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평야를 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30일 10시02분    조회:86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정문권


 

칭다오신금강수출입유한회사 정문권 사장

  프로필:

  정문권(34)

  흑룡강성 녕안시 출신

  2001년 흑룡강대학 국제무역전공 졸업

  칭다오신금강수출입유한회사 사장

  칭다오성환공무유한회사 경리

  칭다오JS상무서비스유한회사 제1 주주

  칭다오시 녕안고향협회 이사


정문권 사장은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희망의 평야를 본다"고 말한다. 정사장은 사무실에서 태산 넘어 평지를 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노무사기를 당해 가정경제가 파탄에 몰려 곤경에 처했어도 굳굳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정문권(80년 생)은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가 없어 망망대해에서 부평초처럼 떠돌던 그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강한 의지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광야의 길'에 들어섰다. 정말로 그를 놓고말하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듯 했다. 정사장은 밑바닥 생활까지 하며 고생은 많이 했어도 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다. 그에게는 튼튼한 밑천이 있다. 바로 젊음이다.

  쓴맛을 알아야 단맛을 안다

  칭다오신금강수출입유한회사 정문권사장은 80후 젊은이 같지 않게 젊어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그가 공부할 때 아버지가 노무사기를 당해 17만위안의 빚을 졌다. 당시 이들 가정에는 천문학적 수치가 아닐수 없었다.

  2001년 정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칭다오로 진출했다. 그의 아버지는 1994년 칭다오로 진출해 길거리에서 양꼬치를 팔아 아들을 공부시켰다. 길거리에서 양꼬치를 파는 아버지를 보며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치솟았다. 정사장은 아버지가 준 2000위안 로비를 들고 무작정 남방으로 기회를 찾아 떠났다. 우씨 등 지역을 두루 돌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돌아돌아 온주에 왔는데 호주머니에 달랑 7위안이 남았다. 직업소개소를 찾아가니 소개비로 20위안을 내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소개소를 나와 길거리를 헤매다 전단지 광고를 보고 먹고 재워주는 광천수공장을 찾아갔다. 물통을 차에 싣는 일이였다. 일단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했으니 그나마 한시름 놓였다.

  정사장은 온주광천수공장에서 한달에 300위안씩 받고 출근했다. 봉급을 타서는 생활비를 남기고는 몽땅 동생한테 보내주었다. 3개월동안 광천수에 발이 젖어있다 보니 광물질 영향으로 발이 썩었다. 그래서 온주 박스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벽돌을 쌓아 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것도 외지인이라고 배척 당해 비가 새는 곳에 자리를 주었고, 60명 노동자가 한번에 2명씩 샤워를 하는데 그가 제일 마지막 순이였다. 당시 그의 나이가 22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마 정사장과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듯하다. 정사장이 박스공장 창고에서 박스를 싣는 일을 할 때 우연한 일이 생겼다. 당시 파키스탄 바이어가 공장을 찾아왔는데 박스공장 사장이 바이어와 영어대화가 안됐다. 사장이 안절부절할 때 곁에 있던 사람이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중에 대학생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사장은 반가운 기색을 띠며 당장 그 대학생을 불러오라고 했다. 그 대학생이 바로 정문권이었다.

  정사장은 어릴적부터 고향에서 한족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다. 또 대학에서 배운 전공이 국제무역이라 통역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후부터 박스공장 사장은 정사장을 '보배'처럼 여겼다. 덕분에 더는 창고에서 막노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정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해 사장한테 알려주었다. 공장에 큰 도움이 됐다. 박스공장 사장은 그를 데리고 광주무역박람회에 참석했다. 봉급도 3배이상 올려주었다.

  정사장은 박스공장에 더 물러앉아 있어도 별로 비젼이 보이지 않았다. 단연 사표를 냈다. 박스공장 사장은 로비 1000위안을 주며 한번 잘해 보라고 격려했다.

