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양질의 쌀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3월11일 09시27분    조회:74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파

-농업 경영인 김파인터뷰

 

(국량쌀유한회사 친환경 유기농 쌀 재배기지)

삼국지에 보면 "国以民为本,民以食为天"라는 말이 나온다. 즉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식량을 생명의 근본으로 여긴다는 말인데 그 만큼 식량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라는 뜻이다. 남녀노소가 평생 먹고 또 우리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밥, 그 밥을 짓는 쌀이 좋아야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며 오늘도 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분이 있다. 그가 바로 길림성 국량 쌀 유한회사의 김파 대표다.

사실 처음 농업 경영인 인터뷰 연락을 받고 이력서를 보니 꽤나 젊은 분이고 경력 또한 나름 화려한데 왜 농업을? 혹시 도시 생활에 회의감이 들어 "나는야 흙에 살리라" 노래를 부르며 귀농을 한건가 하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최근연간 중국에서 도시화와 공업화 진척이 가속화 되면서 도시로 진출하는 청장년층이 대폭 늘어나면서 농촌에는 일 할수있는 노동력보다 노인, 어린이, 환자, 장애인이 더 많은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나가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한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인터뷰 때 만난 그는 필자의 궁금증을 단번에 풀어 주었다. 깔끔한 외모에 수트 차림을 한 그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명확한 청사진이 있었다. 끝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하나 또 하나의 기적을 창조해냈지만 이런 도전과 열정도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을 조성하는 대가로 이루어지어서는 절대 않된다고 누누이 말하는 농업 경영인-김파,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농업부 연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파 대표)

농업과 맺은 "인연"

사실 김파 대표가 농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69년, 김림성 연길시의 한 농민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농사짓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왔고 또 가끔은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드리면서 부모님들이 좀더 편하게 일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가 하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학시절 기계 설계를 전공한 그는 졸업 작품도 농업과 관련된 이앙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그는 국가 배치에 따라 연변에서 제일 큰 기계공장인 연길시석유화학기계공장 설비과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2년, 그때까지도 농업에 큰 뜻이 없었던 그는 국영기업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를 떠나 창업의 길에 뛰어 들었다. 그때 그가 다니던 직장은 살립집도 분양해 주었고 퇴직하면 퇴직금도 달마다 꼬박꼬박 나오는 그야말로 "철 밥통"이였다. 하지만 출근하는 2년동안 그는 일이 너무나 따분하고 일상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금방 졸업하고 뭔가를 더 많이 배우고 분망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그와 이런 환경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창업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여러가지 애로사항에 부딪치기도 했고 예상치 못했던 많은 문제점들에 봉착하다보니 솔직히 힘들었을 때가 엄청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 처럼 막상 창업을 하고 보니 그 어려움은 예상을 훨씬 초과했던 것이다. 처음에 김파 대표가 농사를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일반 벼농사인줄 알고 극구 말렸지만 그는 처음부터 일반적인 벼농사가 아니라 자연환경을 살리고 경작지에 오염을 적게 조성하는 유기농 재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 쌀은 일반 입쌀보다 단가가 높기 때문에 판매가격도 따라서 인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여태껏 쌀은 질보다는 맛과 가격을 우선시하는 제품이였기 때문에 유기농 쌀을 판매할려니 단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거절을 당할때가 많았다. 게다가 처음에 쌀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지인들의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이유인즉 농업은 처음에 투자가 많이 들어가고 투자 수익률 회수가 늦기 때문이다. 그리고 쌀은 이윤이 적은 제품이라 투자금을 뽑고 이윤을 창출하려면 아주 어려웠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골머리도 많이 앓았고 직접 전국 각지의 대리점과 백화점을 돌면서 비싼 유기농 쌀을 과연 사는 사람이 있겠냐는 담당자들을 한명한명씩 설득하면서 시장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국량쌀유한회사 친환경 유기농 쌀 재배기지)

자신에 대한 신심과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중국에서 "녹색 고향", "광천수의 고향", "장뇌삼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길림성 휘남현에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농업 경영을 시작하였다. 몇년간의 부단한 노력을 거쳐 현재 농장 규모는 5400헥타르, 연간 매출액은 인민페로 1억6천만에 달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뿐만아니라 2012년말에 북경에서 진행된 유기농식품과 녹색식품 국제박람회에서 수백개의 업체가 제출한 쌀을 제치고 영광스럽게도 김대표가 경영하는 쌀 제품이 유일하게 금상을 수상했다. 품질이나 성분 평가를 거쳐 최고 품질의 제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국량쌀유한회사, 2012년 중국국제유기농식품과 녹색식품 박람회에서 금상 수상)

(국량쌀유한회사의 유기농 쌀 제품 들)

(2012년 중국국제유기농식품과 녹색식품 박람회 금상 수상 후 인터뷰를 받고 있는 김대표)

농민들의 코기러기가 되다!

