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 클라리넷 예술의 정초자 백문순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22일 15시12분    조회:665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백문순
 
젊은 시절의 음악가 백문순

 

-연변가무단의 첫 클라리넷 연주자 백문순은 음악가 백철의 아버지

일전에 필자는 저명한 재미조선족 음악가 백철클라리넷리스트를 취재하면서 그의 뒤에 서 계시는 크고 위대한 산, 백철씨의 아버지 백문순음악가와 어머니 최금성무용가의 존함을 듣게 되였다. “부모는 자식을 쏘아 올리는 활이다.” 는 칼릴 지브란의 명언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백철음악가와 최금성무용가를 모시고 고 백문순음악가의 빛나는 예술 발지취를 더듬어보았다.

백문순(1930년-2007년)은 중국 당대의 걸출한 제1대 클라리넷예술가이며 우리 민족 클라리넷예술의 정초자이다.

그는 연변가무단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클라리넷연주가이자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지니고 서방의 클라리넷 음악을 연변에 전파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예술과 결부시켜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평생 자신의 모든 열정과 사랑을 고스란히 바쳤다.

1964년부터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였던 그는 문화대혁명의 거친 대폭풍속에서 억울한 루명을 쓰고 농촌에 내려가 박해를 받다가 몇년후 명예를 회복했고 1976년까지 다시 부단장직을 담임하였다.

보총과 클라리넷을 함께 어깨에 멘 소년군인 선전대

룡정시 조양천진의 빈곤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백문순은 음악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 허세록선생이 지도하는 중학생관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배우게 되였다.

1946년, 16살 되던 해에 백문순은 조국 해방전쟁에 참가하여 보총과 클라리넷을 량쪽 어깨에 메고 동북길동군구 51부대 정치부 문예선전대에 편입되였다.

포성이 울부짖고 총탄알이 비발치는 전쟁가운데서 백문순은 최전방 주력부대들에게 탄약 등을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클라리넷을 가슴에 꼭 품고 목숨같이 소중히 보호하였다.

전쟁이 멈추는 시간들을 리용하여 문예선전대에서 위문공연을 할 때면 그는 감미로운 클라리넷 음악과 우렁찬 개선가로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우어주고 필승의 신념을 안겨 주었다.

1948년 동북길동군구 가무단은 연변가무단으로 거듭났고 백문순은 명실공히 연변가무단의 첫 클라리넷 연주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독일 클라리넷예술가의 특수교육을 받다

1954년 연변가무단에서는 백문순, 안국민, 방초선, 리원경 등을 당시 음악실력이 우수했던 쏘련주재 대련 태평양함대 가무단에 보내여 음악재능을 키우게 하였다.

독일 교수님과 함께 한 백문순(뒤줄 왼쪽 첫번째) (1956년)

1956년 중국문화부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라리넷 연주가이자 교육가인 오스카 크리스맨 (Oska Christman)을 동부 독일에서 초빙하여 국가차원에서 중국 제일대 클라리넷 전문인재를 배양하기 위한 특수반을 창설하였다. 전국적으로 엄격한 시험을 거쳐 크리스맨 선생이 직접 10명을 선발하였고 기존의 중앙악단 4명의 연주가들을 포함하여 도합 14명으로 구성되였다.

독일교수님은 전문반학생들한테 요구가 엄격했을뿐만아니라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었고 매개 학생들의 음악풍격에 중시를 돌리면서 고전음악, 랑만파, 인상파, 근대음악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부하고 다채로은 클라리넷 지식과 연주법을 가르쳐주었다.일심정력으로 배움에 열중하던 전문반학생들은 졸업후 중국 클라리넷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는바 올해가 그 졸업 60주년을 맞아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클라리넷의 다양한 음색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백문순은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독일전문가의 특수교육을 흡취하였고 중앙악단에서 일년간 경험을 쌓은후 연변의 민족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의 계획에 따라 연변가무단에 돌아왔다.

