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원상(圓象)의 여행을 하는 안무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2월28일 23시25분    조회:946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손룡규

안무가 손룡규 교수와 제자들

한겨울의 12월이 막가는 날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이징무용학원의 작은 극장은 무용수들이 흘리는 땀으로 여름 같은 열기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20명은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묘족 복장을 하고 손에는 특이한 무늬가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토템주'를 흔들면서 절주 있게 박자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옛길을 간다는 의미의 춤 "고도행"으로, 묘족 춤이었습니다.

이 춤은 베이징무용학원 박사지도교수인 유명한 안무가 손룡규의 무용작품 공연회 "화(化)․ 원상(圓象)"에 곧 전시될 무용작품의 하나입니다. 원상은 "세계와 더불어 하나로 된다"는 뜻으로, "화․원상"은 안무가 손룡규가 무용작품에서 추구하고 있는 "세계와 함께 하는 변화"와 "심신 일원화"의 경지라고 합니다.

옛길을 걷는 무용인들이 고풍스런 민족 음악을 배경으로 척척 죽이 잘 맞게 돌아간다 싶었는데 손룡규 교수의 정지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항행은 누군데 달렸지요? 조타수에게 달렸어요. 만물이 소생하려면 뭐가 필요하지요? 태양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알고 보니 몇몇 제자들이 춤사위가 손룡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춤사위에 마음과 영혼이 깃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자상하고 제자들을 많이 챙겨준다고 소문난 교수이지만, 무대에 예술작품을 올릴 때 만큼은 작은 실수라도 그냥 넘기는 게 아닙니다. 그 덕분에 제자들은 겨우 한곡을 마치자마자 땀벌창이로 되어 찬 땅바닥에 벌러덩 들어 눕습니다.

솔직히 무대 위에 등장하는 화려한 춤사위만 보아왔고, 무용이 이 정도로 고생스러운 직업인줄 생각지 못했습니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럽습니다. 제자들의 속내는 어떨까?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교수 손룡규는 도대체 어떤 형상일지 궁금했습니다.

막간 휴식을 하고 있던 제자 오굉지(乌宏志)에게 마이크를 댔습니다.

"2009년부터 선생님과 함께 고도행"古道行"의 편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귀주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귀주성의 무용학부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정상적인 고등학교교육을 마치고 18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합니다. 저도 18살부터 무용을 시작했는데요. 그만큼 몸이 굳어져 있다는 거죠. 선생님은 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면서 섬세하게 능력을 키워주셨습니다. 4개월동안 7분짜리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몸의 유연성을 찾고 절주를 익히는데 할애했습니다. 반복되고 반복되는 지루한 훈련 과정이었죠"

묘족 무용 '고도행(古道行)'

작품 "고도행"은 2009년 전국 제7차 연꽃컵 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제자 오굉지의 말을 빈다면 부족한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은 건 재간 있는 "요리사" 손룡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경력을 만들기에 앞서 손룡규는 중국 예술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안무가입니다. 일찍 그가 창작한 무용 "이즈러진 봄"은 1994년 "중화민족 20세기 무용경전작품"에 선정되었습니다. 중국문화예술계연합회와 중국 무용가협회, 중국무용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경전작품은 중국 무용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손룡규는 무용가의 무용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명예를 받아 안은 것입니다.

그러나 손룡규의 무용생애는 거짓말처럼 무용 아닌 체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72년도에 예술학교에서 초생하러 왔습니다. 춤을 출줄 몰라서 시험관 앞에서 체조를 했습니다."

이때 손룡규는 고민 끝에 예술학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무용에 이름을 걸고 두메산골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골을 떠난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예술학교에 들어서던 첫날 눈앞에 펼쳐진 별다른 환경에 눈이 홱 돌아갈 지경이었습니다. 무용 연습장에서 다리를 일자형으로 쉽게 벌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무용"이라는 글자도 모르고 살아 온 자신이 과연 춤을 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입니다.

