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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학전문가 연변의학계의 원로 정규창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22일 09시30분    조회:8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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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정규창
정규창교수

 

일요일 발표예정

정규창교수는 유명한 진단학전문가이며 연변의학계 원로이며 룡정의과대학(후에 연변의학원으로 발전했음)의 주요창시자이다.

정규창은 1917년 10월 1일 조선 평안남도 숙천의 한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세살때 부모를 따라 오늘의 룡정시 세린하 수북촌에 와서 자리잡았다. 그가 열세살나던해 아버지는 아들의 전도를 고려했던지 문뜩 학교가 있는 룡정시내로 이사해들어갔다.

총명하고 근면했던 정규창은 학기마다 1등을 따내여 총명한 어린이로 소문났다. 룡정의 광명중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잘했던 정규창은 일본류학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되였다.

당시 만주국류학생은 장학금을 주었기에 일본으로 가는 로비 20원만 내면 류학꿈이 현실로 될수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곤난한 그로서는 갈수가 없었다. 무산된 일본류학꿈때문에 락심해있는 정규창을 딱하게 여긴 담임교원이 로비를 마련해주겠다고 적극 지지해나섰지만 일본놈들에 대한 원한이 많았던 아버지가 한사코 반대해나서는 바람에 정규창은 결국 일본류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마침 하늘이 알아주었던지 신경의과대학(지금의 장춘베쮼의과대학)이 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기학을 전공하려던 그는 의학을 하는것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라 생각하고 즉시 공부하러 장춘으로 떠났다. 아버지도 그가 장춘에 공부하러 가는것은 반대하지 않았다. 1938년 정규창은 신경의과대학에서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펴기 시작했다.

1942년도에 신경의과대학을 졸업한 정규창은 그때 갓 세워진 룡정개척의학원으로 배치되여왔다. 우리 민족 자신의 의학원을 잘 꾸려 조국의 의학사업에 자기의 재능과 지혜를 바치려한 그의 불같은 념원은 실로 벅찼다. 이런 사람들의 열성으로 1945년도에 룡정개척의학원은 룡정의과대학으로, 40년대말에는 연변의학원으로 성장되였다.

그런데 재능과 지혜를 한창 꽃피우려할때 난데없는 액운이 눈앞에 떨어졌다. 1957년도에 전국을 휩쓴 《반우파》투쟁에서 정규창은 하루아침새에 《우파분자》로 되여 원장직은 물론 병을 볼 권리마저 박탈당하였던것이다. 1960년도에 시정을 받긴 했지만 계속되는 계급투쟁으로 사회는 그를 《모자벗은 우파》로 금을 그어놓고 보았다.

대학강단에서 쫓겨나서 부속병원 내과의로 발령이 났고 지방병 연구과제를 맡게 되였다. 지방병을 연구하려면 병원에서 나와 지방을 전전해야 했으므로 기실 변상적인 《로동개조》나 다름없었다. 정규창은 1961년부터 꼬박 4년을 돈화, 안도, 연길현(지금의 룡정시)의 극산병이 극성을 부리는 시골로 찾아다녔다.

극산병은 녀성과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였고 안도현 송강이 가장 심했는데 당시 여북하면 《안해가 미우면 송강으로 이사가라》는 말까지 떠돌 지경이였다.

돈화현에서만도 수백명이 죽었고 대전자(현재의 안도현 만보진)에서는 17명이 죽었다. 아예 인적이 사라져버린 마을도 있었다. 정규창은 10여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극산병이 심한 마을에 거점을 잡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세계적으로도 규명하지 못한 극산병의 비밀을 밝혀냈다.

병근을 알고나자 치료법이 생겨났다. 그는 《극산병조기진단》 《만보극산병 류행특점으로부터 본 병근원》 등 많은 학술론문을 썼다. 극산병의 발병법칙, 조기진단, 진단표준, 예방대책, 치료방법, 류행병학조사에 독특한 견해를 제기함으로써 연변지방병 예방퇴치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안해잃고 딸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원통해서 급살병이라고 저주했던 극산병을 퇴치한 첫번째 공신이 바로 정규창선생이였다.

