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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밥이 그리워서요' 직장생활 그만두고 귀향창업에 나선 젊은이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9일 14시57분    조회: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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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박광호

    

    “귀촌했다면서? 뭐하고 사냐?”

  “농사 짓지ㅋㅋ”

  귀농, 대개 정년퇴직 후 고향이 그리워 시골로 가는 중장년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감자 캐고 모내기하며 로후를 만끽하는 모습이랄가? 하지만 여기 34세 박광호씨는 새시대 농군이 되고싶어 3년전 고향인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영안진 영안촌으로 돌아왔다. 사천대학교에서 공상관리학을 전공한 그가 졸업후 7년간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불현듯 귀향을 결심한 리유는 무엇이였을가?

  부모님에게는 반갑잖은 소식이였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시켜 대학을 보냈더니 어느날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며 고향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절대 농사짓지 마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였다.

  여느 귀향 청년들이 그렇듯이 숨막히는 도시생활이 지겹기도 했지만 박광호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결정적인 리유는 “고향밥이 그리워서”였다. 고향의 밥맛에는 어떤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위로의 힘이 있었다. “농사는 아무나 짓냐”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광호씨는 당당히 귀농을 결심했다.

 

 

  “지금은 성도시에도 한식집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어릴적 기억속의 그 맛은 어디를 가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뿐이 아닐 겁니다. 타지에서 일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고 하루에도 열두번 그만두고 싶은 심정입니다. 퇴근후 한잔하고 나면 한시적으로 스트레스는 풀 수 있지만 이튿날 밀려오는 숙취는 어떻게 할 수 가 없었습니다. 뜨끈한 장국에 밥 한그릇 말아 김치 한조각 얹어 먹는 고향 밥상이 얼마나 그리웠던지요. 설명절 때마다 고향에 돌아와 고향밥을 먹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짜증과 피곤이 자연스레 가라앉더라고요. 그 뒤로는 고향쌀을 성도까지 가져다 먹게 되였고 그 맛이 저를 지금 여기까지 이끈듯 합니다”

  당시 영안촌도 로동력이 다 빠지고 없었다. 그럼에도 박광호씨가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젊은 사람이 농사일을 하는 것이 기특하다며 격려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신과 우려의 눈길이 더 많았다. 일반 대학교도 아닌 명문대를 졸업하고 시골에 내려온 도시청년을 보며 촌민들은 호미도 만져보지 못한 햇내기를 뭘 믿고 내 밭을 맡길수 있겠냐며 반대해 나섰다. 그러나 1년만에 불신은 해소됐다. 방법은 간단했다.

  영안촌 김시호 당지부 서기가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젊음의 패기였다고나 할까요. 이른봄 농사짓기 전이 였지만 광호는 촌민들에게 그 한해의 배당금을 사전에 나눠드렸습니다. 솔직히 그 한해는 수익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광호는 나라의 정밀 가난구제에 발맞추어 단 얼마라도 촌민들에게 전해드리며 안부를 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듬해인 2017년부터 촌민들이 ‘내 밭을 맡겨도 되겠네’라며 광호에게 믿음을 주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뒤로 해마다 생산량이 늘고 있습니다. 촌민들의 신뢰가 광호에게 큰 힘이 됐나 봅니다.”

 

  수전 47만 평방메터 한전 16만 평방메터, 합치면 63만 평방메터이다. 이 드넓은 벌판이 박광호씨의 “자연 사무실”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밭에 도착하면 5시다. 5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해질 때까지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쉴틈이 없다. 그렇게 진심이 전해질 때가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자 마을 주민들도 하나 둘씩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노력하는 청년의 모습이 갸륵해 지금은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박광호씨는 귀농 초기의 자신을 “머리없는 파리”에 비유했다. 경험도 계획도 자신감도 없이 무작정 부딪쳤다. 농촌 생활에 적응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닥치는대로 마을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휩쓸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적응해가고 있더라는 박광호씨다.