  정사장은 한 온주전기제품회사를 찾았는데 오전 9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사장이 밤 10시에 나타났다. 청씨라는 사장은 그를 별장에 거주하게 했다. 4명의 동업자가 있었는데 청사장이 단독회사를 설립할 생각으로 그를 별장에 모셨다. 그때 정사장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에서 드라기가 유행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후에 청사장이 이 제품을 개발해 유명한 디스니회사에 연간 70만달러씩 납품했다. 대박이 터졌다. 청사장은 정사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정사장을 잡아두려고 6개월치 봉급을 차압해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생겼다. 정사장이 봉급을 받지 못하자 커미션을 받아 챙겼다. 청사장이 이 일을 알고 3일동안 가두어 놓고 때리며 야단을 쳤다. 정사장은 화장실 가는 틈을 타서 '도망'쳤다. 주민등록증과 호적부가 회사에 있어 방법없이 청사장한테 전화를 했다. 청사장도 화가 풀렸는지 봉급을 차압했던 의도를 말하며 돌아오라고 했다. 정사장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그럴 당시 청사장과 거래하던 닝버 금형회사의 사장이 정사장과 합작해 드라기를 개발하자고 스카우 제의를 해왔다. 청사장의 호의를 배반하는것이 마음에 걸려 이 일을 알렸다. 청사장은 설명을 듣고 비젼이 있으니 떠나라고 꽤히 허락했다. 정사장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 했다. 정사장은 온주 청사장한테서 무역과 인간 됨됨이 등 교육을 받았다며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사장은 2002년 말부터 2004년말까지 닝버회사에 근무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고 어머니가 칭다오 한국회사에서 파출부로 일하고 있었고 또 동생도 어려서 생활했던 칭다오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사장과 동생은 닝버회사를 그만두고 2005년 봄 다시 칭다오로 돌아왔다.

  산이 높아도 오를 사람이 있고, 길이 멀어도 갈 사람이 있다

  정사장은 "부모 잘 만나 편안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며 자신의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개척해야했다고 말한다.

  정사장은 자기 사업을 계획하며 한국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반년동안 학원에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는데 간단한 말은 알아들을수 있게 되었다. 그때 삼촌이라고 부르며 지내던 현지 중국인이 7만6천위안을 주며 회사를 설립해 보라고 했다. 정사장은 외상으로 설비 두대를 구매하고 금형을 만들었다. 회사 설립 이듬해에는 금형가공 설비를 33대로 늘이였다. 또 사무실 건물도 지었다.

  어느날 정사장은 엘리베이터 부품 샘플을 가져다 주려고 공항으로 나갔다가 한국 사장과 함께 한차에 타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한국사장이 다른 한국인한테 사기 당해 빈털털이가 됐다. 운전기사는 자기 회사 사장이 이후에는 마중을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정사장은 그말을 듣고 자기가 마중을 하겠다고 한국사장한테 얘기했다. 그때로부터 정사장과 그 한국사장은 자주 연락하게 됐으며 점차 좋은 파트너로 되었다. 후날 그 한국사장은 한국인 금형 기술자를 알선해 주었는데 그 덕분으로 2007년부터 한국 시장도 개척하게 되었다. 한국 기술자가 설계도면을 보내오면 정사장이 생산해서 수출했다. 수출액도 점차 늘어나 이젠 일정 규모에 도달했다.

  정사장은 엘리베이터 부품 생산이 안정되자 광천수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광천수 사업건은 동생이 담당하는데 현재 칭다오 찌머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올해에는 매출액이 배로 늘어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정사장은 경영의 안정성을 고려해 항공티켓전문 판매회사에도 투자해 제1 주주가 됐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정사장은 "인생은 굴곡적이다"고 말한다. 정사장은 '있을 때 잘해' 노래가 18번 노래란다. 아버지 생전에 다툼도 많이 했었다며 지금 몹시 후회한다고 말한다. 또 가족, 바이어들과도 있을 때 잘해야 된다고 말한다. 정말로 제앞에 안떨어지는 불은 뜨거운줄 모르는 법이다.

