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커피처럼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를 주는 시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11일 07시46분    조회:663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룡남

원로시인 조룡남선생을 만나보다

원로시인 조룡남선생

얼마전 원로시인 조룡남선생이 전화왔다.

어떤 국가급문화단체에서 모택동탄신 120돐을 맞으면서 낸 공모에 선생님의 작품이 수록되고 상을 받았는데 신문에 낼수 없겠는가 하는 내용이였다. 올해만해도 선생님이 막언(莫言)과 어깨나란히 달력명인으로 뽑힌 일이며, 책자에 오른 일이며... 여러번 때마다 취재를 해서 기사화한 일이 있었다. 물론 선생님은 이같은 영예들을 대단하게 생각해서 자랑하고싶은 마음에 신문에 내고싶어하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갈수록 멀어져가는 세월의 한자락에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 위한 생각에서였다고 느끼고싶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선생님이 부르면 항상 선생님의 희사를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기사화하면서 신문에 실어드려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군 했다. 황차 조선생님은 근 80세에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고령의 간암환자이기까지 하니 그 년륜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존경이 마음이 끌리는것은 어쩔수없었다.

선생님은 또 갖은 정치풍파와 생활고를 겪으실대로 겪으시면서 살아온신 풍상고초의 세월이 대중을 우러러 모시게하는 년륜으로 새겨지고 한평생 순수하게 시농사를 지어오면서 주옥같은 시구들로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떨리게 하는 유명한 서정시인이기도 하다.

《연길주부가원 정원에서 동쪽 20메터되는 가죽가공부 옆골목으로 들어와 두번째 아빠트의 첫단원 5층입니다.》

선생님이 알려준 주소를 네비게이션삼아 걸음을 옮기니 5층 베란다문을 열고 손짓하는 짙은 눈섭의 조선생님 모습이 보인다. 가장 꼭대기 건물이였다. 조선생님댁은 지은지 15년이 넘어된다는 구식 스팀아빠트집이였다.

그때는 집지을때 층계넓이마저 넉넉하게 설계한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복도로 걸어 올라가면서 80세고령의 조룡남선생이 이런 층계로 매일 오르내리는 부지런함과 움직임이 바로 장수비결이지는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굴려보았다. 대개 연길시에서 아빠트하면 2~3층집이 가장 선호받는 층수로 욕심내는 사람들도 제일 많다. 가장 나쁜 층수는 당연히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이다. 가장 꼭대기집을 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이 없거나 혹은 단위에서 내준 방산일 경우에는 좋은 층에는 배당되지 못하고 간신이 배당은 가능한 최하위급 일군들이다. 조선생님의 일생도 아마 그런것 같다. 한뉘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문예편집이라는 말단 자리에서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시에만 묻혀 살아온 조선생님에게 권력과 금전은 거리가 멀어보인다.

《령감 로친 단 둘이서 사는 집이라 좀 루추하다이…》

거실에 작고 낡은 가죽쏘파가 하나 놓여져있고 그 앞에 낮은 탁자 하나가 커피병이며 약병들이며로 좌판을 벌인듯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있었다. 오색 색종이를 접어만든 수많은 종이학들이 크고 투병한 병속에 담겨져있는것도 보였다.

《이 종이학들은 내가 아플때 로친이 하나하나 접어서 넣어준것이라오》

선생이 불의의 간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는 나날동안 선생의 병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종이학에 접어 매일매일 소망을 빌었을 부인의 정성과 지성이 아름다운 부호처럼 남아 빛나는 것이였다.

《커피 좀 타줄가요?》

선생은 이미 준비한듯한 갈아놓은 원두커피가루를 깔때기형 컵에 종이려과막을 씌우고 부엌에 가서 끓기 시작한 물주전자들 들고 돌아왔다.

조심조심 뜨거운 물이 검은 커피가루를 녹이면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고 깔때기에 려과된 거피들이 주르륵 잔을 채운다. 물과 만난 커피가 따뜻하고 유혹적인 향을 방안 가득히 피워올리고있었다.

《선생님 커피를 많이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죠, 원두커피를 가는 기계도 있소, 손으로 가는것과 기계로 가는것 두가지가 있지, 커피에 필요한 프림이며 슈가도 구전하고…》

조선생님은 그러나 요즘은 커피를 이전처럼 맛있게 마실수없어 유감이란다.

