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조선족 언어학 대가 최윤갑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8월5일 08시43분    조회:987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윤갑

중국조선어문의 체계를 확립한 대학자

2012년 8월 9일, 교직종사 60주년 기념학술회에서 론문을 발표하는 최윤갑교수

중국조선어문 연구의 선구자, 대부로 불리우는 연변대학 원로교수이며 저명한 어학자인 최윤갑교수는 연변대학 조문학과 제1기 졸업생(1949년-1952년)으로 그해 10월부터 1993년까지 연변대학에 근무하면서 선후로 조선어학부 강좌장, 어문학부 학부장, 조선언어문학연구소 소장, 중국조선어학회 회장, 연변사회과학련합회 부주석,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주임을 력임하였다.

1930년 연길현 마록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난 최윤갑은 두살나던 해 부모를 따라 화룡시 고성촌 용천동으로 이사, 동성에 있는 광동소학교를 다닌 후 연길공업학교에 입학했다가 룡정동흥중학교에 전학, 룡정중학교 고중부를 졸업하고 1948년 2월 평안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된다. 그 이듬해 연변대학이 선다는 소식을 듣고 시험에 참가, 제1기생으로 입학한다.

최윤갑교수가 집필한 주요저서들로는 《조선어어음론》(1973년), 《조선어문장론》(1974년), 《조선어문법》(1980년), 《조선어학사전》(1984년 리세룡 공저), 《중세조선어문법》(1987년), 《조선어규범해설》(1987년 주필), 《중국에서의 조선어 발전과 연구》(1992년 주필), 《중국, 조선, 한국에서의 조선어 차이에 대한 연구》(1994년 주필), 《조선어, 한국어 연구》(1998년)《한국어문법》(2000년), 《한국어문법신강》(2009년) 등이 있다. 최윤갑교수는 1992년 국무원특수수당금을 획득하였고 1993년에는 길림영재 메달을 수상했으며 한국 김영삼 전임대통령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조선어연구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린 최윤갑교수도 《훈민정음》에 대한 시비로 한때 억울함을 당한 일이 있다.

젊은 시절 교단에서 강의하는 최윤갑교수

1972년급 한어학과 학생들한테 조선어문을 가르치다가 《훈민정음》은 조선의 세종대왕이 창제하였다는 내용을 강의하게 되였는데 이것이 연변대학에서 또 하나의 계급투쟁의 도화선이 될줄이야!

시비가 전도된 시기라 중문학부 로동자선전대 책임자가 최윤갑교수를 불러 심문조로 물었다.

《<훈민정음>이란 뭔가?》

《최초의 조선문자를 <훈민정음>이라 합니다.》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발명했다고 강의를 하였는가?》

《문헌에 그렇게 씌여있습니다.》

《모주석께서는 인민이 력사를 창조하였다고 교시하셨소. 당신은 문헌을 턱대고 모주석의 말씀에 대항한단 말이요. 반성문을 쓰도록 하시오.》

금방 화룡현 복동진 룡연동에 내려가 3년간 로동개조를 하고 복귀한 최윤갑교수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이 문헌이 허위라고 증명하기전에는 절대 반성문을 쓸수 없소!》 최윤갑교수는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하였고 송짠감보가 장문을 만든 실례를 들어가면서 로동자선전대의 공세에 대응하였다.

로동자선전대는 비판대회가 있을 때마다 전교 사생들 앞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와 비판하였다. 자칫하면 반혁명분자로 투쟁받을 위험이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최윤갑교수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조문학부의 강은국 등 학생들에게 12개 과당에 나누어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강의하였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결속된 후에야 《훈민정음》에 대한 시비가 밝혀졌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학자로서의 그의 량심은 드팀이 없었다. 그는 평생을 조선어연구와 조선어학 인재양성에 바쳤는데 그가 양성해낸 제자들은 중국에서 가장 활약적인 조선어학자들로 두각을 나타내고있다. 현재 중국 어느 대학이든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여있는 대학이면 그속에는 그의 제자들이 중견으로 활약하고있다.

최윤갑교수는 또한 중국조선어문의 체계를 확립한 학자이기도 하다. 1977년 조선어문규범화를 위한 3성 협의소조가 건립된 후 학술계통을 대표하여 참가한 최윤갑교수는 그때까지 실시되던 《평양을 따라배우기》가 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 우리식 표기를 주장하고 1978년 어휘규범을 만들 때부터 실행에 옮기도록 하였다. 례하면 조선에서 사용하는 《청년동맹》, 《총비서》와 같은 어휘는 그대로 가져오지 말고 우리식으로 《청년단》, 《총서기》로 표기하도록 한것이다. 해방후 주은래총리의 지시로 중국조선어문은 《평양과 보조를 일치》하게 하였는데 오늘날의 조선어문의 체계가 확립되기까지는 최윤갑교수를 비롯한 많은 어학자들의 꾸준한 연구와 노력이 슴배여있다.

