 의미가 담겨져있고 전통과 특색이 뚜렷한 베개머...
  • 2014-10-30
  • 《조선언어문자의 날》과 관련, 연변주 조선어문사업위원회 김천근주임 인터뷰  기자의 인터뷰를 받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어문사업위원회 김천근부주임 9월 2일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올해 처음으로 《조선언어문자의 날》이란 뜻깊은 명절을 맞는다. 《조선언어문자의 날》은 우리 민족의 언어문자를 보호하고...
  • 2014-09-01
  •          (흑룡강신문=하얼빈) 하얼빈공업대학 수학학부 진명호 교수(50세,조선족)가 중국측대표로 한국 서울에서 열린 '수학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ICM.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에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세계수학자대회는 기초과학...
  • 2014-08-25
  •   다가오는 9월 2일 “조선언어문자의 날”을 앞두고 기자는 연변대학언어연구소 소장, 연변언어연구소 소장, 연변조선어학회 회장을 담당하고있는 김광수교수(49세)를 취재했다. 김광수교수는 “조선어문의 날”의 제정의 의미를 밝히는것으로 인터뷰의 서두를 뗐다. “조선언어문자는 조선...
  • 2014-08-21
  • 연길신세기호텔 12층 19호실을 《우리 글방》으로 차리고 조선족청소년학생들의 독서공간으로 활용하고있는 안병렬교수.  《독서로 아름다운 마음을 키우고 독서로 풍부한 정서를 키웁니다. 정서가 메마른 사람은 행복을 느낄수 없습니다. 우리 후세대들이 행복을 느낄줄 아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기 ...
  • 2014-05-30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10 11 1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