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칼날같은 붓끝으로 부조리 신랄 풍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12일 09시56분    조회:1034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봉관
点击浏览下一页

만화가 김봉관선생(76세)의 저택 작업실 한쪽벽에는 최근에 창작한 만화(漫畵) 40여폭이 가쯘하게 걸려있었다. 풍자만화, 시사만화가 주를 이루고있었는데 만화마다 착상이 교묘하고 예리한 붓끝이 정곡을 찔러 “옳지, 그렇지”라고 저절로 수긍이 가고 무릎을 치게 된다.

“하루의 일과를 만화로 시작하여 만화로 끝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최근에 창작한 만화들을 훑어보면서 반복적으로 추고하고 저녁에는 자리에 누웠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메모해둡니다. 어떤 작품들은 1년 동안 숙고한 끝에 완성된것들입니다.”

김봉관선생이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만화에 입문하여 만화창작이라는 외길을 걸은지도 어언 36년 철에 접어든다.

화룡태생인 김봉관선생은 맏형(김봉호,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의 작곡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미술, 문학, 음악 등 다방면에 취미가 있었다. 특히 만화에 심취해 《인민일보》 등 신문잡지에 실린 만화들을 스크랩해두었는데 지금까지 소장한 만화만도 몇천폭에 달한다. 그리고 선생은 고금중외의 풍자소설, 우스운 이야기를 즐겨 읽었는데 문학면의 소양은 그가 후날 만화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였고 지금도 그런 독서습관을 초지일관 이어가고있다.

1959년 고중을 졸업한후 화룡림업국당위 기요통신원으로 취직한 김봉관선생은 영화포스터, 벽보란 등을 제작하면서 미술실력을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点击浏览下一页

1980년, 선생은 불혹의 나이에 《로동자일보》에 처녀작품 “공적소유를 사적소유로”(以公爲私)를 발표했다. 글자를 변형하고 생략하는 수법으로 권력으로 사욕을 채우는 일부 관리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김봉관선생의 출세작은 만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후로 그의 만화창작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만화는 유모아, 사상, 회화가 일체화한 예술로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 창의성, 문장력 등이 요구됩니다. 미술적내공은 토대이고 사상은 령혼입니다.”

지금까지 김봉관선생은 2000여폭에 달하는 만화작품을 《풍자와 유머》, 《로동자일보》, 《길림일보》 등 신문잡지에 발표하고 “부부간의 거리”(1996년)로 《풍자와 유머》잡지사의 우수상을, “판촉”(2004년), “미래의 목재시장”(2005년)으로 련속 2년간 중국가흥국제만화콩클에서 은상을, “미래의 룡주시합”(2008년)으로 18기 상해신문상 1등상과 19기 중국신문상 은상을, “격차”로 전국만화콩클 2등상을 수상하는 등 20여개의 각급 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딸리아, 벨지끄, 한국, 일본 등 10여개 나라에서 개최된 국제만화전람에 만화작품 20여폭을 출품하였다.

点击浏览下一页

중국만화계의 전문가들은 “섭렵하는 주제가 다양하며 시국을 비평하는 풍자만화, 인간생활의 표리를 적라라하게 까밝히는 세태만화에서 특히 강세를 보인다. 사유가 민첩하고 예술상상력이 풍부하며 비유, 암시, 역설, 과장, 풍자 등 다양한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개괄성이 강하고 화면이 간결하여 대뜸 관중들의 쾌재를 얻는다”고 선생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현실생활에서 사악한 사상과 추악한 행위는 때로는 미적인 형태속에 감춰져 사람들의 시선을 흐립니다. 바로 이런 추악한것을 예술적화폭에 담아 면사포에 가려진 허울을 남김없이 벗겨내는것이 만화가의 소명이 아니겠습니까?”

하루도 게으름없이 사유의 메스를 예리하게 갈며 로익장을 과시하는 만화가 김봉관선생이 여생에도 많은 만화정품을 창작하기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 김인덕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60)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인생스토리    “방송은 내 친구이자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마이크와 씨름을 해온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페부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다. 1983년 연변체육중등전문학교에 입학...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8)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리상규시인을 만나     나는 가장 순수한 일을 하는 사람   조선족과 한족은 동반성장을 이룩해야   한번 시작한 일 포기하는 법 없어     어제 오후에 행사를 마쳤다. 연변대학사범학교 반디불 문학상 시상식이다....
  • 2012-12-14
  • 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서 본과생들과 연구생들에게 조선민족무용과 무용연구방법론 등 과목을 가르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중국의 최고무용명문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어 쑥스럽다고 하면서 극구 취재를 사양하는 최미선교수와...
  • 2012-12-13
  • 나를 요구하는 한 이 길 끝까지 갈터 로인 장애인 빈곤학생돕기로 삶을 빛내이고있는 하애하씨의 일가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몸이 불구여도 의지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들이 나를 요구하는 한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것이다." 이는 장애자의 몸으로 로인, 장애인, 불우학생돕기에 혼신을 다하...
  • 2012-12-13
  •       ▲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 이동휘 선생   이동휘(李東輝), 자는 희지(曦之), 또는 의인(依仁), 학이(學而),  시습재주(時習齋主)라고 부른다. 1971년도에 출생지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이며,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환경 속에서 학...
  • 2012-12-13
  • 우리 글 서예교육가-김정송     40대 중반이 넘어 서예교원이 되여 우리 글 서예보급과 서예교육에서 큰 성과를 올린 분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사범분원 퇴직교원 김정송선생입니다. 196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매하구 등지에서 중학교 조선어를 가르치던 김정송선생이 서예교원을 맡게 된것...
  • 2012-12-12
  • “아이의 꿈은 독서에서 시작된다”   자식교육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학부모들은 자식교육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있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다니고 소학교에 입학하기전에 한글을 떼고 수학계산을 척척 하는 아이들이 기수부지이다. 학교에...
  • 2012-12-10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56)  연변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 문학부 남철주임을 만나       1953년 항일녀성영웅을 제재로 한 첫드라마 “김옥희”방송   최근 년간 우리말방송드라마 해마다 180회씩 제작, 방송.      8월 6일, 일기예보는 이날 낮기온을 섭씨 29도라고 전...
  • 2012-12-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