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55)]
-매장된 석유를 코노돈트로 탐지한 지질학자
46억년 동안 지구는 화산이 폭발하고 지각단렬현상이 일어나는 등 대자연의 풍파속에서 변천해왔다. 이 과정에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가 땅속에 매장돼왔다.
석유는 발견되기 쉽지 않았다. 인류는 땅속의 석유를 탐측하기 위해 코노돈트를 관찰하게 되였다. 《코노돈트》란 현미경으로만 볼수 있는 미체동물화석으로 이 화석이 대량 발견된 지하엔 석유가 매장돼있다는것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코노돈트와 지하에 매장된 석유의 관계를 잘 몰랐다. 조선족으로 당시 북경대학 지질학부 고생물전공 교원이였던 안태상(安泰庠 1932.6.5~1996.6)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 나라서 지질학자 안태상과 《코노돈트》의 가치
우리 나라 동북평원의 대경유전과 산동반도의 승리유전 석유층은 모두 지층력사가 짧은 사암층에서 발견된것들이다.
화북평원의 지하층은 약 4억 5000만년전의 석회암층으로 구성됐는데 이곳에서는 석유를 발견할수 없을가? 1970년대초에 이는 우리 나라 연료화학공업부 일군들의 가장 큰 의문이였다.
안태상(오른쪽)
1972년 2월 국가연료화학공업부에서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이름난 고급공정사였던 당지를 조장으로 해 지질조사팀을 북경대학 지질학부에 파견했다.
새중국 공업건설에 사용될 대량의 에네르기, 만약 화북평원에 석유가 매장돼있다는것만 검증해내면 조사팀은 나라를 위해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엄숙한 조사팀과 얼굴을 맞댄 북경대학 고생물전공 교원사무실엔 침묵이 흘렀다.
그도 그럴것이 조사팀이 요구하는것은 꼬물의 오차도 용인하지 않는 랭철한 과학적수치와 근거뿐이였기때문이다. 가라앉은 사무실의 분위기를 갑자기 깬것은 묵직하고 침착한 어투의 안태상, 당시 안태상은 이 학교 고생물교원으로 근무하고있었던것이다.
《제가 보건대 하북평원 석회암층에는 석유가 매장된것 같습니다. 화북평원의 석회암층은 수억년전의 바다밑침적암으로 구성됐는데 흑룡강성 대경 같은 륙지침적암보다 바다밑침적암에서는 석유가 더 많이 나죠. 화북평원에서는 코노돈트를 발견할수 있다고 봅니다. 1930년대, 화북평원과 지하구조가 비슷한 미국 중부지역 오르도비스기 석회암층에서 코노돈트가 발견됐는데 그후 아주 큰 유전이 발견됐죠. 화북평원에 대량의 석유가 매장돼있다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안태상의 빈틈없는 론리에 탄복한 조사팀은 아니나다를가 1973년 3월 화북평원에서 코노돈트를 발견했다. 광활한 화북평원의 석회암층을 우릉우릉 하늘땅 진감하는 굉음속에서 뾰족한 석유탐측시추기추가 내리내리 뚫을 때마다 땅속 깊이 숨었던 천톤, 또 천톤의 석유는 분수처럼 콸콸 터져나왔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하하하, 안선생님 고맙습니다. 나라를 위해 안선생님께서는 큰 기여를 했습니다.》 조사팀 당지조장은 지나치게 흥분된 나머지 안태상의 손을 잡고흔들며 놓을줄 몰랐다. 당지조장은 그제야 지질학자 안태상과 북경대학에서 그가 말한 코노돈트의 가치를 지짜로 알게 되였던것이다.
기암괴석과 인연 쌓은 어린 안태상
1932년 안태상은 조선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곡리에서 태여났다. 그의 가정은 워낙 큰 가문이였는데 할아버지때부터 몰락해 구차한 삶을 보냈다.
안태상은 7살때 부모를 따라 길림성 돈화시 액목의 청구자에 이주했다.
청구자는 산골이라 어린 안태상은 매일 마을의 이산저산들을 톺으며 기암괴석들을 관찰했다. 안태상네 집 마당엔 매일 그가 주어온 돌들이 무지를 이루었다. 남들이 보기엔 총명한 안태상이였지만 소학교 1, 2학년때엔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 한번은 시험에서 락방, 가난으로 서당문을 못 나왔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시험성적이 나온 날 밤 아들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얘야, 아버지는 밥 한술 적게 먹더라도 자식을 공부시키련다. 왜 애비 속을 그렇게도 못 알아주냐?》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아버지 모습에 어린 안태상은 며칠동안 눈물 훔치며 실면했다.
그 뒤로 안태상은 열심히 공부해 1948년에 길림성 제1차 학생대표대회 대표로, 북경지질학원에 입학한 뒤로는 1955년 5월 5일에 《북경 대학교 3호학생》대표로 당선돼 곽말약을 만나보는 영광을 가지고 1981년 7월에는 일본국제협력사업단의 초청으로 일본 쯔꾸바대학에 연수를 갔었다.
