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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속에 묻힌 민족력사 뿌리를 찾는 기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월20일 22시26분    조회: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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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호림

중국국제방송국 김호림기자 전국 방방곡곡에 답사발자취...책 4권 펴내

민족력사의 뿌리를 찾아 답사길을 톺는 김호림기자

1월 12일, 세월속에 깊이 파묻혀 잠들고있는 민족력사의 뿌리를 찾아 전국 답사길에 오른 중국국제방송국의 김호림기자가 연변을 찾았다. 항일전쟁승리 70돐을 맞아 지난해 10월부터 항일전쟁 관련 인물과 전적지 취재의 일환으로 제한된 휴가시간을 타 빡빡한 일정의 답사길에 오른것이다.

연변에서 김호림기자는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왕청현항일유격근거지였던 마촌과 룡정시 팔도촌에 있다는 병풍산 벼랑의 항일구호, 장승촌의 일본군 위령비 등을 답사할 예정이였다. 1월 14일, 기자는 김호림기자의 항일전적지 답사길에 함께 동행하면서 흘러간 력사속에 묻혀있는 수많은 항일 인물들과 사연들을 만나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가져보았다.

경사도가 가파로운 팔도 오봉산의 병풍산을 힘겹게 톺아오르면서 저 멀리 쳐다보이는 산정상에 30년대 항일유격대가 써놓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항일구호가 있다는 기대감에 힘든줄 몰랐다. 이날 병풍산의 항일구호는 오랜 력사의 흐름속에서 자취가 묘연해져 아쉬움이 남았지만 힘든 답사길과 력사의 현장에서 느껴본 답사의 의미는 보람차고 소중했다.

김호림기자에 따르면 왕청현항일유격근거지의 하나였던 마촌은 이미 지난 2000년대초에 저수지 개발로 물속에 사라져버렸다. 소실된 마을임을 알고있지만 김기자는 기어이 그곳에 가보았다고 한다. 답사의 의미는 현지답사를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확인과 발견 그리고 발굴 등 노력들이 현실의 가치 있는 반추로 재충전되기때문이다.

이번 걸음에 연변에 오기전 김기자는 북경에서 이미 주은래총리의 기요비서로 있으면서 도장관리까지 책임졌다는 조선족 리재덕(96세)로인에 대한 취재도 마쳤고 흑룡강성 할빈시에 가서 흑룡강성 전 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며 동북항일련군의 살아있는 력사인물인 항일로전사 리민(91세)로인도 만나보았다. 김호림기자는 이분들은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기념비, 전설 같은 인물들이라고 말하면서 이분들에 대한 취재는 취재의 감동을 벗어나 직업기자의 무한한 보람과 기쁨이였다고 말했다.

겨울철 미개척지인 답사지로 향하는 길은 항상 힘든 숫눈길이다.

답사길에서 만나는 작은 산 하나, 작은 바위 하나에도 김호림기자에게는 마를줄 모르는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이 있었다. 김기자는 연변의 허다한 산과 강 그리고 마을들마다 력사가 있고 그에 깃든 전설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찾는것은 바로 우리의 뿌리를 찾고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찾고싶기때문이다.

김호림씨의 고향인 연길시 소영촌은 력사가 깊은 고장이다. 고구려때에 쌓았으며 발해, 료, 금 시기에 계속 썼다고 전해지는 동하국(东夏国)의 유적지인 성자산 산성이 있는 곳일뿐만아니라 초기 공산주의자 리동휘가 학교를 세웠던 고장이기도 하다. 연변 《해란강참안》의 견증인인 김신숙할머니와는 한마을에서 살았다.

연변으로 놓고보면 그런 큰 력사가 고향마을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러한 소중한 력사 자원들과 인물들을 수집정리하지 못한것에 김호림기자는 지금도 못내 아쉬워했다.

