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옥돌도 닦아야 빛이 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26일 11시01분    조회:867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이명승

  칭다오화귀승공예품유한회사 이명승 사장

  프로필:

  이명승(36)

  연변 안투현 출신

  선양재무학교 중퇴

  1994-1995년 텐진한국회사 근무

  1996-1997년 광저우, 베이징 한국사출회사 근무

  1998-2001년 상반기 한국 금형회사 근무

  2001년 하반기 칭다오화귀승공예품유한회사 설립, 사장


이명승 사장은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며 생산현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기자 = 칭다오화귀승공예품유한회사의 이명승사장은 2001년 하반기 24세의 어린나이에 창업에 나섰다. 4살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5살때 어머니가 심장수술을 하는 등 원인으로 생활이 째지게 가난했다. 이사장은 동년시절에 "집에 쌀이 떨어진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가슴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가난하게 동년시절을 보냈던 이사장은 선양에서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기업의 생산현장에서 악척스레 기술을 배웠다. 한가지 기술을 배우고는 다른 회사로 옮겨 또 다른 기술을 배웠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며, 창업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익혔다. 마침내 창업에 성공해 현재는 100여명 직원을 이끄는 회사의 보스가 됐다. 이 회사는 멕시코에 피얼싱을(구멍을 뚫어서 사용하는 액세사리) 월 100만위안씩 수출하는데 멕시코 피얼싱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먹지 않고 잘 걷는 말이 없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 이사장은 텐진에 있는 한국 회사의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로 출발했다.그때 한달 봉급이 220위안 되었는데 자신의 용돈도 부족한 상황에서 대학을 다니는 형님한테 꼬박꼬박 학비를 대주었다.

  당시 이사장은 "평생 밥벌이를 할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술에 대한 욕망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생산현장에서 일하면서 금박기술을 배웠다. 2년후에는 금박기술자가 되었다. 기술자 봉급은 일반 노동자 보다 많이 높았다. 그러나 이사장은 또다른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생산현장 일반 노동자로 낮은 보수를 받으며 사출회사에 입사했다. 2년후 사출기술자가 됐다. 봉급도 더 많을수 있었다.

  이사장은 또한번 금형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사출기술자 신분을 버리고 역시 금형회사의 생산현장 일반 노동자로 입사했다. 당시 노동자와 기술자의 봉급은 거의 4배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사장은 당장 눈앞의 이익 보다는 난이도가 더 높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두번이나 금박기술자, 사출기술자 신분을 버리고 기술함량이 한단계 높은 금형회사의 일반 노동자가 되었다. 금박기술자 보다 사출기술자가 한수 우위이고 , 또 금형기술자가 더 한수 우위라고 한다.

  이사장은 매번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마다 열심히 파고 들었다. 남들이 퇴근한 후에도 혼자 생산현장에 남아 반복적으로 실험을 하며 연구했다. 끝내 이사장은 난이도가 높은 금형기술까지 장악했다. 이젠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다. 그 신심이 결국 창업의 불씨가 되었다.

  이사장은 창업조건을 3가지로 꼽았다. 우선 첫발을 떼라.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니 행동에 옮기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신용을 쌓아라. 깨끗하게 약속을 지키라. 남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면 기회가 생긴다. 남한테 죄를 짓지 않게 관리를 잘하라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 견지하라. 목표를 정했으면 견지하라. 말하기는 쉬워도 힘들다. 목표를 세웠는데 술, 골프, 여자한테 빠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일침을 놓았다.


  큰 목표도 쪼개면 작아져 신심이 생긴다

  이사장은 2001년 하반기 몇년간 봉급을 받아 저금한 2만위안에 남들한테서 1만위안을 더 빌려 자본금 3만위안으로 창업에 나섰다. 10제곱미터 사무실과 50제곱미터 공장건물.....

  이런 곳에서 창업의 신고식을 올렸다. 처음에는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초창기 5년동안은 돈이 생기는 족족 금형 만들고 설비 구매하는데 재투자했다. 5년후 생산량도 일정 수준으로 늘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오더가 줄어들었다. 이사장은 경제가 하락할 때 투자를 하는것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데 유리하다며 새해에는 오더가 늘어날 것이다고 판단하고 투자를 늘였다. 그의 판단이 적중했다.

