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 ‘섬유업 代父' 코오롱 회장 떠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1월11일 03시12분    조회:863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이동찬
‘한국 섬유산업의 개척자’인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는 코오롱그룹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 유족으로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등 1남 5녀가 있다.


○ 한국 섬유산업의 개척자

고인은 한국 섬유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이다. 1957년 부친인 이원만 창업주(전 국회의원)를 도와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업해 한국 최초로 나일론사(絲)를 생산했다. 1922년 4월 1일 경북 영일군에서 이 창업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 부친이 사업을 하던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배우다 와세다대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1944년 부인 신덕진 여사(2010년 별세)와 결혼한 뒤 일주일 만에 일본군에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강제 징집당했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온 고인은 직물 생산업체인 경북기업을 세웠다. 1954년에는 삼경물산 서울사무소와 개명상사를 세워 일본과 무역을 시작했다.

1960, 70년대 섬유산업 호황기를 맞아 성장을 거듭한 코오롱그룹은 1977년 그룹 회장제를 신설하고 당시 이동찬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해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을 ㈜코오롱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0년대 화학섬유 산업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필름, 비디오테이프, 의약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 14년 동안 경총 회장 맡아

 

1978년 ㈜코오롱(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울산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왼쪽 사진 왼쪽). 200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코오롱-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이 명예회장(아래 가운데)이 박세리, 박지은, 안시현, 김미현 선수(오른쪽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코오롱그룹 제공
 
고인은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4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았다. 1980년대는 노사문제가 심각하던 상황이어서 노사문제를 담당하는 경총 회장은 다른 기업 경영자들이 꺼리던 자리였다. 하지만 고인은 2년 임기 회장을 7차례나 지내며 노사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1990년에는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여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 발족에 기여했다. 1994년 산업평화선언도 주도했다.

이 명예회장은 체육계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85년부터 전국 남녀고교 구간마라톤대회를 주최해 마라톤 인재를 조기 발굴했다. 코오롱 마라톤팀을 창단해 선수를 육성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이 명예회장의 후원을 받은 마라토너다.

고인은 대한농구협회장과 대한골프협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도 지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를 앞두고는 대회 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96년 1월 경영에서 은퇴한 후에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자신의 화실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 검소한 씀씀이로 유명…각계 조문 이어져


2001년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개인 화실에서 자신의 팔순전인 ‘자오의 그림전’을 준비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코오롱그룹 제공

고인은 1987년 중앙대 강연에서 “기업은 국가 경제의 주체이며 사회 발전의 원천이고 직장인의 생활터전”이라며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물질적 유산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건 기업가의 사명”이라는 말로 자신의 기업관을 소개했다. 또 평소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라는 경영 철학을 두고 몸소 경영에 실천했다.

이 명예회장은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사무실에서는 1947년부터 신던 가죽 슬리퍼를 50년이나 계속 신었다. 1990년대 초 비서진이 이 슬리퍼를 새것으로 바꿔놓았다가 이 명예회장의 불호령에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은 코오롱그룹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일이다. 10년 동안 입은 트렌치코트와, 등산을 갈 때면 동반자들과 같이 탄 9인승 승합차도 이 명예회장의 소박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9일 빈소에는 재계와 정계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윤 삼양사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동아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