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불의에 도전한 문학거장 김학철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8일 13시39분    조회:98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학철

항일투사 조선족문학의 대부 불굴의 공산당원

태항산에 세워진 김학철항일문학비(2005년 8월, 뒤에 보이는 비석은 2012년 6월에 호가장보위전항일렬사기념비임)

김학철(1916-2001)은 조선민족의 해방사업과 중국혁명을 위해 영용하게 싸운 항일투사이고 중국조선족문학의 대산맥을 이룬 대표적인 작가이며 불의에 과감히 도전한 불굴의 공산당원이다. 김학철의 일생은 중국, 한국, 조선, 일본과 직결되는 파란만장한 전기적인 드라마이며 가장 치렬한 삶과 강한 의지로 일관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려정이다.

김학철(1916-2001)은 1916년 11월 4일 조선 함경남도 원산에서 누룩제조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다. 7세에 부친을 여의고 원산 제2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다녔다.

1935년 고향과 집을 떠나 림시정부를 찾아 단신으로 중국 상해로 들어온 김학철은 그 이듬해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고 반일테러활동에 참가하였다.

1937년 조선민족혁명당의 지시에 따라 호북 강릉에 있는 중앙륙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학습하고 무한에서 조선의용대에 참가하여 분대장의 직무를 맡고 반일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1940년 8월 29일,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김학철은 1941년 5월에 당의 지시로 태항산에 전이, 팔로군에 참가하였다. 그는 전투에도 참가하는 한편 부대의 수요에 따라 작은 신문도 편집하고 극본도 쓰고 가사도 쓰면서 문화선전활동을 힘있게 추동하였다.

1941년 12월 10일, 하북성 호가장전투에서 대퇴골관통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포로된 그는 예심에서 치안유지법위반죄란 판결을 받고 일본에 압송되여 나가사끼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 미결가산 200일 언도를 받았다. 총상을 입은 다리에서 벌레가 기여나왔지만 일제가 요구하는 전향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탓에 그는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1945년 2월 감옥에서 다리를 절단했다.

 

1994년 상해 이인리의 30년대 반일아지트를 찾은 김학철선생과 부인 김혜원녀사.

 

1945년 10월 9일에 석방된 불굴의 투사 김학철은 불구의 몸으로 서울에 돌아와 조선독립동맹 서울시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문학창작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 시기 《지네》, 《담배국》, 《밤에 잡은 포로》등 10여편의 단편소설이 발표되면서 등단 소설가로 활약하였다. 《조선의용군》이라는 단편집을 묶어 《한성도서》에서 출판예고까지 했지만 월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1946년 12월, 조직에서 파견한 간호사 김혜원(1947년 김학철과 결혼)녀사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평양에 도착한 김학철은 처음에 《로동신문》기자로 있다가 《인민군신문》주필, 외금강휴양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단편소설 《정치범919》, 《선거만세》, 《콤뮨의 아들》과 중편소설 《범람》 등을 창작하여 신문잡지에 발표하였다.

6.25전쟁이 폭발한후 중국으로 들어와 1951년 1월부터 북경 중앙문학연구소 연구원, 중화전국문련 전직작가로 활약하면서 중문으로 소설을 창작, 《엄혹한 나날에》, 《전우》, 《고향》, 《솔바람》, 《군공메달》 등 단편소설과 단편소설집 《군공메달》(1952년), 《범람》(1952)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이처럼 총잡았던 손에 붓을 잡은 김학철은 왕성한 정력과 불굴의 의지로 조선과 중국문단에서 두각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1952년 10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창립되자 주덕해, 최채의 초청을 받고 연길로 온 김학철은 연변문학예술준비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되나 반년후 사직하고 전직작가로 활약한다. 1952년부터 1957년 《반우파투쟁》전까지 4년 동안에 그는 단편소설집 《새집드는 날》(1953), 《고민》(1956), 중편소설 《번영》(1957), 장편소설 《장백산아, 이야기하라》(3부작, 1954) 등과 잡문 다수를 발표하면서 창작고봉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정치풍운은 투사의 운명을 관용하지 않았다. 1957년 《반우파투쟁》에서 그는 《반동작가》라는 터무니없는 루명을 쓰고 그의 작품들도 독초로 지목되여 창작권리를 박탈당하고 강제로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까지 조선국적인 그는 《우파분자》로 되어 공직과 로임을 취소당하고 로동개조를 하면서 생활보조비 50원을 탔다. 그후 작가협회 자료실에서 자료원으로 있었으나 여전히 《반동분자》로 몰리웠다.