의사가 암환자인 조선생에게 자제를 요구했기때문이다. 가끔씩은 마시되 설탕은 엄격히 제한하라는 당부때문에 원두커피만 마시니 오래동안 마셔왔고 길들여졌던 달콤한 커피맛에 반란이 일어 결국 커피와는 점점 멀어져가고있다고 말씀했다.

프림과 설탕대신 우유를 탄 커피를 따로 한잔 만들면서 선생은 또 다른 두잔의 커피도 함께 만들고있었다. 손님인 나와 안방에서 휴식하고있는 부인몫으로 2잔의 커피를 손수 만든것이였다. 조룡남선생의 부인사랑은 80고령인 지금도 여전하시다. 얼마전 취재중 조룡남선생은 본인이 지금까지 병중에도 잘 버텨올수있었고 또 인생의 다사다난했던 험난려정도 악을 쓰고 잘 헤쳐나올수있었던것은 현숙하고 내조적인 안해덕이라고 말씀하시군 하였다. 과거는 특히 선생님의 투병생활가운데서도 엄격한 관리자로 항상 옆에서 선생의 의식주행을 살피고 내조해준 부인이기에 더욱 늘그막 금슬이 좋을수밖에 없으신것 같다.

따뜻한 커피한잔을 타가지고 쉬고있는 부인의 머리맡에 살며시 놓아주며 념려하고 바라봐주는 늘그막 부부정은 누가봐도 오랜 경륜의 깊이를 잴수없는 따뜻한 부부정이지않을수 없다.

조선생님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기어이 사모님과 함께 나오시는것 같았다.

우리집을 찾은 손님인데 인사라도 드려야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시는것 같았다. 자식벌되는 기자의 취재에도 례와 덕을 다 갖추는 선생님의 인격에 다시한번 허리굽혀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의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시여 인자하게 웃고 계셨다.

《아들 둘 있는데 하나는 약학을 공부하고 하나는 사학을 전공하고 있다오.》

그러나 두 자제분 모두 한국에서 살고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어 시름이 놓이는데 작은 아들은 연구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니 아직 35살이 되도록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음력설에 둘째아들이 집에 돌아와 량주모두 즐겁게 설을 쇴지요.》

기다리던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가져온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였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책으로 무어 묵직한 책 두권을 부모님에게 선사한것이다. 한국 학술정보지에서 출간한 책이름이 중국사에 관한 론문저서였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그동안의 연구가 궁금해 물었더니 아들애가 고고학에서는 한국사학계에서도 인정받고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고구려사에서 과거 고구려가 중앙집권제의 봉건왕조라는 정설을 뒤엎는 주장을 제기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그러한 사실들을 립증할만한 증거들도 속속 연구되여 한국사학회의 중국에서 온 학자에 대한 보는 눈이 달라지고있다는 것이다.

《아들애가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읽던 책들을 죄다 버리기 아까워서 우편으로 집에 보내왔습니다.》 조선생은 거실옆에 붙어있는 서재를 가리켜보였다. 20평방쯤 돼보이는 서재는 온통 책들로 산을 이루고있었다. 특히 책장앞에 키를 넘게 쌓아놓은 책들때문에 책장의 책들도 꺼내보기 힘들다고 했다.

조룡남선생의 서재에는 국내에서 출판된 조선문책들이라면 어느것 하나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구전한데 그러나 그 책들을 찾기는 힘이 들다. 책이 책에 쌓여 책산을 이루니 책이 제구실을 못하는 일이 안타깝다고 선생은 말했다. 이제 아들이 돌아와 자기책을 처리하면 그때에야 그런 책들이 볕을 볼날이 올것이라고 조선생은 무가내한듯 두손을 벌려 보였다. 책들이 150평방메터나 되는 집안의 서재는 물론 침실이며 안방마저 잠식해나가고있지만 조룡남선생은 아직도 지난 80년대 불의의 화재로 잃어버렸다는 옛날 책들을 안타까워하고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일과 생활 사랑 등 모든 면에서 성공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요즘세대들은 책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가상세계의 영상문화에 많이 빠져있는데 그런 영상문화의 실질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떠올리고 손으로 감촉하는 책속의 문화더듬이에는 비할바가 못된다는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커피잔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는 언녕 식어있었지만 조룡남선생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오래된 옛 서책을 읽은듯 깊고 진한 문화적인 맛과 멋, 그리고 향기가 흐르는듯하다.