  "현재 액세사리 시장이 3년 주기로 파동 칩니다. 바이어들이 기본 아이템 제품과 함께 판매하기 위해 이상한 특이한 아이템을 가지고 오는데 이는 불경기가 왔다는 신호 입니다. 현재 기본 아이텀 오더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내년에 경기 호전 냄새가 납니다"

  이사장은 이젠 고수가 된듯했다.

  이사장은 초창기 3년동안은 자신이 직접 기계를 조립했는데 3년후부터는 마케팅 공부에 열중했다. 시장에서 마케팅 관련 책들을 구매해 읽었다. 그래서 지금은 바이어 미팅을 잘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이템을 소개하고 우리 회사가 잘 할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신용이 있으며 납기를 정확히 맞출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 바이어의 마음을 잡을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장은 "바이어들이 오면 꼭 잡을수 있다는 신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사장은 "지금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에 희망이 보여 희망을 잡으려고 앞만 보고 달렸다. 뒤를 돌아보기 싫다. 희망을 보고 잡아나가니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1년이 종이한장 번지는것 같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매출액이 한달에 2~3만위안에 달하면 만족했는데 해마다 5~10배씩 늘어났다. 한달에 10만위안씩 판매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목표를 실현 한후에는 50만위안, 100만위안씩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액은 거의 3000만위안에 육박했고 , 2013년에도 이 수치에 도달했다.

  이사장은 월 매출액 100만달러 목표를 3년안에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뛰여야겠다고 말한다.

  이사장은 "목표를 세우고 달리면 일들이 재미있다"며 "목표를 세우고 세분화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매일매일 할일들이 정해지고, 너무 커서 아득해 보이는 목표도 잘게 쪼개 놓으니 작게 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할수 있다는 신심이 생긴다고 말한다. 한달 100만달러 목표가 아득해 보이지만 30일로 쪼개 놓으면 작아지고 또 직원 100명으로 나누어 놓으면 더 작아진다는 원리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사장은 신용과 시간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웠다. 신용은 남에게 주는 신용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 대한 신용이다고 말한다. 이사장은 바이어들과 불량율이 15%이상 되면 결제금을 50% 할인한다고 승낙했다. 또 불량율이 30% 이상 되면 물건 전체를 바이어에게 무료로 준다고 승낙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총 15만위안의 결제금을 날렸다. 이것은 바이어의 요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요구이다.

  이것이 어느 한번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의 큰 업체와 거래하려고 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거래하던 한국회사 사장이 미국 보스한테 신용이 있는 친구라며 이사장을 소개했다. 이튿날, 미국회사로부터 10만달러 오더가 날아왔다. 미국회사가 지금도 한달에 8~10만달러씩 오더를 주는데 거래한지 5년이 됐지만 미국 사장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보스가 그를 믿었던 것은 위의 승낙을 밑바탕으로 하는 신용이었다.


  아침 회의에서 결정을 하는데 모든 일은 시간제로 돌아간다. 누구를 불문하고 제시간에 임무를 완성해야한다. 그래야 바이어와 약속한 납기를 맞출수 있다고 한다. 시간제가 회사의 관리방식이다.

  이사장은 직원들의 적극성을 자극하기 위해 2-3달에 한번씩 늘어난 매출액의 5%를 떠내서 보너스로 장려한다. 고급관리 직원은 3년이상 근무하면 회사차를 공짜로 사용하도록 하며, 기름값과 핸드폰 비용도 보조해준다. 집안에 일이 생겨 목돈이 필요할 때는 가불도 해준다. 직원들을 잘 대해주니 효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회사 무역은 전부 영어로 한다.그래서 이사장은 3년전부터 영어공부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부도난 한국 액세사리 기업을 수매했다. 연간 1000만위안 매출을 바라보는 업체이다.

  이사장은 "자신감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며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개미 천마리면 바위돌도 굴린다'

  이사장은 바디쥬얼리는 몸(바디)에 쓰는 보석(쥬얼리)으로 풀이하는데 고급품으로 인정하며, 액세사리는 벽에 거는것으로 저급품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칭다오 지역에 규모있는 바디쥬얼리 생산업체는 800-1000곳 되며, 피얼싱 생산업체는 10곳 된다고 한다.

  이사장은 제품을 멕시코에 20~30% 수출하고, 유럽에 15% 수출한다고 한다. 총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011년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게도 한곳 냈다. 새해에는 태국에 가게 한곳을 낼 계획이다.

