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100년 버틸수 있는 꿈을 키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11일 10시50분    조회:978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동일

칭다오세진정밀기계유한회사 이동일 사장

      
  프로필

  이동일(46세)

  헤룽장성 쟈무스시 출신

  칭다오세진정밀기계유한회사 사장

  칭다오조선족기업가협회 부회장

  1991년 산시재경대학 기업관리학과 졸업

  쟈무스시상업국 산하 화련쌍사 총경리 조리로 근무

  1993년 5월 사직하고 웨이하이로 진출

  1993년 5월-1996년 7월 ,옌타이 한국무역회사 사무소 소장으로 근무

  1996년 8월 옌타이에 무역회사 설립

  1998년 칭다오로 이주, 2000년 5월까지 무역 종사

  2000년 칭다오세진정밀기계가공 공장 설립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우리가 칭다오세진정밀기계가공공장에서 만난 사장은 다른 회사의 사장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복차림의 말끔한 사장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땀을 흘리다 금방 나온 모습이였다.

  이동일 사장은 노동현장에 자주 내려가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계가공 전공이 아닌 그가 문외한으로부터 이젠 엔지니어링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간 이사장이 들인 공은 얼마 이며, 또한 흘린 땀은 얼마일까 .

  20년간 철과 몸부림을 쳐온 이사장인지라 몸도 아주 튼튼해 보였다. 철과 몸부림치는 사람 때문인지 힘이 넘쳐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면 스포츠맨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줄수도 있을것 같았다.

  시도했던 일은 꼭 끝을 본다

  이사장은 쟈무스(佳木斯)시 화련쌍사(华联商厦) 총경리 조리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이곳에 계속 처박혀 있는다는 것이 어쩐지 두렵고 그대로 썩어버릴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사직하고 웨이하이로 무작정 떠났다고 한다. 웨이하이에 있는 한국무역사무소 소장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중국의 농기계 부품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무역에 어섯눈을 뜨자 2년후에 독립하고, 무역회사를 세워 2000년 봄까지 철과 관계되는 상품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1998년 IMF가 터져 불황을 겪을 때 청다오로 이주했다. 웨이하이는 관광도시로서 제조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칭다오는 제조업 환경이 좋다고 판단했다.

  칭다오에 이주해서도 계속 무역을 했는데 정보만 가지고 무역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실체가 필요했다. 100% 무역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2000년 세진정밀기계가공 공장을 세웠다.

  감속기와 밸브(阀门)가 주요 제품이다. 무역에서 번 돈을 몽땅 설비구매에 투자했다. 공장을 가동해서 첫 2년은 적자를 보았다. 부채가 2년만에 191만위안으로 늘어났다. 아직도 설비 투자금이 부족했고 원자재 구매 자금이 없었다. 게다가 부채가 늘어나자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느 한번은 부채때문에 밤중에 벌떡 일어나 놀란 적도 있다. 초창기 때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3년째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약간 숨통이 뜨이는 것 같았다. 이 사장은 어려움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돌파키로 했다. 그래서 외주 업체들을 몽땅 불러다 놓고 회의를 열었다. 지금부터는 제때에 결재해주고, 원래 부채는 조금씩 물어주겠다고 통보했다. 그해에 91만위안 부채를 물어주었다. 희망이 보였다. 그후부터 빚쟁이들도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2003년 1000만위안의 매출을 실현, 2004년에는 1500만위안 , 2007년부터는 지속으로 3000만위안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안해가 무역회사를 경영하는데 한해 무역액은 600-700만위안 된다. 이 회사는 기업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달에 한번씩 결재해주기때문에 결재 조건이 좋다고 소문났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처럼 이사장도 이젠 웃으며 살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되지 않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생을 너무해서 지금은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라는 이유로'노래를 선호한다는 이 사장은 고집이 세며 , 시도했던 일은 꼭 끝을 보고야 만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하늘은 큰 일할 사람에게 먼저 심신단련의 고생을 하게 한다'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양복을 입지 않는 사장

  "현재까지 투자가 누적 2000만위안 됩니다. 최근에도 해마다 300만위안씩 생산에 투자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치부린 것은 없습니다. 보통 차 한대와 집 한채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산동반도 조선족들 가운데서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사장은 현장에서 산다며 샘플을 한번 만지고 한번 손을 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국해서도 양복 입은 적이 없습니다. 출국해서 회사를 방문했을 때도 현장에 가서 고찰합니다. 그래서 양복 입을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습관돼서 양복 입으면 불편합니다. 피부가 희여서 양복을 입지 않아도 교수인가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사장은 현장에서 살다 보니 현장 일을 손끔보듯 한다며 상담도 혼자서 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회사를 가면 공장장 혹은 엔지니어링을 내세우는데 자신의 회사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고 한다.

  현재 15개 회사와 거래하는데 바이어가 오면 이사장이 직접 현장을 안내하며 설명한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감이 뛰어났다.

