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는 자치주와 동갑이라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9월12일 09시55분    조회:527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학송


7일, 시인 김학송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해서부터  그가 창작한 시 《나와 자치주》에서 자치주와 같은 해 태여나 자치주와 함께 걸어온 인생에 대해 김학송은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고스란히 전해 느낄수 있었다.
 

◆사랑은 바다(1952.6-1968.8)

김학송은 1952년 항미원조 전쟁이 한창인 시절 도문시 홍광향 곡수촌에서  태여났다. 총포소리가 들려왔고 가끔 마을에 폭탄이 떨어질때도 있었지만 그는 동년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먹고 입을것이 부족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했고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 대가족의 ‘사랑바다’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성장했다.
 

김학송이 다니던 마을의 조선족소학교에는 당시 500여명 학생이 있었다. 오전 4시간만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래 애들과 어울려 자연속에서 맘대로 즐겁게 뛰노는게 업이였다.
 

자치주 성립 초기, 인심은 순수했고 사람들은 희망과 랑만에 넘쳤으며 서로 돕고 배려하는 풍조가 온 사회에 넘쳐났다. 김학송은 자신의 시적인 감수성은 아마도 대자연과 그 시대가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1965년 8월 그는 도문시 1중에 입학했지만 2학년 첫 학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여 학업을 중단하게 되였다. 그와 자치주는 문화대지진의 소용돌이에 빠져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어야 했다.
 

◆세월은 흘러(1968.9-1983.2)

1968년 9월, 김학송은 그 시대의 풍조에 따라 농촌에 내려가 농민이 되였다. 갓 17세, 키가 삽자루만한 청년이였던 그는 평생 농민이 될 각오를 하고 농촌살이를 시작했다. 1975년에 입당하고 그해 9월 추천을 받아 장춘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에 진학했다. 김학송은 “7년간의 농민경력이 김학송한테는 가장 보귀한 자산이 되였고 그때의 고생과 시련은 김학송의 문학을 떠밀어준 동력이 되였다”고 말했다.
 

1980년 9월, 김학송은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상하고 몽롱한 기분에 취해 시를 써보았다. 친구가 잘 썼다며 투고하라고 용기를 주었고 김학송은 신문에서 본 주소에 따라 첫 투고를 하게 되였다. 8전짜리 우표를 붙힌 편지를 들고 그는 우정국 밖에 설치된 파란색 우편함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살짝 넣었다 다시 빼내였다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두달 후 잡지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또 한번 떨리는 손으로 열어보던 순간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며 김학송은 그때 받은 편지를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우연하게 쓴 시 한수가 운명적으로 《연변문예》 11월호에 실리면서 김학송의 운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듬해  1981년 《연변문예》잡지에 한번에 시 8수와 시인 략력이 실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김학송의 문학인생, 자치주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룩했듯이 김학송의 문학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1983년 3월에 우리 주에서는 연변대학에 작가반을 꾸렸다. 23명 청년문학영재의 1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4년간 받은 작가반 수업은 김학송을 더 큰 문학세계에로 이끌어주었다. 작가반 재학 시기 그는 첫 사람으로 “연변문학 문학상”(1984년)을 수상했고 졸업후 자원하여 고향인 도문에 돌아가 문화국 창작원으로 근무했다. 그때부터 시, 동시, 만담, 가사, 수필 등 여러 쟝르에 폭 넓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0년에 창작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자치주창립 경축의 노래(1995.6-현재)

김학송은 1995년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으로 취직하였고 《연변가무단 단가》, 《연길의 노래》, 《9.3 경축의 노래》 등 2백여수의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중 《연길의 노래》는 자치주 성립 60주년 전국조선족가요공모에서 1등상을 탔다.
 

한창진행형이라고 말하는 그는 주렁진 창작성과로 인생의 황금가을을 맞이하였다. 자치주창립 65주년을 맞이한 올해 양장본으로 된 컬러판 대형시화집 《내 사랑 연변》과 시선집 《고향은 그리움을 먹고 산다》를 이미 출판에 교부하였고 그밖에 전국소수민족문학상을 탄 시집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재출판을 눈앞에 두고있다.
 

김학송은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2008년), 해외동포문학상  (2010년) 등 상을 받았고 그가 쓴 수필 《태산에 오르며》는 중학교 조선어문교과서에 등재(2005년판)되였다.
 

