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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은행과 주식회사 설립을 꿈꾼다 -표성룡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월7일 18시43분    조회:9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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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표성룡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 표성룡과 그의 《꿈세계》

○중국 조선족사회 류동자금 최소 500-600억원대

○기업가협회에 이어 은행, 주식회사도 설립할터

○《중국조선족은 재외조선족중 제일 당당한 군체》

○석유, 석탄 대신 신형에너지 개발에 심혈 기울여

○본인의 일생을 가감없이 다룬 드라마 촬영할터

 

표성룡(表成龙) 프로필:

1954년 료녕성 심양시 출생,

1972년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졸업,

료녕성 반금시 중앙툰 하향,

1977년 심양통용기계학교 졸업,

심양시기중운수기계공장 품질검사원,

1982년 사직후 선후로 개체업 종사, 간장공장 음식점 압연공장 등 운영

1991년 료녕신성그룹 창립, 리사장 담임

 

사회적직무와 주요영예:

2003-2012년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2008-현재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

2000년이래 료녕성 정협위원 3기 련임,

심양시 《5.1》로동상장,

심양시 30년 개혁개방 선진인물상,

《료녕성100강민영기업》칭호,

《전국민족단결선진개인》칭호,

한국 《한민족대상-혁신리더 해외동포 사회봉사부문 대상》 수상

 
2013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가해 박근혜대통령 등과 기념사진을 남겼다.(뒤줄 왼쪽 다섯번째가 표성룡회장)

해볕이 쨍쨍 내리쬐는 1967년 여름방학, 료녕성 심양시 명렴가에서 시교의 한 마을로 가는 길에서 행인들은 열서너살 돼보이는 소학생모양의 한 사내아이가 땀벌창이 된채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28형 자전거를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목적지는 이모네가 사는 마을. 목적지에 도착한 소년은 자전거 뒤짐받이에 실은 미역 10근을 근당 50전씩 팔고 2원 50전의 순수입을 올린다. 그는 본금과 수입을 다 털어 마을에서 수수쌀, 옥수수쌀을 몇십근 사다가 명렴가에 넘겨 팔아 곱절의 리윤을 남긴다.

4남2녀 6남매중 남자형제로는 맏이인 이 소년은 미역과 쌀 되넘겨 팔기를 방학이 끝날때까지 거의 날마다 반복하며 가정의 쌀부족문제를 해결하고 한학기의 생활비도 벌었다.

세월이 흘러 근 반백년이 지나 그때의 그 아이는 환갑나이를 맞았다. 그사이 그는 이미 땅 7000여무를 소유한 심양에서 유명한 조선족《대지주》로, 직원 수천명을 거느린 대형 그룹회사의 리더로 되였다.

해외단체장 신분으로 로무현, 리명박, 박근혜 등 최근 3기 한국 대통령들의 접견을 일일이 받아온 그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을 맡고있는 심양신성그룹유한회사의 리사장 표성룡(60세)이다.

표성룡은 2008년에 할빈에서 개최된 제1회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련석회의에서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의 설립구상을 제출, 전국 각지 여러 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들의 일치한 추천으로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여 현재까지 7년째 맡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전국성적인 조선족기업가협회를 설립하고 이끌어가고있는 표성룡회장이지만 기업가협회 설립은 그가 꾸고있는 꿈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현재 그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외에도 중국조선족은행, 중국조선족주식회사 설립이라는 거룩한 《꿈》을 무르익혀가고있다.

 
한국 《한민족대상-혁신리더 해외동포 사회봉사부문 대상》을 수상한 표성룡회장.

《중국조선족은 재외조선족중 제일 당당한 군체》

《중국정부의 평등한 민족정책에 힘입어 중국조선족은 새중국 성립후 줄곧 우리 민족 언어와 문자를 마음껏 사용해왔으며 이름도 민족의 전통대로 지을수 있고 표기할수 있다. 자치지역의 조선족들은 우리 글과 한어가 동시에 찍혀있는 신분증을 사용하고있다.》

《이는 자신의 이름마저 현재 거주국의 양식으로 표기하는 일본이나 미국 등 재외 한인들에 비해 얼마나 자랑스럽고 당당한 일인가?》

표성룡은 이는 중국조선족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일이고 중국공산당괴 중앙정부에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해동안 《세계한인회장대회》 등 명의로 한국에 초청받고 가서 연설할때마다 《중국조선족은 해외 조선족중 제일 당당한 민족군체》라고 떳떳이 말한다고 한다.