"모든 상업에 종사하는 기업인들, 물론 이윤을 창출해야 되고 이익을 목표로 하겠지만 그 과정에 사회에 대한 공헌도 해야 되고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최저한 인류 발전에 저애 작용을 하는 일은 피하면서 또 그런 이념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훌륭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기업인이 아닐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명감 때문일까? 그는 2011년 11월 제17기 길림성 휘남현 인민대표로 당선되었다. 농업을 위주로 하는 휘남현에는 현재 50여개 쌀 경영 업체가 있다. 그중에는 전통 농법으로 농장을 경영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김파 대표처럼 유기농법으로 경영하는 기업도 있다. 처음부터 유기농 쌀 재배를 해온 김파 대표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인정되며 인민대표로 추천되었다. 김파대표는 "인민대표는 응당 백성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하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될 뿐만아니라 백성들을 인도해 그들의 부가가치 창출과 수익을 늘려주는 면에서도 의무감을 갖고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국제방송국 기자의 인터뷰를 받고 있는 김파 대표)

김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제일 공감갔던 부분이 바로 인민대표는 군중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기하는 매개체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민들의 정확하고 건강한 발전을 인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파 대표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지역 인민대표로서 단순한 이익보다는 고품질의 농사를 하고 생태환경을 지킬수 있도록 농민들을 인도하기 위해 항상 주변 농민들과 관련 업체들을 찾아 많은 얘기를 했다.

김대표는 그 동안 수집한 자료를 본인의 생각과 결부해 현 인민대표대회에 의안으로 제출했다. "저는 당시 다른 대표들과 함께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또 장백산 아래 오염이 가장 적은 휘남현의 특성을 살려 이런 자연환경을 살리면서 농업에 종사했으면 좋겠다는 의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때까지 휘남현에는 쌀 브랜드가 형성되지 않았다. 김대표가 다른 대표들과 함께 제출한 《휘남 쌀 브랜드화》의안은 곧바로 채택, 통과 되었고 정부의 주도하에 휘남현 쌀 브랜드는 국가공상총국에 등록되였다. 이때부터 정부 차원에서도 브랜드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휘남현에 가면 입구에 "장백산 제일 인문"과 함께 "휘남 쌀 브랜드"가 적힌 프랑카드가 손님을 반기고 있다.

 

(김파 대표)

김파대표의 뚝심있는 도전은 계속된다!

"제1회 중국 쌀 문화축제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김파대표에게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중국에서 첫 쌀 문화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남녀노소가 모두 먹고있는 필수품이고 중국에는 60%의 인구가 먹고있는 쌀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줄곧 많은 이들의 주식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가지 문화축제는 수없이 많았지만 인류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쌀에 대한 제대로 된 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현실이다. 이 점을 감안한 김파대표는 쌀 문화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냥 배 고픔을 달래는 음식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쌀에도 많은 문화와 내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리고 또 건강을 지킬수 있는 쌀의 영양소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안 좋은 쌀을 먹었을 때 일어날수 있는 상황, 환자들에게는 기능성 식품의 역할도 하는 쌀의 여러가지 기능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이번 쌀문화축제를 개최하려 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쌀 문화축제는 쌀의 우수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휘남현의 유기농 쌀을 폭 넓게 홍보할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파 대표에게 또 한번 탄복한 것은 바로 자신만의 발전 뿐만아니라 지역민들과 함께 조화롭게 발전하기를 원하는 그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비록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김파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 또한 여느 누구보다 높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어떤 업종을 선택해 창업하던 상관없이 일단 창업을 하는 자체가 돈을 더 벌려는 것이긴 하지만 이윤만 추구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데 그런 업종은 떠나서 자연환경이나 생태계통을 적게 파괴하는 기술 업종을 선택한다면 수입도 더 많이 창출할수 있을 뿐만아니라 후대들에게도 더 좋은 자원도 물려줄수 있고 좋은 본보기를 보여줄수 있다며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국량쌀유한회사 친환경 농업단지)

예로부터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다. 농업(農業)은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근본(根本)이라는 말이다.

