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기술혁신으로 자체 브랜드 창출하는《창미달》-김창호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월8일 21시31분    조회:93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창호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93)

 
《창미달》회사 김창호리사장이 새로 개발한 불루투스(蓝牙耳机)에 대해 소개하고있다

 김창호(金昌浩) 프로필 

1971년 9월 17일, 흑룡강성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출신

1993년 가목사공학원 졸업

청도창미달전기유한회사 리사장

청도조선족기업인협회 제7, 8회 회장

전국조선족기업인협회 부회장

세계한상대회운영위원회 위원장

교남시정협 상무위원

교남시소수민족련합회 회장. 

 

계속되는 금융위기와 중일무역의 하락, 인건비 상승 등 원인으로 연해지역 조선족기업들이 경영난에 봉착해 고전하는 가운데 청도창미달전기유한회사 리사장 김창호(44세)는 《기업의 유일한 생존전략은 끊임없이 자주적인 기술혁신으로 자체 브랜드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브랜드창출 전략으로 기수를 돌려 불경기의 도전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만들고있다.

기자일행은 청도 교남시에 자리잡고있는 창미달(昌美達)전기유한회사를 찾아갔다. 김창호리사장은 로동복차림을 한채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공장을 한바퀴 빙 돌아보면서 소개했다.

김창호 소개에 따르면 《창미달》 회사 이름 또한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번영창성을 의미하는 자신의 이름 중간글자 창(昌)자와 아름다운 제품을 의미하는 부인(김미옥)이름 중간글자 미(美)자를 따다 거기에 목표달성을 의미하는 달(達)을 합성한것이다. 김창호는 회사 이름에 걸맞게 기업을 운영해가는 기업인임이 틀림없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자체 브랜드 개발해야》

《창미달》의 자산은 1억원, 호경기일 때 2007년엔 플라스틱사출품 수출로 년간매출액이 1억 7000만원 최고봉에 달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봉착했을 땐 7000만원으로 급락하기도 했었다.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관건적인 시각, 김창호는 재래의 운영방식을 자주적인 기술혁신 전략으로 신제품연구개발에 도전했다.

김창호는 《누구나 써도 편하게 쓸수 있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는것이 소망이다》고 말한다.

김창호는 우선 2011년부터 금형사업에 대한 핵심기술투자를 본격적으로 늘여 2012년부터 금형 내외가공을 시작해 매출액 1000만원을 2014년엔 2000만원을 올렸다.

또 아이템(항목)을 잡으려고 상점, 시장을 다녔고 탄탄한 금형설계, 프로그람설계 연구팀원들을 이끌고 광주, 심수 등 지역을 돌면서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김창호는 신제품 개발때에는 바이어(客户)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밤낮없이 실험하고 고치고 했다. 2일-3일 련속 집에도 못가고 쏘파에서 30분씩 새우잠을 자면서 성공할 때까지 한우물을 팠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김창호는 끝내 2013년부터 자체기술개발로 CMD브랜드의 공기청정기, 차량용청정기, 정화샤워기를 20만대 이상씩 규모생산에 성공했다. 또 2014년 4월부터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고음질의 불루투스(蓝牙耳机)를 개발해냈다.

김창호는 《새로 개발한 CMD브랜드의 공기청정기 등은 소주, 광동, 위해 등 지역에 대리점들이 있는데 범위를 더 넓게 확대할 타산이다. 그리고 불루투스는 재래의 불루투스보다 음악소리가 맑고 깨끗하여 주변 지인들의 인정과 환영을 받고있는 상황인데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들어가게 된다》면서 《좋은 제품일지라도 홍보도 뒤따라야 할것이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김창호는 기업이 발전하려면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해야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직원들도 동시에 성장해야 한다며 인재양성과 직원들의 대우에도 조금도 소홀치 않았다.

 
김창호사장이 현장에서 기술지도를 하고있다

《하고싶은 일 있으면 도전해보라》

흑룡강성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출신인 김창호사장은 《하고싶은 일 있으면 도전해보라, 후회없는 삶을 사는것이 내 인생의 가치관이다.》고 말한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한 김사장은 일본기업들이 대거 밀려들던 1994년 청도로 진출했으며 대학에서 전자기술을 전공한 우세를 발휘해 청도에 정착한 삼미(미쯔미)일본회사에 취직했다.