투사는 악렬한 정치적환경속에서 굽어들지 않았다. 그는 악렬한 정치적환경속에서도 굽어들지 않았고 아첨하지 않았으며 허위적인 삶을 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정의적인 위업과 올바른 삶을 위해 자기의 정치적주장에 보다 예리하게 날을 세웠고 문학을 통해 좌경적사조와 개인숭배가 빚어낸 비극적실태와 황당성을 고발, 질타하는데로 나아간다.

《반우파투쟁》으로부터 《문화대혁명》전야에 이르기까지 극좌로선이 살판치던 중국사회를 배경으로 개인숭배와 우상화 그리고 민주주의원칙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을 고발, 비판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 《20세기의 신화》는 1964~1965년기간에 창작되였다. 이 시기 그는 사회상의 감시와 정치적탄압을 받았기에 작품창작은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폭발한후 비밀리에 창작한 《20세기의 신화》 원고가 반란파들에 의해 발견되여 관계부문에 전해졌다. 김학철은 연변중급인민법원으로부터 《피고 김학철은 사상이 극단적으로 반동적이다. 반동소설을 써서 우리 나라 위대한 수령 모주석을 모욕하고 중국공산당을 악독하게 공격하였으며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공격한 그 정절이 엄중하므로 현행반혁명죄가 구성된다.》는 죄목으로 유기도형 10년에 언도되였다.

1977년 12월 만기석방된후에도 그는 3년간 계속 반혁명전과자 취급을 당했고 1980년 12월에 연변주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3년 국적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고 중국국적을 갖게 되고 동시에 정식으로 공직에서 리직하였다.

50대의 창작 황금기를 감옥에서 덧없이 흘려보낸 투사는 65세에 창작청춘기를 맞는다. 항일회상기 《항전별곡》(1983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김학철단편소설집》(1985년, 연변인민출판사), 장편소설 《격정시대》(1986년 3월, 상, 하. 료녕민족출판사, 서울 1988년), 《김학철작품집》(1987년 6월, 연변인민출판사), 산문집 《무명소졸》 (1988년, 서울)을 련이어 출판하고 중국조선족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1989년 12월 중국공산당 당적을 회복했다.

그는 1994년 한국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하고 이어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한국 문학과 지성사), 산문집 《나의 길》(1996년 3월 민족출판사)을 출판하고 1996년 12월에는 31년전에 썼던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를 한국 창작과 비평사를 통해 출판한다. 이 시기 젊어서부터 중국의 대문호 로신을 사숙한 작가는 현실참여의 주된 방식으로 잡문을 선택, 대량의 잡문과 수필을 창작한다. 개인독재와 벼슬본위주의에 대한 비판, 노예근성 비판, 민주주의, 인권평등의 주제, 문단비판, 문단론쟁을 담은 잡문들이 대부분이였다.

일제시기 반일투사 윤봉길의 애국행위에 감동되여 19세의 젊은 나이에 상해로 달려온 김학철선생은 광활한 중국대지에서 총칼을 들고 일제와 싸운 항일투사였으며 일본감옥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혹행을 이겨낸 초인간적인 투사였으며 광복후에도 정치, 사회의 부조리와 떳떳이 맞서 싸우며 그 어떤 역경에서도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은 정의의 투사였으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문학인의 절개를 지킨 위대한 작가이다.

2001년 산문집 《우렁이속 같은 세상》(창작과 비평사)을 마지막 작품집으로 출판하고 김학철선생은 2001년 9월 25일 오후 3시 39분에 타계하였는데 향년 85세였다.

투사이며 작가인 김학철은 타계하기 직전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김학철의 문학은 그의 타계와 함께 우리를 떠난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각광을 받고있다. 중국소수민족문학관에 조설근, 로사 등 10명의 저명한 소수민족작가들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그중에는 김학철선생의 동상도 들어 있다. 도문시 장안진 룡가미원과 하북성 호가장에도 문학비가 각각 설립되였다.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김학철전집(1~8권)

김학철 타계 10주기 추모행사가 훈춘 두만강가에서 있었다.

김학철선생이 타계한후 《로신과 김학철》, 《김학철문학연구》 등 12종의 연구도서와 김학철주제드라마가 출판되였거나 제작되였고 해마다 9월이면 후배문인들이 훈춘의 두만강가에서 투사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추모활동을 진행하고있다.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는 《김학철전집》은 총 12권으로 되였는데 이미 8집까지 출판되였다.

