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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과 미인도의 녀인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8월6일 10시16분    조회: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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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박춘자



순 백색의 백두산이 머리우에 높이 걸려있다. 녀인들은 백두산을 경배하고 숙연히 서있다. 외가닥으로 땋아서 등에 늘인 머리는 그들이 순정의 마음을 간직한 정결한 처녀들이라는걸 알리고 있다…

그림 “성산”에 등장하는 녀인들의 뒤모습은 그림 “무리(群)”에서도 나타난다. 이때의 녀인들은 머리를 얹고 비녀를 꽂은 성숙한 녀성들의 “무리”이다.

녀인들의 뒤모습은 함축적이고 내성적인 조선족녀성들의 미를 상징한다. 고향의 녀인들의 이런 화상에는 고향에 대한 화백의 애정과 향수가 흠씬 묻어나고 있었다.

“그림에 표상이 아닌 고향의 넋을 심고 싶어요.” 박춘자는 유달리 녀인들의 뒤모습에 집착한 그의 작품에 이렇게 해석을 달았다.

박춘자는 중국 공필화(工筆畵) 영역에서 내노라고 하는 거물급 화백이다. 공필화는 일명 세필화(細筆畵)라고 하는데,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채색으로 인물 특히는 녀인을 많이 그리는 동양화의 쟝르이다. 박춘자는 그간 중국과 영국, 한국에 개인전을 7차 개최한 경력을 갖고 있다. “중화컵 중국화대상경연”, 중국 “풍속화대상경연”, “당대 공필화전시”, 동북아 국제미술전시회, 전국 중국화전시회, 당대예술가들의 중국과 한국 순회전시회 등 많은 중량급 경기와 전시회에 입선되고 상을 받았다.

박춘자의 작품은 선후하여 중국미술관, 서안민속박물관, 한국 청와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부, 영국주재 중국대사관 등 부문에 소장되었다. 그가 중앙민족대학 미술학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내놓은 저서 “중국 소수민족제재의 공필 인물화 창작과 교학”은 중국 소수민족 제재의 공필화 영역에서 유일한 교과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화백 자신이 바로 “그림”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는것이다.
 
종이공예, 소녀의 마음에 그려진 그림


“세상물정을 알면서 눈에 제일 많이 익힌 게 그림이였지요.”

어릴 때 구들에는 그림이 마냥 꽃잎처럼 널려있었다. 아버지가 직업관계로 그림과 벗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돈화시 제2중학교 미술교원이었다. 어린 박춘자도 연필을 들고 늘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만화책에 나오는 애기곰과 엄마곰, 풀밭에서 뛰노는 꽃사슴, 하늘을 날아예는 새가 그의 첫 모사품이였다.

“어허 우리 공주의 작품을 모으면 그림책이 되겠네.” 아버지는 딸애의 비뚤비뚤한 그림에 언제나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진짜 딸애의 작품은 그림책이 되고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작품의 주인공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재롱을 부리는 얼룩강아지와 모이를 쫏는 병아리가 그의 화판우에 옮겨져 뛰놀았다.

소학교 4학 때 박춘자의 가족은 연길에 이사를 했다. 박춘자는 연길시소년궁전 미술써클반에 입적했다. 박춘자의 그림은 언제나 닭의 무리에 서있는 두루미처럼 유표했다. 그의 일생에서 첫 그림 상은 이맘때 수상했다. “학습을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는 제목의 종이공예 작품은 주 그림전시회에 입선되었으며 잡지 “소년아동”에 실렸다.

박춘자는 지금까지 그림 대상을 수두룩이 받았지만 인상이 제일 깊은 상은 그래도 그때 창작했던 종이공예 작품이라고 한다.

“상을 받은 날 너무 기뻐서 온밤을 뜬 눈으로 보냈어요.”

종이공예는 박춘자에게 상뿐만 아닌 또 하나의 꿈을 깊이 심어주었던것이다.

박춘자는 급기야 그림속에 깊이 묻혀버렸다. 방과후이면 버릇처럼 기차역으로 뛰어가 화판을 펼쳐들었다. 주름이 밭고랑이처럼 패인 할아버지와 외가닥 머리를 달랑이는 처녀, 사구려를 외치는 아주머니… 각양각색의 인간 만화경이 화판에 일일이 담겨졌다. 박춘자는 일요일이면 푸른 숲이 우거진 산이나 하얀 모래톱이 펼쳐진 강가를 찾았다. 푸른 숲과 하얀 모래톱은 그에게 자연적인 순수한 색감을 피부로 감촉하게 했다.

“그때는 세상이 그저 그림으로만 보이는거예요. 정말 그림에 미치다싶이 했지요.”

박춘자는 하루에 3,4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느라고 밤에는 자정이 넘어야 눈을 붙이기 일쑤였다. 어느덧 그림은 그의 생활의 전부로 되고 있었다.

부모는 딸애의 그림 그리기를 있는 힘껏 도와주었다. 바쁜 살림형편에도 푼돈을 쪼개어 그에게 화필이며 색감, 종이들을 꼭꼭 챙겨줬다. 이때 박춘자에게 길라잡이가 나타났다. 박춘자는 선후로 김영호 화백과 장홍을 화백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생(寫生)과 색채 훈련을 받았다.

벽지 돈화에서는 전혀 꿈도 꿀수 없었던 그림의 천지가 소녀에게 펼쳐지고 있었다.

박춘자는 그렇게 행복할수 없었다. “어쩌면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연길에 이사를 한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요.”

