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차례진 인생을 넘치게 엮어가는 남희철교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6일 13시58분    조회:521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남희철

죽을 때까지 일하고 죽을 때는 벌통 밖에서 죽으며 평생을 타자를 위해 살다가 죽는 것이 일벌이다. 인간세상도 바로 그런 일벌 같은 사람들이 있음으로 하여 부단히 앞으로 전진하는가 본다

필자가 만난 남희철 교수가 바로 일벌마냥 자기에게 차례진 인생을 착실히 또한 넘쳐나게 엮는 일인다역의 사람이라 하겠다.

남희철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6년 연변TV에서 <문화광장> 프로의 첫 프로로 <두만강의 아들 석학 임범송>을 생방송할 때였다. 그 때 남희철교수가 진행자였다. 그 후 중한수교 15주년을 맞으며 ‘제 3차 연변경제문화인고찰단’ 일원으로 한국에 갔을 때 남희철교수를 동행하여 고찰단 리포트로 일주일 간 함께 지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화광장>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남희철 교수(좌 1)

그 때 남희철이 전문 방송인이 아닌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리론 석사연구생 지도교수인 것을 알게 되였다.

대학 교수가 혼자서 연변TV 정기 프로 기획, 프로듀서, 작가, 진행자 등을 담당한다니 그에 대한 호감이 깊어졌다.

“교수께서 어떻게 TV방송의 정기 프로 진행을 전담당합니까?”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이 음악을 접하는 경로가 날따라 늘어나고 있는데 이 공간을 외면하면 학자로서 스스로 올가미를 조이는 식이 됩니다. 때문에 이 공간을 외면하지 않고 교수 스스로 적극 매스컴을 리용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를 전파하고 민족의 넋을 심어가는 것이 오늘의 학자의 바른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교수의 화답이다.

남교수는 음악의 테두리만이 아닌 민족문화 발전에 립각점을 두고 자기의 리론연구 성과를 대중들이 쉽게 접수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 일례가 2006년 5월에 선을 보인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화광장> 전문 프로이다.

<문화광장> 프로는 남희철교수가 일인다역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30여명 엘리트를 세상에 홍보하여 우리 민족의 자랑찬 기백을 세인들에게 알려준 프로이다.

2002년 그가 책임편집을 맡은 대형 특집 <우리 노래 50년>은 길림성 라지오텔레비죤 우수작품 1등상을 받았고 2003년 CCTV (12채널, 3채널)에 방송되여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 <도라지>와 <아리랑>을 소개했다. 2009년 7월에는 련속 4회 조선족의 민간가요와 무용을 함께 담은 현대창작작품을 CCTV 음악채널 <민가중국> 프로에 올린데서 조선족 가요 무용을 놀라울 정도로 홍보하였다.

2007년 12월 남희철교수가 출판한 《중국조선족가요대전》과 2008년 6월에 출판한 《중국조선족동요대전》은 우리 민족이 특별히 기록할 자료로 자리매김했고 그의 주필로 된 《중국조선족음악문화사》는 2012년 국가신문출판방송국으로부터 ‘3개 1백’창시(原创)도서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남희철교수는 무려 100여편의 론문과 20여부의 저서를 펴내고 <조선민족전통음악사>, <중국조선족음악사>, <음악미학>, <서양음악사>는 그가 개척한 우리 민족의 음악연구 분야이다.

남희철교수는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상해음악학원, 조선 평양음악학원에서 음악리론을 전공, 조선에서 예술학 준박사 학위를 땄으며 중국조선족 대학음악교육사 첫 연구생 지도교수이다. 조선족 유명 가수 변영화가 바로 그가 양성한 석사연구생 가수이다.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문예프로>에서 인터뷰를 받고 있는 남희철교수

남희철교수는 또 언론인이고 기자이며 사회문제를 발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10여년 간 우리 민족의 200여명 엘리트들을 중앙급 매체 무대에 올린 유공자이며 6차례 중앙텔레비죤방송국과 한국 KBS방송국 특별프로에 출연한 인기인물이기도 하다.

2012년 남희철교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웃절’ 행사에 비춰 ‘이웃절’ 노래로 <함께 사는 우리 세상>을 선보였다. 그는 “정든 고향과 모국을 떠나 산 설고 물이 선 타향을 찾은 외국인들은 우리 지역 경제문화 발전에 필요한 존재이다. 이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교류하면서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며 국내 최초로 외국인 전문 프로그램 <이웃>프로를 설치했다. 하여 연변의 발전에 기여가 큰 26명 외국인들을 모시고 이들이 겪었던 고뇌와 성과, 희열을 당사자들의 이야기로 화면에 담아 방송해 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근 10년 사이 남희철교수는 <학문의 기본 자세와 도덕>, <렬사비론쟁>, <최초는 반드시 존중되여야 한다>, <책이 울고 있다>, <로년생활이 퇴직후의 일인가?>, <토론식 교육이 왜 필요한가?> 등 사회적 문제를 예리하게 꼬집고 칼럼을 발표했다. <꿈은 소중한 존재>, <방법은 꿈을 위한 사다리>, <자신심은 날개>, <청춘들이여 꿈을 가지자> 등 여러편의 평론을 발표했으며 <화해 평화로 가꾸어진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 묘지>, <일어나 어서 고향으로 가자>,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의 고향을 찾아서> 등 무게 있는 기사를 주류 매체에 발표해 해내외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1996년 5월 8일에 발표(연변일보)된 <방법은 꿈을 위한 사다리>는 전국 <조선어문>통일 시험문제로 출제되고 2014년 9월 17일에 발표(길림신문)된 <화해 평화로 가꾸어진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는 2015년 ‘길림신문상’ 1등상을 받았다.

