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빠름과 느림의 조화 ... 락화(烙画)에 빠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8월19일 15시06분    조회:49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황영칠
 

불에 달궈진 인두가 섬세한 황영칠(61살)씨의 손길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나무판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인위적으로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색채를 만들며 자연을 그려낸다. 나무와 두터운 도화지에 불에 달군 인두의 순간적인 터치기법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전통공예인 락화가 그려지는 순간이다. 오랜 세월을 오로지 락화와 조각으로 보낸 그의 장인정신이 그림에 고스란히 스며들고있었다.

40여년째 전통공예 락화를 고집해 온 황영칠씨는 자타공인 우리 지역의 내노라 하는 락화장인으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다.

그도 한때는 연길시자동차부속품공장에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였다. 그런 그가 직장까지 버리고 공예를 택한건 어린시절부터 공예가에 대한 꿈과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황영칠씨는 학창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틈만 나면 산수화의 모본을 보고 연습했다. 각종 미술대회에도 입상했지만 문화대혁명 동란으로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여 그저 근처 락화장을 찾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것이 전부이다.

류달리 손재간이 좋았던 황영칠씨는 젊은 시절 동네 처녀들이 시집갈때면 장롱에 락화를 그려넣어주면서 자신의 솜씨를 펼쳐나갔다. 그러다 생계유지로 직장을 구하면서 락화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쉽게 포기할 그가 아니였다. 황영칠씨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근후이면 꾸준하게 락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예술혼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다. 오직 락화에만 온 힘을 쏟기로 한것이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 전통회화와 락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림을 감상하고 연구하며 독학으로 락화기법을 터득했다. 락화는 한번 실수하면 수정할수 없는 특성때문에 정신집중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태움의 미학이다. 인두의 열에 열상을 입은 손은 허물이 벗겨져 나가길 반복했고 얼굴과 몸은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느라 인두에 다쳐 생긴 부작용으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의 또다른 일은 10여전부터 시작한 대리석에 그림을 새겨넣는 작업과 나무뿌리조각이다. 워낙 솜씨가 좋아서인지 연변장백산나무뿌리조각협회 회장직까지 맡았다. 늦게 시작한 일이라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멀리 외국에서도 가끔씩 주문이 들어온단다.

4년전에는 직장암 판정을 받아 수술까지 받은 몸으로 료양소에서 공예품 만들면서 하루하루 병마와 싸웠다. 그런 그의 열정을 알아봐서인지 이제는 암완치단계라는 희소식이 병원에서 날아왔단다.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락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왔던 그에게도 사람의 손으로 하는 작업은 끝없는 인내와 정진을 요구하는 고된 작업이였다. 그의 이런 집념이 드디여 빛을 발해서일가? 그의 작품들은 전국성적인 작품전시에도 버젓이 이름을 올리며 수차례나 최고작품상을 따냈다.

“락화는 나무나 종이가 타면서 나는 자연색을 가지고 만드는 예술이예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장점도 있고 또 다른 그림에서는 느낄수 없는 독특한 질감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늘 락화에 대한 열정이 차넘치는 황영칠씨였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리유로 점점 외면받는 락화는 전통적인 공예기술이지만 인식부족과 배우는 이가 없다.

“이제 뭐 더 바라는건 없어요. 내가 알고있는 기법을 전수받으려는 제자만 있다면 정말 더 원하는게 없어요”

그는 무척이나 안타깝다는듯 한숨섞인 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러요. 락화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을만큼 아름다울뿐만아니라 예술성이 높아 회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있기때문이죠”라며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만의 멋과 예술을 알릴거예요”라고 말한다.

빠른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네 삶속에서 황영칠 장인은 오늘도 묵묵히  우리만의 멋과 혼을 이어가고있는것이다...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렴명(1986년생)은 학교내 소문난 '일개미'다. 고중시절 입당한 그는 심조1중에서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일이라면 정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2011년 동북사범대학 수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 렴명은 심조1중에서 자신의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수학교사, 담임을 ...
  • 2021-08-13
  • 지난 시간 사는 내내 그는 자신의 일을 더없이 사랑했으며 어려운 이웃을 가족같이 보살펴 주위사람들의 애대를 한몸에 받았다. 연길시 조양천진 승리사회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최인숙 로인, 그는 평범한 일터에서 결코 평범치 않은 성과를 이룩하면서 일찍 1985년도에 전국로력모범의 영예를 따냈다. 퇴직 후 나날에도 당...
  • 2021-08-10
  • 일전 당창건 100돐을 맞으며 료녕성우수공산당원 영예를 지닌 김용(1961년생)은 사장에서 고향마을 서기로 변신하여 반금시 대와구 평안진 평안촌을 국가급 모범촌으로 탈바꿈시킨 공신이다.   젊은 시절 ...
  • 2021-08-09
  • “오빠의 편지”로 히트를 치고 “해바라기”, “보리차”, “부모”, “로년을 잘 보내시라” 등 대표곡들로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구련옥 가수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2015년 연변TV음력설야회 한국편 무대에서 “로년을 잘 보내시라” 노래를...
  • 2021-08-04
  • 김택룡(1955년생)은 30대 초반 젊음의 패기와 열정으로 국유기업의 책임자로 두각을 내밀었고 30대 후반부터는 강한 사명감과 헌신정신으로 사회단체 활동에 참가하고 14년간 단동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단동시조선족...
  • 2021-08-04
  • 길림성 훈춘시에는 총 면적이 80평방키로메터이고 조선족과 한족 외 기타 소수민족까지 총 74가구, 6008명 주민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룡원지역사회가 있다. 비록 훈춘시 상업구 중심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아파트관리봉사도 없는 오랜 지역사회이다. 그런 지역사회에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열성껏 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온...
  • 2021-08-04
  • 반가운 소식! 연변의 첫 청화대학 입학통지서, 송달! 7월 18일 이른 아침, 연변조선족자치주 첫 청화대학 입학통지서가 연길시에 도착했다. 9시 30분, 연길시 특급우편 북대 배달부가 한걸음으로 달려와 수험생 장정미(张桢美)와 가족에게 기쁨을 전했다.      장정미는 연변제1 중학교 3학년 1...
  • 2021-07-20
  •  팔순 '아마추어화가' 최봉순의 개인전이 7월 2일, 료녕성조선족미술촬영서예협회와 심양시조선족로교사협회의 공동 주최로 심양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서 열렸다.     최봉순은 심양시조선족제6중학교 퇴직교사다. 1997년에...
  • 2021-07-06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