김호림기자가 연변지역의 많은 력사사실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게 되였던것은 어렸을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던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호림기자에 따르면 소학교때 그가 모아두었던 그림책을 합작사에서 도로 구입해 책열람대를 크게 만들었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즐겼다. 조부님도 책을 무척 즐기고 소장하고 계셔서 《삼국연의》나 《수호전》,《홍루몽》같은 소설책도 수없이 봤다고 한다. 동네 조선글로 된 책은 거의 다 빌려서 보았으며 대학교때는 재교생가운데서 학교 도서관의 책을 제일 많이 읽은 학생이라고 할 정도로 책속에 파묻혀있었다. 어렸을 때 중의로 계셔던 조부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들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렇게 얻어진 다양한 력사지식과 함께 고대성곽 답사때에는 연변대학 발해사연구소 전 소장이였던 방학봉교수 등 석학들의 도움과 가르침도 많이 받았다. 방학봉교수는 발해사와 관련해 펴낸 책자만 해도 수십편에 달할 정도로 발해학연구분야의 권위인물이다.

소영촌에 있을 때 물에 밀려서 떠내려온 오래된 유골이며 원족 가면 만나군 했던 성자산 산성도 당시로서는 마땅히 해석시켜줄 력사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없었고 그것이 어린 김기자에게는 궁금하고 알고싶은 력사의 비밀들이였다.

《룡정지명지 기원으로 된 우물도 개척민들이 옛 우물을 발견해서 이름 지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룡정을 개척하기 전에도 그곳에서 누군가가 우물을 먹으면서 살고있었다는 발견이 아니겠어요?》 김호림기자는 그렇게 력사에 대한 비밀을 항상 궁금해하고 세월속에 묻혀있는 잊혀진 력사를 찾고저 노력했다.

김호림기자는 답사를 통해 민족력사의 뿌리를 찾고 우리가 나갈 방향을 찾고싶다고 말한다.

1989년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중국국제방송국에 입사한 김호림기자는 고향인 연변을 떠나 생활하게 되면서 지난 1990년대초부터 민족의 뿌리 찾기에 점차 눈길을 돌리게 된다. 북경에서 생활하면서 북경지역에 있는 허다한 우리 민족 우수인물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그들의 성공인생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식도 배웠다.

모택동주석의 보건의사였던 천련필, 공군부대 부사령원 리영태, 중국공정원 원사 강경산, 중국과학원 원사 김홍광, 천안문광장 국기게양식 군악대의 5명 조선족 군악대원들...김호림기자는 연변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북경에서 살면서 참으로 많은 우수한 조선족들을 만나고 또 취재할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자호감과 긍지를 느끼게 되였다고 말했다.

《무슨 일인가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는 그 뿌리를 찾아가게 되며 이는 일에 집착하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성인것 같다》고 김호림기자는 말했다.

민족인물에 대한 관심과 함께 민족력사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는데 북경에 있는 고려영과 하북성 당산에 있는 고려포, 북대하에 있는 고려우물 등 고대 지명과 유적에 대한 전국 각지의 취재와 답사를 거듭하면서 고구려성곽만 7~8년동안 답사하고 집필하기도 했다.

김호림기자가 2000년초반부터 민족의 뿌리를 찾아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작성한 글들이 적지 않은데 륙속 책으로 출간되여 주목받고있다. 김호림기자의 글들은 자칫 따분한 력사이야기들이지만 재치있는 필치로 현장감 있게 다듬어져 재미있는 현실이야기처럼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연변의 팔도 병풍산 바위에서 력사의 흔적을 찾고있는 김호림기자

김호림기자는 그동안의 꾸준한 취재와 기나긴 답사 그리고 끈기 있는 집필작업을 거쳐 완성된 원고들로 2005년도에 《신화를 창조하는 사람들》과 2011년도에 《간도의 룡드레 우물에 묻힌 고구려성곽》을 출간한데 이어 2012년에는 《고구려가 왜 북경에 있을가》, 2013년에는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인 《연변 100년 력사의 비밀이 풀린다》 등 4권의 도서들을 륙속 펴내 민족사회와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올해에도 김호림기자는 《대륙에서 태양을 쫓는 박달족의 이야기》와 《중국 대륙을 뒤흔든 조선족인들》을 쩨마로 한 책 2권을 출간하려 계획하고있다.

김호림기자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나를 알고 어디로 갈것인가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답안을 찾을수 있다》고 강조, 《여태껏 사비로 시간과 정력까지 허비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다고 <답사에 미쳤다>고 말하는 지인들도 적지 않다》고 웃어보였다. 김호림기자는《민족의 뿌리를 찾아나서는 작업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의미 있는 작업이기때문에 드팀없이 견지하고 걸어나갈것》이라고 밝혔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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