지난 10월 7일에 서울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도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성원 25명을 데리고 참석한 표성룡은 세계 각지의 한인(조선족)과 동포들이 1000여명 참가한 가운데 《현재 중국 조선족기업가들의 력량이 점점 커가고있으며 그들이 동포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무시할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해외단체들은 중국에서 행사를 할때마다 동포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한국 정부에 손을 내밀고 돈을 요구하지만 우리 기업인들은 순수 자체의 힘으로 년평균 인민페 200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들여 민족사회를 지원한다. 우리 기업인들은 어제날의 기업들이 아니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이제는 중국의 동포기업인들과 합작하여 경제활동을 진행하여야 더 큰 리득을 볼수 있다는 표성룡의 발언은 참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2013년 장춘에서 개최된 전국조선족사회단체사업연구토론회에서 전국 각지 조선족사회단체 책임자들과 함께 있는 표성룡회장(오른쪽 다섯번째).

《조선족사회의 경제력, 은행 건립조건 구비했다》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재외한인들은 이미 당지에서 본 민족의 은행을 설립하여 경제활동에서 많은 편의를 보고있다. 중국조선족도 우리의 민족기업과 제반 민족사회의 더욱 큰 발전을 위하여 하루빨리 자체의 은행을 설립해야 한다고 표성룡은 주장한다.

조선족기업가들중 자산이 억원대에 달하는 기업가들이 상상외로 많다. 하지만 특정된 환경의 제한과 주류사회와 융합하기 힘든 등 문제로 인해 조선족기업가들이 수억원짜리 항목을 유치하려 해도 재산규모 제한과 융자난문제로 하여 유치항목을 현실화사키기에는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하여 우리 민족 스스로의 민간은행 설립이 급선무로 나서고있다.

표성룡회장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조선족사회의 류동자금은 최소 500-600억원대에 달하며 최근 년간 중앙정부의 민간은행 설립에 대한 정책이 완화되면서 중국의 조선족사회는 은행을 구비할 조건을 언녕 구비하였다고 분석한다.

조선족 어머니들이 쌈지돈을 털어서 중국조선족은행에 저축하면 은행에서는 조선족기업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대출해주고 기타 은행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높은 리식(매년 최소 10%)을 조선족저금호들에게 반환한다. 은행의 직원규모와 내부지출을 최소화하고 중국조선족 은행과 기업가협회의 명의로 은행 수입급을 전국 각지의 조선족행사에 후원한다는 계획이다.

표성룡은 조선족은행 설립의 발기자로서 이번 회장임기내에 이 꿈을 실현하지 못하면 다음 회장대에라도 실현할수 있도록 기초작업을 잘해놓으려고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그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의 모임이나 전국 각지 조선족기업가 협회, 련의회 활동에 초청받아 갈때마다 조선족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은행설립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내부에 투자담보회사란 보조적 주식제 경제기구를 내오는것 또한 표성룡이 민족사회를 위해 내놓은 또 하나의 대담한 구상이다.

현재 국가의 해당 정책이 완화되며 향간에서는 투자담보주식회사 설립열이 일고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그만한 류동자금이 있고 고객도 충분하기에 설립하면 얼마든지 생명력이 있을것 같다는게 표성룡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민족의 기업가들을 묶어세울수 있는 좋은 도경이기도 하다. 물론 조선족은행이나 투자담보회사같은 경제기구를 내온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같은 선배 기업가들이 앞장서서 호소하고 떠밀고나가야만 어느 땐가는 실현가능성이 있지 않을가 하는 바램이다.》고 표성룡은 말한다.

조선족사회에서 이런 형태의 주식회사를 만든 사례는 많지만 돈을 떼이는 등 잘못된 경우도 많은 점에 대비해 표성룡은 이런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공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업가협회 회장들이 재산을 위탁해 만약 사업이 잘못되면 뭔가를 보장해 책임진다는것을 약속하겠다는 설명이다. 우선 먼저 자신의 수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공증할 타산이라고 그는 밝혔다.

 
표성룡회장의 신성그룹이 건설한 강철교역시장 일각.

토지의 대면적 확보로 대기업 총수 되여

신성그룹, 년평균 1000여만원 세금 납부

어릴때부터 탁월한 사업기질이 돋보였던 표성룡은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어오자 더 이상 안일한 일자리에서 세월을 보낼수 없었다.

1982년, 5년간 근무하던 심양시기중운수기계공장 품질검사원을 사직한후 하해하여 장사를 시작한다.

해바라기씨, 해물, 복장, 간장, 신발 등 안해본 장사가 거의 없었고 광동성 광주로부터 흑룡강성 야부리까지 중국땅을 남북으로 종단하며 메주밟듯 다녔다.