“클라리넷을 사랑한 진정한 음악인”

백문순음악가의 안해인 최금성무용가는“남편은 클라리넷을 정말 좋아한 진정한 음악인이였다”면서 밖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늘 음악을 듣고 클라리넷을 부는 연습을 했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말했다.“다른 취미생활들을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며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모든 일들을 하였다고 회억하였다.

1950년 10월 5일 백문순은 연변가무단과 함께 국경 1주년 경축공연에 참가하여 감격스럽게도 모주석 ,주은래, 주덕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1956년,북경천교극장에서 열린 제1차 전국대합창콩클에서 연변가무단의 합창단과 교향악단은 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으로 된 《장백의 노래》교성곡을 뜨거운 감격의 하모니로 연출해냄으로써 1등의 월계관을 따냈다.

 

북경 천교극장에서 열린 제1차 전국 대합창콩클 (1956년)

그 이듬해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세계청년련환절에 연변가무단은 중국을 대표해 《장백의 노래》를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 올려 은상을 수상함으로써 연변조선족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중국을 위하여 영예를 떨치였다.

백문순은 수석클라리넷연주자로 연변가무단의 력사에 길이 빛날 력사적무대들을 장식하였다.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연변의 클라리넷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청춘의 정열을 불태우며 1956년에 《전국문화계통선진사업자》로 1957년에 《전국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다.

1958년에 백문순은 중국문화부 예술방문단 성원으로 조선을 방문하였고 1960년에는 중국서북지구 순회연출단에 참가하는 등 전국 방방곡곡에 순회공연을 다니며 명성을 떨치 였으며 1992년에는 향항중국예술절 공연에 참가하였다.

1962년 《9.3》공연시 《목동무곡》연주, 왼쪽으로부터 김성민, 백문순, 김홍수(더블 베이스)

연변가무단시절 30여년동안 그는 자치주내 농촌, 광산, 공장, 병영, 학교 등을 찿아 다니며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은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광범한 대중들의 문화생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사업했다.

그는 연변음악가협회 리사,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회원, 중국음악가협회 회원직을 담임하였고 1960년부터 1982년까지 연변조선족자치주정협위원을 력임하였다.

중국클라리넷 음악사상 첫 레코드 출판

1964년 중국레코드회사에서는 클라리넷 예술사상 최초로 백문순클라리넷독주 레코드를 제작하였다.

그가 연주한 클라리넷 독주곡들인 안국민선생이 작곡한 《농악놀이》와 《풍년가》, 정진옥선생이 작곡한 《목동무곡》등은 클라리넷민족음악의 전범이 되여 음악계는 물론 전국각지 광범한 청중들의 높은 평가과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백문순을 일명 《백퉁소》라고도 불렀다.

그는 전병록한테서 퉁소연주와 함께 그 제작법을 배웠고 1952년에 퉁소개량에 재능을 보이면서 민악대를 조직하여 퉁소놀이합주공연을 함과 동시에 민족정서가 농후한 《라질리》(벌목가) 를 연변에 보급시키고 대중화시켰다.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제자들

백문순은 연변가무단에 있는 동안 연변예술학교에 클라리넷 대과교원으로 파견되여 독일교재의 기본원리와 로씨야음악교재, 및 중국교재들을 결부하여 전면적인 클라리넷 연주법과 리론을 가르쳤고 또 특정된 력사배경하에서 동북3성에 있는 수많은 조선족공농병제자들을  배양하였다.당시 클라리넷예술계에서 권위였던 백문순을 찾아 동북지대는 물론 제남군분구 문공단 연원들을 비롯하여 중학생으로부터 예술일군들, 개인뿐만아니라 단체로, 길게는 5~6년, 짧게는 하루 클라리넷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최금성무용가는 남편을 떠올리면서 “클라리넷을 배우러 집에 찿아오는 학생들도 참 많았어요.그럴때마다 남편은 늘 반갑게 맞아주었고 만사를 제쳐놓고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었어요. 지금 세월처럼 돈받고 배워준적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아들 백철을 가르칠때에는 시간이 없어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어서 제가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하고 푸념도 내비쳤다.