참고문헌:

김학철전집 제7권 <항전별곡>(연변인민출판사)

<불세출의 공산당원 김학철> 김해양

<중국조선족문학통사> 김학철론 (김호웅, 조성일, 김관웅)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40헥타르 경작지 임대 맡고 가정농장 꾸려 촌민들에게 혜택주는 신형농민 최광수 올해 벼농사작황을 살펴보는 왕청현 광동재배업가정농장 농장주 최광수 왕청현 대흥구진 동대촌의 최광수는 140헥타르나 되는 대규모농사를 짓고 있는 가정농장주이다. 2019년 3월 8일, 13기전국인대 2차회의 하남대표단의 심의에 참가...
  • 2019-09-26
  •   올해 추분은 23일에 들었다. 지난해부터 해마다 추분을 “중국농민풍년절”로 지정했으니 올해는 두번째 중국농민풍년절인 셈이다. 국가차원에서 지정한 농민들의 명절인 만큼, 또 한해가 가면서 명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 깊어진 만큼 올해 축제 분위기는 한결 더 농후해진듯 하다. 이날 &ldq...
  • 2019-09-26
  • 녀자 전통무술 기타류 종목에 참가한 김홍란선수(인민넷 기자 임영화 촬영). 정주 9월 10일발 인민넷소식(기자 임영화): 9월 9일, 제11회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 민족무술종목이 정주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진행되였다. 녀자 전통무술 기타류 경기에 길림성대표팀의 조선족선수 김홍란과 김현건이 참가했는데 그중 김홍란...
  • 2019-09-11
  •       세계 음악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조선족 작곡가 안승필   (흑룡강신문=하얼빈) 채복숙 기자= 지난해 11월 13일 저녁, 청중들로 자리가 꽉 채워진 북경콘서트홀 중국국가교향악단 연주회에서 한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의 선률이 울려퍼졌다.     안승필 작곡가....
  • 2019-09-10
  • 홍상준 민간예술인 칭다오서 사물놀이 보급 앞장서   열심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홍상준 민간 예술인     (흑룡강신문=칭다오)김명숙 기자=칭다오56북춤회(56鼓舞会) 지도교수인 홍상준 민간 예술인은 요즘 삶의 보람과 가치를 갈수록 더 느낀다고 한다.   홍상준(69세, 흑룡강성 녕안시) 선생은 17세에...
  • 2019-09-06
  •      정률성,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나라 군가를 작곡한 작곡가이며 음악으로 무수한 중화 아들딸들을 고무시켜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이다. 최근 정률성의 딸 정소제 녀사의 북경 저택에서 80여년동안 전해내려온 불후의 명곡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연안송...
  • 2019-09-04
  • 조국의 하늘을 날아예던 조선족쌍둥이 형제의 어제와 오늘        쌍둥이 비행사 최광인씨   전설1: 서성중학교 상공에 나타난 전투기   1984년 4월9일 오전 9시쯤의 일이였다. 건교일(4월 10일)을 하루 앞둔 화룡현 서성중학교 상공에 문뜩 공군전투기 한대가 나타났다. 전투기는 서성중학교 상공에 이르러 ...
  • 2019-09-02
  •     광동예지아전자과학기술유한그룹 남기학 회장   대학교수라는 사회 촉망을 받는 유망한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굴지그룹 회장으로 인생역전의 성공 시나리오를 쓴 주인공인 예지아(烨嘉)전자과학기술그룹 남기학(58세) 회장. 창업 18년째에 9개 계렬사를 이끌며 래년 매출 1억 달러를 눈앞에 두고 상장꿈을...
  • 2019-09-02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 그에게 있어 시는 몹시 춥고 시릴 때 쪼일 수 있는 뜨락의 볕이고 무더운 삼복철에 서느러운 나무잎 하나를 감싸는 그늘이며 아프고 힘들 때 작은 희망이 되여주는 빛이다. 30여년의 시작을 진행하는 동안 작은 시 한수로써 모든 것들에 사랑의 어진 시선을 보낸 그 역시 자신의 시 한수...
  • 2019-08-30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 가진건 청춘의 열정과 두둑한 배짱뿐이였다. 일찍 18살부터 조리기술을 배워 음식업계에 첫발을 들여놓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시골사나이는 남다른 분투와 끈기로 25년간 맛과의 전쟁을 펼쳤다. 그가 설립한 심양신창음식유한회사는 현재 산하에 8개의 브랜드를, 전국적...
  • 2019-08-28
‹처음  이전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