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자신들의 언어와 기억을 저장한 외에도 우리의 조상들은 종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물건들을 만들어 썼다. 종이가운데서도 흔히들 “한지”라고 부르는 조선종이는 질기고 오래 보존할수 있는 장점때문에 명품종이로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이처럼 질 좋은 한지로 만들어낸 일상 도구들은 보기에 정교하고 아름다울뿐만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실용성이 뛰여나 오늘에 와서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최근에는 이 같은 한지공예를 하나의 문화트랜드로 부상시켜 여러가지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는것은 물론, 생활인테리어에도 널리 활용한다.
14일, 다년래 연변에 한지공예를 널리 전파하며 새로운 한지문화예술의 붐을 일으키고있는 이담문화원을 찾았다. 계단을 올라 문화가 숨 쉬는 공간에 이르니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내리는 해빛은 칸막이 대용으로 공간 한가운데 길게 드리운 채색비단을 뚫고 지나며 바닥에 잔잔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켠에는 장롱, 패물함, 다반, 함지박, 항아리, 대야 등 한지공예작품들이 조용히 진렬돼 있었고 창과 가까이 한 제작공간에는 아직 작업을 기다리는 공예품 재료들이 쌓여있었다.
“한지공예는 선조들의 생활정신과 검소한 마음을 담고있을뿐만아니라 전통의 미와 자연의 미가 고루 어우러진 예술입니다.” 이담문화원을 경영하고있는 최영화 원장(44세)의 소개였다. 하지만 그녀는 경영보다는 “문화의 나눔”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지공예를 배우고 이러한 배움을 통해 또 하나의 문화를 몸에 실을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녀, 그녀의 한지공예도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이담문화원의 시작은 한지공예가 아닌 다도(茶艺)였다. 전통무용을 전공했지만 10년 넘게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식품업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옹근 청춘을 불태웠던 그녀가 문득 자신의 길을 찾아나섰을 때, 서예스승으로부터 “이담”이라는 아호를 받게 됐다. 그 이름으로 무언가를 해내고싶었으나 구체적인 타산은 없었다. 그래서 3개월간 전통차를 연구하면서 이담예다원을 경영했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한국의 인사동거리에서 30년간 한지공예품을 만들어온 장인과 만나게 됐다.
우연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필연처럼 그녀를 강하게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일, 짧디짧은 사흘동안 그녀는 식음을 전페하다싶이 한지공예에 몰두했고 부족하게나마 한지공예의 기본적인 기술들을 장악할수 있었다. 그후 여러가지 필요한 재료들을 사들고 귀국하여 예다원을 정리하고 꼬박 일년간 한지공예 익히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유혹했을가? 그녀는 “나를 찾는 길”이라고 대답한다. “민족의 뿌리와 세포는 늘 내 몸속에서 숨쉬고있었습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잊고 살았을뿐이였죠. 그러다 문득 내가 그것을 감지하게 됐을 쯤에 우연히 한지와 만난것입니다.” 그녀는 한지는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말한다. 특히 질긴 속성이며 소박한 아름다움은 조선족과 너무 닮아 놀랍다고 했다. “한지는 우리 민족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지요. 한지를 통해 저는 다시 민족의 지혜를 느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을, 그속에 있는 나 자신까지 알게 됐어요.”
이듬해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싶다는 생각에 한달에 한번씩 6~8명의 체험자들을 모아 무료체험을 시작했으며 소도구나 다반 같은것들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한지공예를 전수하는 이담문화원이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문화의 전수, 그녀가 말하는 “이담”의 역할은 바로 그런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문화는 단지 한가지에만 지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많은 쟝르가 모여 하나의 민족문화를 이루며 다만 하나로 그 방대함을 표현할수 없기에 각자가 나뉘여 여러 형태로 문화를 표현하는것이다. 그러니 한지공예 한가지로 민족문화를 대표할수는 없지만 그 하나로도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과 지혜는 다 표현해낼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과 지혜는 널리 알려져야 한다.
“한지공예는 결코 제것이 아닙니다. 몇천년전부터 내려온 민족문화의 전통일뿐이고 저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가질수 있는 기술이기에 남보다 조금 일찍 그것을 배운 제가 그들에게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이어줄수 있지요. 그 점이 중요합니다.” 문화를 전파하는 일은 언젠가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며 현재 이 시점에서 그 역할이 자신을 찾아왔기때문이라는것이다.
하기에 그녀는 한지공예에만 머물고싶지 않다고 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도와 한지공예문화를 몸에 싣게 한후면 또다시 새로운 우리 문화 익히기에 나설것이란다. 또한 그 꿈 너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진정한 “이담”의 모습을 찾을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있었다.
작년에 이담문화원의 회원들은 작품전을 치렀으며 꽤 좋은 반향을 얻었다. 앞으로는 회원들이 만든 한지공예품들을 상품화해서 더 널리 알리고싶으며 모든 한지공예에 필요한 재료들은 연변에서 직접 생산할수 있게 해 연변의 방식으로 한지공예를 표현하는것이 목적이란다.
글·사진 박진화 윤금희 기자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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