  이사장은 모든 회사들이 각자 움직이고 있는데 바디쥬얼리 혹은 액세사리의 모든 품목을 집중해 매장을 만들어 놓으면 바이어들이 한곳에서 모든 수요되는 것을 구입할수 있어 비용절감, 시간절감 등 일조이석 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동개발, 공동판매를 실현하여 아이텀을 모두어서 바이어에게 제공하자는 건의이다. 이 주장이 다른 회사의 호응을 받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힘을 합치면 큰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5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밀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룹을 키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10년 ,20년후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회사 모습은 보인다고 말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인터넷료녕신문 2011박경상, 리덕권 기자]대련욱일정밀탄소 장상기사장    대련에 가면 인조흑연제품으로 대련시장에 탄탄하게 발을 붙이고 일본 굴지 철강회사와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이 분야 최고지를 향해 매진하는 우리 민족기업이 있다. 지난 2000년에 생소한 대련교외에 토지 10무를 매입해 2천평방메...
  • 2011-08-19
  •  [인터넷료녕신문 2011-08-16 박경상 리덕권 기자]대련가락칼라인쇄포장유한회사 김경일사장   “당면 칼라인쇄포장분야 경쟁은 날로 백열화상태죠. 신설비들이 사흘이 멀다하게 쏟아져나오고 인쇄, 포장 기술도 부단히 갱신되고있으니말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이를 악물고 동업종 최고가 되...
  • 2011-08-16
  • 통화일양—핵심기술로 인삼산업 제1인자로 도약한다   ㅡ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 리청산총경리를 만나 리청산(李青山)프로필 1969년-1975년 군 입대 1975년-1985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주임 과장 당위서기 1985년-1987년 길림공학원 학습 1987년-1992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부공장장 공장장 1992년-2002년...
  • 2011-08-08
  • 김성만씨가 꾸린 “김예무대공연복장상점(金藝舞台演出服裝商行”은 10여년 줄곧 호황이다. 풍부한 무용전업경험을 갖고 부단히 혁신하여 부단히 변화하는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한것이 오늘날 그의 성공을 부른것이다.     심양 금가만태생인 김성만씨는 1979년에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무...
  • 2011-08-02
  •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사장의 경영관 심청송(沈青松)프로필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1996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독립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
  • 2011-07-31
  •   올 3월 8일 중국인노래자랑에 위문온 민주당 박영선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과 함께 있는 윤영숙비서장(왼쪽세번째)과 중국인협회 회원들.   홍콩가수 장명민이 부른 노래 《나의 중국심》이 언제가부터 윤영숙씨의 주제가로 된것은 특별한 리유나 계기가 있은것이 아니다.무슨 가수도 아니고 또...
  • 2011-07-27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5) 민영 민족서점을 복합적인 문화산업기지로 육성할 터 연변민족서점 유한회사 허덕환 이사장을 찾아서          허덕환 이사장이 직원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허덕환 이사장 프...
  • 2011-07-24
  • 2001년 4월 중국미용외과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는 동창림선생은 홍콩에서 개최된 국제 미용성형외과 학술세미나에서 "중국 미용성형외과현황과 나의 체득","동씨융비술"이란 테마로 논문을 발표하여 대상을 수상한 적 있다.   그 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세계 유일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이란 칭호를 가지게 된 것이다...
  • 2011-07-20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4) 다롄정흥석화유한공사 정만흥 총경리와의 대담   정만흥총경리 프로필   1956년 5월1일,출생   1973년 1월~1978년8월,하향지식청년,공청단서기,생산대장,농전건설병단 부단장(农田建设兵团副团长)   1978년 9월~1982년 7월,지린농업대학 학생회 부...
  • 2011-07-18
  •  ] ◎고향사람 찾아 수륙만리 싱가포르에 한식점 세 개를 세운 김경사장  [길림신문 2011-07-14 김성걸 전춘봉 기자] 인도양의 섬나라 싱가포르에 조선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소식은 마음의 고삐를 끈질기게 잡아끌었다. 고향이 길림인 김경사장은 어떻게 되여 수천만리 떨어진 이 낯선 고장에 정착...
  • 2011-07-14
‹처음  이전 51 52 53 54 55 5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