그때의 고된 떠돌이장사 경력은 그의 시야를 틔워주었고 후에 기업을 일궈세울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중한수교전인 1989년, 우연한 한국방문행에서 표성룡은 한국에 사는 친척 형님의 귀띔으로 토지의 무한한 부가가치를 터득하였고 대면적의 토지확보로 그는 사업의 대확장을 이룩한다.

귀국후 그는 그동안 힘들게 모은 수중의 자금을 총투입해 토지확보에 나간다. 당시만 해도 토지의 상품성과 토지가 재부확장의 대상이라는 사람들의 인지도가 낮을 때였다. 하여 그는 《헐값》에 많은 면적의 토지를 확보한후 그 땅에 대형 강재시장과 종합시장을 세우고 중한합자 레미콘회사와 플라스틱창문공장을 설립한외에도 건물을 지어 임대해주었다.

표성룡회장은 화평촌(현재의 화신그룹), 명렴가 가두, 영수태, 우홍신촌 등지에다 선후로 철근, 레미콘, 산하샷시, 강화플라스틱창문 제조공장과 강재시장, 애완동물시장, 명렴종합시장 등 10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을 세웠는데 부지가 도합 500여무에 달했다.

1990년대말부터 심양시의 도시확장 공사에 따라 그의 공장, 시장들이 개발지역에 들어가며 뒤따른 엄청난 금액의 보상금은 또다시 토지확보와 강재시장 설립에 투입됐다.

현재 그는 명렴지역의 토지들이 전부 개발지역에 들어간데 비추어 대흥지역에서 80만평방메터의 토지를 임대해 400여개의 매장을 가진 강철교역시장을 세웠는데 임대률이 거의 100%에 달해 그에게 해마다 4000여만원의 순수입을 안겨주고있다.

20여년전에 개발한 2만평방메터의 명렴종합시장은 명렴지역의 최대 종합시장으로 발돔움했는데 현재 1000여명의 업주가 입주, 해마다 1000여만원에 달하는 고정수입을 표성룡회장에게 안겨주고있다.

신성그룹에서는 300여명의 정식로동자외에도 2000여명의 림시직로동자를 고용,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그 외에도 강철교역시장의 400여개 매장에서는 해마다 국가에 200여억원의 세금을 납부하고있고 명렴가종합시장의 1000여개 매장에서는 3000명의 상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어 그들이 해마다 국가에 1000여만원의 세금을 납부하고있다.

과학연구원에서는 다년간 물에서 수소를 뽑는 연구와 페광석에서 휘발유, 디젤유를 뽑아내는 연구실험이 진행되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일이라고 도리머리를 떨지만 표성룡회장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며 연구일군들의 신형에너지개발을 독려하고있다.

심양에서의 토지확보가 한계에 이르자 그는 통화지역에서 3000여무의 산을 확보했고 철령, 법고, 동릉 지역에서 각각 500여무에 달하는 산을 확보하면서 그는 현재 7000여무의 땅을 소유한 명실상부한 조선족《대지주》로 되었다.

해마다 강재시장과 종합시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톡톡한 매장 임대료수입은 그의 사업확장과 민족을 위한 성금으로 사용되고있다.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 설립대회에서 20만원 수표를 전하는 표성룡회장.

자신에겐 《깍쨍이》, 민족사회 후원에는 1000만원 쾌척

짙은 평안도 억양을 구사하는 표성룡은 자신에 대한 소비지출에서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 신분에 걸맡지 않은 《깍쟁이》이다. 평소 입고다니는 양복은 1000여원짜리, 검은 정장구두는 몇백원짜리, 출장가서 구두가 더 이상 신을수 없을 정도로 닳게 되면 당지에서 새 구두를 사서 신는 그이기에 그의 집 신장에는 구두가 몇컬레 없다.

그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을 맡은 후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비행기 특등석을 타본적이 없다.

이런 그이지만 중국 조선족사회와 조상의 넋과 얼이 묻힌 조선반도에 대한 지원은 물심량면, 언제 한번 게을리한적이 없다.

2004년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표회장은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 사무장소가 없는것을 보고 그는 200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구매해 사무실로 제공하였고 이듬해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 전 성 규모의 《조선족민속절행사》를 개최하려 하자 그는 기업인들을 동원해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부족한 자금 20여만원은 기꺼이 자기가 안았다.

현재까지 료녕성조선족민속절행사가 7회째 개최되였는데 표회장은 번마다 20-30만원의 자금을 후원하였고 또 단동, 무순 등 시의 조선족행사에 초청되면 즉석에서 1만원씩을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료녕성 각지의 조선족 사회단체들에 그의 후원금이 닿지 않은 구석은 없을 정도다.

표성룡은 2010년에 심양에서 진행된 전국조선족노래자랑 콘셔트를 단독후원하여 민족사회에 또 한번 센세이션(轰动)을 일으켰다.

