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음악가 김봉호,식을줄 모르는 열정 – 애틋한 고향 정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2월14일 07시50분    조회:793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봉호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

--- 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중앙인민방송국 조향란

제4편 식을줄 모르는 열정 – 애틋한 고향 정

선생님의 최근 모습

선생님은 1937년 조선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여났고 1941년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화룡현으로 이주하였다. 선생님은1957년 화룡현 문공단 응시에 합격되여 문공단 배우, 부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63년 6월, 선생님은 중국 음악가협회 연변분회에 가입하였고 1974년 길림성 문화국 부국장으로, 1978년에는 길림성 문학예술계련합회 음악가 협회 부주석 겸 길림성 문학예술계련협회 위원으로, 1984년에는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 예술지도로 있었다.

그동안 선생님은 중국 음악가협회 제4기 상무이사, 중국 조선족 음악연구회 상무이사로도 활동하였다.

은퇴해서는 중국 음악저작권협회 이사, 중국 음악문학학회 회원, 중국 소수민족성악학회 이사로 있으면서 각종 문화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동북삼성 창작강습반 학원들과 함께

“중국민요(中国民歌)”프로그램 게스트로 초대, 조선족가수들과 함께

최근 선생님은 북경시 조선족사회 행사에도 가끔씩 얼굴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북경 근교인 하북성 삼하시 연교에서 열린 “워커힐”컵 전국조선족노래자랑에 선생님은 심사위원으로 초대되기도 했다.

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그동안 선생님은 천5백여수의 작품을 창작하였고 국가급, 성시급 상을 무려 백여차례나 받아안았다. 선생님의 서재에는 그동안 받은 상장들이 두툼하게 쌓아져 있다.

1996년 선생님은 “중국가요계 20년의 휘황한 력사”의 작곡 성과상을 수여받았고, 2005년에는 국제중화문화예술협회로부터 “중화우수예술가”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선생님의 존함과 업적은 또 “중국예술가사전”, “중국대백과전서”, “중국당대문화예술명인사전”, “음악감상”, “중국공산당원명인사전”, “중국소수민족예술사전” 등에 수록되였다.

선생님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여나 50여년간 예술인으로 살면서 이 같이 평범치 않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몇년 다니지 못하고 중퇴해 농사일로 뼈를 굳혔으며 음악에 대한 애착심 하나로 화룡현 문공단에 들어가 한걸음 한걸음 자리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외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성공의 비결에 대해 선생님은 대중성을 첫자리에 놓고 군중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며 군중속에서 령감을 얻고 진정 군중을 위한 노래를 창작한것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셨다.

듣고 보면 쉬운 말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여 누구나 성공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음악에 대한 식을줄 모르는 정열과 피타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선생님은 업계에서 “부지런한 작곡가”로 정평이 나있다. 창작초기, 선생님은 신변의 음악가들, 말하자면 정진옥, 동희철, 리인희 등 선생님들이 쓴 곡들을 반복적으로 듣고 분석하면서 그속에서 정수를 뽑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정립하고 시대와 더불어 혁신을 거듭하면서 선생님은 시대를 풍미하는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선생님의 존함과 작품은 말 그대로 “력사의 기억이고 시대의 부호”이다.

길림성 출신 성악작품음악회 음악가들과 함께

칠순을 넘기신 지금도 선생님의 창작열정은 식을줄 모른다.

몇년전 선생님은 해남도 관계부문의 요청을 수락해 려족과 묘족 기념행사 주제곡을 썼다. 공연에서 선생님이 쓴 주제곡은 대절찬을 받았다.

그리고 또 북경에서 열린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을 위해 주최측의 요청으로 민족단결을 구가한 “우리의 가원 (共同的家园)”이라는 주제곡을 창작했다. 선생님의 인기는 아직도 식지않은 모양이다.

음악계 지인들과 함께 해남성 현지 고찰

선생님은 또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장고야 울려라”를 창작했다. 당시 선생님은 연변문학예술인련합회로부터 고향을 노래하는 곡을 써줄데 관한 청탁을 받았다. “고향”이라는 단어만을 듣는것으로 선생님은 가슴이 뭉클했고 그 자리에서 선뜻 청탁을 받아들였다. 창작과정을 회억하면서 선생님은 고향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그대로 드러냈다.

“장고야 울려라”, 길림성 제8기 장백산문예상 수상

고향이 선생님께 한마디로 어떤 존재이냐고 물었을때 선생님은 “고향은 생활의 원천”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하셨다. 선생님은 “고향이 없으면 나의 일체가 없다, 고향의 물, 고향의 쌀이 나를 길러줬기때문에 어데 가나 고향을 잊을수가 없다”고 감개무량해 하셨다.

이젠 고향을 떠난지도 40년 가까이 되지만 선생님의 고향 사랑은 끈끈하다. 연변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꿈을 꾸어도 장춘이나 북경이 아니라 고향에 관한 꿈을 꾼다는 선생님, 같이 일하던 문공단의 동료들, 고향 마을 어느 초가집 그 누구, 길가의 이름 모를 화초들…정녕 고향은 선생님의 전부나 다름없다. 선생님의 노래를 통해 선생님의 그 고향사랑이 고향의 모든 사람들께 전해질수 있었으면 좋겠다.