귀건강 때문에 상해에 일년동안 머무르면서 치료받는 동안에도 백문순은 상해음악학원의 요청에 따라 선뜻이 클라리넷을 가르쳤다.

1976년부터 1978년 은퇴할때까지 백문순은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전근하여 부교도주임과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에서 음악계 부주임(부교수)으로 임직하였다.

그는 여생의 정력을 다하여 그동안 쌓아온 깊은 음악수양과 풍부한 년륜으로 클라리넷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남김없이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1950년 국경 1주년 기념공연을 맞으며 모주석께 드릴 두루마기를 둘러싸고 (뒤줄 왼쪽 세번째 백문순)

연변클라리넷예술의 한시대를 풍미한 백문순이 배양한 제자들가운데는 흑룡강성교향악단 클라리넷 수석(首席)김수산, 심양음악학원 관현악단 지휘가 권태성, 길림성 연변가무단 부단장 리용호 등을 비롯하여 북경중앙음악학원과 상해음악학원 등 여러 음악학원을 걸쳐 전국각지에 분포되여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동경에서 음악편집으로 재능을 떨치는 전만석, 재미클라리넷 교수 백철 등을 비롯하여 해외에서 활약하는 제자들도 적지 않다.

《할빈클라리넷 예술의 발전사》에서 김수산은 “백문순선생님은 나한테 클라리넷을 배워주는 3년 남짓한 동안 돈 한푼 받지 않으셨고 또 나를 중앙가무단에 있는 지인 백철민교수님한테 추천해 주시고 입학할수 있도록 끝까지 밀어 주셨다”고 고마움을 기록했다.

백문순 예술생애 55주년 축제

2000년 8월 “중국연길클라리넷교학연주교류회”가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연변대학예술학원, 연변음악가협회, 연변가무단의 주체로 성황리에 거행되였다.

원 국제클라리넷협회 주석이며 세계 저명한 클라리넷 연주가인 찌라더이란터, 국제클라리넷협회 주석 러버트쓰피린, 세계클라리넷대사 쵸나선커러 등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은 음악가들이 행사를 함께 했다.

대회기간에 우리 나라의 저명한 조선족클라리넷티스트 백문순의 70세 생신을 맞으며 그동안 클라리넷음악계에 대한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백문순선생예술생애 55주년음악회》가 뜻깊게 열렸다.

백문순 55주년 예술생애 축제에서(오른쪽으로부터 백문순,도춘효,영어번역을 담당한 며느리)

중앙음악학원 클라리넷교수이며 중국클라리넷협회 주석이며 중국문화부교육사 사장(司长)인 도춘효(군악단시절 백철의 은사님)와 북경, 상해, 광주, 서안, 천진 등 각 음악대학교의 교수와 학생 및 주내 음악계인사 500여명이 행사에 참가하였다.

국제성적인 이번 행사에서 백문순을 수석으로 국내외 60여명의 저명한 클라리넷티스트들이 국가 1급 지휘자인 안국민선생의 지휘하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클라리넷합주곡을 연주하는 쾌거를 올렸다.

연변클라리넷음악계의 한획을 긋는 이 력사적무대에 특별히 중국과 세계클라리넷 음악계를 누비고 있는 2세 백철이 함께 하여 한결 이채를 돋구고 신선한 충격을 선물하였다.

《청출어람》이라고 1999년에 백철은 중국인으로서 가장 최초로 미국에서 클라리넷 솔로음반을 발표하여 국제음악계의 주목을 모았다.

2004년에 두번째 솔로음반  《20세기의 헌신》을 중국에서 발표하였는데 그중에는 백철이 국제년례회의에서 전문가들의 절찬을 받았던 우리 민족의 넋을 고스란히 담은 《아리랑클라리넷 변주곡》도 들어있다.