해마다 기업가협회의 수십만원에 달하는 일상경비를 단독 부담하는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는 조선족행사에 초대될때마다 수만원씩 후원하다보니 지난 10여년간 민족사회에 기부한 돈은 1000만원이 넘는다.

근년래 그의 사적이 국내외의 여러 우리 글 매체들에 전파되면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빈곤학생들의 편지가 눈송이처럼 날아드는데 최대로 한해에 20여통을 받기도 했다. 그는 번마다 비서를 시켜 생면부지의 학생들에게 수천원씩 기부금을 보내주지만 지금까지 표성룡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온 이는 고작 4명꼴이다. 표성룡은 조선족학생들의 《도덕불감증》을 한탄하면서도 지금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문전박대》한적이 한번도 없다.

표성룡은 조선에서 자연재해를 입을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바 2003년에만도 씨감자 10톤을 보내주었고 2004년 4월 룡천역 폭발사고가 발생했을때에는 밀가루 5톤과 이불 550채, 신발 600컬레, 양말 2000컬레를 보내주었으며 2010년에는 옥수수 12톤을 지원, 지난해에는 그릇 10만개를 조선에 보내주었다.

지난 6월에 발생한 한국 유람선《세월호》참사후 그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리사회의 해당 책임자들과 함께 한화 1000만원을 주심양한국총령사관에 건네고 위문의 뜻을 전했다.

정부지원 없이 심양조1중 현대화 교수청사 일떠세워

2000년 표성룡회장이 모교인 심양조선족제1중학교에 새 교수청사를 지어준 일은 심양시 조선족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가 심양지역 조선족사회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일이기도 하다.

모교의 력대 지도부에서 공화국창건 당시에 지은 락후하고 비조운 학교의 교수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표성룡회장은 자신의 토지에 심양조1중의 교수청사와 부속건물 및 교원아파트까지 지어주고 심양조1중의 원터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이 일을 추진해나갔다.

정부지원 한푼 없고 수중의 자금도 넉넉치 않은 그였지만 모교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여기저기서 건축자금을 둘러대고 시공을 시작하여서부터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공사현장에 나가 독려하며 기한내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00년, 그가 뚝심으로 밀어붙인 보람으로 심양조1중은 원래 규모의 3배에 달하는 부지면적 9만평방메터, 총건축면적 4만평방메터의 새 종합교수청사와 실험실, 체육관, 학생기숙사, 식당, 교원아빠트, 보이라실, 주차창고 외에도 표준적인 400메터 운동장 등을 구전히 갖춘 현대화건물이 우뚝 일떠서면서 료녕성중점고중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료녕성 정협위원을 3기째 련임하고있는 표성룡회장.

조선족 성정협위원의 사명감 잃지 않고

련속 3기의 료녕성정협위원인 표성룡은 법고현에 단독 투자하여 《성룡희망학교》를 지어주고 후원을 계속하고있으며 문천지진, 옥수지진 발생시에도 앞장서 성금을 내여 그 선행이 료녕성정협 내부간행물에 실리기도 했다.

그외 조선족 성정협위원으로서 그는 조선족의 합법적리익을 수호하기 위해 《조선족이 아이 둘을 낳는것을 허용해줄데 관한 제안》, 《일정한 수자의 조선족간부를 발탁시켜줄데 대한 제안》, 《조선족학교들에 대해 교육경비를 증가시켜줄데 관한 제안》 등 조선족사회의 민생발전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중대제안들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여왔다.

《내 일생을 가감없이 다른 드라마 제작하고싶다》

중국 전역에는 27개의 성급 혹은 지구급 조선족기업가협회가 있다. 이들을 아우르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의 회장을 맡은 이는 락을 보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단지 조선족사회에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표성룡회장. 그의 사무실에는 다년간 전국 각지의 여러 단체들로부터 받은 감사패가 200여개나 무더기로 쌓여있다.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에 이어 중국조선족은행과 중국조선족주식회사의 꿈을 꾸고있는 표성룡회장에게 또 다른 꿈이 있습니까?》하는 기자의 물음에 표성룡회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있다》고 말했다.

《전국 여러 TV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개인사적을 다룬 드라마들을 보면 거의 전부가 적극적인 면만 다룬 것들이다. 나는 내 나이 일흔이나 일흔다섯살쯤 되면 나의 일생을 가감없이 다룬 드라마를 촬영할것이다. 중국조선족뿐만아니라 해외 조선족, 전국 각지의 여러 민족 젊은이들에게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창업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싶다.》

환갑을 맞은 표성룡의 《꿈》들이 하나둘 이루어져 전 세계 조선족들에게 무한한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부여할 그날을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유경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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