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때 붓을 들어 올해로 39년째 막연한 설렘으로 캔버스(画布) 앞에서 시간을 낚고 있는 이가 있다. 현지에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오랜 북경생활과 함께 그곳에서는 이미 유화로 이름난 조선족 화가 박성호씨(53세)이다.
지난 17일, 연길시익화광장부근에 위치한 그의 새로운 터전에서 힘찬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85년에 연변대학 무대미술학과를 졸업하며 연변가무단에서 무대미술 전문일을 해왔던 그이지만 점차 유화그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며 북경행을 택했다고 한다. 발전가능성이 큰 공간을 찾아 떠난 곳이였건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어담을 수 없는 법,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였습니다. 성공하기 전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자리잡고 있었죠.” 지나간 24년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박성호씨는 할 말이 아주 많은 듯했다.
앞선 몇년간은 벽화그림을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밤을 지새우면서도 빠른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려고 애써왔다며 지난날의 노력이 없다면 결코 오늘의 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때 당시 미국, 유럽 등 세계 각 지역에서는 세계명화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았습니다. 하여 저도 그곳에서 해외에 수출하는 명화복제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였죠.”
높은 기술 요구로 인해 그림 실력은 더 할 나위 없이 제고되였지만 상품화 위주의 그림만 쫓아가다 보니 정작 자기만의 작품세계는 마음껏 펼쳐보일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며 박성호씨는 아쉬움을 전했다. 하여 지금부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펼쳐보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는 인생 후반전의 한 축이 그림이라면 또 다른 축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더욱 반짝반짝하게 빛내기보다는 꿈꾸는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전수에 힘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박성호씨가 인생 후반전을 대하는 태도였다.
현재 중국미술가협회 회원, 연변미술가협회 회원, 남방미술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 국내외를 넘나들며 쌓아온 다양한 경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 것” 같다며 설레임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인생 전반전이 리익을 확대하는 삶이였다면 인생 2막은 착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시기가 아닐가. 박성호씨의 인생 후반전이 더욱 기대되는 리유다.
글·사진 민미령 기자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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