김창호는 2001년 년말까지 8년동안 이 회사에 근무하며 근면,성실 문화를 몸에 익혔다. 처음 1년동안 그는 사전을 들고다니며 열심히 일본어공부를 했다. 일본인과의 일상대화가 가능해지니 회사관리인들과 소통도 잘 이루어졌다. 김창호의 정직하고 신용을 잘 지키는 인간됨됨이로 일본사장은 그를 일본에 연수를 보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본연수를 하는 기간 그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는 현장에서 일하며 기술과 관리를 배웠고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일본어교육을 받았다.

2002년 김창호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다시 일본으로 갔다. 2년동안 다른 일본전자업체에 근무하며 기술과 관리방식을 익혔고 인맥을 쌓았다.

김창호는 《당시 일본에서 근무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독립적으로 창업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단연 귀국했다》고 말한다. 관리가 첫째인 일본기업에서 한우물을 파며 기술과 관리방식을 익힌 밑천이 튼튼했기때문에 그만큼 확신도 컸다.

《시작이 절반, 꾸준히 하면 앞이 보인다》

김창호는 일본에서 귀국후 2004년 4월부터 창업준비를 시작, 그해 8월에 정식 가동했다.

김창호가 귀국하여 창업한다는 말을 듣고 한회사에서 2년간 함께 근무했던 일본인친구가 10만딸라(당시 80만원)를 내놓으며 사업에 보태라고 했다. 김창호의 정직함이 일본친구에게 믿음을 주었다.

김창호는 부인과 함께 번 돈 80만원과 일본인친구가 빌려준 돈을 합쳐 총 160만원을 종자돈으로 청도황도개발구에 로동자가 20여명되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현재는 직원이 380여명이 된다.

김창호는 초창기에는 밤을 새며 기계설비를 조립하고 시험가공을 했다. 첫 제품을 가공할 때 련 며칠 실패를 거듭했다. 일본바이어가 오기로 한 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와 마음이 재더미가 되듯 타들어갔다.그러나 끝을 보고야마는 김창호의 《뚝심》은 드디여 빛을 보게 됐다.

일본바이어가 오기로 한 날 아침 새벽에 샘플이 나왔다. 김사장은 그길로 옷을 갈아입고 일본바이어를 만나 첫 오다를 받았다. 참말로 고비사막에서 물을 찾아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난 짜릿한 기분이였다. 입소문을 타고 오다가 하나둘씩 늘어나 창업 이듬해인 2005년엔 3200만원의 매출을 올려 대성공을 했다.

김창호는 《시작이 절반이라, 꾸준히 하다보면 점점 앞이 보인다》며 경험을 털었다.

김창호는 운영자금이 딸리는 상황에서도 그해 년말 일본친구가 빌려준 10만딸라를 우선 상환해주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사례금으로 420만원을 일본친구에게 주었다.그 일본친구는 로동자로 일하며 어렵게 살면서도 《회사경영이 어려우면 다시 가져다 쓰라》며 사례금으로 준 돈을 은행에 몽땅 예금해두고 일전 한푼 쓰지 않고있다고 한다.

《사회적책임감 있어야 사회가 조화롭다》

《사회적인 책임감이 중요하다. 책임감이 있어야 사회가 윤활할수 있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김창호는 늘 이렇게 말했고 또한 행동에 옮겼다.

그는 자체의 기업을 운영하는 한편 사회적으로 청도조선족기업인협회 제7, 8회 회장, 전국조선족기업인협회 부회장,세계한상대회운영위원회 위원장,교남시정협 상무위원,교남시소수민족련합회 회장직을 맡은 기간 높은 책임감으로 조선족교육, 문화, 경제 등 발전에 많을 기여를 해왔다.

