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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타향에서 역경 딛고 일어선 조선족 김춘희 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21일 11시26분    조회: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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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춘희

   

    원제목: 역경을 딛고 일어선 김춘희의 미국 이민생활 

    지난해 10월 24일 밤 11시 30분경, 재미 조선족 김춘희 씨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도라빌에 있는 '꼬치마루'식당에 3인조 흑인 무장강도가 침입하였다.

  퇴근하면서 '꼬치마루'에 들른 7명의 맛사지 여성의 돈을 노리고 추적해 온 무장강도들이 난발한 총에 김춘희 씨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참변을 당한 김춘희 씨는 구급차에 실려가면서도 흘러내리는 산소마스크를 두손으로 꼭 잡고 '범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은 놓지 않는' 인내와 용기로 위기를 간신히 극복했다.

  천명이라고 할까? 수술담당의사는 미세한 차이로 김춘희 씨가 영구성 척추마비를 면하였고 다리도 불구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면서 기적이라고 하였다.

  이국타향에서 가장 힘들 때 고마웠던 그 이름- 조선족

  사경을 헤매다가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그가 간신히 혼미상태에서 눈을 떠보니 애틀랜타 조선족협회 회원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김춘희 씨가 사경에서 헤어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날 밤 협회 어떤 이들은 사고소식을 접하기 바쁘게 자정이 지난 시각임에도 '꼬치마루'에 달려가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돌려보며 상황파악을 하였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조선족협회 회원들은 이민생활의 고된 하루일과를 끝마치기 바쁘게 너도나도 찾아와 밤새 보살펴주기도 하고 온정이 담긴 손으로 상처입은 다리를 정성껏 맛사지 해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김춘희 씨와 함께 울어주고 아파하며 위로해주었는데 그중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초면의 분들도 있었다.

  김춘희 씨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그동안 이민생활이 고달프다는 이유로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여유없이 지냈던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었고 끈끈한 동포애를 베풀어준 조선족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한 달

  수술도 잘 되고 한 달 가량 지내다가 김춘희 씨는 좀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하였다. 그러나 총알이 스쳐지나면서 몸의 신경들을 강하게 자극한 탓으로 극심한 진통으로 몸부림쳐야 했다.

  허리는 끊어질듯, 창자는 비틀어 짜듯 아팠고 다리는 예리한 송곳으로 연신 찌르는 것 같았고 발바닥까지 불로 지지는 듯, 칼로 저며내는 듯 아팠다.

  신경통에는 특이한 치료방법보다는 시간이 약이라 하였고 진통약을 먹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극심한 통증속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는 "내 나이 지금 50대인데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고 목숨을 살려준 의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며 그때의 처절했던 아픔을 하소연하였다.

  한 달이 지나가자 아주 미약하게나마 진통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또 엄연한 새로운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영하던 식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애환과 꿈이 담긴 '꼬치마루'

  '훈춘시 노동모범'상까지 수여받으며 김춘희 씨는 훈춘 밀강에서 27살때부터 10여년간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식당을 잘 운영하여왔다.

  2002년 2월, 시골에서 벗어나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지인의 소개로 미국행에 나선 그는 국경을 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뉴욕일대에서 그는 네일가게, 식당, 사우나 등 업소들에서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억척스럽게 일하였다.

  2007년에 애틀랜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체로 식당을 경영해볼 꿈을 지니게 되었고 그 꿈너머에는 중국에 있는 딸을 미국에 데려다가 공부시키려는 더 간절한 꿈이 있었다.

  그는 미국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려고 타지에 갔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보수로 일만 열심히 해주다가 돈은 돈대로 날린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낯 설고 물 설은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높기만 한데다가 신분문제마저 해결되지 않아 운전면허증은 물론 영업허가증도 받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서러움과 불편함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변식 식당을 경영하고자 어렵사리 한국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아 동업을 시작하였다.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건물구조부터 뜯어 고쳐야 했고 배수처리, 실내 연기처리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절차들을 하나하나 통과하는데만 무려 7-8개월이나 걸렸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건축업에 종사하는 조선족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

  마침내 미국에 온 지 10년 만인 2012년에 김춘희 씨는 양고기 뀀을 위주로 감자만두, 옥수수 국수, 순대, 양탕, 여러 가지 무침 … 등 연변음식을 위주로 한 특색있는 '꼬치마루' 식당을 버젓하게 오픈하였다.

  딸의 미국유학 뒷바라지

  자녀교육에 대한 우리 민족의 관심과 열정은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 같고 눈물 겹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마련되자 그는 자나깨나 소원이었던 딸을 미국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아주 대학에 입학한 딸은 처음에는 언어관을 넘기지 못해 매우 힘들어 했지만 모녀간에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보람으로 지난해 5월에 훌륭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동안 딸의 학비 마련을 위하여 김춘희 씨는 무려 5년동안이나 땀방울을 쏟아가며 일년 365일 날마다 식당문을 열었다.

  꼬치마루는 날이 갈수록 많은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 모았으며 인터넷에도 칭찬의 리뷰들로 가득차 있다.

  그는 "모든 연변 음식들은 여기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어 재개발하였고 준비해놓은 음식이 혹시라도 제 맛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다" 고 하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딸이 고생하는 엄마에게 수 차례 강권하여 작년 3월부터 겨우 월요일을 휴식일로 정하게 되었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김춘희 씨의 꿈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꼬치마루'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뒤 종업원들이 뿔뿔히 도망갔고 두 달이 넘도록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12월 27일, 그는 더 이상 아플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그러나 식당문앞에 이르기도 전에 마음에 앞서 온 몸이 먼저 전율을 일으키며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일주일간이나 그렇게 공포에 떨면서 매일 식당문앞에서 배회하다가는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더 이상 흔들릴 순 없어! 죽음도 이겨냈으니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어! " 김춘희 씨는 다시 한 번 강하게 마음을 추스리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용감하게 식당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 사이에 테이블 위에 두텁게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채 낫지 않은 허리를 바로 펴지도 못한 채 아픈 다리를 끌면서 박박 문지르고 닦아내고 쓸어내면서 하루에 서너시간씩 며칠에 걸쳐서 대청소를 하였다.

  2018년 희망찬 새해를 맞아 1월 9일, 김춘희 씨는 사고를 당한 지 두 달 반 만에 비록 몸이 완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을 다시 오픈하였다.

  '애틀랜타 168' 중국인 정보넷에서는 김춘희 씨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였고 조선족협회 담당자도 위챗에 소식을 알리면서 뜨거운 성원을 부탁하였다.

  올해 2월에 있은 미주동남부 조선족협회 설날맞이 대잔치에 김춘희 씨는 언제 사고를 당했던가 싶게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참석하였다. 그는 웃음꽃을 피워가며 덕담을 나누고 흥겨운 노래와 춤을 선물하여 조선족동포들과 어울려 여강자의 인간 승리 기쁨과 감동을 뜨겁게 나누었다.

  김춘희 씨는 아직도 흐리고 비오는 날씨면 신경통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찾은 보귀한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어려운 이민생활을 힘차게 해나가고 있다.

  리화옥/길림신문 미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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