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출신으로 문예지 통해 ‘첫 등단’한 이송령 씨
“힘들 때 있지만 ‘희망’ 품고
‘반짝이는 존재’가 되고 싶어
내년 귀화 주민증 취득 계획”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썼지만 외국인 신분… 이제 한글로 글을 쓰니 너무 행복해요.”
이송령(34·사진) 씨는 5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선족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하고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게 2012년. 한국에서 살고, 한국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자신도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설레게 했던 건 ‘조선어’가 아닌 ‘한국어’로 마음껏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그때부터 그는 학창 시절부터 틈틈이 써온 일기와 메모를 토대로 시를 짓기 시작했다.
“언어는 통한다고 하지만 조선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보다는 어감이 사투리 같은 면이 있죠. 그래서 표준어를 사용해 시를 쓰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시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죠. 그러다가 알게 된 게 서울시인협회입니다. 민윤기 회장님의 조언을 들으며 시를 다시 공부했고, 결국 이렇게 등단하게 됐습니다.”
이 씨는 올해 월간 시(see)의 특별추천상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꿈을 이뤘다. 서울시인협회에 따르면 조선족 출신으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것은 이 씨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 씨는 이 중 약 90편을 추려 최근 ‘나의 시는 아직 입원 중이다’(문화발전소)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펴냈다. 제목처럼 작품들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시어가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풋풋하다. 30대 여성으로서 사랑의 감정과 시작(詩作)에 관한 고민이 배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외국어 같은 모국어 속에서 언어의 키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시를 통해 내 안의 마그마를 토하고 싶었고, 어디서든 믿음과 희망을 품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위에서 반짝이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이 씨는 현재 경기 화성시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마케팅과 통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와 한국어까지 가능해서 업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경기 광명시에서 함께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 있어 든든하다.
“지금은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내년쯤엔 귀화 후 주민등록증을 취득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두 번째 시집을 위해 더욱 힘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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