  "노인 바이어들이 오면 혹시 사장이 괴시욕이 있나고 살핍니다. 우리 공장 규모로 오디차 타면 과시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카릴라 차를 타고 다닙니다"

  이사장은 다소 '부끄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렇다고 이사장이 인색한 것도 아니였다. 회사 직원에 대한 사랑은 남보다 극진했다. 2003년부터 봉급을 하루도 미루어 준적이 없고 직원들 퇴직금도 준다고 한다. 또한 현장 직원들은 100% 양로보험이 있다. 직원들이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자금 지원도 해준다. 나가는 직원한테도 아주 잘해 준다. 남은 직원들이 감동을 받도록 한다. 그래서 직원들의 이직율이 아주 낮다고 한다. 현장직원들의 봉급은 한달에 7000-8000위안 된다. 지난해 위기지만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600% 주어 회사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도록 했다.

  '가는 떡이 크면 오는 떡도 크다'고 직원들도 사장의 극진한 사랑에 보답하고저 공장에 필요한 인재를 불러온다. 그리고 30명 현장직이 일인당 연간 100만위안의 매출을 창출한다.

  "100년 공장은 없어도 100년 브랜드는 있다"

  이사장은 시장의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며 중국산 벨브를 사용하도록 하는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5년전부터 자체 메이커를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핵발전소, 석유화학,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밸브(阀门)는 90% 수입제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고급밸브 시장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시설투자도 늘이고 한국기업으로부터 기술지원도 받고 있다. 지금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밸브는 사용후 등록하는데 10년 -20년후 사고가 나는지를 조사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요구가 높은바 폐품율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100년 공장은 없어도 100년 브랜드는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밸브 제품은 일반 제품과 달라 자기 브랜드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국 회사들도 보면 40년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때부터 물려 받아 경영하면서 키운 것이 오늘에 와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중앙정부로부터 경제구조 조정을 강조하는데 우리 회사는 밸브제품 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고저 합니다. 아마 5년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밸브제품은 열심히 하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간이 있습니다"

  이동일 사장은 이 100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밸브생산 공장도 별도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세진정밀기계가공공장은 동업체 가운데서 중상 수준은 간다며 60세까지 '매출 1억위안 , 자산 1억위안' 단기목표도 세웠다.

  /hljcfb@163.com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청도창득전자유한회사 강진성 사장.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탐방의 일환으로 만난 강진성씨(1974년생)는  지식형 기업인이였다. 고향이 길림성 교하인 강진성씨는 일찍 길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하조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박봉을 받으면서 교단에 올라서고 보니 부푼 마음도 잠간이였다. 가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
  • 2020-07-23
  • 【월드조선족(일본)-인물취재 시리즈】   흑룡강신문사 일본지사는 흑룡강신문사의 글로벌화전략의 일환으로 WeChat계정 '월드조선족' 카테고리에 일본의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삶을 영위하고 있는 평범한 조선족동포들을 취재하여, 중국전역 및 세계각지의 조선족동포들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상을 알려드리면서...
  • 2020-07-09
  • 불꽃튀는 경쟁이 날에 날마다 일고 있는 청도조명(照明)업계에 조선족기업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는 일전 그를 찾아나섰다. 청도시 성양구 장식시장 남쪽 정양로와 수성로 교차지점에서 남쪽으로 100메터 상거한 전기기자재 전문거리에 자리잡은 파나소닉조명등판매점은 흑룡강성 상지 태생인 김해일(1973년생)씨가 ...
  • 2020-07-08
  • 운남성 맹해현과 건수현의 전략적협력포럼에 참석한 현철문 씨.   (흑룡강신문=하얼빈) 차문화와 옥석문화는 중국전통국학의 대표적 문화라고 할수 있다. 이런 전통국학의 대표적 문화사업에 20년간 종사해온 조선족이 있어 의외이다.   상해에 본사를 둔 현자문화발전유한회사(⽞⼦(上海)⽂化发展有限公司, 아래 현자...
  • 2020-06-25
  •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 최병만 대표 2012년에 설립된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최병만 대표)는 8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코로나 기간에도 오더가 끊기지 않고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옌타이시 복산구에 위치한 만보회사 최 대표는 설비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직원들에 대한 신...
  • 2020-05-18
  • “물류도 인젠 스마트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전통 모식으로는 우세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일전 청도류정공항 앞 물류창고에서 기자와 만난 청도파테크국제물류 서문수 대표가 물류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서문수(1982년생)씨는 대학졸업 후 한국의 국제물류기업에 취직,  대학에서의 전공은 의...
  • 2020-05-13
  • 삭바느질 하나로 서민갑부가 된 어머니를 회억하여 프롤로그   2020년 5월 4일, 23시 30분 경에 어머님께서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학교문에 가보지도 못한 ‘까막눈’이지만 누구보다 생존철학이 뚜렷했던 어머님이,삭바느질 하나만으로 의령 남씨 가문의 가세를 일으켜세우신 ‘알부자&...
  • 2020-05-09
  •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허향순 사장의 뭉근한 뚝배기사랑   사진: 허향순   그 세월로서는 흔치 않게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이란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그녀는 1980년대초에 장춘상업전문학교 중약과를 졸업하고 연변의약공사에 배치받았다. 당시 의약공사 약제사라 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였다.   ...
  • 2020-04-28
  • 꿈이 부푸는 곳-펌프커피문화체험공간   -무한 행복을 우려내는〈펌프커피〉최봉화 사장의 무한도전기     석사공부를 마치고 학교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밀어젖히고 그녀는 안정적인 교직생활 대신 겁없이 창업의 길에 뛰여들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썩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잔...
  • 2020-04-26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