국제적으로 《캄브리아기 코노돈트》에 관해 처음 체계적으로 종합해 집필한 그의 론문은 1982년 도꾜과학출판사에 의해 출판됐다.
《중국현대화의 희망을 안태상의 몸에서 봤어요》
일본 도꾜에서 60여킬로메터 떨어진 쯔꾸바과학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과학성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국립대학인 쯔꾸바대학에 간지 얼마 안돼 그의 지도교수이고 이름난 고생물학자인 이꼬 히사요시 교수는 안태상을 데리고 야마구찌현에 야외고찰을 떠났다. 야마구찌현은 일본의 주요한 화석산지고 메이지유신의 발상지였다.
그들은 500킬로메터의 로정을 혹은 지질학에 대해, 혹은 메이지유신에 대해 이야기나눴다.
《당신은 일본력사에 대해 일본사람인 나보다도 더 잘 알고계시는구만요.》 교수가 안태상의 력사지식에 경탄했다. 그후 교수는 자기의 학생들이 일본력사에 관해 질문하면 안태상에게 물어보게 했다.
야마구찌현 고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안태상은 자기가 쓰고픈 《캄브리아기 코노돈트》에 관한 론문에 대해 히사요시교수에게 말했다.
《좋소! 얼마동안이면 론문을 작성할만하오?》
《반년이요!》
《뭐? 반년?》
히사요시교수는 안태상이 내건 끔찍이도 짧은 시간에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1959년 이래로 코노돈트에 관한 이름있는 론문은 세계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는바 참고문헌을 찾는 자체만으로도 힘들었던것이다.
《좋소! 기다리겠소!》
히사요시교사는 큰 포부와 자신감을 나타내 보여주는 중국류학생- 안태상에 기대가 컸다.
당시 안태상의 학교사무실은 숙소에서 20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추운 겨울의 휴식일이면 학교에서는 스팀을 주지 않아 사무실은 랭장고와 같았지만 그는 언제나 첫사람으로 사무실에 갔고 마지막사람으로 집에 왔다.
때로는 론문에 사용할 서적을 찾기 위해 자전거로 40-50리 논길도 왕복했었다.
어느날 밤, 숙소로 돌아오던 그는 바로 앞에서 마주오는 자동차 불빛에 눈이 언뜰거리는바람에 자전거핸들을 잘못 돌려 그채로 논뚜렁이에 굴러떨어지고말았다.
깊은 밤, 숙소문을 황망히 잡아떼는 소리에 놀라 깨여난 일본동학들은 이마가 퍼렇게 멍들고 온몸이 흙투성이된 안태상에 깜짝 놀랐다. 차에 부딪칠번했다는 끔찍한 사연을 들은 동학들은 《몸 좀 돌보라구! 하마트련 골회함을 조국에 부쳐보낼번했네!》 하고 조롱으로 핀잔, 안태상 또한 우스개로 맞받았다. 《만일 그랬다면 자네들이 수고해줘야겠네!》 《하하하!》
그들은 즐겁게 소리내 웃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일본동학들은 안태상의 사업정신과 락관정신에 깊이 감복되였다.
쯔꾸바대학 고생물강좌의 한 교원은 《안선생의 사업정신에서 중국의 현대화희망을 보게 되였다》고 평가했다.
《전 평범한 지질학자일뿐입니다》
1979년부터 1986년사이 코노돈트에 관해 안태상은 총 200여만자에 달하는 론문을 썼는데 100여만자의 론문이 발표됐다.
그가 화북유전탐사정황을 총화해 쓴 《화북과 그 린접지구의 코노돈트》라는 저서는 우수과학기술도서로 평의돼 독일련방공화국 프랑크푸르트도서전시회에 전시, 《중국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코노돈트 생물학연구의 진전》이란 론문은 미국지질학회 특간론문집에 수록됐다.
동시에 그는 국내외 학술계 권위적인 직무를 담당했다.
중국고생물학회 상무리사, 중국미고생물학회 리사 및 코노돈트학 팀장, 태평양력사학회 회원, 세계코노돈트학회 회원, 북경대학학술위원회 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그러나 안태상은 항상 겸손했다.
《새로운 월계관이 차례질 때마다 저는 부끄러움이 앞서군 해요. 지구의 평균 반경은 6300여킬로메터나 되지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시추기가 가장 깊이 뚫을수 있는 정도는 10킬로메터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인류는 지구라는 이 큰 수박의 껍데기를 핥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류는 지금 에네르기원천의 95%와 생활수단의 99% 이상을 지하에서 얻어내고있습니다. 이러한 인류의 생존자원발굴의 중임을 짊어진 우리 지질일군들이 편안히 보내려 해서야 되겠습니까?》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귀한것은 책임감이다. 중국의 석유개발사업과 코노돈트발견사업, 세계공업과 인류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름난 조선족지질학자 안태상교수는 풍랑의 고초속에서 일생을 불태웠다.
(본 작의 참고자료를 마련해주신 중앙인민방송국 박일선선생님의 로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필자)
길림신문 김웅견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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