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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음악의 “120”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2월6일 16시08분    조회:9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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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봉관



길림성 도문시에는 조선족 음악의 비물질문화재 사업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삶의 여생을 청춘으로 불태우는 구급대원이 있다.그가 바로 “조선족민족 음악의 산화석”으로 불리는 김봉관선생이다. 올해 74세인 김봉관선생은 1967년에 연변예술학교 리론 작곡반을 졸업하고 도문시 문공단 악대대장, 단장, 시 문화관 부관장, 시 음악가협회 주석등 직을 력임하면서 부연구원 직함을 소지하였다.

2000년1월 정년퇴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민족음악발굴과 계승 사업에 정력을 몰붓고있다.

재직시기 <<조선족민족문화유산 연구>>를  <<문학과 예술>> 잡지에 4기로 나누어 련재하면서 <<조선족 민요>>, <<민가모음>>등을 집성해 내였다. 1998년에 <<조선족민요의 유래를 론함>>을, 2003년에는 <<중국조선족 아리랑>>을, 2009년에는 <<반세기후에야 울려펴진 교향곡>>, <<청주 아리랑>>. <<박우선생의 창작 기교를 론함>>등 무게있는 론문들을 련의어 발표하였다.

김봉관선생은 <<모주석을 그리네>>,  <<방치소리>>등 무용 작품에 지금까지 무려 200여수의 노래를 창작하여 연변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1980년에 창작한 <<일할수록 성수 나오>> (강효억 사)는 연변가요집 창작상을, 1989년의 <<깨끗한 마음의 산>>(김동진 사)은 전국 조선족가요 창작 2등상 등 김봉관선생이 창작한 30여수의 가요들이 수상하였다.

2003년에 창작한 <<연변 아리랑>>은 국가문화부에서 조직한 <<중국. 할빈의 여름---제1회 전국조선족가요 음악콩클>>에서 <<우수 창작상>>을, 2009년12월 연변주 <<진달래 문예상>>을 받았다.

자치주성립60돐을 맞으며 창작한 <<잘 꾸려보세>> (김철학 작사)는 60수 입선작에서 2등의 묵직한 상을 탔다. <<중국조선족 민간음악집>>은 50년대초 연변주 초대 주장이였던 주덕해동지의 “소방차들이 진화하려 달려가는 속도로 민족 문화예술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발전 시키라”는 지시를 받들고 60년 진행되여 내려오면서 완성된 걸작으로 영광스럽게  <<진달래문예상>>을 수상했다.

1978년10월부터 김봉관선생도 민요수집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그때 민요수집에 참가하였었던 13명중 김봉관선생은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들은 량수진 정암촌에 내려가 민요수집을 할때 술상을 차려놓고 로인들을 청하여 주흥에 노래 부르게 하였다. 리상철로인이 “충청도 아리랑”, ”풍구타령”을 불렀고 심철이라는 로인이 “청주아리랑”을 불렀다. 김봉관은 메고온 20킬로그람도 넘는 록음기로 록음하여 날을 새면서 반복하여 들으며서 악보에 적으면서 민요를 살려내였다.

30여년의 노력을 걸쳐 2009년1월에 드디어 1050수를 수록한 <<중국 조선족 민간음악집>>이 출간되였다.

<<중국조선족 민간악기 대전>>도 김봉관선생이 민요수집과 더불어 열심히 발굴 정리하여 기악곡 260수, 1766페지의 대형 악기사전으로 2013년 10월에  이 세상에 태여났다.
.
중국조선족 음악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김봉관선생은 진화하려 달리는 소방 대원처럼, 위급한 생명을 싣고 달리는 “120”구급대원처럼 일년 365일 하루 24시 일분 일초를 아껴가면서 남의 생의 매 순간을 아껴가면서 어떤날에는 20여시간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민족음악>>을 위해 심혈을 다 바친다.

2002년 작곡가 오영과  함께 반년품을 들여 1500수의 전통민요를 정리하여 한국에 가져갔더니 손필기기사는 접수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돌아오는 길로 컴푸터를 마련하여 타자부터 열심히 배워 끝내 1500수의 민요를 타자해내였다. 컴푸터 사용이 익숙하지 못하다보니 부주의로 힘겹게 타자해낸 민요가 모두 삭제되였다. 복원할수조차 없어서 다시 타자하여 USB에 저장하였는데 손녀가 그만 망가뜨렸다. 두번의 헛물을 켜고 세번째로 타자하여 끝끝내 성공의 희열을 맛보았다.

김봉관연구원은 자신의 예술생애의 보귀한 금싸락을 정리하여 770페지 77만자에 달하는 <<민요문학>> 탈고를 방금 끝내고 연변인민출판사에 출판교부된 실정이다.
선생은 과로한 창작으로 1990년 부터 당뇨를 앓아 안저출혈로 한눈은 이미 완전 실명되였다.  발굴 창작사업을 위해 2012년8월 일본에가 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지금 다소나마 볼수있는 한쪽눈으로 확대경을 들고 자료를 보며 타자하면서 우리민족의 문화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우리민족의 음악예술을 발굴하면서 정겨운 고향땅을 떠나 돈벌러 멀리 떠난 가슴 아픈 현실을 반년이란 시간을 들여 <<고향땅>>을 작사 작곡해 내여 3천800원의 제작비를 팔아 음반이 성공되여 12월 첮주 연변TV위성방송 매주일가로 방송되며 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려 주고있다.

 “우리민족의 재산인데 우리가 않하고 누가 하겠습니까? 내가 않하고 누가 하겠습니까?”,“보귀한 재부를 관속에 넣어 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민족음악 구급 대원 위대한 김봉관선생의 애절절한 목소리이다. 그의 피타는 노력은 세인들의 긍정과 존경을 불러오고 있다.

1998년3월 <<세계중화인 문학예술게 명인록>>에, 1999년8월에는 <<중국 전문가 인재>>에 수록되였다.
.2010년 12월 중앙인민방송국의 <<음악의 향기>>에서 소개되였고 2013년6월 연변위성방송 <<음악가 초대석>>, <<고향의 아침>>을 통해 세계에 자랑되였다.
 
 
   박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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