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소설계의 상록수 강효근선생은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문학현장에서 왕성하게 필봉을 놀리면서 문학적 감각과 진정성을 유지하며 로익장을 과시하고있다.
강효근선생은 지금까지 60년이라는 긴 문학창작려정에서 200만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소설집 《꽃피는 시절》, 《둥지를 떠난 새》, 《혼자 사는 녀의사》, 《살아 숨쉬는 상흔》, 《객귀》, 《정신 있소》 등 8권으로 묶어냈다. 그중 장편소설집 《산너머 강》(48만자), 《유혹의 한계》(36만자)는 선생이 고희가 넘어 창작한것이다.
평론가 윤윤진교수는 《산너머 강》을 두고 “진실한 력사행정속에서 우리 민족의 군상을 부각하고 그들의 리념선택과정과 그 굴곡적인 과정을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한 력사의 증언으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평했고 평론가 최삼룡선생은 《유혹의 한계》에 대해 “제재의 독창성과 남다른 서술 책략 그리고 광대한 화폭과 삶의 현장에 대한 관조는 강효근씨의 작품계렬에서 비반복적인 작업이였다”고 평가했다.
1935년, 길림시 태생인 강효근선생은 중학교때 리기영의 《땅》, 조기천의 《백두산》 등 문학서적들을 빌려보면서 문학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했고 초중졸업뒤 장춘은행전문학교에 진학하여 학교도서관에서 《전쟁과 평화》, 《죄와 벌》, 《고요한 돈》 등 명작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무르익혔다.
1954년, 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의 한 은행에 배치받은 강효근선생은 사업여가에 소식, 통신 등을 써서 《연변일보》에 륙속 발표하면서 《연변일보》와 인연을 맺게 된다. 힘을 얻은 강효근선생은 소설 “영각소리”를 《연변일보》에 투고하였는데 1964년 4월에 “문예부간”에 발표되였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개인경영을 극구 찬양했다는 리유, 형님이 일본에 있다는 리유로 “10년동란”시기 선생은 “외국특무”로 몰려 7개월간 연금됐다가 결국 왕청현 대북구라는 무서운 산골로 “추방”되였다.
“10년동란”후 길림의 은행으로 전근한 강효근선생은 왕청현 대북구의 포수를 원형으로 “높은 령 깊은 골”이란 소설을 집필해 《연변일보》에 투고해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한다.
1991년부터 강효근선생은 길림주재 《연변일보》특약기자로 활약하면서 많은 생활소재를 얻어 소설화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특약기자증을 보관하고있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창작했지만 선생은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중편소설 “바람은 가슴속에 멎는다”, 《장백산》 “모두모아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객귀”, 《도라지》문학상을 수상한 중편소설 “정신 있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말한다. 현재 선생은 모든 작품을 묶은 중국어로 된 《강효근문집(5권)》 출판을 준비중이다.
산수(傘壽)의 나이라 붓을 꺾어야겠다고 한두번 다짐한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문학창작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때때로 붓을 잡는 선생은 항상 선과 악의 대결에서 희망과 실패, 희열과 고통, 근면과 라태, 사랑과 질투, 광명과 암흑… 그 모든것을 씨실과 날실로 빈틈없게 직조하여 시대가 겪고있는 아픔을 여실히 반영하는게 참다운 작가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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