극산병에 못지않게 연변산골에 많이 돈 지방병은 갑상선종이였는데 요드의 부족으로 생긴다는것을 확인하고 정규창선생은 로고를 무릅쓰고 농촌마을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우물에 요드를 넣어주고 미역을 먹게 하고 음료수를 개조하도록 선전했으며 적극 치료해주어 점차 이 병마도 물러가게 하였다.

당시 우파로 몰리고있었던 정규창은 지방병을 규명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느라니 오히려 《로동개조》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는 사회에서는 반우파악마로 따돌림을 당했지만 환자들한테는 천사로 된 셈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강제로 받은 개조덕분에 후날 극산병연구 성과로 사회적인정을 받아 1983년 그는 국가로부터 《전국소수민족지구 선진과학기술사업자》의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련이어 들이닥친 문화대혁명이 또다시 그에게 《반동학술권위》라는 모자를 씌우고 비판과 투쟁속에서 시들게 하였다. 장장 21년동안이나 그는 비판을 받고 투쟁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수모와 멸시를 받았다. 슬픔과 고독의 고배를 신물나게 마셔야했다.

1978년에 와서야 정규창은 완전한 시정을 받았다. 조직에서는 그가 보는 앞에서 두마대나 되는 그의 검은 재료들을 불살라버렸다. 《연변과 더불어 60성상》이라는 책에서 정규창은 그날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검은 자료를 의학원 보이라실옆에서 불에 태웠다…시커멓게 타래쳐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보노라니 감개가 무량했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가족 모두를 고통속에 몰아 넣었던 그 21년이 지금 한줄기의 시커먼 연기가 되여 타오르고 있었다. 고통스럽고 한스러웠던 내 21년은 그렇게 한줌의 재로 날아가 버렸다…》.

정책시달을 받은후 의학실험에 몰두하면서 여생을 불태운 정규창교수

완전한 시정을 받은후 정규창은 속으로 웨쳤다. 좋은 시절은 다 갔어도 이제 여생이나마 의학사업에서 보람찬 삶을 살아야겠다고… 20여년간 정치풍운이 그렇게 세차도 정규창선생은 시간만 있으면 중의를 배웠다. 그리하여 서약으로 잘 치료안되던 적잖은 병들을 중약으로 치료해냈다. 습성륵막염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오랜 중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들의 약처방을 분석한 다음 개조하고 보충하여 1호, 2호, 3호 약처방을 만들었다. 륵막염환자지만 같지않은 환자에 따라 부동한 처방을 써보았는데 치료효과가 아주 좋았다.

1975년도에 그는 100명 륵막염환자에게 시험하고 성공한 자료에 근거하여 론문을 써서 나라의 의학에 기여하였다. 그의 굳은 신념과 인민군중과 의학에 대한 일편단심, 불같은 사업심, 드팀없는 연구정신앞에서 그 어떤 비운도 액운도 길을 비키고야 말았다.

1979년 4월에 정규창선생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그해 8월엔 교수칭호를 받았으며 1983년에는 《전국소수민족지구 선진과학기술사업자》로 표창받았으며 1985년도에는 《길림성인민교사》의 영예를 수여 받았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여도 인내성있게 꾸준히 분투하면 행운이 오고야 만다는것을 정규창선생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정규창선생은1979년도에 연변의학원 부원장을 력임했으며 1984년도에는 석사연구생지도교사, 연변주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임, 주정협 부주석, 주의료위생협회 부리사장, 의료협회 부주석, 과학기술협회 부주석 등직을 력임했다.

1989년도에 리직휴양한 정규창선생은 여생의 정력을 연변리퇴직과학기술일군협회 의료자문진찰부에서 환자들을 진찰치료하는데 깡그리 몰부었으며 2008년 1월28일 9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류연산 저 《연변대학산책》2009년 민족출판사 출판

김영금 저《청산처럼 창공처럼》1995년 민족출판사 출판

《연변화책》 1982년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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