80세의 미수에도 문화를 담론하고 젊은 친구들을 더 반색하고 따뜻한 품과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우리 조선족의 원로 지성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선생님과 작별하고 그 널직한 층계를 걸어 내려오는데 선생님이 마침 외출해 돌아오는듯한 옆집 이웃을 보고 젊은 기자친구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기자 친구?! 얼마나 신선하고 멋있는 부름인가? 누군가 조선생님을 영원한 문학소년이라고 한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세월이 결코 인생의 영원을 결정하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리성진: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령혼과 사상을 남깁니다 퇴직전 리성진은 교육전선에서 다년간 정치과 교수를 했다. 그것이 숙명이였을가? 그는 퇴직 후에도 새일대관심사업과 의무선전...
  • 2021-09-13
  •  "7.1 훈장"수상자 최도식 선진사적보고회 열려            공안부와 중국공산당 흑룡강성위원회에서 주최한  "신앙의 빛 · 도식의 힘"--"7.1 훈장" 수상자 최도식 동지 선진사적보고회가 9월 6일, 성당위 당학교 보고청에서 열렸다.   장안순(张安顺) 성당위...
  • 2021-09-08
  • 청도 성양구 복우리마트 리달선 총경리의 이야기 청도 복우리마트 리달선 총경리 산동성 청도시 성양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마트를 경영하는 조선족은 누구일가?  성양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없이 복우리마트 리달선 총경리라고 말할 것이다. 복우리마트 총경리 리달선(길림성 영길현 태생, 1967년생)은 드...
  • 2021-09-08
  • 단아한 얼굴에 지적인 이미지가 다분한 청도애심공익협회 오영선(1963년생) 회장은 청도에서 사랑을 많이 베푸는 사람으로 통한다. 흑룡강성 계동현 출신으로 오상사범학원 제1기 졸업생인 오영선은 사회 초년생 생활을 교육사업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목란, 계동 고급중학교에서 7년간 졸업반을 맡아 많은 학생들...
  • 2021-09-02
  • 길가에 피여난 이름없는 풀일지라도    —웃음으로 무대를 주름 잡는 배우 김영식   □리은희          연변에서 ‘앵무새’ 하면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만치 알려져있다. 성급 무형문화유산 설창예술류 전승인인 김영식, 자신의 본명보다...
  • 2021-09-02
  •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라는 말이 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 한철종 씨 (현재 길림성 안도현 석문진 유수천촌의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가 근 30년만에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 유수천촌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였다. 3, 4천...
  • 2021-08-26
  •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을 맞는 뜻깊은 7월 1일 오후, 정확히 17시 39분에 연변시인협회 위챗그룹에는 이라는 제목의 서정서사시가 올랐다. 김영능시인의 당의 백세 생일에 드리는 노래이자 자기의 전반생을 돌아보는 자서전이라 평가받은 이 시속에는 55년 세월을 당의 품속에서 살아온 김영능시인의 빨간 격동이 고스란히...
  • 2021-08-26
  • "우리 원장님 최고!" 평생을 국유기업에 몸담고 중견간부로 활약해오다 퇴직후 호로도에서 심양으로 와 중한교류문화원 원장으로 맡고 있는 김경철(1956년생)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영예요 최대의 평가이다.   어릴 적부터 는 노래를 부르며 자란 그는 1975년 1월, 나라의 부름에 망설임없이 참군했고 무슨 일이나...
  • 2021-08-24
  •     음악도시에서 즉흥음악의 새장 열어간다            관호연(关浩然) 중앙음악대학 입학   림준걸(林俊杰) 중국미디어대학 입학   무사동(武思彤) 상해사범대학 입학   … …   요즘 할빈시즉흥음악문화학교는 전국 여러 대학교들에서 입학통지서가 륙속 ...
  • 2021-08-23
  • 올해 아흔 고령의 김려환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을 맞으며 안산시 철서구 공화가두 이삼가방사회구역을 찾아 특수당비 1만원을 바쳤다.   "공산당원은 한장의 벽돌과 같다. 어느 곳에서 수요되면 ...
  • 2021-08-18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10 11 1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