청도에서 조선족기업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협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조선족 여러 사회단체 회장들은 서로가 일심협력하여 《민속문화축제》등 대형활동을 통해 민족전통문화를 고양해감에 리더역할을 해왔으며 경제지원에 협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창호는 또 개인적으로도 애심을 베풀었다. 서울대학에서 공부하는 할빈출신 조선족학생의 가정이 어렵다는 말을 전해듣고 2011년부터 매년 3만원씩 대주고있으며 2012년엔 청도 정양조선족학교에 청도조선족기업인협회 회장단이 30만원을 기부했을 때 김창호본인이 5만원을 기부했다. 또 2012년부터 고향인 탕원현조선족중학교에 매년 3만원씩 련속 10년동안 장학금을 지원키로 했다.

 
청도 교남시에 자리잡고있는 창미달(昌美達)전기유한회사 정문

길림신문 신정자 최화 기자

 

파일 [ 4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촬영 내내 목 메어도 참 행복했소' 첫 일본군 위안부 소재 영화 ‘소리굽쇠’ 출연 中조선족 배우 이옥희 씨 30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굽쇠’는 여러모로 ‘커다란’ 영화다. 규모만 따지면 제작비 3억8000만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지만 담긴 뜻이 크다.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 2014-10-27
  •        (흑룡강신문=하얼빈) 이흔 기자 =  하얼빈사범대 학화학화공학원 부원장 김영학(남 49세)박사는 유기화학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고있다.   헤이룽장성 경안현 출신인 김영학 부원장은 1990년 연변대학 이학석사학위를 졸업하고 자무쓰대학(佳木斯大学)에서 10년간 교편을 잡았다...
  • 2014-10-23
  •      “안녕하세요. 서방흥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청취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서방흥아나운서였다. 단색TV도 없었고 라지오만이 신문과 더불어 세상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유일한 소통수단이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을 라지오에서 흘러나오는...
  • 2014-10-22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87) 김의진(金毅振) 프로필: 1956년 길림성 화룡현 출생 1978-198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1982-1990년 중앙민족번역국 공무원, 《자본론》등 경전저작 번역 참여 1991년부터 관광분야 등 실체 운영, 수백만명 관광객 유치 및 접대, 중한민간교류 가교역할 담당 북경일...
  • 2014-10-16
  • (흑룡강신문=하얼빈)진종호기자 = 8년간의 한국로무생활을 접고 귀향해 '현대농민'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으며 위기에 처한 마을의 중임을 선뜻 떠매고 나선 젊은이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바로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홍광촌의 리명광(44세)당지부서기겸촌주임이다.   겉으로는 왜소하고 차분해보이지만 남...
  • 2014-10-15
  • 진청민 731부대 진열관장 재중(在中) 동포 역사학자인 진청민(金成民·50·사진)씨는 1932~1945년 만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잔학 행위를 증언해줄 전직 부대원을 만나기 위해 2008년 일본으로 향했다. 731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오카와(大川)씨의 당시 나이는 95세였다. 오카와씨는...
  • 2014-10-15
  • 연길시 향란요가구락부 전향란원장의 소박한 꿈   “춤을 통해 건장을 찾고 함께 꿈을 실현해가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생활공간, 문화공간으로 거급날것입니다.” 연길시 향란요가구락부의 전향란원장은 구락부 설립 10주년( 2004년 10월 1일 오픈)맞으며 자신의 속내를 내비쳤다. 연길공원 맞은켠 정보산업...
  • 2014-10-14
  •     실수를 뒤집으며 성공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 “8시”의 정확한 발음은 어떠할가?  “야듭시”라고 습관대로 튀여나왔는데 파트너가 “여덜시”가 정확하다고 귀띔해준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여 낸 첫 방송인데 실수투성이다. 그 기억이 9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 2014-10-13
  • 장만흥 명예회장 “대련, 中 북방에서 제일 큰 항만도시”   한 달 전 회장직에서 물러나 현재는 명예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ZXOIL’(정흥석화)라는 석유제품을 다루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만흥 중국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 명예회장은 대련(大連)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
  • 2014-10-11
  •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창립 50년 맞아 기념식과 포럼 개최 "동포 문제, 학문적으로만 파고들면 안 돼…현장에 답 있어"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사단법인 해외교포문제연구소가 창립 50년을 맞았다. 국내 재외동포 단체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이구홍(72) 이사장이 창립한 이 연구소는 10일 오전 서울 종...
  • 2014-10-1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