"무용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뼈가 굳어졌잖아요. 남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8살 나이에 몸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습니다. 무용에 입문하려면 남보다 훨씬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해 겨울 방학 손룡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썰렁한 연습장에 홀로 남았습니다. 난방을 주지 않아서 얼음으로 부어 만든 굴 같은 연습장이었습니다. 손룡규는 춤사위와 함께 땀방울을 물처럼 떨어뜨렸습니다.

언어가 아닌 무용동작, 글이 아닌 무용동작은 차츰 그의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점점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의 몸에서 잠자고 있던 예술세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천재란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이건 발명왕 에디슨이 한 말입니다. 천재란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결정짓는다는 것이지요. 성공한 예술가마다 꿈 세계를 이루기 위해 집착과 사랑으로 힘든 노력을 한 일화가 있습니다.

손룡규는 몸으로 그 일화를 엮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런 무용인생은 제자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산 교재로 되고 있었습니다.

제자 오굉지는 교수 손룡규의 강의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강의가 끝난 후면 반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줍니다. 선생님 자신의 얘기도 해주시고 인생에 대한 얘기며 무용과 문화의 관계, 철학에 관한 얘기들을 해주십니다. 무용은 몸으로 추는게 아니라 머리로 추는 거라고 생각의 깊이에 따라 무용의 깊이도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손룡규만의 특별한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 봤던 무용 "고도행"에는 화려한 춤사위뿐만 아닌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용 "고도행"은 천년의 이주역사를 갖고 있는 묘족의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묘족인들은 산과 바다를 지나며 하늘 끝까지 태양을 쫓는 용감한 민족입니다. "고도행"은 또 북을 치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를 통해 묘족이 낭만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무용이라는 이 예술언어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무용 "고도행"은 묘족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풍속과 문화가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남다른 큰 감동을 선물하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떨어진 고장일수록 문화와 풍속이 원시적인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어요."

손룡규는 민간무용을 수집하기 위해 늘 편벽한 지역을 찾아 답사를 합니다. 이른바 문명사회와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원초적인 민간무용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런 편벽한 곳일수록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일례로 지방사투리는 언어학자도 알아듣기 힘듭니다. 이 화제가 나오자 손룡규는 그만의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그는 답사 때마다 소박한 옷차림을 하며 사탕과 술을 꼭 챙겨간다고 합니다. 아이를 보면 사탕을 주고 어른을 만나면 술을 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금세 친구가 되고, 서로 마음을 나누다 보면 그 민족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룡규는 무용작품에서 "세계와 함께하는 변화"와 "세계와 더불어 하나로 되는" "심신 일원화"의 그런 경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손룡규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이 인터뷰를 마친 이틀 후인 20일, 그의 정품 무용작품 공연회 "변화․원상"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손룡규의 대표적인 무용작품 9편은 2시간 반동안에 걸쳐 관객들의 박수갈채속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지난 세기 80년대부터 창작한 이런 작품들은 모두 국가급과 수도 문예콩쿠르에서 금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예술을 끝까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손룡규는 공연이 끝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곧 60대의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지만 무용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여전히 젊은 혈기로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무용인인 최미선 대학교수는 공연이 끝난 후 그의 감수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원상"작품에서 딱 마치 사람이 건너온 삶의 무게, 삶의 의미가 척척 묻어나는걸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에 닿는 감동, 이런 감동은 최미선 교수 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던 많은 관객들이 받은 감수였습니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그들을 작품에 이끌리게 하며 또 그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게 하고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그런 감동이 바로 손룡규가 모색하고 이루고자 하는 "원상"이 아닐지 합니다.