7일, 김학송은 “자치주와 같은 해 태여나 함께 고생하고 함께 성장, 발전했다. 자치주는 나의 운명이고 인생이며 영원한 사랑이다. 연변조서족자치주를 잘 지키고 잘 건설하는데 있어 문화를 사랑하고 언어문자를 사랑하며 사명감을 가져야만 민족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수 있다.”라며 변함없는 사랑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연변일보 한옥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
  • -“영화광이” 김혁소설가와 만나다 “책속에 묻힌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김혁소설가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중국조선족이민사에서 유서깊은 룡정에 가면 “일송정 푸른솔”과 함께 “해란강가를 말 달리던 선구자”의 “거친 꿈”이 아직도 어느곳엔가 깊이 서려있는듯...
  • 2016-11-19
  • 소설·수필 40여 편…2월 첫 소설집 '중국 여자 한국 남자' 펴내 "조선족 삶 가끔은 소설보다 비참…음지 얘기 양지로 드러낼 것"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가을바람이 제법 선선했던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 독서의 계절을 맞아서인지 평일인데도 인파로 북적였고, 베스트셀러...
  • 2016-09-05
  • 대형무극 “아리랑꽃”의 종목기획과 씨나리오를 맡은 김영건시인을 만나 대형무극“아리랑꽃”의 종목기획과 씨나리오를 맡은 김영건시인 요즘들어 제5회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에 참가하는 연변가무단의 대형무극 “아리랑꽃”의 인기가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다. 일전 기자는 대형무극...
  • 2016-08-17
  • “위대한 작가들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써냈을뿐만아니라 인간의 오욕칠정에 대한 심각한 동정도 써냈다.”- 전용선 전용선(50세)은 다산작가는 아니다. 그는 일년에 겨우 한두편의 소설과 2~3수의 시, 예닐곱편의 수필을 쓴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그에게 글 쓰는 작업을 걷어치우라고 충고를 했다. 지금 세월에 ...
  • 2016-02-27
  • 제1회 단군문학상 수필상 수상자 장정일 수필가. “예전에 동료들이 그러더라구요. 저의 사무실을 노크할 땐 웬지 모르게 긴장된다구요. 제가 그렇게도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인가요? 사실은 면양같이 순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늘 차분한 말투와 정제된 물처럼 완벽을 추구할것만 같은 그의 이미지는 때...
  • 2016-01-22
  • 제1회 단군문학상 시상 수상자 김영건 시인  누군가 시인은 우주의 만물과 인간세상을 이어주는 존재라 말했다. 김영건시인은 멈춰있는것에서 움직임을 보고 부재에서 존재를 찾아가는 일이 바로 자신의 시쓰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돌이나, 바위, 풀, 새, 구름, 바람, 강물은 그 어느것 하나 움직이지 않는것이 없으며...
  • 2016-01-18
  •   사람은 특징적인 외모나 차림새로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타입과 그 인격의 매력이나 신사적인 행위로 인해 오래도록 관심을 끄는 타입이 있다. 내가 만난 리호원(1966년 출생)은 너무나 선명하고도 전형적인 토종모습을 갖추었기에 구태여 지루한 묘사가 필요없을듯한, 아무데서나 만날수 있는 옆집아저씨 같...
  • 2015-05-29
  • 녀자라면 보통 좋아하는 꽃 한두가지씩 있을것이다. 개나리라던가, 진달래라던가. 하지만 이 문장의 주인공 김점순이 제일 좋아하는 꽃은 글꽃이다. 하얀 종이에 펜을 달리며 피여낸 글꽃. 글꽃도 인간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꽃피울수가 있고 들꽃처럼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 남을수 있기때문이란다 2011년 봄에...
  • 2015-03-26
  •     우리 식단의 단골메뉴인 김치는 우리한테 너무나도 친숙한 음식이지만 20일 만난 박용일씨는 “김치를 담그는 법은 알아도 그 유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것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펴낸 《조선족전통문화 풍속이야기》 는 김치를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속의 유래와 깃...
  • 2015-01-24
  • 김득만선생은 55년간 동요, 동시 창작만을 고집하면서 동심에 살아서인지 고희를 훨씬 넘긴 년세에도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다. 조곤조곤한 성품이지라 지인을 만나도 고담준론을 모르고 늘 대방의 말을 경청하는편이며 간혹 입을 열어도 톤은 낮고 어투는 유연하며 구김살이 없다. 1940년 9월,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
  • 2014-11-2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