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표정으로 휘호하는 서영근박사
《설문해자 부수형의 고찰》, 《중국조선민족서예사》, 《좋아 길을 나선다오》, 《서예와 예술환경》 등 저서를 출판하고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개최된 수많은 국제서예교류전에서 대상, 금상, 은상을 수십차 수상한 세계 최초의 서예학 박사 서영근씨가 한국 서정대의 중국어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에 돌아와 《서영근서법예술연구소》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묵향이 그윽한 락백가거 815실을 찾았다.
서영근박사의 서예관련 저서들.
도문시 월청진에서 출생한 서영근박사는 어려서부터 소설가인 아버지(서광억)와 서예가인 형님(서권)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서예를 가까이 하였다고 한다. 소학교시절 글씨가 곱지 않아 어머니로부터 《형님만큼 글을 곱게 쓰려면 십년은 걸려야겠다》라는 말을 듣고 형님처럼 글을 잘쓰겠다고 시작한 글쓰기공부가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형님처럼 경필글씨를 쓰다가 1989년, 연변사범학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붓글씨를 쓰게 되였고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게 되였다. 서예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서영근씨는 사범학원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고 한국에서 개최하는 한글서예전에 입상하는 등 활발한 서예활동을 하면서 전도가 유망한 청년서예가로 성장한다. 졸업후에는 공예상표디자이너, 소학교미술교원으로 근무하면서 하루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94년에 연길에서 개최된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에서 서영근씨는 한국의 서예작품과 조선의 영향을 받은 연변의 서예작품이 확연이 다른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고 한국의 서예가들에게 서한으로 가르침을 요청했다. 그때로부터 꽃뜰 이미경과 산돌 조용선, 죽헌 정문장 등 서예대가들로부터 궁체와 판본체를 서한으로 배웠는데 대가들도 서예를 향한 그의 정성에 감동되여 열심히 가르쳤다고 한다.
서영근씨가 한국의 문학과 서예를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한국류학을 결심한것은 1997년이였다. 8년간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국어국문학과 본과와 석사과정(제주대학), 국어학박사과정(경상대학교)을 수료한 서영근씨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서예학 박사과정을 설치한 원광대학에서 서예대가 효봉 여태명교수의 지도하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8년 2월에 세계최초의 서예학박사로 되였다.
2008년 2월 박사학위 획득 기념사진. 서영근씨와 여태명교수 그리고 가족과 필우들.
《사람은 고향을 잊고 살수 없는가 봅니다. 내가 태여나서 자랐고 나를 서예가로 키워준 고향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서영근박사는 한국에 있을 때 형님과 함께 한민족서예학회, 우리동포서학회, 동포세계연서회 등 단체를 운영하면서 재한 조선족들에게 무상으로 서예를 가르쳤으며 지난해 여름에는 방학휴가를 리용하여 연변윤동주연구회와 손잡고 연길에 윤동주서예교실을 개설, 무상으로 서예를 가르치는 등 고향사랑과 전통서예보급에 열과 성을 다했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서법예술연구와 서예후대양성에 모든 심혈을 기울일것이며 조선의 강한 서체인 청봉체와 한국의 부드러운 서체들인 궁서, 판본체, 민체 등을 두루 융합시켜 중국조선족의 성격에 알맞는 서체를 만들고 그것을 조선족학교와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널리 보급할것이라고 자기의 타산을 밝혔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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