수천년래 헤아릴수 없이 수 많은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농민은 시종 나라의 주요 생산력이였다. 지금도 중국은 8억 농업인구를 보유한 농업 대국이다. 2014년3월5일에 열린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2차회의 개막식에서 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이극강 총리는 농업은 내수를 확대하고 구조를 조정하는 중요한 영역이며 특히 이는 국가정권과 민심을 안정시키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강철, 부동산, 자동차, 전자 등 여러 기간산업이 오늘 날 국가 경제를 키우고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살림을 윤택하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농사만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산업은 없다. 우리 손으로 유기농으로 가꾸고 일구어 낸 논밭에서 생산되는 쌀 한톨은 하루에도 수천대씩 생산되는 자동차들과 비해 값으로 따질수 없는 귀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단언컨대, 김파대표와 같이 유기농법을 고집하며 고향을 찾는 "조류를 역행"하는 젊은 농업 경영인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고 또 많아져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인 지구와 우리 매개인, 후손들의 건강을 위해서…


국제방송
글:송휘/사진:조연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청도창득전자유한회사 강진성 사장.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탐방의 일환으로 만난 강진성씨(1974년생)는  지식형 기업인이였다. 고향이 길림성 교하인 강진성씨는 일찍 길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하조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박봉을 받으면서 교단에 올라서고 보니 부푼 마음도 잠간이였다. 가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
  • 2020-07-23
  • 【월드조선족(일본)-인물취재 시리즈】   흑룡강신문사 일본지사는 흑룡강신문사의 글로벌화전략의 일환으로 WeChat계정 '월드조선족' 카테고리에 일본의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삶을 영위하고 있는 평범한 조선족동포들을 취재하여, 중국전역 및 세계각지의 조선족동포들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상을 알려드리면서...
  • 2020-07-09
  • 불꽃튀는 경쟁이 날에 날마다 일고 있는 청도조명(照明)업계에 조선족기업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는 일전 그를 찾아나섰다. 청도시 성양구 장식시장 남쪽 정양로와 수성로 교차지점에서 남쪽으로 100메터 상거한 전기기자재 전문거리에 자리잡은 파나소닉조명등판매점은 흑룡강성 상지 태생인 김해일(1973년생)씨가 ...
  • 2020-07-08
  • 운남성 맹해현과 건수현의 전략적협력포럼에 참석한 현철문 씨.   (흑룡강신문=하얼빈) 차문화와 옥석문화는 중국전통국학의 대표적 문화라고 할수 있다. 이런 전통국학의 대표적 문화사업에 20년간 종사해온 조선족이 있어 의외이다.   상해에 본사를 둔 현자문화발전유한회사(⽞⼦(上海)⽂化发展有限公司, 아래 현자...
  • 2020-06-25
  •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 최병만 대표 2012년에 설립된 옌타이 만보금속가공유한회사(최병만 대표)는 8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코로나 기간에도 오더가 끊기지 않고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옌타이시 복산구에 위치한 만보회사 최 대표는 설비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직원들에 대한 신...
  • 2020-05-18
  • “물류도 인젠 스마트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전통 모식으로는 우세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일전 청도류정공항 앞 물류창고에서 기자와 만난 청도파테크국제물류 서문수 대표가 물류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서문수(1982년생)씨는 대학졸업 후 한국의 국제물류기업에 취직,  대학에서의 전공은 의...
  • 2020-05-13
  • 삭바느질 하나로 서민갑부가 된 어머니를 회억하여 프롤로그   2020년 5월 4일, 23시 30분 경에 어머님께서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학교문에 가보지도 못한 ‘까막눈’이지만 누구보다 생존철학이 뚜렷했던 어머님이,삭바느질 하나만으로 의령 남씨 가문의 가세를 일으켜세우신 ‘알부자&...
  • 2020-05-09
  •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허향순 사장의 뭉근한 뚝배기사랑   사진: 허향순   그 세월로서는 흔치 않게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이란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그녀는 1980년대초에 장춘상업전문학교 중약과를 졸업하고 연변의약공사에 배치받았다. 당시 의약공사 약제사라 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였다.   ...
  • 2020-04-28
  • 꿈이 부푸는 곳-펌프커피문화체험공간   -무한 행복을 우려내는〈펌프커피〉최봉화 사장의 무한도전기     석사공부를 마치고 학교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밀어젖히고 그녀는 안정적인 교직생활 대신 겁없이 창업의 길에 뛰여들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썩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잔...
  • 2020-04-26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