2012년 8월 9일, 최윤갑교수의 교직종사 60주년 기념학술회가 그의 제자들의 주최로 연길시 상우호텔에서 개최되였다. 이날 최윤갑교수는 《우리 글 사잇소리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론문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조선어문에서 사잇표와 받침을 없앤것과 관련하여 《나의 탓》이라 반성하면서 조선어에 사잇소리를 표현할수 있는 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하였다.

83세의 고령이지만 론문 집필과 신문읽기를 견지하는 최윤갑교수

1993년에 퇴직한 후에도 최윤갑교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한국-조선어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연구생들을 가르쳤으며 교수란 직업은 퇴직이 없다고 하면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견지하였는데 1999년에는 한국동숭재단 학술상을, 2009년에는 연변대학 와룡학술상을 수상하였다.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
  • -“영화광이” 김혁소설가와 만나다 “책속에 묻힌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김혁소설가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중국조선족이민사에서 유서깊은 룡정에 가면 “일송정 푸른솔”과 함께 “해란강가를 말 달리던 선구자”의 “거친 꿈”이 아직도 어느곳엔가 깊이 서려있는듯...
  • 2016-11-19
  • 소설·수필 40여 편…2월 첫 소설집 '중국 여자 한국 남자' 펴내 "조선족 삶 가끔은 소설보다 비참…음지 얘기 양지로 드러낼 것"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가을바람이 제법 선선했던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 독서의 계절을 맞아서인지 평일인데도 인파로 북적였고, 베스트셀러...
  • 2016-09-05
  • 대형무극 “아리랑꽃”의 종목기획과 씨나리오를 맡은 김영건시인을 만나 대형무극“아리랑꽃”의 종목기획과 씨나리오를 맡은 김영건시인 요즘들어 제5회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에 참가하는 연변가무단의 대형무극 “아리랑꽃”의 인기가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다. 일전 기자는 대형무극...
  • 2016-08-17
  • “위대한 작가들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써냈을뿐만아니라 인간의 오욕칠정에 대한 심각한 동정도 써냈다.”- 전용선 전용선(50세)은 다산작가는 아니다. 그는 일년에 겨우 한두편의 소설과 2~3수의 시, 예닐곱편의 수필을 쓴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그에게 글 쓰는 작업을 걷어치우라고 충고를 했다. 지금 세월에 ...
  • 2016-02-27
  • 제1회 단군문학상 수필상 수상자 장정일 수필가. “예전에 동료들이 그러더라구요. 저의 사무실을 노크할 땐 웬지 모르게 긴장된다구요. 제가 그렇게도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인가요? 사실은 면양같이 순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늘 차분한 말투와 정제된 물처럼 완벽을 추구할것만 같은 그의 이미지는 때...
  • 2016-01-22
  • 제1회 단군문학상 시상 수상자 김영건 시인  누군가 시인은 우주의 만물과 인간세상을 이어주는 존재라 말했다. 김영건시인은 멈춰있는것에서 움직임을 보고 부재에서 존재를 찾아가는 일이 바로 자신의 시쓰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돌이나, 바위, 풀, 새, 구름, 바람, 강물은 그 어느것 하나 움직이지 않는것이 없으며...
  • 2016-01-18
  •   사람은 특징적인 외모나 차림새로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타입과 그 인격의 매력이나 신사적인 행위로 인해 오래도록 관심을 끄는 타입이 있다. 내가 만난 리호원(1966년 출생)은 너무나 선명하고도 전형적인 토종모습을 갖추었기에 구태여 지루한 묘사가 필요없을듯한, 아무데서나 만날수 있는 옆집아저씨 같...
  • 2015-05-29
  • 녀자라면 보통 좋아하는 꽃 한두가지씩 있을것이다. 개나리라던가, 진달래라던가. 하지만 이 문장의 주인공 김점순이 제일 좋아하는 꽃은 글꽃이다. 하얀 종이에 펜을 달리며 피여낸 글꽃. 글꽃도 인간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꽃피울수가 있고 들꽃처럼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 남을수 있기때문이란다 2011년 봄에...
  • 2015-03-26
  •     우리 식단의 단골메뉴인 김치는 우리한테 너무나도 친숙한 음식이지만 20일 만난 박용일씨는 “김치를 담그는 법은 알아도 그 유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것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펴낸 《조선족전통문화 풍속이야기》 는 김치를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속의 유래와 깃...
  • 2015-01-24
  • 김득만선생은 55년간 동요, 동시 창작만을 고집하면서 동심에 살아서인지 고희를 훨씬 넘긴 년세에도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다. 조곤조곤한 성품이지라 지인을 만나도 고담준론을 모르고 늘 대방의 말을 경청하는편이며 간혹 입을 열어도 톤은 낮고 어투는 유연하며 구김살이 없다. 1940년 9월,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
  • 2014-11-2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