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봇나무’를 닮은 음악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16일 08시50분    조회:822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창규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최창규

연변에서는 어디를 가나 봇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춥고 황량한 벌판일 수록 더욱 꿋꿋하게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봇나무는 아름다운 자태와 굳센 의지가 회자되면서 세인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지난 1월 29일에 만난 최창규옹(84세), 그가 창작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관현악곡작품 <봇나무>처럼 그의 음악인생 역시 세파 속에서 흔들림없이 자라온 ‘봇나무’와도 같았다.

 

음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최창규옹은 혹시 이 생에 음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어떤 삶을 살았을가라는 생각을 가져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마 나는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을 이으며 그는 음악과 함께 울고 웃던 지난 60여 년을 회억했다.
 

1935년에 태여난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직접 보아온 산증인이다. 지난 세기 40년대 말, 꿈 많은 소년이던 그는 자신의 음악적 천부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지지에 힘입어 바이올린과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예술이 선물하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 자신의 재능을 키우며 그는 문득 제대로 된 음악을 하려면 기초적인 지식과 리론부터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로운 꽤 얻기 어려운 일본어로 된 음악리론집 《악전》을 구해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조선평양음악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조선전쟁은 최창규옹의 배움의 길을 막았다. 하여 그는 아쉬운대로 꿈을 접고 당시 할빈에서 로씨야인들이 운영하는 학교인 할빈쏘련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 곳에서 1년 남짓 공부했으나 결국 아들의 뒤바라지를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공부를 접고 고향에 돌아왔다.
 

1952년, 최창규옹은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김재창 선생의 추천으로 연변문공단(현 연변가무단) 바이올린 연주원으로 취직하게 되나 어린 나이 탓에 정규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이어 화룡중학교의 음악선생님으로 취직,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던 18살의 앳된 선생님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국 반년 후 학교에서 나와 당시 장춘으로 이주했던 조선영화촬영소 본부에 악대 대원으로 가입, 나중에는 중국 탄광 문공단(심양)에서 3년 동안 악대 대원으로 있었다. 그렇게 5년 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최창규옹은 끝내 자신의 가장 원하던 바를 알게 됐다.
 

“민족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 같았다.”
 

이처럼 민족음악에 대한 사랑이 더욱 간절해지자 1957년, 그는 끝내 다시 연변문공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95년까지 장장 40년, 그는 더이상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민족음악예술사업을 위해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쳤다.

 

<봇나무> 그리고 그의 음악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가곡의 창작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법한 관현악 창작에 매달린데는 최창규옹만의 리유가 따로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노래보다는 악기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여러가지 악기가 혼연일체로 되여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종종 그의 넋을 빼앗아갈 때가 많았다.
 

그는 훌륭한 음악은 선률도 아름다워야 하거니와 ‘음악의 두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화성, 다성부, 곡식, 배기법 등은 작품을 완성하는데 그 어느 것도 빠질 수 없다. 그는 특히 화성기법의 사용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 것을 어떻게 달리 쓰느냐에 따라서 음악의 전체 색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창작리념이 가장 잘 돋보이는 작품은 바로 관현악곡 <봇나무>이다. 1991년에 창작한 이 작품은 최창규옹이 자신의 모든 음악지식과 리론을 총동원 해서 창작한 작품으로 화성기법이 유난히 돋보이는데 전통적인 화성 외에도 중중음 화성과 같은 것들을 도입했으며 악기의 배합에 있어서도 교묘하다. 따라서 <봇나무>는 리론과 예술성이 잘 매치된, 우리 민족 관혁작품 가운데서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족녀성의 깨끗하고 단아한 이미지와 고난 앞에서 굴할 줄 모르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굳센 의지를 형상화한 <봇나무>는 애초에는 무용곡으로 시작됐지만 반복적인 수개를 거쳐 지금의 관혁악작품으로 탄생했다.
 

최창규옹은 편곡에도 조예가 깊다. 매 한개 곡을 편곡할 때면 그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기를 즐겼으며 1992년 리승숙 안무의 무용곡 <처녀지>를 편곡할 때에는 당시 연변에서 처음으로 12음수법을 도입해 업계의 긍정을 받았다.
 

‘옛 것의 장점을 취해 오늘에 유용하게 하고 외국의 장점을 취해 중국에 도움되게 쓰다.’ 모택동이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했던 이 발언은 이후 최창규옹의 창작방향을 가리켜주었다.
 