<교수들의 창의력 여하는 혁신교육의 관건이다>는 글에서 남희철교수는 “창의력이 운명을 좌우하는 ‘꿈 사회’에서 연변대학이 좌절 없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교수대오 건설이 우선이 되여야 한다.”, “정보화 시대의 교수대오 건설이 학벌중심이였다면 혁신교육 시대의 교수대오 건설은 가장 중요한 기준의 혁신력이다”, “교수들의 창의력이 연구활동을 통해 제고되고 교수들의 연구활동이 주요 업적이 되며 일반 업적이 제한되며 사이비(事而非)업적이 징계될 때만이 혁신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고 제시하였다.

<학문의 기본 자세와 도덕> 이란 글에서 남희철교수는 학문연구의 기본자세와 도덕성 문제로 “첫째는 칭찬일변도 현상, 둘째는 형식주의 경향, 셋째는 도덕성 결여, 넷째는 건수(件數) 채우기 풍조”라고 귀납하고 ‘무릇 글이란 심오한 도리를 평범한 언어로 완벽하게 담아내는데 최고의 기술이 있다’는 전인강(錢仁康, 음악교수)의 말을 모든 문장활동의 좌우명으로, ‘무식한 자는 수(數)를 모르고 교활한 자는 수를 속이고 비겁한 자는 수에 떨고 현명한 자는 수를 초월한다’ 는 격언으로 재치 있게 글을 마무리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본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을 알면 곧 모으게 된다.

안다는 것은 지식을 말한다. 지식은 ‘나’, ‘너’, ‘사람관계’가 옳바르게 련결되여야 참으로 얻어진다.

남희철교수는 이 ‘3자관계’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만큼 보고 본 것 만큼 느끼고 느낀 것 만큼 쓰며 멋지게 살아가는 어른다운 사람이다.

“아무런 여한이 없이 정년퇴직을 하고 오늘의 준비로 차례지는 래일의 인생을 마중하겠다.” 명년 8월 21일이면 정년퇴직한다는 남희철 교수, 그는 “차례진 인생을 넘쳐나게 엮겠다.”고 약속한다.

길림신문/오기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최선자교수에 대한 이야기 오페라가수이며 서남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인 최선자씨 지난 6월 6일, 사천성 수부 성도에 자리 잡은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금운루음악청은 예술에 지향을 둔 젊은 대학생들과 국내 각 지역의 음악전문가들, 서울, 도꾜, 빠리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이였다. 연변에서 태여...
  • 2018-06-19
  • [박종호의 다문화에 비친 우리] 23 조선족 출신 예동근 씨 "조선족·탈북자까지 다문화에 넣는 게 맞나요?"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예동근 교수는 조선족 출신으로 한국에는 2003년에 처음 왔다. 주로 대학에만 있다 보니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차별은 받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로 오인되어...
  • 2018-06-15
  • 연길시아리랑꽃민족예술단 조선호 단장            우리 무용에서 남성춤은 무엇보다 동작이 크고 선이 굵어 무대에서 시원스러운 포즈로 관중들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무용을 익히기란 정말로 조련치 않다. 그런 남무용수의 삶을 이어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넘는 사나이가 있다...
  • 2018-06-06
  • 88년생 피아니스트 김해 미국에서 오페라코치로 품위있게 변신     연변출신의 조선족 김해피아니스트가 우리민족 음악계는 물론 중국음악계에서도 아직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오페라 코치’(歌剧艺术指导)로 미국 메릴랜드 국립 오페라단에 자랑스럽게 입성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동양인들...
  • 2018-06-04
  •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찬 여자    일본 생활 16년, 미용사에서 행정서사가 되기까지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선화 기자= 미용사와 행정서사, 너무나 판이한 두 분야, 얼핏 보기에 연관이 없는 두 분야이지만 교집합을 이루니 바로 장순화 씨(42)가 그 주인공이었다.   16년...
  • 2018-05-31
  •      “비자문제 해결 등 권익 활동”   1996년에 한국에 건너왔다.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 와서 갈비집 서빙부터 마트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중간에는 일본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다. 22년이 흘렀다. 수도권에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고, 어엿한 화장품 가게...
  • 2018-05-31
  •     김철 KB증권 대치지점 중국 전문 PB    최근 한국내 증권업계에는 중국 동포(조선족) 출신 애널리스트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각각 1~2명씩 채용해두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대개 본사에서 중국 주식 관련 리서치나 법인 브로커리지 영업을 담당한다. 중국 시장 등 높아...
  • 2018-05-28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김봉호 원로 작곡가 김봉호(80살)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수식어는 ‘의 작곡가’다.   지난 세기 60년대 중국대지에서 울려펴진 , 로부터 개혁개방 초기 시대의 숨결이 담긴 , 그리고 새 세기 장백산기슭에서 울려펴진 에 이르기까지 김봉호는 1500여수의 작품을 창작하면서 60년이라는...
  • 2018-05-25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김철 20세기 70년대 말에 창작된 (동희철 작곡)는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이 노래의 작사자가 바로 김철 시인이다. 이 노래는 당시 중국의 으로 지위가 일락천장이 됐던 교육자들의 위상을 높여주고 옳바른 교육기풍을 선양한데서 연변을 비롯해 전국의 조선...
  • 2018-05-18
  • 5년 사이에 가맹점 103개를 둔 연변언니외식업관리유한회사 박은희 사장 "오두막"집 녀주인 박은희 사장. 신록이 질어가는 4월의 하루, 연길 부르하통하강변에 위치한 연변언니외식업관리유한회사(延边恩你餐饮管理有限公司) 사무실에서 가맹점 경영의 선두를 달리는 박은희 사장(40세)을 만나 그 야릇한 “경영비결&...
  • 2018-05-18
‹처음  이전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