맺으며

누군가 좋은 작품은 창작이 어렵고 그보다 더 어려운것은 보급이며 그 보다 또 더 어려운것은 긴 생명력을 갖는것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이 창작한 노래들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불려지는것을 보면 선생님은 그 어렵고 어려운 일을 결코 해내신 셈이다.

높은 학력, 전문 교육도 없이 단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오늘날 국가1급 작곡가 김봉호선생님을 탄생시켰고 앞으로도 선생님을 영원히 색바래지 않는 예술 인생속에 머물게 할것이며 선생님을 영원히 청춘으로 이끌어갈것이다.

수많은 영예증서가운데서 선생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감사패

연변조간신문 총편으로부터 감사패 넘겨 받으며

후기: 취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자신을 키워주고 빛나게 해준 고향인민들에게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고, 또 음악회를 위해 물심량면의 도움을 준 연변조간신문, 연변농촌상업은행주식유한회사, 연변우의유한회사...등 여러부문에도 사의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정상에 오른 선생님이지만, 지금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자세를 낮추며 이렇게 가슴 한가득 고마움을 지니고 사신다. 선생님의 행복한 만년을 기대해본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매편의 기사 모두 작품처럼] 《훌륭한 기자, 편집이 되려면 우선 신문사업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사업이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문화대혁명》이전부터 신문 기자, 편집 사업을 해온 김경석선생은 신문사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자, 편집을 하기 어렵다고 력설한다. 김경석선생은 1960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
  • 2005-11-09
  • 중앙 1호문건이 시달되자 농민들의 농사열정이 크게 제고되여 왕년에 버려져있던 묶은 경작지마저 다시 부치고있다. 그런데 경작지 면적에 비해 농촌의 로력이 딸리여 농망철이 되면 모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있다. 이를 감안한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 제2조의 황명선 촌민은 대담하게 7만 5000원의 돈을 들여 종합수확기 ...
  • 2005-11-08
  • [원제: 중국 진출 선진기술 앞세워라] 중국 진출 4년만에 발을 붙였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을 갔더니 대화 첫 머리부터 “중국은 시장이 큰만큼 기회도 많지만 그래도 진출시에는 반드시 선진기술을 앞세우고 들어 와야 한다”며 총화발언을 하는 김인규사장, 그는 건축도료 전문회사인 장춘(주)코미톤건자재유한회사의 주인...
  • 2005-11-08
  • [원제: 인생은 끝없이 일하면 사는것]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란 얼마나 신고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창업의 마음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 퇴직금에 자식들마저 잘 되고있어 아무런 뒤근심이 없다 할수 있는 퇴직자가 창업에 뛰여든다면 리해를 하지...
  • 2005-11-08
  • 상해 미술 전문학교 우등졸업 한낙연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당시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은 항일이란 큰 목표 아래 국공합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낙연에게 상부로부터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것은 국민당에 위장 입당해 대외적으로는 국민당으로 활동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중국공산당당적은 비...
  • 2005-11-07
  • 10월 21일 오전,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 21촌민소조의 조장 문영금씨로부터 시동생 최동원일가에 대한 소개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정말 그들처럼 착실하게 살면 외국에 돈벌러 가려고 아득바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량수촌권복순서기도 문영금조장의 말에 동을 달았다. 《부부가 손잡고 올해 논과 밭을 5헥트를 다루고있...
  • 2005-11-07
  • [원제:12살 연변소년 리소명 하버드대학생으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꿈, 올 대학입시서 660점 6월에 있은 전국고등학교입학통일시험에서 12살밖에 안되는 연변조선족소년 리소명이 6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낸 뒤 7월 그리고 8월에 있은 2차례의 하버드대학 중국류학생선정시험에서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확보해...
  • 2005-11-07
  • [원제:비룡실업의 진로밑에 깔린 《문화감각》] 박성룡총경리의 남다른 속궁리를 적어본다 1997 년 3 월18 일에 중국광전부의 허가를 받고 길림성광전청에서 전문 국내외 위성설비판매설계설치허가증을 취득하여 설립된 길림성비룡실업유한회사(간칭)는 현재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내외위성방송설비 판매, 설계,설치, 권한...
  • 2005-11-05
  • [원제:력사를 알아야 자존심 지킨다] [img count='1' img] 20여년간 조선인혁명가들을 조사연구해온 최룡수교수를 만나 9월중순, 길림대학 조봉빈교수로부터 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가 쓴 글을 받았는데 그것은 혁명과 예술을 결합시킨 한락연의 사적을 담은 글이였다. 그 글에서 우리 민족혁명가들의 사적을 발굴하기 위해 ...
  • 2005-11-05
  • [원제: 79세로인 웅변대회에 참가해] 발표시간: 2005-11-03 오후 3:33:10 주당위 선전부 문명판공실에서 주최한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가 어제(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67세에 나는 훈춘시교육국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량조희가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전...
  • 2005-11-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