  정문권 사장은 "넘어진 회수도 많고 다시 일어난 회수도 많다"며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고 말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연변특파원 = 명지바람이 불던 저번주 어느오후, 연변오덕된장술공장은 더욱 그윽한 술향기가 뿜어져나왔다. 구수한 된장문화의 혼과 넋이 이슬같은 술로 빚어져 된장술은 황금삼각주인 연변을 벗어나 이제 ‘통일주’로 부상되며 건축면적이 2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공...
  • 2017-07-20
  • 하북 웅안신구 도시설계 현장답사팀에 뽑힌 실력파 연변이 낳은 재일 조선족기업가 허영수 대중국 시장개척 앞두고 신들메 조인다 ‘심수경제특구’,‘상해포동신구’에 이어 또 하나의 국가급 신구(新区)인 ‘웅안신구(雄安新区)’의 탄생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오늘,‘천년대계...
  • 2017-07-13
  •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배철화 CEO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배철화 CEO   (흑룡강신문=칭다오)김명숙 기자 = 24년간 한 회사에서 끈질지고 피타는 노력을 거쳐 노가다 현장직에서 CEO로 성장하는 신화를 만들어낸 칭다오동해소방장비유한공사(青岛东海消防装备有限公司) 배철화(48세, 흑룡강성 오상시)CEO는 6...
  • 2017-07-11
  • (흑룡강신문=하얼빈) 렴청화 연변특파원= 완연한 여름이다. 가는 곳마다 꽃이 보이니, 그야말로 꽃의 계절이다. 꽃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모멘트에는 온통 꽃사진들이다. 숲을 자주 찾을수 없는 요즘 사람들은 좀 더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끼고 싶어 꽃을 가꾼다. 거기다 세상이 각박하니 꽃에 대한 사...
  • 2017-07-06
  •                                                  최한 사장 농민의 아들로 태여나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가 농사를 지어서는 아예 전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길에 와서 창업하...
  • 2017-07-03
  • [귀향창업실록3]김국성 미국 회사 사임 후 귀향창업 고향을 마음에 담아 창업 적기를 잡아 연변의 유일한 미국회사인 연변범서방플라스틱유한회사 인력자원부 부장으로 있었던 김국성(30세)이 사임하고 귀향해 창업한지가 1년 두달에 난다. 그는 지금 봉오동농가락전업합작사의 법인대표이다. 건설 중에 있...
  • 2017-07-03
  •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브랜드 '코스모' 경영자 김송월 대표   (흑룡강신문=하얼빈) 염청화 연변특파원= 중국어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몰두해야만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이 고사성어의 의미를 온몸으로 풀어낸 사람이 있다.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 2017-06-29
  • 외국에서의 창업(创业),기업(起业), 사업(事业)의 길이 대부분 가파로운 ‘산길’을 경유해야 된다는 재래의 력사를 허물어 가고 있는 80후의 젊은 기업인 권용, 그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당당히 일본 중소기업가들과 어깨 나란히 달리고 있다. 그를 도꾜도니시아사쿠사(東京都西浅草)에서 만났다. 외국 관광객들...
  • 2017-06-22
  •       (흑룡강신문=하얼빈) 우리에게는 책을 살수있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볼수 있는 온라인 서점, 책이 많고 편하게 앉아서 읽어볼수있는 대형 서점, 저렴하고 가볍게 읽을수 있는 e-book까지. 얼핏 상술한 대안들과 뚜렷한 비교우위가 잘 보이지 않는듯 하나 요즘들어 소규모...
  • 2017-06-21
  • 한국 건대양꼬치거리상인협회 김순희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나춘봉 서울특파원 = "조선족 대부분은 힘들게 한국생활을 시작해요. 좌절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갖고 이 한 몸을 불사르면 꼭 성공하는 날이 올 거예요."   건대양꼬치거리에서 '복만루'라는 중국 음식점...
  • 2017-06-08
‹처음  이전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