며칠 후 손룡규는 또 대륙 서남부의 오지로 무용소재를 수집하러 떠난다고 합니다. 무용의 "원상"을 이루기 위한 손룡규의 "변화"의 "창작여행"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취재/글 이향란]

중국국제방송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수출·실업 문제 해결할 모국 경제발전의 전진기지 될 것"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가 창립 이래 35년 동안 이어온 '수출 증진을 통해 모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즉 해외 수출과 모국의 실업 문제를...
  • 2016-02-16
  • 지난해 7월 9일, 일본 주식회사 아이글로벌의 황봉선사장이 세계적인 반도체제조회사인 TEXAS INSTRUMENTS(아래 TI로 략칭)로부터 2014년도 《우수업체상》을 수여받아 동업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황봉선사장 본부가 미국에 있는 TI는 세계적으로 다섯번째안에 꼽히는 반도체제조회사로서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중국...
  • 2016-02-15
  • —후꾸리꾸(北陸)대학 미래창조학부 리강철교수와의 만남 리강철(李钢哲)교수와의 만남은 2012년을 시작으로 지난 9월의 만남까지 6번째 된다. 처음에는 2012년 조글로를 통해서 만났고 두번째는 2013년 3월 16일 동경에서 리교수가 회장을 맡은 《조선족연구학회 2013년학술토론회》에서이고 그후 4차례는 도문에서였...
  • 2016-02-15
  • ‘한국입양인 출신 두 번째 입각’ 주인공 장뱅상 플라세 의원 보육원서 자라다 7세때 佛로 92년 정계입문 43세때 당선 “딸에겐 한국문화 가르칠 것” 11일 단행된 프랑스 개각에서 한국계 입양인인 장뱅상 플라세(47·사진) 상원의원이 국가개혁 장관에 임명돼 주목을 받고 있다. 플라세 신임...
  • 2016-02-12
  •   알렉스 양 동남부 조선족동포협 회장 “한 사람이 여럿을 위하고, 여럿이 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협회 목적” “10년 전부터 모임이 있었으니까, 오랜 기간 준비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난 7일 둘루스 서라벌 식당에서 열린 미주동남부중국조선족동포협회 창립행사에서 초대 회...
  • 2016-02-10
  • 료녕성 무순시 순성구 행복성 아파트단지에 살고있는 평민화가 남중석(南重硕)로인은 미술창작으로 보람찬인생을 가꾸어가면서 기꺼운 성과를 가져왔는데 얼마전에는 료녕미술출판사에서 그림교과서(绘画教程)《탄소필동물소묘(碳素笔动...
  • 2016-02-08
  • 70만 재한 조선족 "돈 벌러 왔지만 정주 지향으로 변화" "조선족은 한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방인 취급 서운해" 김성학 회장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70만 명에 이르는 재한 조선족은 공장 노동자·식당 종업원·간병인 등에서부터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 구...
  • 2016-02-08
  •  [이미옥 탐방]李剛, 20년 붓을 따라 간남자의 이야기   ▲ 리강 화백의 작품(위), 혜화동 자신의 화실에서유마불이도(維摩不二圖) 작품을 보여주는 이강 화백(아래). [서울=동북아신문]3월의 혜화동 골목은 이미 계절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는 젊은이들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성균관 거리는 연신 그...
  • 2016-02-05
  • [연변을 클릭하는 사람들 20] 한국스포츠브랜드매장 한춘향사장의 삶의 에너지      “아직 인생을 론하기에는 너무 애숭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많은 아픔을 겪었고 흘러간 시간들을 뒤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였습니다. 인생은 짧고 굵게 가는것이 아니라 가늘...
  • 2016-02-03
  • 가야금, 거문고, 해금, 장구, 아쟁, 퉁소…… 숱한 조선족 전통악기들이 장인(匠人)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장인은 올해 79세로 60여년간 악기제조에 전념해왔다. 단순한 목재가 절묘한 소리를 낼수 있는 악기로 변신하는데는 마음속에 가락이 있고 손에 음색이 잡히며 공구마다 정을 불어넣는것이 비법이라...
  • 2016-02-03
‹처음  이전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