그는 “요즘에 와서 우리의 음악이 많은 발전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옛 것’과 ‘외국의 것’을 ‘우리 것’과 교묘하게 매치시키는데 아쉬움이 보여진다”고 말하면서 “특히나 예술에서 민족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민족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작품 속에 절적하게 녹여내야 조선족 특색의 음악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짚었다. 또한 “음악창작에 있어 리론적인 깊이가 약한 부족점도 보여진다”며 후배들이 기악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줄 것을 바랐다.
 

“요즘 들어 우리 민족의 기악작품 발전은 미미하다. 관현악작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교향악은 거의 없는 상태다. 악대의 편제도 완벽하지 못하지만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리론적인 학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깊이있는 관혁악작품들을 창작해내 고향인민들의 문화수양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돈으로 예술의 가치를 흥정하는 현실에도 진정으로 고독을 이겨내며 명리의 유혹에 젖어들지 않고 마음을 다해 꾸준히 음악을 연구하는 그런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
 

최창규옹이 후배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이다.

 

연변일보 글·사진 박진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흑토벌의 진달래(1)   새 중국 빙속 일인자 조선족 라치환의 이야기   만물이 파릇파릇 소생하는 지난 3월말, 취재팀은 ‘새 중국 창건 70주년’기획보도 취재차로 라치환 선생의 저택을 방문했다. 라선생은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운동건장의 모습을 보여주...
  • 2019-05-20
  • [국경70돐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7) --남승헌: "기계로 물건을 가공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습니다. 자동차공장에 오게 된 것도 손재간 때문이였지요." 1953년 5월에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한 남승헌(南胜宪)은 자동차연구소 시험제조공장의 고급기능공이자 '만능공'으로서 손재주가 뛰여난 ...
  • 2019-05-15
  •        검찰사업에 종사한후 17년동안 김영매는 문제소년들을 바른길로 이끌고 그들의 성장에 줄곧 관심을 돌렸다. 김영매는 북경시3.8홍기수와 북경시검찰기관 선진개인, 북경시검찰기관 미성년자검찰업무기준병의 영예를 따내고 제7감찰부를 이끌어 전국청소년권익수호부서, 전국녀성문명서문, 북경...
  • 2019-05-13
  • 속산으로 중국을 놀래운 조선족‘속산 천재’오미령 인터뷰를 받고 있는 오미령씨. # 6살에 속산(珠心算)을 배우기 시작하여 11살 되던 해에 전국 선발시험을 통과하며 중국인민해방군 속산팀에 선발. 12살이던 1995년 12월에는 군대에 입대하며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힘들 법한 군대생활을 시작. ‘...
  • 2019-05-07
  •     이        름:  장현정(张贤静)   출  생  지:  길림성   민       족:  조선족   지원전공:  연기학과   입시성적:  중앙희극학원 9위, 북경영화학원 전국 2위, 녀학생 성적순위 전국1위, 상해희극학원 성...
  • 2019-05-06
  •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오홍민 박사 일본서 사회보장법을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선화 기자= 2019년 현재 일본에는 총768개소의 대학이 있는데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대학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출신의 대학교수가 20~3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의 오홍민 교수는 ...
  • 2019-05-05
  • 칭다오시 중한창업센터 정용진 사장의 특별한 보이차 사랑   지난해 11월 17일 청양에서 개최된 중한차업합작센터 설명회에서 정용진 사장이 사업소개를 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매년 봄철이면 칭다오에서 윈난성의 심심산골에 가서 전문 몇백년 심지어 1000년 된 보이차 나무를...
  • 2019-05-05
  • 中동포 ‘롤모델’ 남기학 회장이 말하는 ‘조선족 경제’ ▲ 남기학 중국 예지아기술그룹 회장은 24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경제개방 초창기 지식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해외로 나가지 않고 연안도시로 나가 경제활동을 했다”며 “나도 그런 사...
  • 2019-04-30
  • 박차룡의 어릴적 소원은‘취득'이 였지만 지금은‘놓기', 즉 후대의 육성사업에 전념한다는 것.   타고난 씨름군, ‘천하장사’ 운명이랄가 박차룡(1958년 생)은 태여날 때 부터 씨름 장사의 천부적 기질을 가지고 태여난것 같다. 태여나자마자 저울에 떠보니 몸무게가 4...
  • 2019-04-29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