 

 

  밭을 도맡아 경작한 첫해인 2016년 병충해로 골머리를 앓던중 설상가상으로 태풍 라이언 룩이 덮쳐 생산량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30만 가까이 더 내여 손실을 막아야 했다. 나라의 귀향창업 지원정책으로 농업 관련 학습기회가 주어졌지만 강습과정에서 그 뜻을 리해하지 못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학습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박광호씨는 학습기회만 있으면 지금은 가장 먼저 등록하고 배우기에 몰두한다. 첫해의 실패를 경험으로 삼고 이듬해부터는 밭에 자주 나가 더 많이 관찰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보이면 전문가를 찾아가 문의하고 경험자들을 자주 밭에 모셔와 보이면서 문제의 근원을 찾고 해법을 지도받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박광호씨는 어느새 초짜 농부티를 벗고 듬직한 청년 농부의 차림새를 갖춰가고 있다. 젊은층의 아이디어도 한몫했다. 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인상을 고심하던 중 박광호씨는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요즘 추세에 대비해 쌀을 500g 분량으로 단독 포장해 판매했다. 1인 가구 또는 소규모 가구를 겨냥한 제품으로 작은 밭솥에 딱 한끼 해먹을만한 량으로 진공 포장된 제품은 성도에 사는 지인의 첫구매를 시작으로 북경, 상해, 천진, 곤명 가장 멀리는 서장자치구 라싸에까지 팔렸다.

 

  영안진 당위원회와 정부의 빈곤해탈 정책에 발맟추어 지난해부터는 훈춘시 발전계획판공실, 영안촌 “당지부위원회와 촌민위원회”의 인솔하에 훈춘시 혜성익가 양식·재배전문합작사 (珲春市惠诚益家种养殖专业合作社)를 설립하고 영안촌 15가구 빈곤가구를 합작사에 가입시켜 영안촌의 빈곤해탈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합작사 설립 첫해 박광호씨는 자신이 직접 생산한 유기농쌀 10kg과 위문금 500원을 들고 빈곤가구 어르신의 댁을 찾았다. 어르신들이 고맙다며 손잡아 줄 때 그 눈빛에서 보람을 느끼고 밭일의 고단함도 싹 가셔진다는 박광호씨다.

 

 

 

  박광호씨 못지 않게 김시호 당지부 서기도 변해가는 촌 모습에 싱글벙글이다.

  “광호가 고향에 돌아온 뒤로 마을이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농사에 대한 의식부터 달라졌는 걸요. 타지에서 일하는 분들도 광호를 보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기성세대도 이런 청년들을 보니 유조한 플랫폼과 환경을 마련해줘야 겠다는 의무감이 생깁니다. 광호와 같은 청년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안진이 더 발전할 수 있겠지요. 발전 성과도 다 젊은 동무들의 것입니다. 농사도 농사겠지만 이곳에서 청년들은 베풂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농업에 기여하는 일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제창할 만한 선택입니다.”

  농업을 대하는 박광호씨의 자세도 남다르다. 당장 농사로 돈을 벌기보다는 후대를 생각한다.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것 외에 환경친화적 농업을 육성하려는 구상이다. 현재 영안촌은 현대화 농기계창고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농기계창고가 들어서면 환경오염도 없고 부가가치 창출에도 유조하다. 단순한 경제효익보다는 촌민과 후세를 생각한 사회효익 창출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쏟고 있는 박광호씨, 그 결실로 2016년 훈춘시 “귀향창업 선진개인” 칭호를 수여받았고 공청단연변조선족자치주대표대회에 유일한 농촌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 영안촌 자체생산 입쌀 2017년 9월 상표등록을 신청하고 허가를 기다리고있다.
Vary 농촌청년창업련맹 첫자모를 따 조합한 단어이다.실제로 영어 단어로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긍정의 뜻이 담겨있다.

 

  “무엇보다도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인들이 포기하게되면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요즘들어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그만큼 문제도 많고요. 유기농 작물을 가꿔서 고향의 음식 안전에 일조할 수 있다면 힘쓸 것입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초보 농부이지만 나중에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는 새시대 농군이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인민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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