음반출판을 축하하여 이스라엘클라리넷협회 주석 에바는(Eva Wasserman)“가장 현대적이고 훌륭한 쿨라리넷 솔로음반으로서 감정과 령혼이 살아숨쉬고 있다. <아리랑>이 있어서 음반이 더욱 완더플하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클라리넷예술에 대한 백문순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정한 음악가로서의 참된 삶의 향기는 당년에 그가 하늘높이 멀리 쏘아올린 화살 ,아들 백철의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전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여야 한다”는 철학과 더불어 중국과 세계무대에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

/길림신문 미국특파원 리화옥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의학과학원 군사수의연구소 바이러스학 전문가 김녕일 원사 김녕일(金宁一), 세간에 별로 흔치 않는 이름이었다. 김녕일은 그의 이 이름에 명인의 영상이 비껴 있다고 말했다. "저의 생일이 러시아공산당의 수령 레닌(列宁)과 하루 차이가 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인데요." 그래서일까, 김녕일의 이름은 ...
  • 2016-01-15
  • 스마트해진 시대, 휴대폰 하나로 할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가. 10일, 주로간부국에서 만난 리영진씨(72)세는 검정귀버섯재배농들이 위챗으로 보내오는 질문들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상담해주고있었다. “요즘처럼 편한 세상이 또 있을가요. 사진 한장만 찍어보내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제가 기술지도를 할수 있습...
  • 2016-01-13
  •  - 재외동포재단 김영근 사업이사 재외동포재단 김영근 사업이사는 재외동포 출신이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30여 년을 재미동포로 살면서 워싱턴한인연합회 회장, 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입국한 뒤로는 세계한인네트워크를 설립해 운영했고, 총리실 산하 재외동포정책위원회, 외교부 정...
  • 2016-01-11
  • 동녕룡흥봉업전문합작사 박룡진 총경리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기자= "누가 어디서 생산했고 또 누가 수매했다는 등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해 품질에 하자가 생겼을 경우 추적할수 있도록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 얼굴있는 꿀을 생산하겠다"고 승낙한 경영인이 있다. 그 주인공이 흑룡강성 동녕룡흥봉업전문합작사 박룡진...
  • 2016-01-11
  • “앞으로 명태를 더욱 개발하여 우리 민족의 유명 브랜드로 키워가는것이 저의 꿈입니다.” 주변의 시선과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업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키워가고있는 연길시 영진식품유한회사 사장 김춘섭(39세)씨, 지난 12월 25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명태는 사실 버릴것이...
  • 2016-01-06
  • "회원과 모국의 소통 거점 만들어 '킨텍스 시대' 열겠다" 국제통상전략연구원·창업지원센터·비즈니스센터 내달 개관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올해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가 창립 35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우리는 많은 일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무형의 자산을 보...
  • 2016-01-05
  • 현대사회에서 민족적 또는 지역적 특징의 아름다움을 지닌 공예품은 전통의 범주를 넘어 문화로 대변되기도 하고 때로는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목, 나무 뿌리, 돌 등의 원자재가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복잡할뿐더러 대부분 완전 수공으로 제작되다 보니 가격이 비싼데다 재고까지...
  • 2016-01-05
  • 어쩌면 창업이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대, 경쟁력이 확보된 창업아이템선정과 업무를 널리 알리는 홍보의 힘 그리고 무엇 보다도 중요한 성공 의지는 창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전개하고 있는 업무를 널리 알리는 홍보야 사회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SNS프로그램인 위...
  • 2016-01-01
  • “예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처음 보는 동판화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너무나도 놀라웠어요.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섬세하고 생동한 표현력에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죠.” 28일,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최병철(63세)씨는 동판화와의 특별한 인연을 이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젊은 시절...
  • 2016-01-01
  •         무순시 취록금방 정해봉(흑룡강적)사장의 창업스토리   무순시 한왕백화상점(罕王商店)에 7개 금방 매출액의 60%를 차지하고 매달 200만원이상의 매출을 올리고있는 조선족사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전 기자는 그가 경영하는 무순시취록금방(抚顺市翠绿金店)을 찾아갔다. ...
  • 2016-01-01
‹처음  이전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