1981년, 박춘자는 중앙민족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하여 공필화를 전공하게 되였다.
 
“고향의 넋”이 그림에 피어나다

대학시절 박춘자는 화판을 메고 늘 산과 들을 넘나들었다. 산해관 남쪽의 산서성과 섬서성, 하남성 등 지역을 다니면서 병마용과 비림, 백마사 등 고적을 탐닉했다. 고적에 깃든 천년의 문화는 더구나 그의 애틋한 향수를 자아냈다. 박춘자는 집안 고구려고분, 연변민속박물관에 발자국을 또렷이 찍었다. 아예 이불 짐을 싸들고 안도현의 시골에 가서 생활체험을 하기도 했다.

고향의 풍속과 력사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박춘자의 대학졸업 작품은 “조선족의 혼례”였고 론문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풍속인물화”였다.

졸업한후 박춘자는 북경실용미술직업학교에서 교원으로 있게 되였다. 이 기간 조선족녀성을 소재로 삼은 그림 “달빛”, “빨래”, “널뛰기”, “가을” 등 10여점의 작품이 전국조선족서예그림전시회, 전국 풍속화경연, 전국미술전시회에서 상을 받았다.

박춘자는 그림 작업에서 종이와 비단, 옥양목 등 다양한 바탕 재료위에 은근하게 배어나는 세련된 색을 구사함으로써 공필 담채화(淡彩畵)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한적하고 온화하다. 조선족녀성들의 여유 있고 상냥하며 맑고 소박한 기질이 그림 전체에 가득 풍긴다.

그의 그림에는 대개 두세명의 인물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단아한 민족의상 차림으로 달빛 혹은 옅은 운무속에 묵묵히 서있거나 조용히 인사를 올린다. 그들 주위는 한적함과 고요함뿐이다. 마치 대기속의 빛과 구름에 녹아버려 혼연일체로 된듯 하다. 인물관계와 번다한 내용을 버리고 녀성 전반의 성스럽고 깨끗한 기질을 박춘자 그만의 담백한 화필로 담아낸 이런 그림들은 꿈같은 유유한 시적 내음이 다분하다. 한편 짙은 향토의 숨결속에서 깊숙한 역사와 문화의 그림자를 엿볼수 있다.

박춘자는 국제적인 교류와 내왕에서 민족성과 현대성의 관계를 절실히 느꼈다. 그는 화필로 고집스레 향토의 뿌리를 찾았다. 지난 세기 90년대 그가 창작한 그림 “궁녀”, “하늘”, “정토”, “고향의 넋” 등은 그 전의 작품보다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녀인상들의 무겁고 조용한 기색 그리고 투명하고 고느적한 배경색은 서정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그림들은 전통적인 공필(工筆)의 미인도(美人圖)와 거리를 멀리하고 있다. 조선족 녀성들의 기질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에는 화외음이 깊숙이 깔려있다. 다름 아닌 조선족 녀성들의 생존상태에 대한 화백의 사색과 앞날에 대한 기대이다.

이런 작업의 연장선에서 그의 그림에는 조선족은 물론 티베트족과 묘족, 뚱족, 하니족, 위글족 등 민족들의 일상생활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독특함 그 자체로만도 고유한 민족문화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요.”

공필화는 섬세함과 인내성을 필요로 하는 그림이다. 색감만 해도 반복적으로 칠하는데 연한데로부터 진한데로 수십번의 작업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림 한점을 그리는데 한두달의 시간이 소요되기 일쑤이다. 그러다가 선 하나라도 잘못 그어 실패하면 그림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박춘자가 지금까지 내놓은 공필화 작품이 100여점에 불과하다는데 공감이 가는 대목이였다. 그야말로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두 화백의 피와 땀으로 가꾼 정성어린 열매였다.
 
화백의 또 하나의 도전
1997년부터 박춘자는 영국 런던 앨(AIR) 화랑에 5년 계약을 맺고 1년에 한번씩 개인전을 가졌다. 앨 화랑은 런던 굴지의 화랑으로 그만큼 작품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울 정도로 높았다. 따라사 박춘자가 받는 압력도 여간 무겁지 않았다.

“정말 창작의 한계를 느꼈어요. 무언가 발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거예요.”

박춘자는 단연히 교직을 버리고 다시 학생의 위치로 돌아간다. 한국 홍익대학 미술학원의 석사연구생으로 입적했던것. 2년 후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모교 중앙민족대학 미술학원의 강단에 올라선다.

최근 그의 새로운 시도를 나타낸 “헤엄(遊)” 계렬의 작품은 창작구상과 인물조형의 표현 기법에서 모두 새로운 돌파를 보이고 있다. 화면에서 자태가 예쁜 조선족 소녀와 한가로이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모두 여유로움이 넘친다. 박춘자의 주관적인 창작성은 작품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의 예술은 보다 원숙한 경지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화백은 이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또 스스로 도전장을 던졌다. “인제 공필화를 떠나서 수묵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수묵화는 화려한 공필화와는 달리 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정신성(精神性)을 구현하는 양식으로 동양인의 미적 의식과 사의(寫意)를 반영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그림이다. 단색의 먹만을 써서 그리는 수묵화는 시종여일하게 채색화에 전념하고 있던 박춘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고향의 녀인은 인제 공필화가 아닌 수묵화에서 또 하나의 순수한 시정(詩情)으로 활짝 피어나게 되는것이다.*

<<예술세계 >> 2014년 제3호/북경 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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